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7
#826.
각성하다 (1)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조규민은 패닉에 빠졌다.
‘이 미친!’
아쿠아리움 안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해 버렸다.
커다란 폭음과 함께 건물이 진동한다 싶더니, 이내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 좀비 떼처럼 입구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급하게 뛰고 있는지, 바닥이 쿵쿵 울리고 건물이 뒤흔들리는 느낌이다.
귓가로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려 퍼지고, 후욱― 더운 공기가 얼굴로 들이치는 느낌이었다.
조규민은 그제야 왜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 희생자가 늘어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빤히 보이는 출구를 보지 못하고, 빤한 대처를 하지 못해서 목숨을 잃는다.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침착하게 대처했다면 다들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비이성적으로 움직였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침착은 씨발!’
이 상황에서?
사건의 진앙지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조규민도 지금 멘탈을 다잡을 수가 없다. 빤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하다가 갑자가 날벼락을 맞은 저 사람들이 뭐? 이성을 유지해?
‘병신 같은 새끼.’
할 수 있다면 과거 그들은 은근 무시하던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모른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른다.
세상에는 그런 일이 너무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뛰는 심장과 자꾸만 가빠오는 호흡을 억지로 억누르며 조규민이 고개를 격하게 돌렸다.
‘아이들은?’
정신이 든다.
그러자 지금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격하게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찾던 조규민에게 악조건이 겹쳐 들었다.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물밀 듯 밀려 들어왔고, 빌어먹게도 건물을 밝히고 있던 전등들이 일제히 점등되었다가 다시 켜지기를 반복한다.
‘누전?’
이 개새끼들.
아쿠아리움을 만들면서 전선이 물에 누전되게 만들어놓다니!
공사비 아낀 티가 날 때부터 알아봤다.
하지만 지금은 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조규민은 일단 자신의 앞으로 밀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인파에 몸을 던졌다.
저 앞쪽에 있다.
아이들을 보내고 소화전을 누르러 왔으니, 아이들은 분명 입구에 좀 더 가까운 쪽에 있을 것이다.
찰박!
움직임과 동시에 차가운 물의 감각이 느껴진다. 어느새 이곳도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더 디딜 때마다 물이 조금씩 더 차오르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복숭아뼈 아래까지 느껴지던 차가움이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복숭아뼈를 넘고 있었다.
“이런 미친!”
물이 순식간에 차오른다.
조규민이 고개를 획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람들의 무릎 위로 물이 차올라 있다. 이 물은 순식간에 불어날 것이다.
‘강진호 씨가 막고 있는데도 이 정돈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건물 몇 층 높이의 수조에 가득 차 있던 물이 이 좁은 공간으로 밀려 나온다. 만약 누가 틀어막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곳으로 급류가 밀어닥쳐 사람들을 휩쓸어 버리고 순식간에 머리 위까지 물을 채워 넣었겠지.
헤엄? 잠수?
웃기는 소리.
그런 게 가능하다면 장마철 급류에 휩쓸린 사람도 숨을 참다가 잠잠해지면 나오면 그만이다. 급류는 사람을 익사시키지 않는다. 때려죽인다.
수압도 수압이지만, 물과 함께 휩쓸려 온 것들이 사람의 육체를 파괴한다.
이곳에 그런 것들이 있냐고?
충분하다.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까.
이 많은 수가 동시에 휩쓸린다면 사람끼리 얽혀 죽는다. 사람의 머리가 사람의 머리를 깨고, 사람의 팔이 사람의 다리를 뒤틀 것이다.
“빌어먹을!”
조규민은 가로막고 서 있는 사람을 밀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쉽지 않다. 조금 전까지야 뒤에서 밀면 길을 비켜주던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 누가 자기 자리를 내주겠는가.
속이 타고, 애가 탄다.
콱!
“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조규민이 휘청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누군가 뒤에서 그의 아킬레스건을 짓밟았다.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몸이 앞으로 넘어간다.
몸이 앞으로 쏠린다 싶자, 순식간에 그 일이 벌어졌다.
“악! 아아아아악!”
짓밟힌다.
앞에 사람이 쓰러진다 싶자, 뒤를 따르던 이들이 조규민의 다리와 등을 밟으며 그를 타 넘기 시작했다.
“아악!”
바닥을 짚은 손이 구둣발에 이지러지고, 머리를 누군가 밟으며 뛰어넘는다.
‘죽는다.’
눈앞에 보이는 시커먼 물을 보며 조규민은 극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이대로 완전히 엎어지게 되면 조규민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밟혀 죽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엎어진 채로 차오르는 물에 익사하든가.
그 어느 쪽이 되었든 죽는다는 건 동일했다. 어떤 방식으로 죽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개 같은!”
욕이 절로 튀어 나온다. 엎어지는 과정에서 혀를 물었는지 입안으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아드레날린이 들어차자 고통이 가신다.
“으아아아아아!”
조규민이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등을 밟고 뛰던 누군가가 균형을 잃고 넘어져 바닥에 처박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마 저 사람도 조금 전 조규민이 겪은 것과 똑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저 사람을 신경 써줄 틈이 없었다.
아니면 자신이 죽는다.
‘애들은!’
몸이 멀쩡할 리가 없다. 아마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조규민은 제 몸을 돌보기 전에 아이들부터 찾았다.
