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2
#821.
헤엄치다 (1)
“저거, 미친놈 아냐?”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빤한 일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수조가 안전하냐고 난리를 치더니, 저들끼리 쑥덕대고는 우르르 빠져나간다. 그러고는 다시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고 한다.
누가 이 상황을 부드럽게 받아줄 수 있겠는가.
강진호를 보는 시선들이 날카롭다.
“적당히 하란 말 못 들었어?”
“단체로 맛이 갔네, 맛이 갔어.”
“사람이 분위기 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강진호는 돌아오는 격한 반응에 한숨을 쉬었다.
‘뭐, 어쩔 수 없나.’
딱히 좋은 반응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격하다. 아마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공포심이 자극되어 평소보다 격한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부드럽고 좋게 말을 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직 강진호는 그런 화법에 서툴렀다. 그리고 좋게 설득할 시간도 없고, 좋게 설득할 만한 논리도 없다.
‘이쯤이면 많이 갔으려나?’
그리고 조금은 치졸한 생각 역시 있었다.
강진호는 조규민을 신뢰한다. 조규민이 아이들을 문제없이 밖으로 내보내 줄 거란 믿음도 있다. 하지만 그건 평소의 아쿠아리움일 때 가능한 일이다.
만일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서 우르르 몰려 나간다면, 분명 사고가 생긴다. 그리고 그 사고에 아이들이 휘말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깔끔하군.’
얼마 전이었다면 강진호는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려서 한 사람의 피해라도 줄여야 하는가, 아니면 이 안에 있는 지인들을 우선적으로 대피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조금 미뤄야 하는가.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진짜 정답은 후자가 되어야 한다. 안전이 걸린 일이니까.
하지만 강진호는 주저 없이 전자를 택했다. 안면도 없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가 아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위험해지게 둘 생각은 없다.
고민의 여지조차 없이 선택이 이뤄진다. 마치 과거의 강진호처럼.
심마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이,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덩치 큰 남자가 나와 강진호에게 삿대질을 했다.
“뭐 하는 거냐고?”
강진호가 그 사내를 가만히 보았다.
얼굴에 짜증과 화가 어린 것으로 보아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다.
강진호는 말없이 손을 들어 수조를 가리켰다.
“이게 터지면…….”
사내의 시선이 강진호의 손끝을 쫓는다.
“어떻게 될 것 같아?”
“…….”
터진다?
저 수조가?
사내가 수조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안에 들어 있는 물이 어느 정돈지는 모르겠지만, 웬만한 둑에 들어가 있는 양보다는 많을 것이다. 피할 곳이 있는 외부에서 둑이 터져도 사상자가 나는 판에, 이 좁은 곳에서 저 수조가 터진다?
한둘 죽는 수준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저게 왜 터져?”
“터진다.”
“아니, 이 미친놈이!”
사내가 막 강진호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안전 요원들이 앞으로 나와 강진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자꾸 이러시면 영업방해로 신고하겠습니다.”
강진호는 막아선 안전 요원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안전 요원들이 움찔하여 멈춰 섰다. 강진호의 어깨를 잡기 위해 들어 올려졌던 손이 어색하게 뒤로 물러난다.
‘이 사람 뭐지?’
공통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딱히 위협을 당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빛으로 응시당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뭔가 범접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린 기분이 들었다.
“그런 놈한테 무슨 예의를 차려줘!”
“끌어내요! 끌어내! 우리가 다 봤으니까! 증언해 줄 테니까!”
“야, 저거 찍어! 찍어!”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강진호와 안전 요원들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자 안전 요원들이 당황하여 강진호의 앞쪽을 막았다.
“개인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자제해 주십시오.”
“저 새끼가 지금 미친 짓을 하잖아!”
“아쿠아리움 내부의 상황은 자체 CCTV로 녹화되고 있습니다. 촬영을 자제해 주십시오.”
“아이!”
답답해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카메라를 내렸다. 갑질을 욕하면서 안전 요원에게 반발하려니 상황이 꼬이는 느낌이다. 떨떠름한 얼굴로 카메라를 내리는 사람들이 독한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보았다.
안전 요원 중 하나가 강진호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 복도 쪽을 가리켰다.
“죄송합니다, 손님. 손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메인 홀에서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퇴장?”
“예, 손님.”
강경한 눈빛을 보내는 안전 요원을 보며 강진호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나가면 안 돼.”
“……손님!”
“입을 떼고 말을 하는 게 문제라면 지금부터 한마디도 안 하겠다. 내가 지금 여기서 빠질 수는 없어.”
안전 요원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 더 이상의 발언을…….”
“무슨 일이야?”
그때,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부장님.”
부장이라 불린 사내가 의아한 눈으로 다가왔다.
안전 요원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사내가 조용한 어투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밖에까지 소리가 다 들려? 문제 있다고 광고할 일 있어?”
“아, 그런 게 아니라 이분께서…….”
안전 요원이 슬쩍 강진호를 가리켰다. 부장의 시선이 강진호에게로 돌아갔다.
“사람들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다 나가라고 하시면서…….”
