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19
#818.
틀어막다 (3)
“형! 형! 이거 좀 봐!”
“음.”
“여기 물고기들 생긴 게 장난 아니야. 왜 이렇게 생겼지? 엄청 못생겼다.”
아마 물고기들이 너를 보는 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강진호는 이제 세상을 알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바로 말하지 않는 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형! 얘 엄청 못생겼다니까?”
“…….”
다행히 조미혜가 강진호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오빠, 오빠.”
“응?”
“혹시 거울 봤어?”
“…….”
한진성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내가 왜? 나 정도면 됐지!”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내가 못생긴 건 아니거든?”
조미혜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강진호의 얼굴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켜 강진호의 얼굴을 본 한진성이 부들거렸다.
“저 얼굴 가지고 오는 건 반칙이지!”
“오빠.”
“왜!”
“오빠, 아까부터 진호 오빠 옆에 붙어서 다녔잖아?”
“……그렇지.”
“사람들이 한 번씩 힐끔거리는 거 못 봤어?”
“…….”
“‘왜 이 수족관은 오징어가 물 안에 안 있고 밖에 나와 있지?’라는 얼굴이던데?”
한진성이 흐물흐물해졌다.
‘어쩐지 자꾸 쳐다보더라.’
강진호 보는 줄 알았지. 이만한 얼굴은 어디서 구경하기 힘들 테니까.
시선이 자꾸 한진성에게 몰린다 싶을 때도 착각인 줄 알았다.
“형, 옆에서 떨어져!”
“오빠가 붙어놓고는 왜 괜히 진호 오빠한데 시비야?”
“억울하잖아!”
“얼굴이?”
“카아아악!”
한진성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얼굴도 몸의 일부 아냐! 저렇게 입고 있는 사람 옆에 섰다고 오징어 취급을 받다니! 세상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누가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에 한진성이 강진호에게 머리를 들이밀여 대들었다.
“그렇게 쓸거면 그 얼굴 나 줘! 감성돔 낚아서 라면 끓여 먹을 형 같으니라고!”
조미혜가 발악을 하는 한진성의 등짝을 두드렸다.
‘음…….’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등짝을 때리고는 있지만, 아프지 않게 쓰다듬는 수준이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처음에는 애도 아니고 무슨 수족관을 가냐고 불만을 가지던 아이들도 있었는데, 막상 아쿠아리움 안으로 들어오니 다들 신기해하고 만족하는 눈치였다.
특히나 이 둘은 아주 데이트를 하고 있다.
“진성아.”
“응? 형?”
한진성이 재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다른 쪽에는 문제없대?”
“확인하겠습니다.”
부동자세로 경례를 붙인 한진성이 톡을 열고는 메시지를 보냈다. 강진호의 눈에 한진성이 톡을 보내자마자 답장이 촤르륵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상 없습니다.”
“……그래?”
보고 체계가 쩐다.
총회에도 도입하고 싶을 정도다.
‘농담이 아니라.’
나이가 차고 기업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기업 문화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지만, 때로는 그저 과거의 것에 익숙해져서 바꿔야 할 것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중에 애들 한 번 데리고 가야겠네.’
총회의 시스템이 이 아이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다. 특히나 입만 열면 불만을 쏟아내는 한진성이라면 총회의 문제점을 과감없이 이야기해 줄 것이다.
“다들 도착했대.”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낫겠지.’
사실 생각해 보면 강진호 혼자서 모든 아이들을 인솔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의 강진호라면 몰라도 지금의 강진호라면 세 살박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멘탈이 터져 버릴 확률이 높았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
이런 휴일에 굳이 외출을 나와서 아이들을 돌본다는 게 좋을 리가 없었다. 휴일에는 쉬고 싶은 게 사람이니까. 보육원 안에서도 작은 악마들처럼 날뛰는 아이들이다. 밖으로 나오면 큰 악마로 업그레이드된다.
그런 아이들을 군말 없이 데리고 나와준 보육 교사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진성아.”
“응? 형?”
“보육 교사님들은 뭘 좋아하시냐?”
“돈.”
“…….”
강진호와 조미혜가 빤히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강진호는 얼떨떨해하고, 조미혜는 경멸을 한껏 담고 있었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한진성이 옆구리에 손을 대고는 배를 쭉 내밀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 마르크스도 돈은 엄청 밝혔다고 하더만! 사람이 좋은 건 좋은 거고, 돈이 좋은 건 좋은 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돈에 초연하다고 믿는다니까! 그거 다 그냥 허세야. 체면 때문에 그러는 거지.”
“…….”
“선물은 현금이 최고야. 그것도 이왕이면 계좌가 아니라 돈다발로 주는 게 최고로 좋아.”
엄지를 척 내미는 한진성을 보며 강진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합니다.”
“……인정이요.”
조미혜마저 항복했다.
체면과 격식을 따지지 않는다면 빳빳한 현찰 이상의 선물이 없다.
“일단 알았다.”
“형! 나도 용돈!”
쫘아아악!
등짝을 얻어맞은 한진성이 수족관 어항을 잡고 꿈틀대다가 안전 요원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적당히 끝내면 참 괜찮을 텐데, 꼭 한발을 더 나가다가 욕을 자처하는 한진성이다.
“빨리 가자. 놓치겠어.”
“사람 등짝을 이리 만들어놓고.”
“한 대 더 때려서 정상으로 만들어줘?”
“지금 가고 있습니다.”
