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5
#824.
헤엄치다 (4)
‘터져?’
박 부장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입이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벌어졌다.
보인다.
수조가 터지는 광경이.
쩌적쩌적, 금이 가던 수조가 일거에 밖으로 밀려난다.
그 광경이 영화에서 나오는 슬로우 모션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온갖 대책을 다 떠올릴 수 있었지만, 눈으로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박 부장의 머리는 백지처럼 새하얘졌다.
그럴 수밖에.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수조 안에 들어차 있는, 일만 톤에 가까운 물이 일거에 뿜어져 나온다. 두께 30㎝의 전차포도 견딜 수 있는 강화 아크릴에 거미줄 같은 금이 번지더니, 이내 종이 조각처럼 쭉쭉 찢겨 나간다.
마치 꽃이 개화하는 광경 같았다.
하지만 꽃이 개화하면서 나와야 할 수술과 암술 대신, 물이 튀어나온다는 게 다르지만.
보인다.
박 부장은 자신의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그저 보이는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쭈욱 찢겨 나간 아크릴 사이로 물이 뿜어져 나온다.
말 그대로 뿜어져 나온다.
강한 수압을 가진 호수에서 물이 몇 미터나 뿜어지듯, 찢겨 나간 아크릴 사이로 물이 중력을 무시하며 마치 쏘아지는 레이저처럼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기에 휘말리면?
죽는다.
하늘을 날던 날파리가 사람이 맞아도 아픈 수압에 직격당하는 꼴이다.
사람들은 물의 무서움을 모른다.
15톤짜리 살수차가 내뿜는 수압만으로도 사람이 죽는다. 직격을 당한다면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진다.
그런데 이 중앙 수조의 수량은 무려 일만 톤에 가깝다. 물론 저 수압을 온전히 활용하여 살수차처럼 고압으로 내뿜는 것은 아니니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쪽의 수압이 더 강할지는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
무너진다.
사람뿐 아니다. 이대로 물이 뿜어진다면 벽이고 뭐고 다 박살이 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사람이 휩쓸려 죽는 게 아니라 건물이 무너져 모두 깔려 죽을 수도 있다.
‘막아야…….’
막아야 한다.
하지만 무슨 수로?
저건 인력을 벗어난 일이다. 무너지는 건물을 사람이 손을 뻗어 잡을 수는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보강을 하는 것이다. 딱 거기까지가 인간의 영역이었다.
시작된 붕괴를 막는 길은 아직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막아야 한단 말인가.
‘다 죽는다.’
모두 죽는다.
일단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다. 중앙 수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야 어찌어찌 빠져나갈지도 모른다. 그들이 나가기 전까지 이 건물이 버텨준다면.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모두 죽는다.
모두.
공포와 절망, 그리고 체념의 경계 선상에서 박 부장은 그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에 좀 더 확실하게 사장에게 어필을 하여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했다는 후회도 들었지만, 이미 늦은 뒤다.
저승이란 곳이 있다면, 그는 아마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지옥에 떨어지기 이전에 이곳에서 죽은 이들의 원망을 감당해야겠지.
짧은 시간.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박 부장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이었다. 스스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을 자각하고, 이 느린 시간이라는 것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종종 겪는 일이라는 것을 자각했을 때.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을 때, 박 부장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왔다.
‘어?’
움직인다.
한 사람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평소라면 말이다. 하지만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박 부장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움직임이 똑똑히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 물줄기로 다가가는 사람의 움직임은 전혀 느리지 않았다.
슬로우 모션으로 흐르는 세상 속에서 저 혼자만 원래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괴리감에 박 부장의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움직이는 사람은 박 부장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조금 전까지 안전 요원들과 대치하며 박 부장에게 이상한 말을 늘어놓던 그 청년.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 박 부장에게 지시한 바로 그 청년이다.
청년은 멈춰 버린 세상 속에서 혼자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느긋한 걸음으로 터져 버린 수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 광경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환상적이다?
아니면 기괴하다?
여하튼 일반적인 광경은 아니었다.
정지한 세상 속을 홀로 아무렇지도 않게 걷던 사내가 터져 나오는 물줄기를 막아선다.
양팔을 들어 올린 사내가 굳은 얼굴로 손을 들이밀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파아아아아아!
커다란 굉음을 녹음한 테이프가 늘어질 대로 늘어지면 이런 소리가 날까?
크지만 날카롭지 않은, 그리고 거대하지만 괴이한, 그런 소리와 함께 들이찬 물들이 사내의 육체에 맞고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보인다.
사내의 몸에서 튕겨 나가 작게 분산된 물줄기들이 천장에 닿는 순간, 천장의 내장재들이 박살 나며 바닥으로 쏟아진다.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들어놓은 바닥이 거대한 해머로 내려친 것처럼 박살 나며 튀어 오른다.
튕겨 나간 물의 압력만으로!
굉장한 광경이다. 믿지 못할 광경이다.
하지만 진짜 믿지 못한 일은 따로 있었다.
“…….”
