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
#81.
입대하다 (6)
“이 새끼가 진짜 한 번 해보자는 건가?”
강진호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뭔가 피해를 준 게 있는 건가?”
“몰라서 물어, 이 새끼야?”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뭔가 피해를 주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 사내가 말한 것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논리적으로나 객관적으로 그것이 강진호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저들이 자신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충분히 사과를 하거나 그들의 의견을 따라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다.
다짜고짜 욕설과 폭력을 동반하여 강압을 하는 것을 이해해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내가 잘못되었다면 사과하지.”
그러나 강진호는 한 번 더 참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잘못되었다면? 이 새끼가 지금 끝까지 나랑 한 번 해보자는 건가?”
강진호가 막 입을 열려는 찰나, 문이 벌컥 열리면서 조교가 안으로 들어왔다.
“뭐하는 거야?”
사내는 조교를 보자마자 입을 다물어 버렸다.
“노는 중입니다.”
눈치가 있고 나이가 있는 훈련병이 슬그머니 웃으면서 변명을 했다.
“놀아? 이 새끼들이?”
조교가 훈련병들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적당히 해라. 쉬는 날이라고 너무 풀어져 있다가 걸리면 제대로 굴려줄 테니까. 알았어?”
“예!”
조교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나와.”
“예.”
강진호가 앞서 나간 조교를 따라 생활관을 빠져나왔다.
“따라와.”
“예.”
조교를 따라 걸어가자 평소 훈련병들이 출입할 수 없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담배 피우나?”
“예.”
“한 대 피워.”
강진호는 조교가 내미는 담배를 받아 들고는 잠시 망설였다.
“피워. 괜찮으니까.”
“걸리면 저만 혼나는 건 아니잖습니까.”
“하, 이 새끼.”
조교는 자신의 가슴에 달린 약장의 작대기를 가리켰다.
“몇 개냐?”
“네 개입니다.”
“그럼 내가 뭐냐?”
“병장입니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 병아리한테 담배 하나 줬다고 뭔 일 생길 것 같으냐? 기껏해야 영창이나 한 번 가고 말겠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피워.”
“감사합니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조교가 라이터를 켜 강진호가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너, 내가 안 들어갔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냐?”
밖에서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진호는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빨았다.
“붙으려고 했냐?”
“예.”
“하, 이 새끼…… 골 때리는 놈이네. 야,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잘 들어라. 형이 조교가 아닌 군대 선배로서 한마디 해주마.”
“예.”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뜻밖의 말을 들은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조교를 바라보았다.
“왜? 이상하냐?”
“아닙니다.”
“이상하겠지. 우리는 너희를 A급으로 훈련시켜서 자대에 보내는 게 목표인 사람들인데 잘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상하잖아. 안 그래?”
“조금 그렇습니다.”
“그런데 군대라는 곳이 그렇다. 잘하면 잘할수록 힘들어지는 곳이 군대야.”
강진호는 조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대 가면 더 심하다. 예를 들어서 니가 작업을 엄청 잘한다고 쳐보자. 삽질도 엄청 잘하고. 그럼 잘한다에서 끝나는 게 아냐. 일을 시키면 효율이 다르니까 힘들고 고생하는 작업은 다 너한테 떨어진단 말이야.”
“…….”
“그리고 주변에서 비교당하는 애들은 피곤해지는 거고. 사람이라는 게 도움 받은 건 금방 잊어도 피해 받은 건 절대로 안 잊거든. 그게 반복되다 보면 너만 고생하는 거야. 이번에도 그렇잖아. 너, 뭐 잘못했냐?”
“아닙니다.”
“그런데도 봐봐. 벌써부터 너 싫어하는 애들이 나오잖아. 왠지 알아? 잘하니까. 사회에서면 몰라도 군대에서는 그냥 잘하는 것만으로도 고생을 하게 되어 있어.”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외워, 새꺄.”
강진호는 이 모든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느꼈다.
그제야 아버지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군대는 불합리한 곳이라는 곳. 그리고 화낼 일이 있더라도 한 번을 더 참으라는 말.
그 말이 피부로 실감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소한 일이다. 시비를 걸어온 놈이나 강진호나 다 같은 훈련병이니까. 그런데 시비를 걸어온 놈이 강진호보다 계급이 높다면 어떨까?
그때도 지금처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불합리와 부조리라…….’
조교가 강진호의 안색이 조금 굳은 것을 발견했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아까 그놈이 왜 시비 걸었는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네가 하는 일이 고까워서야.”
“그렇습니까?”
“그리고 그게 왜 고까운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군대거든.”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도통 논리적이지 못한 말이었다. 이곳이 군대인 것이랑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군대에서 사람은 누구나 날카로워진다. 바깥에도 미친놈들이야 천지지만, 군대에서는 특히 다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그거야.”
“어째서입니까?”
“자유가 없으니까.”
조교는 피식 웃으며 피던 담배를 껐다.