조미혜와 한진성이 앞서 나갔지만, 강진호는 살짝 머뭇거렸다.
“형?”
“오빠?”
그들의 시선을 받은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조미혜와 한진성의 뒤를 따르며 강진호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뭐지?’
불안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불안하다기보다는 뭔가가 자꾸 거슬린다.
‘누가 있는 건 아닌데…….’
혹시나 자신이나 아이들을 노리는 이가 있는가 싶어서 기막을 펼쳐 주변을 확인해 보았지만, 이 주변에는 딱히 의심이 가는 사람이 없었다.
기막을 넓게 펼쳐 아쿠아리움 전체를 훑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상의 거리에서 강진호를 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딱히 누군가 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럼 뭐지?’
강진호의 감각은 예민하기 짝이 없다.
10m 밖에서 떨어지는 바늘 소리도 알아채는 강진호다. 게다가 최근 겪은 일련의 경험과 심마를 탈출하는 과정을 겪으며 감각은 한층 더 진일보했다.
누군가 강진호의 이목을 속이고 주변에 잠입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심지어 홍왕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두 번, 세 번 확인을 해보았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강진호가 손을 내저으며 조미혜를 따랐다.
‘일단은 조금 더 살펴보자.’
불안함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오버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심마에 들었다 나오면서 얻은 부작용일지도 모르고, 강진호의 감각이 예전보다 더 예민해져서 느끼는 불안함일지도 모른다.
“와, 여기 봐.”
한진성과 조미혜의 눈이 위를 향했다.
가득 찬 물 사이로 터널이 뚫려 있다. 아크릴로 만들어진 터널을 걷자 머리 위와 발아래가 온통 물고기들로 가득하다.
품종을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은 현실을 잠시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와!”
강진호마저 할 말을 잃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닷속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박 신기하다.”
“예쁘지?”
“야, 저 물고기 너 닮았다.”
“……저 안으로 처박혀 볼래?”
한진성이 조미혜를 피해 달리다가 다시 안전 요원에게 붙잡혀 주의를 듣는다.
“……쟨 왜 저러는데?”
“몰라, 오빠. 얼굴이 아니라 뇌도 오징어 수준인가 봐.”
강진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릴 적의 한진성은 굉장히 밝은 성격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조금 진중해졌다. 그리고 고3이 되면서 나름 자제할 줄 아는 성격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네.’
사람 본성 어디로 안 간다고, 고3이라는 중압감을 내려놓은 한진성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안전 요원에게서 풀려나 돌아온 한진성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사람더러 뛰지 말라니, 이게 새한테 날지 말라는 거랑 뭐가 달라?”
조미혜가 싸늘한 눈으로 한진성을 노려보았다.
“오빠.”
“응?”
“한 번만 더 사고쳐서 사람 쪽팔리게 만들면, 다리몽둥이 부러뜨려 버릴 거야.”
“……죄송합니다.”
시무룩한 한진성이 앞장을 섰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즐겁네.’
눈에 보이는 물고기들과 바닷속을 재현해 놓은 모습들은 강진호에게 ‘신기하다’ 이상의 감정을 주지는 못했다. 외부적인 자극에 들썩일 만한 강진호의 감정이 아니다.
그를 즐겁게 만드는 것은 수족관을 누비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한진성만큼 격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은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오길 잘했네.’
그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 번씩 이렇게 생색을 내는 것보다는 꾸준한 애정과 관심을 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그 결과가 좋으니 강진호도 살짝 들뜨게 된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가 저희 씨 파라다이스 아쿠아리움이 자랑하는 중앙 수족관입니다.”
연결 통로를 지나 조금 큰 홀로 들어간 강진호의 눈에 한쪽 벽면을 완전히 채우고 있는 커다란 수조가 보였다.
“대박!”
“진짜 크다.”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크릴 너머로 그야말로 바다의 한 부분을 떼어온 듯한 광경이 펼쳐진다.
가득 채워진 바닷물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 떼들이 부드럽게 유영한다.
그와 함께 강진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상어?”
“그래. 상어야, 형.”
“……저게?”
강진호가 시무룩했다.
상어는 상어이지만, 그가 기대하던 상어와는 뭔가 조금 달랐다.
“여기 백상아리는 없다니까!”
“음…….”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돌린 강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어? 저거?”
TV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커다란 상어가 그의 앞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강진호가 움찔하여 아이들의 앞을 막아선다.
“타이거 상어네.”
“타이거? 호랑이 상어?”
“그런 이름인가 봐.”
“오!”
강진호가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본 한진성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 형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상어를 본 강진호의 반응은 마치 초등학생 같았다. 아이들도 신기해하고 있지만, 강진호만큼은 아니다.
이처럼 한 번씩 기대도 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강진호다.
“형, 저 뒤로 가면 범고래도 있대.”
“으음.”
조금 전에 말했을 때와는 반응이 다르다. 타이거 상어를 눈앞에서 보더니, 마음이 들뜬 모양이었다.
“저기 안에 사람 아냐?”
“헐, 진짜네. 안에 상어 있는데 저렇게 들어가도 되나?”
“들어가도 되니까 들어갔겠지. 모든 사람이 오빠처럼 생각없이 살지는 않아요.”
“……이 타이밍에도 명치로 들어오냐.”
한진성과 조미혜가 서로 너스레를 떠는 순간이었다.
쩍.
귓가에 들려온 기이한 소리에 강진호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