박 부장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왜 튕겨 나가지 않지?’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현실 같지가 않다. 그 이상한 비현실감이 어디서 오는지 박 부장은 알 수 있었다.
일차로 직격한 물이 튕겨 나가 다른 곳에 부딪치는 압력만으로 바닥과 천장이 부서지고 튀어 오른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압력이 저 물에 담겨 있다는 듯이다.
그런데 왜 저 사람은 튕겨 나가지 않는가.
고압 호수에 맞으면 차도 밀려난다.
강한 수압을 가진 호수로 장난감 차를 때리면 장난감이 밀려나고, 날아가듯이 거대한 수압을 가진 물에는 탱크조차 버틸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이 버틴다고?
저 힘을?
저 압력을?
머리로는 더 이상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박 부장은 철저하게 외부자다. 그저 영화를 보듯이 그의 개입이 차단된 다른 세상의 일을 눈으로 보고 감상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전진한다.
밀려드는 물을 밀어내며 전진한다.
물줄기에 삼켜져 보이는 것이라고는 발끝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그 발끝이 전진한다. 앞으로 또 앞으로.
조금 힘겨워 보이지만, 결코 밀려나지는 않았다.
육체가 앞으로 갈수록 튕겨 나가는 물줄기들은 더 거세진다. 천장의 자재들이 모두 떨어지고, 바깥을 감싸고 있던 콘크리트들이 떨어져 나가며 검은 철근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닥은 금세 무릎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천장과 별다르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마치 분수가 뿜어지는 것 같았다.
물보라와 쏟아지는 물줄기가 마치 형이상학적인 예술 작품처럼 메인 홀을 뒤덮고 있다. 그 와중에도 사내는 전진하고 또 전진한다.
이윽고…….
콰드드드득!
사내가 찢겨 나가 볼품없어진 아크릴들을 움켜잡고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한다.
찢겨진 종이를 곱게 모아 제 모습으로 만들고 펴내듯이.
그리 급하지 않은 손길로.
아니, 지금 박 부장이 느끼고 있는 시간을 감안하면 가공할 속도겠지. 여하튼 그런 손길로 사내는 꽃이 핀 것처럼 죽죽 튀어나와 있는 아크릴의 부분 부분을 잡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윽고 모든 아크릴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한 번 터져 버린 벽을 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은 무리다. 저게 한계다. 떨어져 나간 아크릴을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쏟아지는 물줄기의 양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가능한가?’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어쩌면 박 부장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급류에 휩쓸려 의식을 잃은 채 죽어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박 부장이 죽기 진전에 마지막으로 꾸는 꿈이겠지.
차라리 그게 설득력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광경이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광경이 하필 이곳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느니, 차라리 이곳이 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쪽이 현명하다.
막 박 부장이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려는 찰나.
“뭐 합니까?”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박 부장은 강제로 현실로 소환되었다.
“어, 어엇!”
다리가 풀린다.
강제로 현실에 던져진 박 부장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철퍽!
들어찬 물에 엉덩이가 닿는 그 차가운 감각이 박 부장의 정신을 퍼뜩 일깨웠다.
‘미친!’
현실이라고?
이게?
이게 현실이라고?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귀로 마치 커다란 절단기로 쇠를 잘라내는 듯한 소음이 들려오고, 튕겨 나온 물방울들이 온몸으로 쏟아지는 감각이 들었다.
퍽퍽대며 바닥으로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을 보는 순간, 박 부장은 완전하게 현실로 돌아왔다.
‘무슨 상황이야?’
박 부장의 시선이 수조로 향했다.
꿈이 아니다.
한 사람이 터져 나오는 수조의 물을 틀어막고 있었다. 물론 물을 완전하게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아크릴을 밀어 넣어 나오는 수량을 줄이고, 채 다 막아내지 못하는 물은 몸으로 막고 있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악!
뿜어져 나온 물이 몸에 부딪치는 소리가 섬뜩하기 짝이 없다.
“저…… 저…….”
저걸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건가.
수압 높은 물은 다이아몬드도 잘라낸다. 수압을 올린 소방 호수는 건물 벽도 무너뜨린다. 그런데 지금 수조의 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의 압력은 겨우 소방 호수 따위에 비교할 정도가 아니었다.
사람의 몸 따위는 저기에 스치는 순간 곤죽이 되어야 한다.
그 앞에서 버텨 선다?
그건 슈퍼맨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그럼 결론은 하나다.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절대로.
박 부장이 자신도 모르게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신 차리라는 말, 안 들립니까?”
사내에게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급하지 않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박 부장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 못 막으니까 사람들 내보내요. 지금 당장.”
“…….”
“안 들립니까?”
“예! 예! 들었습니다!”
분명히 들었다.
귀를 찢는 소음 아래서 어떻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박 부장은 사내가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러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뭔지를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사람이든 아니든…….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그가 해야 할 일은 저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아니, 이 아쿠아리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뛰어요! 나가! 나가라고!”
“…….”
“당장 나가라니까! 내 말 안 들려?”
넋이 빠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현실감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으아아아악! 아악!”
“히익!”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출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