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8
#817.
틀어막다 (2)
“아쿠아리움?”
[예.]“거참, 이상한 취미가 있으시네. 애들도 아니고, 아쿠아리움이라니.”
이현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강진호는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현수는 강진호에 대한 보고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강진호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총회는 박살이 날 것이다.
‘그전에 내가 살아 있으면 말이지.’
강진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일단 장민이 마기를 풀풀 날리며 이현수에게 날아올 것이다. 말 그대로 날아오겠지. 그와 동시에 바토르가 벽을 부수고 난입할 게 빤했다.
혼이나마 온전히 남아 저승으로 갈 수 있으면 이득인 부분이다.
“피 곤죽이 되겠지.”
불합리하다.
총회에 능력을 갖춘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강진호가 걱정이 된다면 자신들이 호위로 따라붙으면 될 것을 왜 그 모든 일을 이현수에게 일임하고 잘 하라고 닦달만 한단 말인가!
그럴 거면 센 놈들이라도 좀 지원해 주든가.
‘그리고 말이야 바른말이지, 호위? 호위이?’
누가 누굴 호위하나.
호위라는 게 뭔가. 사람을 따라다니며 옆에서 보호하고 지키는 것을 호위라고 한다.
적어도 호위라는 모양새를 갖추려면 귀여운 강아지 옆에 날카로운 이를 가진 늑대들이 붙는 경우는 되어야 한다. 거꾸로 호랑이 한 마리를 애완견 여러 마리가 따라붙는 건 호위라고 하지 않는다. 도시락이라고 하지.
‘누가 누굴 지켜?’
강진호를 호위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다는 건가.
물론 일류 격투기 선수들에게도 호위는 따라붙는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칼이나 총에는 무력하니까. 그런 이들을 지키는 것도 호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강진호는?
어차피 강진호가 못 막는 건 총회도 못 막는다. 그런데 뭘 지키고 호위하란 말인가.
이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거기 사람이 많지 않나?”
[바글바글한데?]“그 바글바글한 데 굳이 회주님을 데리고 가야겠어?”
[본인이 간다는데 뭘 어쩌겠어.]“…….”
뭐, 좋다. 본인이 간다니까. 본인이 간다고 했으면 어쩔 수가 없지. 강진호가 마음먹은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은 이현수도 수많은 경험 속에서 실감하지 않았던가.
거슬리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 너, 말이 좀 짧다?”
[제가요?]“전화 받는 사람이 두 명이 아니면 너겠지.”
[에이, 제가 언제요. 이상한 소리 하시네.]이현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다음부터는 녹음한다, 이 새끼.’
지금 그와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물론 조규민이었다. 일전에 의기투합하여 의형제를 맺기로 한 두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이현수는 제대로 된 형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새끼일 줄이야.’
굉장히 진중하고 신사적인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생으로 받아들이자 사람이 좀 달라졌다. 뭐랄까…….
‘더럽게 깝죽대네, 진짜!’
옆에 있으면 패버리고 싶다. 구석으로 끌고 가서 명치에 정권 한 방만 날리면 십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현수는 자리를 비울 수 없고, 조규민은 너무도 멀리 있었다.
“이쪽에서 사람 좀 파견해야 할 것 같은데.”
[싫어하실 텐데?]“그렇겠지. 아니,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연락을 좀 해주면 좋잖아. 그럼 미리 파견해서 주변 정리했지. 왜 일처리를 이렇게 하냐?”
[제가 보고를 드려야 돼요?]“…….”
할 말이 없다.
아니지. 보고할 필요는 없지.
사실 조규민이 예의상 이쪽으로 연락을 준 것뿐이다. 이현수는 조규민의 상급자가 아니다. 조규민과 강진호가 하는 일을 보고받을 권한은 없다.
“아니,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언질을…….”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나와서 일하는데 위로는 못해줄망정 화를 내시네. 좀 너무하시네, 진짜.]“나는 집이냐? 나는 드러 처 누워서 전화 받고 있냐? 나는?”
[그건 형님 사정이죠.]“야, 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던 이현수가 훅훅 심호흡을 했다.
‘진정하자, 진정.’
여기서 화를 냈다가 조규민이 전화 안 한다고 해버리면 이현수만 새 된다.
“그래. 일단 그건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혹시라도 문제 있으면 나한테 연락 좀 해줘. 부탁한다. 진짜 부탁이다, 이거.”
[맨입에?]아니지.
맨입 아니지. 다음에 얼굴 보는 그날, 니 입안이 피로 물들 테니까.
“……밥 살게.”
[밥?]“술도 살게.”
[얼마?]“비싼걸로…….”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걱정하지 마시죠. 저 조규민입니다.]“알지.”
자~알 알지.
조규민.
이현수는 뇌리 속에 조규민이라는 세 글자를 아로새겼다.
내가 저 새끼를 처단하지 않으면 성을 간다.
[끊습니다. 들어가 봐야 해서.]“그래.”
