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32
#831.
정리하다 (1)
“보고드립니다.”
이현수는 바로 앞으로 다가온 이명환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안쪽을 뒤져봤지만, 남은 부상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확실하게 뒤졌어?”
“예.”
“그렇단 말이지.”
이현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최대한 개입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오번데, 이거.’
최소한의 인원으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였다. 이곳으로 오면서 이미 관할서와 조사 기관에 대한 대처도 끝내놓았다. 윗선에서 대충 입막음을 할 테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차를 타고 지나가던 인부들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는 벽을 부숴 사람을 빼냈다고 발표될 것이다. 안에서 목격한 이들이 본 것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
이만한 두께의 벽을 해머로 부술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남지만…….
‘부실 공사로 둘러 대면 되겠지.’
업주가 덤터기를 쓰겠지만 뭐 어떤가? 실제로 부실공사가 이뤄졌던 게 사실인데.
아차 했으면 대형 참사다.
이현수가 위긴스를 붙들고 애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안에 있었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었을 것이다. 그전에 강진호가 수조를 막아주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다들 죽었을 게 뻔했다.
그만한 죄 하나가 더해진다고 티도 나지 않는다.
‘억울할 것도 없지.’
되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알겠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둘러봐.”
“구조대가 도착해서 진입이 어렵습니다.”
“숨어들어.”
“…….”
이명환이 뚱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그 눈에서 반항기를 읽은 이현수가 인상을 썼다.
“뭐?”
“……최선을 다해 조사해 보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썩 꺼져라.”
이명환이 궁시렁대며 멀어지자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여하튼 이놈이고, 저놈이고 반항이 늘었다니까.’
머리가 굵어져서 그런가.
예전에는 말 한마디 하면 토를 다는 놈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들 한 번씩은 찔러보고 움직이는 느낌이다.
‘한 번 잡아야겠어.’
그래, 잡아야 한다.
확실하게.
특히 이놈은 말이다.
이현수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무릎을 꿇고 있는 조규민이 있었다.
온 얼굴에 억울함과 불만을 가득 채운 조규민이 띠꺼운 눈으로 이현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깔 뽑아버린다.”
“…….”
시선이 슬그머니 내려간다.
“아주 기분 내셨지, 아주.”
이현수가 건들거리며 조규민에게 다가갔다.
“뭐? 개애새끼이이? 개새끼이이이? 다시 한 번 말씀해 보시죠, 조규민 씨. 이 개새끼가 잘 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게…….”
조규민의 입이 툭 나왔다.
“욕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세상에 욕을 안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나? 그리고 너 내가 손 들고 있으랬는데, 손은 왜 안 드냐?”
“에이, 형님.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저도 체면이 있지.”
남들이 다 보는 곳에서 당당하게 무릎은 꿇고 있는 조규민이었다.
“그리 체면 챙기는 놈이 사람 그렇게 많은 데서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있냐?”
“……워낙 급박해서.”
“이 새끼가?”
이현수가 눈을 희번덕거리자 조규민이 무릎걸음으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 안 올 줄 알았죠.”
“안 와도 그렇지, 이 새끼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욕을 치냐!”
“……욕할 사람이 없으니까.”
“이거 큰일 날 놈이네, 이거!”
조규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귀신 같은 인간이 그 와중에 그건 어떻게 듣고.’
온갖 소음이 다 터지는 상황에서 그를 욕하는 말만 쏙쏙 골라서 들었다는 걸 신기하게 여겨야 할지, 섬뜩하게 여겨야 할지. 그것도 벽 뒤에서 말이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현수가 제때 도착해 주었기에 그가 그리고 아이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 이현수가 5분만 늦었다면 지금쯤 조규민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맙다.
무척이나 고맙다. 그런데…….
이현수가 고개를 획 돌렸다.
“뭐하냐, 새끼들아! 애들 빨리 안 챙기냐?”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의 발이 바빠졌다. 이현수가 이끌고 온 총회 회원들은 아이들을 담요로 감싸고, 핫 팩을 주고, 따뜻한 물을 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회주님이 아끼는 애들이다. 애들 중 감기 걸리는 애만 나와 봐. 너희 모가지 다 따버릴 테니까.”
굉장히 다정한 이야기를 매우 무섭게 하고 있는 이현수였다.
“불 피우라고! 불! 옷 말려야 할 것 아냐? 아니면 간의 탈의실이라도 가지고 올래?”
“지금 당장 피우겠습니다.”
서울 시내 한 복판에 불 피우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여기 건물이 정상이 아닌데, 거기에 불을 피우면 안 됩니다.
할 말은 너무 많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알아서 하겠지, 뭐.’
애초에 법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지금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었다.
‘나도 좀 저리 챙기지!’
강진호가 애들만 아끼나? 조규민도 아낀다.
그런데 왜 조규민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푸헤에에엣취!”
크게 재채기를 한 조규민이 코를 쓱 닦으며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의 시선도 이쪽으로 돌았다.
“그리 재촉 안 해도 느긋하게 패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패요? 팬다구요? 제가 맞을 짓까지는 안 한 것 같은데.”
“쯧.”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썩을 놈 같으니.”
성질 같아서는 들어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조규민이 큰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다.
조규민이 제때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여기는 사망자가 넘쳐 났을 것이다.
