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30
#829.
각성하다 (4)
쿠우우웅!
귀로 들려오는 소음이 뇌를 흔든다. 아니, 영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가슴까지 차오른 물이 들썩이며 얼굴을 때린다.
조규민은 현실감이 멀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처한 상황은 생생하기 짝이 없다.
어둡고 답답한 실내에서 가슴까지 물이 차 있고, 그 물은 쉴 새 없이 들썩인다. 주변을 채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등거리고 있고, 그 와중에 신이 땅을 향해 망치를 휘두르는 듯한 굉음과 진동이 들려온다.
중간중간 불이 들어왔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조명까지 조규민을 뒤흔들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지.’
무섭다. 두렵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조규민은 자신이 안아든 아이의 손이 어깨를 움켜잡는 감각에 전율했다.
‘내 생각을 할 때가 아냐.’
그가 이리 무서운데, 아이들은 얼마나 무섭겠는가? 그 생각을 하자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그리 남을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다.
굳이 선인과 악인을 절반으로 나누라 한다면 조규민은 양심상 선인 쪽에는 설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결국 사람이란 어디에 서는가에 따라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는 것이다.
누구라도 조규민과 같은 상황이라면 아이들의 안위를 먼저 챙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살려야 돼.’
조규민은 어둠 속에 가려진 아이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눈에 박아 넣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혹시나 방해가 될까 싶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 얼굴을 말이다.
조규민이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답이 없다고 포기하는 건 시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건 시험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
그때였다.
쿠우우우웅!
다시 한 번 커다란 진동이 건물을 덮친다.
그와 동시에 차오른 물이 들썩이며 사람들의 얼굴을 뒤덮기 시작했다.
“우웁!”
얼굴로 물이 차오르는 공포는 이제껏 느끼던 공포와는 차원이 달랐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건 그저 느낌일 뿐이었다. 실질적으로 물이 얼굴로 차오르기 시작하자 몸이 먼저 반응한다.
자신도 모르게 주변으로 손을 뻗어 뭔가를 움켜쥐려 한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사람뿐이지 않은가? 사람과 사람이 얽혀들며 마지막으로 유지되고 있던 최소한의 질서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난할 수도, 탓할 수도 없는 문제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얼굴로 물이 차오르는 사람이 뭘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일단은 살아야 하니, 걸리는 것은 무작정 잡아당길 수밖에 없다.
“시, 실장님! 푸웃! 실장님!”
조규민의 눈이 돌아갔다.
잡아당기는 힘에 이기지 못하고 아이가 끌려가고 있었다. 조규민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아이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으아아아앗!”
조규민이 악을 썼다.
어디선가 손이 뻗어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는다. 가슴을 긁는 손과, 아래에서 허리를 움켜잡는 손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진정하라고! 진정! 빌어먹을. 일단 진정해야 할 것 아냐!”
일시적으로 차오른 것뿐이다. 흔들리며 파도가 쳐서 얼굴을 덮친 것뿐, 수면이 상승하지는 않았다.
‘뭐가 이렇게 물이 차. 빌어먹을.’
아마도 이곳의 지대가 낮은 모양이었다. 설계할 당시부터 이런 상황을 고려했다면 입구로 물이 모두 빠져나갔을 텐데, 흘러들어오는 물이 빠져나가지를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앞쪽은 왜 안 나가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좀 빠져나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는 정말 익사할 판이다.
조규민의 시선이 안쪽을 훑었다. 어두운 시야로도 물이 흘러들어오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가슴팍까지 찼던 물이 이제는 턱 끝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애들은?’
아이들은 어찌어찌 자기들끼리 뭉치며 버티고 있었다. 몸이 작은 아이들은 키 큰 아이들의 어깨에 의지하며 몸을 띄운다.
‘안 돼.’
미봉책일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조규민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천장!’
그 순간, 조규민이 격하게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천장.
‘매달린다!’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익사하지 않고 버틴다면 구조대가 올 것이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만 버틸 수 있다면 살아나갈 수 있다. 그전에 익사만 하지 않으면 된다.
“진성아!”
“예!”
“애들 위로 올려!”
“예?”
“천장 보이냐?”
“…….”
한진성이 흙탕물에 젖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자재들이 떨어져 나간 천장이 보인다.
“예!”
“울퉁불퉁한 곳 잡고 버티면 된다. 자재가 떨어져 나간 부분들!”
“저, 저게 버틸까요?”
“못 버티지!”
조규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냥은 못 버티는데, 물이 차면 버틸 수 있어! 키 작은 애들 위로 올려서 천장에 매달리라고 해!”
“예!”
