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8
#827.
각성하다 (2)
체화(體化).
아마 그렇게 불러야 할 일이었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든가, 지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만들어두었으니까.
강진호가 구상하고 새로 창안한 것들은 강진호의 정신에 이미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공을 뛰어넘은 마공.
스스로를 뛰어넘은 무학.
완벽히 정형화하여 사용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학에 대한 개념은 이제 스스로 정립되기를 반복하여 완전한 형태를 갖춰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육체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완벽한 설계도를 만들어내는 것과 완벽한 설계도대로 건물을 올리는 것은 별개의 어려움을 가진 일이었다. 강진호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무학을 육체라는 틀에서 구현하는 시도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걸 이 급박한 상황에서 해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열린 백회 사이로 기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폭발(暴發).
머릿속에서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육체를 벗어나 외부로 흘러나와 세상의 기운을 관조하다 보니 기운들을 좀 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평소의 그가 받아들이는 기운의 몇 십 배가 일거에 그의 머리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건 강진호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끄읍…….”
육체가 절로 흘리는 신음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머리가 연신 터져 나가는 느낌이다. 그 고통 속에서도 강진호의 정신은 오히려 선명해졌다. 그의 머리가 세상의 기운들을 빨아들이는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
머리로 들어온 기운이 목을 타고 단전으로 향했다. 하지만 단전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부터다.
이전에도 기운을 내뿜으며 흡기를 시도하던 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벽을 넘은 이가 없었다.
강진호 역시 이 벽 앞에서 멈춰 섰다.
육체로 들어온 기운들이 갈 곳을 모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정되지 못한 기운들이 육체 곳곳으로 치달려 뒤흔들고, 다시 치달리기를 반복한다.
그와 동시에 강진호의 몸이 뒤틀린다.
우득, 우드득.
뼈가 부러진다.
퍼억!
둔중한 소리와 함께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뿜어져 나온다.
강진호는 그 광경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육체가 겪는 통증이 그에게 그대로 전해져 온다. 당연한 일이다. 정신이 육체를 벗어났다고 해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그는 육체를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의 영혼은 여전히 그의 육체 안에 머물러 있다.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광경은 현상을 좀 더 잘 볼 수 있도록 그의 육체가 느끼는 감각을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황할 것도 없다. 이미 예상한 일이니까.
보통은 여기에서 멈춘다.
이 이상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면, 육체는 결국 풍선처럼 터져 나가게 된다. 안정화되지 않은 기운은 독이나 다름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독이라기보다는 폭탄에 가깝다.
내부에서 터져 아무리 단련된 무인의 육체라도 종잇장처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이다.
느릿하게 호흡한다.
흔들리지 않도록.
강진호는 알고 있다. 평정을 잃어버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강진호는 타오르는 불같은 사람이다.
스스로를 평정과 무심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내부가 누구보다 뜨겁다는 것을 강진호는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무학을 이루는 대부분은 마공이다.
마공은 사람을 폭급하게 만든다.
기존의 성격과 익힌 무학까지 모두 평정과는 딱히 인연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평정을 이뤄내야 한다.
명경지수(明鏡止水).
흔들리는 마음을 천천히 내리누른다.
마치 방해를 하듯 수많은 것들이 강진호를 괴롭힌다.
조규민과 아이들이 무사히 빠져나갔을까 하는 걱정.
이대로 물이 계속 흘러나간다면 아쿠아리움 안의 사람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
그리고 점점 벌어지며 물을 쏟아내고 있는 수조.
흔들리는 건물과 깜빡이는 불들.
점점 심해지는 육체의 고통까지.
이 어지럽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맑고 고요한 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칼날처럼 다듬어진 정신은 그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쳐낸다.
잊는다.
또 잊는다.
걱정도, 우려도…… 그가 지금 처한 상황까지도.
모두를 잊고 버린 강진호가 자신의 상황만을 온전히 바라보았다.
‘어려운가?’
스며들지 못한다.
단전에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그 맹렬한 기세에 몸 안으로 스며든 기운들이 감히 단전으로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내쉴 수는 없다.
분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은 기운이 스며들 틈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눠야 하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끊으면 된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반복한다. 그렇다면 내뿜는 기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결국 연속이란 현상이 잘게 이어진 것이니까.
하지만…….
‘불완전하지.’
편법일 뿐이다.
이루어냈다고 해서 더 나아갈 수 없는.
지금 가진 능력만으로 상황을 창출해 내는 것에 불과하다. 강진호는 그걸 바라지는 않았다.
더 나아갈 수 있는 완벽한 토대. 그 토대를 이곳에서 쌓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전.
문제는 단전이다.
단전 안에서 흡기와 출기가 모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전을 반으로 나눠야 한다.
한쪽에서는 받아들이고, 한쪽에서는 내뱉도록.
그래, 마치 심장처럼.
가능할까?
알 수 없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러니 누구도 가능한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조금의 실수로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 단전이 터지고 의식을 잃는다면, 쏟아지는 물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확률도 높았다.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간다.
