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29
#828.
각성하다 (3)
‘그런데 이거, 딱히…….’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다.
강진호는 조금은 굳은 얼굴로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완벽하다.
새로 정비한 단전은 그가 원하는 것을 120% 이뤄주고 있었다. 세상을 관조하며 얻은 깨달음은 받아들이는 기운을 넓혀주었다. 과거의 그가 10의 기운을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100의 기운이 밀려들고 있다.
예전의 그였다면 밀려 들어오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가 역류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넓어지고 완전해진 단전은 그 기운을 무리 없이 수용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기운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은 축적할 수 있는 기운의 양도 늘어났다는 의미이니까. 과거였다면 과거의 내공을 되찾기까지 수십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그 시간을 기하급수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받아들이는 동시에 발출도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 말은 앞으로 강진호는 전투를 하면서도 흡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전투의 지속력이 확연하게 달라질 것이다.
소모하는 내력이 받아들이는 내력에 비해 확연히 많으니 완벽을 항상 유지하며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반 배 이상의 시간을 온전히 전투에 할애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다 좋은 소식이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문젠데.’
강진호는 슬쩍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쏟아지는 물을 뚫고 그의 육체가 눈에 들어온다.
너덜너덜하다.
단전을 새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육체가 너무 상했다. 쏟아지는 수압을 온전히 버티는 것만으로도 육체가 손상되고 있었는데, 기운을 육체에 채우고 단전을 재정비하면서 걸레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박살이 났다.
물론 이 손상은 시간을 들여 고칠 수 있는 정도다. 문제는 지금 강진호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부러져 나간 다리야 어떻게 기운으로 꼿꼿히 세운다고 해도 무너져 버린 발판은 되돌릴 수가 없다. 다리로 기운을 발출해 허공에서도 밀려나지 않게 하고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순식간에 내공이 동나 버릴 것이다.
찢기고 터져 나간 육체는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체력과 내력을 급속도로 소모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연료통이 늘었지만, 출력이 높아져 소모값이 더 커진 상황이었다. 강진호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방도는 마련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더 줄어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물리적인 한계는 지금부터 3분.
그 이상은 버틸 수가 없다.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수조를 바라보았다.
아직 수조에 수면이 보이지가 않는다. 이 많은 물이 빠져나갔음에도 아직 더 많은 물이 수조 안에 차 있다. 강진호가 힘을 잃는 순간, 이 물은 일거에 밀어닥치며 건물 안에 존재하는 이들을 모두 쓸어버릴 것이다.
강진호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귀를 찢어버릴 것 같은 소음 속에서도 선명하게 들린다. 고함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절망에 겨운 절규가.
아직 모든 사람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대로 강진호가 물러난다면 저 사람들은?
죽는다.
촘촘하게 밀려든 만큼 더 위험해졌다. 팔 하나 제대로 뻗을 수 없는 만원 지하철 안에 갑자기 물이 밀어닥친다고 생각해 보라. 공간이 있을 때는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의 존재가 방해물이 된다.
뭘 어찌해 보지도 못하고 익사하거나 압사할 것이다.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버티는 것뿐이다.
그 뒤에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 한다.
강진호가 양손에 방출되는 기운을 조금 줄이고는 무너져 버린 발판을 피해 수조 가까이 발을 붙였다.
‘약해.’
수조가 조금만 강했더라면, 어느 정도만 수압을 버텨줬더라면 굳이 기를 밀어넣어 수조를 강화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새삼 수조를 제작한 이에게 분노를 느끼며 강진호가 개구리처럼 수조에 달라붙었다.
모양은 조금 흉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든 1초라도 더 이 물을 막아내야 한다.
몸을 바짝 붙이자 쏟아져 내리는 물의 양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가슴까지 물에 잠겨든 뒤였다.
‘집중하자.’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막아낸다. 오로지 눈앞의 물만 막아낸다. 기운을 운용하여 지금의 상황을 완벽히 유지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시간이 흐른다.
육체가 온기를 잃어간다.
체온을 유지할 최소한의 힘마저 남아 있지 않게 되자, 강진호가 눈을 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손을 놓아버린다고?
안 된다.
하지만 방도가 없다. 이제는 강진호에게도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강대한 홍왕마저 막아낸 강진호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흘러내리는 물을 막아내는 일은 그저 강하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촤아아아아아아!
수압이 거세진다.
아니, 수압이 거세진게 아니라 힘이 빠지며 수압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들어 올린 팔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제는 한계다. 더는 막을 수 없었다. 이제 기껏해야 수초. 그 몇 초가 지나고 나면 강진호도 이 수압에 쓸려갈 것이다.
그 수압 안에서 살아남을 최소한의 힘을 남겨야 하는가, 아니면 그 힘마저 사용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야 하는가.
선택은 빤하다. 강진호는 살아야 한다.
하지만 그걸 몸으로 이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손에 와닿는 물의 감촉이 마치 무고한 이의 목에 걸린 단두대의 밧줄처럼 느껴진다.