“제멋대로 살던 놈들이 남자들만 득실거리는 데에 들어와서 화장실 가는 것까지 허락 맡아, 음료수 하나 마음대로 못 먹어. 그러니 스트레스가 안 쌓일 리가 있나. 그래서 군대에서는 온갖 사고가 나는 거야. 자기들 스스로도 짜증은 나는데, 그 짜증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거든. 그러다 보면 사소한 것에도 터지는 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조교가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는 강진호로서는 그들의 기분에 공감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여하튼 다들 날카로우니 이해하고 조심하라는 말입니까?”
조교가 눈을 살짝 치켜뜨고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줄이자면 그리되겠지.”
“알겠습니다.”
“진짜 알아들은 거야?”
“예.”
조교는 강진호를 보며 혀를 찼다.
‘이것도 꼴통이네.’
하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니, 강진호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런 타입은 십중팔구 고문관이 된다. 능력치가 높은 고문관은 그냥 멍청한 고문관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가 되기도 한다.
‘자대 가면 고생 좀 하겠어.’
빤히 앞날이 보이는 것 같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상황이 안타까워서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훈련병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그리 건설적인 일은 아니니까.
“그래. 그럼 들어가.”
“예.”
조교는 생활관을 향해 걸어가는 강진호를 보며 낮게 혀를 찼다.
“고생 좀 하겠네.”
강진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왁자지껄하던 생활관이 조금 식는 느낌이 든다. 강진호는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훈련병을 찾았다.
“뭐?”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뭐가 불만이지?”
강진호가 말을 건네자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가…… 시비 거냐?”
“아니.”
강진호는 살짝 손을 내밀어 사내를 제지했다.
“물어본 거다, 뭐가 불만이냐고.”
“불만이면? 어쩔 건데?”
“내가 하는 행동이 뭔가 피해를 주고 있다면 내가 고쳐야겠지. 그걸 물어보는 거야.”
사내가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니가 무슨 피해를 주고 있느냐고?”
“그래.”
“와, 이 새끼도 좀 골 때리는구나. 그냥 병신인 줄 알았더니, 상병신이네.”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한 번 더 참는다.’
아버지와 박유민의 당부가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한 번 더 참으면 된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제대로 상대해 주면 될 일이다.
“미리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욕하면 나도 더는 안 참는다.”
“하, 이 새…….”
“마지막이다.”
사내의 입이 다물어졌다.
‘뭐지?’
말을 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입이 절로 다물어진 것이다.
누군가 잡아 누른 것처럼.
그렇다고 다른 외부적인 힘이 작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몸이 절로 그의 입을 닫아버린 것이다. 본능적으로 이 순간 말을 더 꺼내는 것이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쫄았다고?’
눈앞에 보이는 놈한테?
사내, 주영기는 어이가 없어 눈만 꿈뻑거렸다.
그나마 군대라서 그동안 참고 살았던 것이지, 사회였으면 이곳의 반은 그에게 박살이 났을 것이다. 대구에서 주영기라고 하면 그의 또래는 다들 아는 이름일 정도로 날리던 사람이 주영기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가 눈앞에 보이는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에게 쫄아서 입을 다물었다고?
상해 버린 자존심이 열기가 되어서 다시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너…….”
“내가 튀어서 너희가 고생한 거라면 앞으로 주의하지.”
주영기는 할 말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앉아버리는 강진호를 보고는 입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어이도 없고, 황당하기만 했다.
“하, 별…….”
“영기야, 그만해라. 주의한다잖아. 괜히 사고 치면 너만 고생한다. 훈련소 퇴소당하면 다시 언제 군대 올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래그래. 니가 참아.”
“커피나 한잔하러 가자.”
주영기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평소 그와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이 우르르 그를 따라 밖으로 따라 나왔다.
어깨를 쫙 펴고 으스대듯 걷는 주영기지만, 그의 뇌리에는 조금 전에 순간적으로 보았던 강진호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고 있었다.
‘뭔 사람 눈깔이.’
눈을 보면 안다느니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눈알을 치켜뜨는 놈이든 내리까는 놈이든 안면에 주먹이 틀어박히면 하나같이 눈을 질끈 감고 울기 마련이었다.
눈빛을 보면 상대를 알 수 있는 어쩌니 하는 형들의 말은 그냥 허세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던 주영기였다.
‘뭔가 달라.’
하지만 저놈은 뭔가 다르다.
허세를 떠는 그 형들이 말하던,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그저 눈을 마주 보았을 뿐인데도 정말 순간적으로 목덜미가 찢겨 나가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기분 더럽네.”
“영기야, 참아라. 그 또라이 상대해서 뭘 어쩌게?”
평소 같으면 기분 좋게 들을 말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 말이 거슬렸다.
“또라이?”
“그래, 또라이. 저 새끼 또라이잖아.”
“……씨발.”
주영기가 짜증을 부리자 그의 눈치를 살피던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닫았다.
뭔가 말을 하려던 주영기가 낮게 한숨을 쉬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자판기에서 나온 싸구려 커피를 받아 든 주영기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쭉 들이켜 버리고는 종이컵을 구겨 바닥에다 던졌다.
“나 먼저 간다.”
그러고는 생활관을 향해 가버렸다.
“저 새끼, 왜 저래?”
“몰라.”
남겨진 이들만이 영문을 모른 채 가만히 그 뒷모습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