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1
#820.
틀어막다 (5)
“무슨 소리지?”
한진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분명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강진호 역시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쪽을 보고 있었다.
“형?”
“음.”
강진호가 살짝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아니겠지.’
강진호의 표정을 본 한진성이 불안에 잠겼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황은 하나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래된 곳이면 몰라도…….’
이곳은 개장한 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은 곳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살짝 고민을 하던 한진성이 결심을 한 듯 눈을 빛냈다.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난 사고가 하나둘이 아니야.’
대형 사고가 터질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미련해서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의 잘못은 사람을 믿은 것밖에는 없다.
이만한 대형 시설을 허투루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 아무래도 나보다는 관련자가 좀 더 알겠지 하는 믿음.
그 믿음을 배신당했을 때, 사고는 참사로 이어진다.
조금만 더 사람을 의심하고, 업체를 의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다.
그리고 한진성은 의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여기요!”
한진성이 앞쪽에 보이는 안전 요원을 보며 손을 번쩍 들었다.
“예, 손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안전 요원이 웃으면서 한진성에게 다가왔다. 그 태도를 보니 순간 한진성의 의심이 사그라든다.
‘내가 지금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가?’
모든 것은 이어져 있기 마련이다.
직원 교육은 완벽히 되는 업체가 시설 관리는 잘하지 못한다? 아니면 시설 관리는 잘되는 업체가 직원 교육을 개판으로 한다?
이건 웬만해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관리라는 것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직원 교육이 잘되는 곳은 시설 관리도 철저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지금 한진성을 응대하는 직원은 완벽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린 한진성이 딱히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을 동반하지 않고 있음에도 부드러운 미소와 공손한 몸가짐을 보여주고 있다.
들뜬 마음이 살짝 가라앉은 한진성이 조금 허리를 낮추고 공손히 물었다.
“저,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렸는데요.”
“이상한 소리라고 하셨습니까, 손님?”
“예. 방금 쩌적,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 그러시군요.”
뒤쪽을 슬쩍 돌아본 안전 요원이 조금 곤란하다는 어투로 답변을 했다.
“저는 듣지 못해서 손님께서 들으셨다는 소리가 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게…….”
한진성이 뭔가를 다시 물으려고 하자, 조미혜가 슬그머니 다가와 한진성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나대지 말라니까.”
“잠깐만.”
“오빠, 조용히 하고.”
“미혜야.”
한진성이 살짝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조미혜가 움찔하며 당기던 손에 힘을 풀었다.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응.”
조미혜가 물러나자 한진성이 헛기침을 했다.
“죄송한데, 방금 뭐가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어서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어항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싶어서.”
“아, 그런 말씀이셨군요.”
안전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안내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안내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예, 손님.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씨 파라다이스 아쿠아리움은 관람객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수조는 35㎝의 특수 아크릴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안전 요원이 투명한 수조를 가리켰다.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데, 이 수조가 그만한 두께라는 게 언뜻 믿어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안전합니다. 탱크가 쏴도 뚫리지 않을 정도니까요.”
안내원의 말에 사람들이 ‘와!’ 웃음을 터뜨렸다.
살짝 비웃는 시선이 한진성에게로 향한다.
하지만 한진성은 오히려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요, 제가 지금 이상한 소리를 직접 들어서 묻는 거거든요. 정말 안전에는 문제가 없나요?”
“그렇습니다, 손님.”
안내원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개장 전부터 안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관람객 여러분이 저희 아쿠아리움을 편히 즐기실 수 있도록 모든 안전 조치를 다 취했습니다. 외벽은 충분한 두께로 만들었고, 바닥은 삼중으로 방수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혹여 빠지는 물이 있더라도 배수장치를 통해 완벽히 밖으로 배출됩니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귀를 기울이던 이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비슷한 눈빛들을 보내고 있었다.
이만큼 돈을 들여 만든 곳에서 안전 관리를 허술하게 했을 리가 없다는 믿음.
거기에서 끝나면 좋겠지만…….
‘뭐야, 이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금의 경멸이 섞여 있다는 것을 한진성은 민감하게 알아챘다.
모를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저런 눈빛들을 두려워하며 살아왔으니까. 앞에서는 좋게 대해주던 사람들이 등 뒤에서 살짝 언짢은 시선을 던지는 것에 누구보다 익숙하지 않은가.
울컥한 한진성이 입을 떼려가다 다시 꾹 닫았다. 여기서 화를 내거나 흥분을 하면 정말 바보가 되어버린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알겠는데요, 제가 분명히 뭔가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확인도 안 해보시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돼요?”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안내원이 이리 나오자 주변 사람들이 살짝 험악한 눈으로 한진성을 바라보았다.
“거, 별일도 아닌데, 왜 자꾸 일을 키워?”
“저게 진상이지. 진상이 뭐 따로 있나?”
“그거 입장권 얼마 한다고 그거 내고 들어와서 갑질이야. 여하튼 요즘 애들은…….”
“아니!”
한진성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제가 분명히 들었다니까요!”
“듣긴 뭘 들어? 여기 있는 사람들 아무도 못 들었구만!”