한진성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조규민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아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규민이 이를 악물고 위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한번 무너져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자재들이다. 계속 버텨준다는 보장이 없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미봉책이라도 써야 한다. 키가 작은 아이들을 다른 아이들이 밀어 올려주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울컥한다.
자기만 살겠다고 발악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아무리 타인을 생각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가 먼저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생명이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내가 죽거나 남이 죽거나라는 딜레마에 빠진다면 누가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턱까지 물이 차 있음에도 자기만 살겠다고 기어 올라가지 않는다. 입으로 들어오는 물을 뱉어내면서도 어떻게든 친구들을 살리겠다고 남을 돕고 있다.
‘제길.’
살아야 한다.
하나도 남김없이 살아야 한다.
그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우우우우웅!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정말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물이 격하게 흔들리며 그나마 버티고 있던 사람들이 거대한 쉐이커 안에 들어간 것처럼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천장을 잡으러 올라가던 아이들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다시 물 안으로 곤두박질쳤다.
첨벙대는 물소리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음들이 귀를 찢어버릴 것 같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절망이 아닌 분노로 조규민이 고함을 질러댔다.
왜!
왜 이런 일이 터지는가!
왜 하필 여기에!
재난이 사람을 가리는 게 아니라지만, 이 아이들에게 재난까지 감당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닌가!
하지만 깊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흔들림을 이기지 못한 천장의 자재들이 다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조규민은 업고 있던 아이를 아이들에게 밀어주고는 아이들의 위로 뛰어들었다.
자재를 맞아도 그가 맞아야 한다. 애들이 머리를 다쳐 의식이라도 잃는다면 여기서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끄으윽!”
등으로 그리고 머리로 둔탁한 것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 고통의 와중에도 조규민은 의식을 잃지 않았다. 기절하면 죽는다. 그 위기감이 그의 의식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그 혼자의 목숨이 아니다. 그가 죽는다면 아이들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다.
그 와중에…….
‘저거?’
조규민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밀려온다.
물이 밀리고 또 밀려온다.
복도를 가득 채우듯 물이 파도를 만들어 내며 밀려오고 있었다.
‘죽는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 했던 생각이 순식간에 조규민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저건 못 막는다.
저건…….
저 물이 일거에 밀려오면 이곳을 순식간에 가득 채워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죽음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순간, 조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내민 손을 누군가 맞잡는다.
질끈 깨문 입술이 터져 나간다.
후회와 절망, 형언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그를 휩쓴다.
“으아아아아아아! 이현수 이 개새…….”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폭음.
귀를 찢어버릴 것 같은 폭음이 울려 퍼지더니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챌 틈도 없이 몸이 뒤집히고 엎어지고 다시 뒤집히기를 반복한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어?’
그런 조규민의 정신을 되돌려 준 것은 단 하나였다.
이곳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빛?”
입으로 물이 꾸역꾸역 밀려오는 상황에서도 조규민은 소리 높여 외쳤다.
“빛!”
빛이다!
그제야 조규민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에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물이 과격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쓸려 나간다.
외벽 바깥에 선 몇몇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안아들고 다치지 않도록 옆으로 빼낸다.
‘살았다!’
하나는 확실했다.
살았다.
내부를 채우고 있던 물이 일거에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이…….”
그제야 울음이 사방에서 터진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낀 순간, 모두가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애들은?’
아이들을 봐야 한다.
혹시 이 와중에 누가 쓸려 나갔을 수도 있으니까.
“진성아! 진성아!”
“……예!”
한진성의 목소리에도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애들……. 애들 수 다 맞는지부터 확인해 보자. 진성아, 힘들겠지만 아직 마음 놓을 때가 아냐.”
“예. 지금 확인하고 있어요, 지금.”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진성이 목청을 높였다.
“다들 괜찮아요! 다 무사합니다! 실장님! 다…….”
울음을 터뜨리는 한진성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무릎까지 내려간다. 조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신에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다.
안심이라는 감정이 들자, 육체에 힘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조규민은 멍하니 건물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았다.
빛. 그래, 빛이다.
저 빛이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안심하게 하는가.
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저 빛을 영원히 바라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
그때, 빛 사이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보인다. 쏟아지는 햇살을 후광처럼 받으며 한 사람이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철벅.
철벅.
빠져나가는 물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온다. 사내의 그림자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자신의 앞에 선 사내를 바라보며 조규민이 헤 하고 입을 벌렸다.
“……아주 잘 들리더군.”
“…….”
“개새끼이?”
“…….”
“일어나, 새끼야. 내가 오늘 개가 뭔지 보여줄 테니까.”
악귀 같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이현수를 보며 조규민은 새삼 깨달았다.
그의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