멀쩡한 성인 남성인 그가 이런 위기를 겪었다. 그렇다면 지금쯤 아이들은 얼마나 떠밀리고 있겠는가. 남자 고등학생 아이들이야 몸이야 거의 다 컸으니 별문제가 없다 치더라도, 여고생들은 이 상황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빌어먹을! 성격 나오게 하네!”
조규민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눈에 핏발을 세운 조규민이 눈앞을 가득 메운 인의 장막 위로 뛰어들었다.
어설프게 숙이고 있는 허리를 밟고 사람들의 머리 위로 다이빙하듯 뛰어든 조규민이 걸리는 건 모두 밟고 잡아당기며 헤엄치듯 앞으로 나아간다.
“내려와, 이 개새끼야!”
“나와! 나오라고! 죽여 버리기 전에!”
욕설이 쏟아진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손이 다리를 잡아당기고, 손톱 세운 손이 얼굴을 쥐어뜯는다. 배와 가슴을 누군가가 후려치기도 했다. 하지만 조규민은 그 온갖 방해를 다 물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한 번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지만…….
날아드는 주먹을 밀어내며 다시 위로 타 넘 듯 올라간다.
그리고 그게 화를 불렀다.
조규민이 그렇게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을 본 이들이 경쟁하듯 사람들을 타 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인파가 앞으로 당겨지며 뭉쳐 든다.
“죽어! 죽는다고! 죽는다고, 이 개새끼들아!”
“으아아아아아! 비켜!”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위기가 조금 천천히 다가왔다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고려해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너무 급작스럽게 터진 일이었다.
울리는 사이렌과 점멸하는 전등,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커다란 진동과 소음.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이성을 가혹하게 앗아가고 있었다.
“아아아악!”
누군가 다리를 물어뜯는다.
조규민이 다리를 움켜잡은 이들을 걷어차며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실장님!”
“조 실장님!”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짐승 같은 얼굴로 고개를 획 돌린 조규민이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다. 방향을 바꿔 앞으로 전진한 조규민이 아래로 파고들었다.
“괜찮으세요?”
“피 좀 봐! 실장님, 피가!”
“됐어!”
서로 안부를 물을 경향이 없다. 지금 그가 무슨 꼴인지 따지고 있을 틈도 없었다. 한쪽 팔은 부러졌는지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고, 물린 허벅지에서 전해지는 아픔이 절로 이를 악물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통을 느끼고 있을 시간이 없다.
“다 있어?”
“자, 잘 모르겠어요.”
“확인해! 당장! 전부 있는지! 손 들어! 빨리! 손 들라고!”
아이들이 우르르 손을 들어 올린다.
조규민과 한진성이 빠르게 아이들의 수를 세었다.
“맞아요!”
“확실해?”
“네! 맞아요!”
“좋아!”
조규민이 손을 뻗어 한진성의 뒷목을 움켜잡고 바짝 당겼다.
“진성아!”
“예!”
한진성이 비명을 지르듯 대답했다.
“사내새끼는 제일 마지막이야. 네가 뒤에서 애들 챙겨야 한다. 알겠어?”
“예!”
“여기서 살아 나가면 내가 정말 근사하게 한턱 쏘마. 그러니 애들 단 하나도 놓치지 마! 알았지?”
“예!”
핏발 선 눈으로 한진성과 눈을 맞춘 조규민이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나가야 해.’
어쩌면 이곳에서 앞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아니, 그게 현명하다. 물이 허리까지 들어찬 것도 아닌데 이 난리를 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머리와 몸은 달랐다.
경고음이 들리는 것 같다.
당장 여기서 빠져나가라고,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간다!”
조규민이 앞으로 돌진했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사람을 앞으로 밀고 좌우로 빗겨내며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그 와중에 뒤처지는 아이들이 없는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
“따라와! 내 허리 붙들어! 절대 놓치지 마! 뒷사람은 앞사람 잡고! 앞사람이 안 넘어지게 세워! 넘어지면 죽는다! 알았어?”
“예!”
대답이 이구동성으로 들려왔다.
소음과 비명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도 아이들의 목소리는 똑똑하게 들려온다.
‘침착하자.’
조규민이 손을 들어 얼굴에 흘러내리는 피를 닦았다. 아까 누가 얼굴을 잡아 긋는다 싶더니, 피부가 찢어진 모양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조규민. 거의 다 나왔잖아, 우리는 지금 입구에 다 왔을 거야. 침착해야 돼. 너무 서두르다가는 되레 애들이 다칠 수가 있어.’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밖으로 내보낸다. 최대한 다치지 않게 애들을 보호해서 내보낸다.
그 두 가지 생각만이 조규민의 머리에 가득했다.
‘앞에서도 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을 거야. 앞쪽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는 데 길어야 5분. 5분이면 차라리 기다리는 게…….’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르르릉.
천둥소리가 울린다.
아니, 천둥소리가 아니다.
건물이 뒤흔들린다 싶더니, 어찌어찌 유지되고 있던 조명들이 일제히 꺼졌다. 그와 동시에 천장을 장식하고 있던 자재들이 떨어져 내리며 사람들의 머리를 후려친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조규민이 눈을 부릅뜨고 목을 위로 젖혔다.
‘설마?’
무너진다?
이 건물이?
“씨발, 조금 더 버티라고! 으아아아아아아!”
어둡기 짝이 없는 시야 사이로 천장이 그를 향해 내려앉는 모습이 똑똑히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