물론 이현수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다. 관계없는 사람이 얼마나 죽어나가든 그게 이현수와 무슨 상관인가.
그가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지어서 사람이 죽는 게 아니다. 타인과 타인이 얽혀서 죽는 것에 신경을 쓸 만큼 이현수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득달같이 이곳으로 달려온 이유는 하나다.
강진호.
만약 이곳에서 조규민과 아이들이 죽었다면, 강진호가 어떻게 나왔을까?
‘상상도 하기 싫다.’
모르긴 몰라도 총회가 뒤집어졌을 확률이 높았다. 주변인들을 제 살처럼 아끼는 양반이다. 그런데 하나둘도 아니고, 단체로 목숨을 잃는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조규민 덕분에 그런 사태를 막아내었으니, 조규민 역시 이현수에게는 나름 은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얄미울까?
‘턱주가리 한 번만 날렸으면 소원이 없겠네.’
평소에도 깝죽대더니 이번에는 깝죽이 도를 넘었다. 그렇다고 방금 저 난리에서 빠져나온 놈을 두드려 팰 수도 없고.
“후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이현수가 뚱하게 말했다.
“너도 저거 타고 병원 가서 진료 받아봐.”
“병 주고 약 줍니까?”
투둑.
이현수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사람이 걱정을 해주면 있는 그대로 좀 받으면 안 되나? 꼭 이렇게 대거리질을 해야 속이 풀리나?
“확실히 그 말을 들으니 알 것 같다.”
“뭘요?”
“내가 병을 덜 준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병을 제대로 주고 시작하자.”
“……네?”
“이리와, 새끼야.”
이현수가 조규민에게 달려들어 그의 코를 비틀고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아! 다리! 다리! 아, 다리 삐었다고! 다리!”
“확 그냥!”
“저, 저기! 형, 저기, 저기!”
“안 속아, 인마!”
“저기 강진호 씨 나오신다니까!”
이현수가 조규민의 코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쪽 입구로 강진호와 위긴스가 나오고 있었다. 구조대들이 그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강진호가 손사래를 치며 몇 마디를 하고 나자 구조대원들이 그들을 힐끔거리다가 이내 관심을 접고 멀어졌다.
두리번거리던 강진호가 이현수를 보고 다가왔다.
이현수가 강진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음.”
강진호가 말없이 이현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현수 역시 씨익 웃는 것으로 강진호의 치사에 답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그리고 스승……. 스승님?”
이현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위긴스의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그 얼굴을 본 이현수가 걱정스레 물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꼭 어디 한 대 맞은 것 같은데. 안에 적이 있었을 리는 없고, 상황이 많이 급박했던 모양이지요?”
“…….”
“사부님?”
위긴스가 조용히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
손동작은 조용하라는 의미였지만, 그 표정과 분위기는 명백히 ‘닥쳐라’를 외치고 있었다. 대충 돌아간 상황을 짐작한 이현수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구만.’
언제 한번 그럴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보면 나이든 사람을 어린놈이 두들겨 팬 패륜이지만, 강진호는 실제 나이가 위긴스보다 훨씬 많지 않은가?
‘그러게 적당히 하시지.’
슬쩍슬쩍 긁어 대는 꼴이, 언제 한번은 사달이 날 줄 알았다. 그게 하필 오늘이었던 것일 뿐.
“훕!”
이현수는 입을 틀어막았다.
웃음이 터지는 순간, 위긴스가 그를 뒤로 접으려 들 것이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날카로운 위긴스의 눈빛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진호가 물어왔다.
“어떻게 알고 왔지?”
“저놈이 전화를 하더군요.”
이현수가 턱짓으로 조규민을 가리켰다.
그러자 강진호도 조규민을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고 있는 조규민을 본 강진호가 흠칫했다.
“왜 저러고 있어?”
“하도 건방져서…….”
이현수의 대답을 들은 강진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본 이현수가 살짝 고개를 숙였고, 조규민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강진호를 보았다.
“강진호 씨!”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를 돌아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면이 좀 있기는 해.”
“…….”
“…….”
살짝 정적이 감돌았다. 강진호는 그 정적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들은?”
“저쪽에 있습니다. 모두 무사합니다. 혹시 체온이 떨어졌을까 싶어 옷을 말리고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이현수가 가리킨 곳을 본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어디선가 가져온 드럼통 안에 목재를 채우고 불을 피워두었다. 그 주변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병원 진료는 받아야겠지만,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
“수고했어.”
강진호가 휘파람을 불며 아이들 쪽으로 향하자 조규민이 강진호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
그렇게 가면 안 되는데?
어? 이게 아닌데?
뭔가 외치려는 순간, 시커먼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현수가 씨익 웃으며 검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댔다.
“조용해야지, 규민아.”
“…….”
그 악마 같은 얼굴을 보는 순간, 더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강진호는 멀고 이현수는 가깝다.
“많이 아프지? 여기저기 다친 데가 많으니까.”
“……예.”
“너 요즘 참 피곤해 보이던데.”
이현수가 양 어깨를 풀며 조규민에게 다가왔다.
“형이 편히 쉬게 만들어줄게. 누가 봐도 쉬어도 될 정도로 말이야.”
“…….”
의형의 우정을 온몸으로 듬뿍 느끼게 된 조규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