안전 요원이 난감해했다. 난동을 부린다는 말을 당사자 앞에서 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부장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씨 파라다이스 아쿠아리움 시설 관리부장 박광철입니다.”
“예.”
“지금 이곳이 안전하지 않다는 말씀을 하신 건가요?”
“예.”
“어째서?”
박광철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그는 시설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 아쿠아리움의 내부 사정과 시설의 문제를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해진 코스를 도는 관람객이 그런 문제를 알 수는 없다.
‘진짜 뭔가 아는 건가, 아니면 그냥 미친놈인가?’
혼란스럽다.
그리고 뒤이어진 강진호의 말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시는 것 같은데?”
“……예?”
“저한테 물을 필요 없이 알고 계신 것 아닌가요?”
“…….”
박광철이 입을 다물었다.
태연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그를 바라보는 강진호의 시선은 너무도 담담했다.
‘진정하자.’
이 사람이 뭔가를 알고 있든, 아니면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한 미친놈이든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그가 해야 할 대응은 하나뿐이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시인할 수는 없었다. 조금 전, 사장 앞에서는 강경하게 폐쇄를 주장하던 그였지만, 그 폐쇄도 나름의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짜고짜 ‘곧 수조가 터질 테니, 여기에서 나가라’를 외치는 순간, 이 아쿠아리움은 말 그대로 망한다. 수조가 터지지 않더라도 망한다.
그는 관람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지,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공포심을 조장하는 발언은 자제해 주십시오. 이 시설은 안전관리공단의 검사를 통과한 시설입니다.”
“35㎝.”
“……예?”
“아닌 것 같은데?”
강진호가 박 부장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박 부장의 얼굴이 살짝 질렸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의 언성이 커지려는 순간, 강진호가 휴대폰을 들었다. 설마 어딘가에 전화라도 할 셈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었지만, 강진호는 단순히 액정에 떠 있는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이면 시간은 충분히 벌었겠지.’
별문제가 없다면 조규민이 아이들을 데리고 반쯤은 나갔을 것이다. 미리 지도를 봐두지 못해서 나가는 길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모르니 대충 어림잡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두께가 맞든 안 맞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여긴 곧 터진다는 게 중요하지. 생각 있으면 지금 당장 사람들 대피시켜요.”
“…….”
박 부장이 조개처럼 입을 닫았다.
바로 반발해야 한다.
지금 이 말을 다른 사람들도 듣고 있으니까. 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터진다고?’
조금 전, 그가 사장에게 외치던 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니 지금 당장 사람을 빼야 한다고. 하지만 그 말을 남의 입에서 들으니 반발심이 일었다.
‘이게 그렇게 쉽게 터지는 수조가 아니야.’
강진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수조는 안전 규격보다 얇게 제작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처음 구상은 안전 규격에 맞는 수조였지만, 설계 변경이 여러 번 이뤄지면서 생각보다 수조가 커졌고, 결과적으로는 기준 이상의 물을 수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조가 쉽게 터지겠는가.
어림도 없다.
안전기준이라는 건 말 그대로 안전기준이다. 이 기준을 지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안전기준은 현실보다 빡빡하게 잡는 경우가 많다.
타이어의 권장 공기압이 있다고 해서 그 공기압을 항상 맞추고 다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리고 공기압이 규정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던가.
그렇지는 않다.
이것 역시 비슷한 경우였다. 물론 기준을 넘어섰으니 장기적으로는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단기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믿는 구석은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면 일단 부분이 터져 물이 샐 것이다. 그리고 혹시 몰라 이미 아랫사람들에게 수조의 물을 좀 빼내라고 말을 해두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감안한다면 적어도 지금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터진다구요?”
박 부장은 되묻고 말았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할 수밖에 없다. 눈앞의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상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짜증을 내는 이는 박 부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었다.
“아니! 헛소리 못하게 끌어내라니까!”
“여기 관리 어떻게 하는 거야? 우리가 언제까지 저걸 보고 있어야 해!”
“그쪽이 안 끌어내면 우리가 끌어낼 테니까, 빨리 끌어내요! 아니면 주둥아리라도 다물게 하든가!”
사람들의 고함 소리가 홀 안에 웅웅 울렸다.
박 부장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정리하려는 찰나.
그 일이 벌어졌다.
째애애애애애애앵!
그건 무척이나 이상한 소리였다.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마치 거대한 풍선이 퍽! 터지는 듯한 소리.
고함을 지르고 짜증을 내던 사람.
관심 없다는 듯 휴대폰을 보고 있던 사람.
지루해하는 아이를 달래고 있던 사람.
그리고 안전 요원과 박 부장까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그 돌아간 시선으로 선명하게 보인다.
‘금?’
투명하기 짝이 없어 마치 눈앞에 물이 차 있는 것 같던 벽에서 선명한 금이 보인다.
허공에 균열이 간 것 같은 모양새다. 그 금을 본 이들은 처음으로 눈앞에 보이는 벽이 35㎝ 두께의 아크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머리로 정보가 들어오고…….
이윽고 그 정보가 해석되는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