전화를 끊은 이현수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게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총회에서 귀신 취급을 받는 그이지만, 가면 갈수록 입지가 좁아진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입지가 좁아지는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주변이 미친놈으로 둘러싸이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영남회에 있을 때도 물론 미친놈은 있었다. 김석일은 이들과는 다른 의미로 맛이 간 사람이었다. 비유상의 미친놈이 아니라 정말 정신병원을 가봐야 할 사람이 김석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적어도 김석일만 신경쓰면 됐다. 그놈 하나만 어떻게 해놓으면 다른 스트레스 요인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가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든 그걸 이행하려 하던 충성스러운 놈들을 주변에 두르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직속 상사라는 사람은 매번 엉뚱한 짓을 저지른다. 그것도 스케일이 남다르다. 이사라는 사람들은 덩치는 소 같은데, 꼬리 밟힌 고양이처럼 잔소리를 해 댄다. 그리고 그나마 믿을 만한 동생 놈 하나 얻었다고 생각했더니…….
‘내가 미쳤지.’
이마가 뜨끈뜨끈하다.
달아오른 열을 식힌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지금은 신세 한탄을 하고 있을 타이밍이 아니다.
‘아쿠아리움이라…….’
관광지에서 딱히 별문제야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 위긴스가 말한 대로 위에서 시킨 일만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충성이 아니니까.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닌데.”
이현수가 담배를 입에 물고는 한숨을 쉬었다.
강진호가 보육원과 얽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단순한 취미라고 생각했기에 그동안은 관련된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강진호에게 있어 보육원이 그리 단순한 의미가 아닌 것 같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지.
돈과 명성, 그리고 능력을 갖추고도 그것들을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다. 부자와 악당이 동의어로 통하는 세상에서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 박수를 쳐줘야 할 일이다.
다만…….
“발목을 잡지는 않아야 할 텐데.”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인을 무너뜨리는 법은 둘 중 하나다. 발목을 잘라 버리든가, 아니면 거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무너뜨려 거인의 평정을 흔들어 버리던가.
이러한 귀계를 수도 없이 꾸며본 이현수에게는 보인다. 저 보육원이라는 곳에 강진호가 쏟고 있는 정성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보육원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었다.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하냐의 문제지.’
강진호는 지금 재경과 함께 복지 재단을 만들고 있다. 조규민의 말대로라면 이미 거의 준비는 끝났고, 발족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보육원은 늘어난다. 강진호가 지켜야 할 부분도 늘어난다.
강진호가 어디까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어디까지를 지키려 들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늘어난단 말이지.”
이현수가 얼굴을 문질렀다. 하지만 동작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슬쩍 미소가 드러나 있었다.
“골치 아프네, 진짜.”
냉정하게 이현수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지금 강진호에게 슬슬 보육원과는 거리를 두고, 총회에 집중하라 조언하는 게 맞았다.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나면 집중할 수 없고, 집중할 수 없으면 틈이 생긴다.
하지만 이현수는 그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강진호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서?
아니.
‘지금 모습이 좋으니까.’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아이들에게 쩔쩔매는 모습이라든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아이들을 데리고 수족관에 가는 모습이라든가.
평소의 강진호와는 조금 다른 이런 갭이 이현수는 좋았다. 그가 그동안 보아온 무인계의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이니까.
‘회주님도 인간이지.’
그래.
인간이니 따를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회주라는 직함에 함몰되지 않은 인간이니까.
인간이기에 이성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기에 틈이 생긴다.
“끄응.”
이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틈을 메우는 것이 이현수가 해야 할 일이다. 강진호를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지금의 강진호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채워야 할 부분을 채우기 위해 이현수가 있는 것 아닌가.
“사고만 적당히 쳐주셨으면 좋으련만.”
이현수가 인터폰을 눌렀다.
“이명환이 들어오라고 해.”
[예.]인터폰을 끊은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재밌으시려나?”
나도 가고 싶다, 아쿠아리움.
그러고 보면 그동안 쉰 날이 며칠이나 되더라?
슬슬 컨디션 관리 차원에서도 일을 놓고 쉴 때가 되기는 했는데, 아쿠아리움이라면 기분 전환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도 안정이 되겠지.
“이 부장한테 같이 가자고…….”
말을 하던 이현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미쳤어.’
여기서 이현주가 왜 나오는가.
요즘 과로했나? 뇌가 맛이 간 것 같은데?
이현주의 얼굴을 떠올린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독신주의자야.’
결혼이나 연애 같은 건 꿈도 꾼 적 없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혹여 시간이 많이 남는다고 하더라도 굳이 연애 같은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혹시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이현주는 아니다.
‘나는 현모양처가 좋다고.’
그가 생각하는 이상형에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이 이현주가 아닌가.
그 폭력성과 앙칼짐을 떠올린 이현수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수많은 여자가 있는데 하필이면 이현주라니!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은 연애를 할 생각이 없단 말이다!
“정신 차려야지!”
이현수가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찰싹찰싹 때렸다.
뺨에서 고통이 느껴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컥.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이명환이 멍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볼을 후려치고 있던 이현수가 아차 하는 눈으로 이명환을 바라본다.
“…….”
“…….”
이명환의 표정이 뭔가 떨떠름하게 변해간다.
“혹시 뭐 이상한 취미라도 있으십니까?”
“…….”
오해가 깊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