“학생, 적당히 해. 일하는 사람 그렇게 괴롭히는 거 아냐.”
한진성이 짜증 어린 얼굴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한진성도 알고 있다. 저들의 입장에서 한진성을 나무라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한진성이 들은 소리를 저들이 듣지 못했다면, 자칫 억지를 부리고 있는 모습으로 보일 테니까.
만약 한진성이 저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갑질에 민감해진 세상이니까.
하지만…….
“확인해 주세요.”
한진성은 확고했다.
그냥 욕을 좀 먹는 쪽이 낫다. 만약 사고라도 나면 사람이 위험하다. 한진성이 바보가 되고 조롱을 받는 쪽이 사람이 다치는 것 보다는 나았다.
“오빠, 이제 그만하자.”
“잠깐만, 미혜야.”
“오빠.”
“난 그렇게 안 배웠어.”
“…….”
한진성이 단호하게 말했다.
“확인해 주세요. 문제없는지.”
“예, 손님.”
안전 요원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무전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이들이 눈을 찌푸리며 한진성을 바라봤다.
“저저…….”
“요즘 애들은 왜 저러는지 몰라. 자기는 지금 저게 갑질이라고 생각 안 할 거 아냐.”
“그러니까요.”
“저러니 사람들이 감정 노동이 심해지는 것 아냐. 별것도 아닌 일로 자꾸 시비를 거니까.”
한진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대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열이 뻗친 한진성이 뭔가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한진성이 고개를 돌렸다.
“형?”
강진호가 그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형. 아니, 내가 분명히…….”
“형 말 잘 들어.”
“응?”
한진성의 얼굴이 바뀌었다.
강진호가 그를 말리려 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강진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애들 다 모아서…… 여기서 나가.”
“……어?”
“할 수 있지?”
“으응, 할 수 있지.”
강진호가 한진성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잘했어.”
“…….”
한진성이 떨리는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형, 그럼…….”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모른다. 그러니까, 네가 해줘야 돼. 형이 데리고 나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한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가 시키는 일이면 이유 없이 따를 수 있다. 그만한 신뢰 관계는 쌓았으니까.
“한 명도 빠지면 안 돼.”
“알았어, 형.”
“자, 가. 애들 다 모아서 최대한 빠르게. 대신 애들 잃어버리지 말고.”
“응.”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한진성이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오빠,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잘 몰라. 근데 진호 형이 지금 바로 나가래.”
“그래?”
조미혜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녀가 가장 믿는 사람은 강진호이고, 그다음은 한진성이었다. 그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나가야 한다’를 외치는데, 더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인가.
조미혜도 한진성을 따라 여자아이들을 끌어모았다.
“이쪽으로!”
한진성이 앞장을 서고, 조미혜가 가장 뒤를 챙긴다. 그 일사불란한 모습들을 보며 사람들이 어이없어 했다.
“뭐 하는 거야?”
“오버도 정도껏 해야지.”
비웃음이 쏟아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반응에는 일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강진호가 나가라고 한 이상, 그 말이 옳다. 이유나 증거는 필요하지 않았다.
“형, 그럼!”
“조심해서 나가.”
한진성이 다급하게 앞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들어오는 길이 좁은 것처럼 나가는 길 역시 좁았다. 그 좁은 길에 사람이 차 있으니 쉽게 추월해 빠져나갈 수가 없다.
“죄송합니다. 조금 비켜주세요. 죄송합니다.”
“아! 왜 이래요!”
“거참, 유난 작작 떨지, 좀!”
좁은 길로 아이들이 우르르 밀고 들어오자 사람들이 짜증을 부렸다.
“뭐 하자는 거야?”
“아, 씨.”
툭툭 내뱉는 듯 날아드는 말에 한진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바로 그때였다.
“잠시만요!”
그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갑니다. 좀 비켜주세요. 들어간다니까요!”
앞쪽의 사람들을 헤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중앙으로 들어왔다.
“제가 인솔하겠습니다, 강진호 씨.”
“오셨어요?”
“예.”
강진호가 말없이 턱짓을 했다.
“부탁합니다.”
“예!”
안의 상황을 파악한 조규민도 두말없이 아이들을 이끌었다.
그는 이 안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강진호가 아이들을 빼내야 한다고 말한 이상, 그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유는 나중에 들어도 충분하다.
“잠시만, 잠시만 비켜주세요. 잠시만!”
한진성이 앞에 섰을 때는 짜증을 부리던 이들이 조규민이 앞장서자 길을 터주기 시작한다.
“옆으로 조금만 당겨주세요.”
조규민의 말에는 무게감이 있었다. 그렇게 길이 열리고 조규민이 뒤쪽의 강진호를 슬쩍 쳐다보았다. 강진호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규민도 두말없이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갔다.
그렇게 조규민의 인솔하에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강진호는 그 뒤에도 한참을 팔짱을 낀 채 기다렸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슬슬 정리된다. 사람들이 여전히 힐끔거렸지만, 강진호는 입을 닫고 가만히 수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다 나가는 게 좋을 겁니다.”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