우습지 않은가.
강대한 무학을 쌓아 올리고, 세상을 굽어보던 강진호의 마지막이 수족관의 물에 휩쓸려 죽는 익사라니.
그를 알던 중원인들이 들었다면 배를 잡고 삼 일 밤낮을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강진호는 그 생각마저 버렸다.
두려움과 머뭇거림을 안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사 그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한다고 하더라도 시도하는 이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
그게 강진호의 방식이다.
결심을 굳힌 순간, 세상이 바뀐다.
관조하듯 상황과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가 순식간에 육체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더니 육체와 동화를 이루어낸다.
얼굴로 쏟아지는 물의 감촉을 느끼는 순간, 강진호는 눈을 감았다.
새삼 느껴진다.
이 힘이 얼마나 거대한지.
자연이라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무학은 결국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태산을 들 수 없고, 폭풍을 이겨낼 수 없다. 바다를 밀어낼 수 없고, 강을 되돌릴 수 없다.
무학을 익히면서 항상 들어온 말.
자연이 되어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라.
하지만 강진호는 그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은 중원인들과 강진호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인에게 자연이란 받들어야 할 것이 아니다. 극복해야 할 것이다.
태산을 들 수는 없지만, 태산의 위를 날 수는 있다.
폭풍을 이겨낼 수는 없지만, 폭풍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들을 건설해 낸다.
바다를 밀어낼 수는 없지만 바다를 이용하고, 강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강의 흐름을 바꿀 수는 있다.
나아감.
인간의 나아감은 결코 정복하지 못하던 것들을 정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 자연에 순응하라?
아니.
그건 강진호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강대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도 언젠가는 정복해 낸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었다.
눈을 감는다.
그런 후, 자신에게 집중한다. 그가 다루어야 할 것은 온전히 그의 육체였다.
손에 잡힐 듯 단전을 생생하게 느낀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분명 유형이지만 또한 무형인. 아랫배에 자리하고 있는 단전을 무심하게 반으로 갈라낸다.
원형의 공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원을 이루고 있는 공간에 붉은 선이 침투한다. 붉은 선은 회색으로 어우러져 있던 하나의 공간을 무심하게 반으로 갈라간다.
그에 따라 원이 이지러지고 뒤틀린다.
그리고 무너진다.
이건 불가능하다는 듯이, 이대로라면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듯, 발악하듯 흔들린다.
불로 달군 쇠꼬챙이가 아랫배를 찌르고 또 찌르는 듯한 격한 통증이 강진호를 지배했다. 육체가 먼저 그 통증에 반응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렸다.
온갖 종류의 고통에 익숙한 강진호조차도 식은땀을 줄줄 흘릴 만큼 격한 통증이 몰려왔다.
이건 경고다.
그의 육체가 말하고 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헛된 시도라고.
육체가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으로 그의 시도에 반항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은 이상하다. 그는 처음부터 포기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시도한 이상 후퇴는 없다. 설사 그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더라도 한 번 결정한 일은 무르지 않는다. 그게 강진호의 방식이었다.
갈라진다.
단전이, 세상이, 모든 것이.
붉은 선이 단전을 거의 갈라가자 이변이 일어났다.
탁하게 뭉쳐 있던 기운들이 반으로 나뉘기 시작한다. 물과 물에 층이 나뉘듯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기운이 한쪽으로 몰려들고,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 검디검은 기운들이 다른 쪽으로 몰려들었다.
세상이 갈라지며 어쩔 수 없이 혼재되어 있던 기운들이 각기 다른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서로를 격렬히 밀어낸다.
밀어내고 밀리며 서로의 영역을 찾아낸다.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져 있던 공간들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더니, 이내 대칭이되 대칭이 아닌 모습으로 화해가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그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너무도 많이 봐왔으니까.
검고 흰 것들이 완벽하게 반으로 나뉘어 서로를 밀어내고 밀리는 것.
그 형상을 세상은 이리 칭한다.
‘태극.’
단전이 태극을 이루고 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육체로 밀려들어 금방이라도 몸을 터뜨려 버릴 것 같던 기운들이 자신들이 갈 곳을 찾았다는 듯 단전 안으로 쏟아진다.
백색의 단전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이질적이고 혼탁한 기운들을 잡티 하나 없는 기운으로 정화한 백색의 단전이 무심하게 그 기운들을 흑색의 단전으로 흘려보낸다. 흑색의 단전은 순백의 기운들을 순식간에 검게 물들이고는 그 기운을 원하는 양손으로 기운을 올려 보낸다.
심장이 피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밀어내듯이, 강진호의 단전은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발출하는 과정을 동시에 이뤄내기 시작했다.
번쩍.
그 순간, 강진호가 눈을 떴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더없이 과격하게 그의 몸을 뒤흔들지만, 강진호는 그 물줄기 속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됐다.
됐다.
마침내…….
이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