이 손을 떼는 순간, 목이 잘리듯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다.
강진호가 이를 악물었다.
혼란스러운 머리가 정리된다.
일단은 살아남아서…….
“굉장히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 순간, 귓가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강진호가 고개를 획 돌렸다.
누가 오더라도 여긴 막아낼 수 없다. 강진호만 한 힘을 가진 이가 아니라면 절대로. 설사 바토르가 오더라도 시간을 살짝 연장하는 선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선 자의 얼굴을 확인한 강진호가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있다.
단 한 명.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 * *
천장이 내려앉는다.
조규민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저항할 수 없다. 저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설사 그의 움직임이 제한되지 않고, 몸이 멀쩡한 상황이었다 해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천정이 내려앉고 있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숙여어어어어!”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최대한 아래로 처박는다.
그러자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머리와 머리를 감싼 양손 위로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쿠웅! 쿠웅! 콰앙!
귀를 울리는 소리와 뭔가가 머리를 마구 내려치는 감각에 조규민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조규민이 느낀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통증이 느껴진다.
그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제대로 천장이 내려앉았다면 머리를 맞는 순간 죽거나 의식을 잃었을 테니까. 이 끔찍하게 느껴지는 고통조차도 희망이었다.
“끄으응.”
겨우겨우 고개를 다시 들어보니, 어둡기 짝이 없는 시야 사이로 뭔가 시커먼 것들이 보였다.
‘자재?’
천장이 내려앉은 것은 아니다. 콘크리트 아래에 붙여놓은 대리석 같은 자재들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하지만, 천장이 무너진 것보다야 백배 낫다.
머리가 까지고 터지는 게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상황이 파악되자 조규민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다친 사람? 다친 사람 없어?”
아이들이 무사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괜찮아요!”
“다들 괜찮아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다친 사람은 있는데 심각하게 다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설사 심하게 다친 이가 있더라도 말할 리가 없으니까. 이 아이들은 그렇다. 방해가 되느니 혼자 앓는다.
‘빌어먹을.’
그걸 알고 있음에도 조규민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눈앞에 펼쳐진 인의 장막은 더 이상 뚫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패닉에 빠진 이들이 아이들을 잡아당기고 올라타려 한다. 그들을 밀어내고 후려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다.
“비켜, 이 새끼들아! 나는 살아야 돼! 여기서 안 죽는다고!”
“당기지 마! 죽여 버리기 전에! 나와! 나오라고!”
“엄마! 엄마!”
아비규환이다.
밀려오는 물도 문제이지만, 불이 꺼지고 머리 위에서 뭐가 떨어지는 상황이 사람들을 극한까지 몰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규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밀지 마! 밀지 마!”
어깨를 당기는 이를 후려치고 밀어낸다.
침착함?
그런 건 개나 준 지 오래다. 오로지 이 아이들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조규민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소화전을 누르는 게 아니었어.’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 알았더라면 일단 아이들부터 빼냈을 것이다. 모두 빼내고 나서 소화전을 눌러도 늦지 않았다.
강진호는 조규민이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객기로 이런 일을 벌였단 말인가.
결국 물은 새어 나오고, 사람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몇 초를 앞당긴 덕분에 아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조규민의 눈에 핏발이 섰다.
살려야 한다.
그의 선택 때문에 애들이 죽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조규민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다. 절대로 아이들만은 살려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저 꽉 막혀 버린 틈을 뚫고 무슨 수로 애들을 내보낸단 말인가.
“으…….”
그때였다.
“무, 물! 물! 물이! 저 뒤에! 물!”
절망적인 음성을 들은 조규민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보고 싶지 않은 광경까지 정확하게 잡아낸다.
어느새 허리까지 차오른 물 위로 커다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결코 빠르지는 않게 스멀스멀. 그래서 더 공포스러운 모습으로.
조규민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꺄아아아악! 살려줘!”
“어, 어떻게 좀 해봐! 물이! 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물이 순식간에 가슴까지 차오른다. 조규민은 일단 손을 뻗어 키가 작은 아이를 안아 들었다. 여기서 애들을 놓치면 익사한다.
“이…….”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그의 의지를 배반하며 계산을 끝내고 있었다.
이제는 빠져나갈 수가 없다. 물은 계속 밀려 들어올 거고, 이곳은 곧 머리 위까지 물이 차오른다. 그럼 다 죽는 거다.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조규민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원칙은 무슨 원칙! 이 개새끼야! 내가 여기서 나가면 그 주둥아리 찢어버릴 거야! 이현수, 이 개새끼야!”
그때였다.
쿠우웅!
커다란 진동음이 울린다 싶더니, 물이 요동친다. 그와 동시에 건물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무너지나?’
절망 어린 눈빛으로 조규민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안 돼.’
다시 한 번.
콰아아아아아아앙!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폭음이 장내를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