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6
#825.
헤엄치다 (5)
‘안 좋은데…….’
강진호의 눈에 얽히듯 입구로 돌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광경을 본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찌푸렸다.
‘다치겠군.’
흥분이 도를 넘었다.
죽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성을 잃은 채 출구로 뛰어들고 있다. 그 와중에 넘어지고 뒤엉키고 짓밟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근차근 안전하게?
질서를 지켜서 차분하게?
그건 일이 터지기 전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당장 1초 뒤에 내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질서라는 말을 머리에 떠올릴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것도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 목에 칼이 들어왔는데 다른 이들의 사정을 생각할 사람은 없다.
지금 보이듯이 말이다.
아비규환이다.
무릎까지 물이 차올라 있다. 거대한 메인 홀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네 명이나 겨우 나란히 설까 싶은 좁은 입구로 일거에 몰려든다.
잡아당기고, 짓누르고, 걷어찬다.
심지어 몰려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타 넘으려 하는 이들조차 있다.
균형을 잃은 이들이 넘어지지만, 일으켜 세우거나 그걸 피해 돌아가려는 최소한의 시도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든 말든 짓밟으며 앞으로 나간다.
잘못하면 죽는다.
‘안 되겠는데?’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상황이 급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러다가는 물에 휩쓸려 죽는 사람보다 사람에게 휩쓸려 죽는 사람이 더 나올 판이다.
하지만 통제가 불가능하다. 움직일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강진호는 지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진호가 손을 빼고 물러나는 순간, 저기에 있는 이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터져 나온 물이 일거에 통로를 채우고 휩쓸어 버린다.
호우에 나뭇잎이 쓸려 나가듯 시체가 쓸려 나가 버리겠지.
‘집중하자.’
강진호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저기는 강진호의 영역이 아니다. 그가 할 일은 쏟아지는 물을 1초라도 더 틀어막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쏟아져 나오는 물에서 느껴지는 힘은 웬만한 고수의 일격과 맞먹는다. 문제는 그 일격을 끊임없이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터지는 충격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우드드득! 우드득! 우득!
‘발판이 영…….’
물러나서는 안 되는데, 바닥이 자꾸 무너진다. 육체가 무너지기 이전에 바닥이 먼저 무너지고 있었다. 아무리 강진호라고 한들 발을 댈 곳이 없으면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다가는 수조에 달라붙어 물을 막아야 할 판이다. 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바닥을 딛고 있는 것에 비하면 몇 배의 힘이 들어간다.
‘얼마나 버틸까?’
강진호는 냉정하게 계산을 했다.
그의 능력을 감안한다면 꽤나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리 오래 버틸 수가 없다. 왜냐면 내력을 끊임없이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고수와 고수가 맞붙으면 하루 종일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내력을 그 시간 동안 모두 돌린다는 뜻은 아니다. 일격, 일격에 힘을 싣는다. 십 초라는 시간 동안 서로 공방을 한다면, 내력을 강하게 발출하는 순간은 고작 1초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내력의 운용이 올라갈수록 그 시간은 더 줄어든다.
공방을 하던 고수들이 서로 접촉하여 내력 대결에 들어가면, 길던 승부가 단숨에 끝나 버리는 것도 이 원리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는 조금의 틈도 없이 내력을 끊임없이 발출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단련된 강진호의 육체라 한들 이 압력을 버틸 수 없었다.
가슴과 배를 커다란 해머로 쉴 새 없이 얻어맞는 느낌이다. 턱이 덜덜 떨린다. 상의는 이미 걸레 조각이 되어 날아간 지 오래였다.
강진호의 탄탄한 상체가 금세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장난 아니네.’
별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강진호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위기감이 든다.
이 물이 이대로 퍼져 나가게 된다면?
순식간에 이 아쿠아리움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압력이 집중된다면 기둥도 순식간에 날아간다. 아차하다가는 건물이 연쇄적으로 내려앉을 수도 있다.
밀려오는 헤일에 건물들이 무너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럼 아이들은?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조금 더 멀리 가라고 했어야 하나.’
이쯤 되니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이 무너지게 되면 그 여파로 다칠 수가 있다.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지만, 강진호는 이내 머릿속에서 아이들을 지웠다.
이미 지난 일이다. 조규민이 알아서 잘해줄 것이다. 그러니 강진호는 아이들이, 그리고 아쿠아리움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갈 시간만 벌어주면 된다.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할 만큼은 해봐야지.’
강진호가 아크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미 한 번 찢겨진 아크릴은 물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 아크릴 안으로 내공을 밀어 넣어 강화하고 나서야 겨우 더 찢겨 나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급속도로 비어가는 단전을 느끼며 강진호가 심호흡을 했다.
‘시간을 더 벌어야 돼.’
지금 빠져나가는 이들이 아쿠아리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이들이다. 그들이 저 기세로 끝까지 달린다고 해도 이 큰 아쿠아리움을 빠져나가는 시간이 짧을 리가 없다.
그 시간을 다 벌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들이 빠져나가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강진호의 내력이 소모되는 시간이 빠르다.
‘여기서 내력의 부족을 느낄 줄은 몰랐는데.’
홍왕을 상대하면서도 내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이라 불러도 충분할 양의 내공이지만, 운용이 워낙 극한까지 올라가 있다 보니 내력이 부족해서 제 위력을 내지 못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렇기에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을 맞닥뜨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불평은 여기까지.’
문제가 생겼다면 해결을 해야 한다.
강진호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할 수 있는 만큼 수조를 막다가 적당한 시기에 손을 놓아버리는 것.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하나는?
채우는 것.
부족하면 채우면 그만이다. 항아리에 구멍이 뚫려 물이 줄줄 새고 있을 때 막을 수 없다면, 물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면 물이 빠져나가는 건 막을 수 없어도 물이 완전히 바닥날 때까지의 시간은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할까?’
말은 쉽다.
하지만 실행은 어렵다.
무학이란 받아들이는 것과 내보내는 것을 구분한다. 보통은 운공을 통해 기를 받아들이고, 그 받아들여 제 것으로 만든 기운을 사용하게 된다.
아무리 무학의 수준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이 두 가지는 구분이 된다.
심지어 전투 중에 어느 정도 외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경지에 오른다 하더라도 발출과 동시에 흡기를 할 수는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건 마치 숨을 내쉬는 동시에 숨을 들이마시라는 말과 같다. 숨을 들이마시는 것과 숨을 내쉬는 것은 다른 과정이다. 그런데 어찌 그걸 동시에 한단 말인가.
그가 적천마존일 때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강진호에게 그게 가능할까?
‘어렵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강진호는 그렇게 판단했다. 새로운 길을 열면서 강진호가 과거에 비해 확 달라질 정도로 강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일련의 과정은 강진호에게 가능성을 주었다.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가능성.
이제까지 불가능했다고 앞으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면 된다.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귓가로 굉음이 들리고, 육체는 고통에 젖어 있다. 물이 뿜어져 나와 육체를 때리는 감각과 이제는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의 감촉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요동치는 건물의 진동도 똑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정신을 모으는 순간, 그 감각들이 일순 멀어져 간다.
침전.
강진호는 자신의 안으로 침전해 들어갔다. 알을 깨기 위해서는 일단 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알 안으로…….
‘어?’
강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육체 안으로 침전하려던 순간,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발밑이 붕괴하며 육체가 뒤로 튕겨 나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게 뭐지?’
강진호는 보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물줄기를 막아내고 있는 자신을.
‘나?’
극마에 오른 강진호조차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해볼 수 없는 경험.
바로 자신의 뒷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경험을 지금 강진호는 하고 있었다.
세상이 멈춘 것 같다.
느릿하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똑똑히 보인다. 그의 육체가 물을 틀어막고 있다. 그리고 그 육체에서 기운이 흐르는 모습도 똑똑히 보인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
그저 감각으로만 느껴오던 것들이 지금 그 실체를 드러내 자신들을 내보이고 있었다.
세상의 기운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 혼란한 홀 안에도 온갖 색의 기운들이 공기처럼 가득 차 있다.
황홀하다.
아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히 보이는 것은 강진호의 양손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짙고 시커먼 기운이었다.
단전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양팔과 다리로 이동하여 밖으로 발출되는 과정이 똑똑히 보인다.
‘탈각이라는 건가?’
평범한 과정은 아니다.
어쩌면 종교나 무가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강진호는 이 순간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 기이한 순간은 결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찰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짧디짧은 시간 내에 이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한다.
‘기운은 온 세상에 있다.’
강진호가 아무리 많은 기운을 단전에 모아놨다고는 해도, 세상을 가득 채운 이 기운들에 비하면 겨우 한 줌.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이 많은 기운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아니, 이 기운들과 동화될 수 있다면?
‘달라지겠지.’
세상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강진호도 바뀔 것이다.
아무리 고뇌하고 노력해도 도무지 벗어날 수 없던, 적천마존이라는 거대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진호는 자신의 육체로 다가갔다. 마음을 먹자 공중을 유영하는 것처럼 육체를 빠져나온 무언가가 육체로 다가간다.
‘이어야 해.’
닫혀 있는 백회.
백회로 기운을 받아들여 단전으로 모으고, 단전에 모은 기운을 육체로 방출한다.
분절된 과정을 하나로 이어야 한다.
강진호가 마음을 먹자, 육체의 기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지만 결국은 하나. 그의 육체는 여전히 그의 말을 따르고 있다.
천천히 열어젖힌다.
꽉 닫혀 있는 백회를.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충격이 강진호를 덮쳤다.
세상이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