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33
#832.
정리하다 (2)
“괜찮아?”
“형!”
“오빠!”
강진호가 나타나자 불을 쬐고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강진호는 품에 안기는 아이들을 안아주면서 매의 눈으로 관찰했다.
‘특별한 외상은 없고.’
찰과상을 입거나 인대 정도를 다친 아이들은 보였지만, 당장 치료가 필요할 만큼 큰 상처를 입은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강진호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
한진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아……. 형, 괜찮아. 안 다쳤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결국 강진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 상황에서 아이들만 무사히 빼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른 이들의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아무리 강진호라도 수조가 터지는 상황에서 아이들과 다른 이들을 모두 살려낼 수는 없다.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부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도 이런 요행이 가능할까?’
쉽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지인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저울질해 선택을 내려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자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니야.’
강진호는 굳이 답을 찾지 않았다.
선택이 어렵다면, 선택을 하지 않으면 된다. 지금은 그의 능력이 이 정도이기에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가 적천과 동일한 힘을 가졌다면 아이들과 사람들을 모두 구해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답은 빤하다.
강해지는 것.
강진호는 선명한 답에 도달했다.
‘그래, 결국 그거였지.’
의식적으로 피해오던 적천마존스러운 대답.
약해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해결책은 결국 강해지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강진호는 오늘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줄 첫 번째 열쇠를 손에 넣었다.
‘아이러니하다니까.’
딱히 수련을 하지 않음에도, 치열하게 무언가를 이루려 하지 않음에도 오히려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이 세계로 돌아온 초기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가 이룩한 경지가 그만큼 높았으니까. 하지만 본디 이루었던 경지에 다가갈수록 그 속도가 더뎌지는 게 당연하건만, 강진호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가까이 보면 굴곡이 있을지 모르나, 멀리 보면 그 가파름이 전혀 더뎌지지 않는다.
“오빠.”
품에 파고드는 조미혜의 몸이 차갑다.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미안하다. 내가 괜히 이런 데 오자고 해서.”
“아, 아니야, 오빠. 이런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았겠어. 오빠는 우릴 위해서 그런 거잖아.”
“음.”
원망하고 싶을 만도 하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던 곳에서 겨우겨우 탈출해 나온 아이들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강진호를 변호해 주려 하고 있었다.
‘따뜻하군.’
몸은 차갑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강진호는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그랬지.’
왜 이 아이들에게 집착했을까, 왜 보육원이라는 곳에서 떠나지 못했을까.
바로 이 온기 때문이었다.
이 세상으로 처음 돌아왔을 때, 강진호는 낯설음을 느꼈다. 익숙해야 할 세상임에도, 더없이 그리워하던 세상임에도 그가 느낀 감정은 안정이라기보는 낯섦에 가까웠다.
그 낯섦을 이 온기가 채워주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주는 온기. 누군가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강진호는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였구나.’
다른 이들이 왜 그리 보육원에 집착하느냐고 했을 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왔을 때, 강진호는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저 함께 가고 싶다는 말.
예전과는 달라지고 싶다는 말로 어설픈 변명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여길 지키고 싶은 거였어.’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니까, 그가 쉴 수 있는 곳이니까.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그도 이미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받고 있었다.
조미혜의 등을 끌어안은 강진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몇몇 구조대원들이 강진호들 쪽으로 다가왔다.
“부상자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 다치신 분들이나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으신 분들이 있는지.”
강진호가 슬쩍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안 좋은 사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돌아본다. 자기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럴 때마저 남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니 답답할 정도다.
“크게 아픈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속이 안 좋아지거나 컨디션이 이상해지면 바로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지금 괜찮다고 다 괜찮은 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몸이 괜찮게 느껴지셔도 진료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다만, 죄송하게도 워낙 부상자가 많아서 앰뷸런스로 모두 이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죄송하지만, 혹시 차량이 있으시면 지정 병원으로 직접 이동하여 진료를 받아보실 수 있는지…….”
순간,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었다. 하기야 여기서 다친 사람이 몇인데,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병원으로 신속하게 이송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죠.”
“아, 그럼 지정 병원은…….”
어느새 그들에게 다가온 이현수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 부분은 저와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아…… 예.”
구조대원이 이현수를 따라 옆으로 갔다. 구조대원과 몇 마디 말을 나눈 이현수가 씨익 웃으면서 강진호에게 다가왔다.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버스 있으니 버스로 이동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음.”
강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봐야겠지.’
상태를 보아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강진호는 의사가 아니다. 무학이 높다고 해서 의술이 높은 것은 아니었다.
강진호는 이미 황정후 등의 병을 고친 전력이 있지만, 그건 그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병에 한한 것이었다.
전반적인 능력을 따진다면 자신의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의사에게는 미칠 수 없다.
강진호가 해야 할 것은 아이들이 의사 앞에 가기 전에, 머릿속에 들어차 있는 탁기를 뽑아내는 것 정도였다.
“회주님.”
“음?”
“이야기를 들어보니 외과적 진단은 하는 모양인데, 트라우마 케어는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따로 준비하겠습니다.”
확실히 필요한 것 같다.
탁기를 뽑아내는 것으로 웬만큼은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완벽하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강진호는 의사가 아니니까.
“부탁하지.”
“예.”
이현수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조 실장님은?”
“회주님.”
“음?”
“사람이란 말입니다.”
이현수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한 번씩은 맞아야 정신을 차릴 때가 있습니다. 물론 대화로 해결된다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던 교육자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발언이었다.
그리고 강진호 역시 그 무자비한 말에 동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다고 정신 차릴 것 같지 않던데?”
“제가 잘해보겠습니다.”
“그럼 뭐…….”
어깨를 으쓱한 강진호가 조규민에게 관심을 껐다. 다 큰 어른이니 알아서 하겠지, 뭐.
“그리고…….”
강진호의 시선이 건물로 향했다.
뚫린 벽으로 아직도 물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상황은?”
“아무래도 부실 공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규격보다 얇은 아크릴을 사용해 수조를 만들었다는 것 같습니다.”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부실 공사 자체가 죄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강진호는 살면서 그보다 더 큰 죄를 수도 없이 지어왔다. 부실 공사를 했으니 악인이라고 몰아가 단죄를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부실의 결과가 강진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끼쳤다는 건 다른 문제다. 까딱했으면 아이들이 죽을 뻔했다.
자연재해였다면 몰라도 인재라면 이 인재를 초래한 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디에 있지?”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회주님이 나서실 일도 아닙니다. 아마 이제부터 지옥을 겪게 될 거니까요. 안 그래도 대형 사고에 트라우마가 있는 세상이 아닙니까. 지금부터 전방위적으로 시달리게 될 겁니다. 당연히 감옥에야 가게 될 거고, 운이 좋다면 빨리 풀려날 수도 있겠지만…….”
이현수가 물이 새고 있는 건물을 보며 비웃었다.
“이건 이제 쓰레기장이 되겠죠. 투자비는 한 푼도 회수할 수 없을 겁니다. 밀어버리고 땅이나 팔아야 하는데, 이 땅도 이미지 때문에 값이 폭락할 겁니다. 쪽박 차고 나가는 거죠.”
“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투자자도 엄청 끌어왔을 테니, 남는 건 빚밖에 없겠죠.”
“돈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그거, 꽤나 가혹한 겁니다, 회주님.”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원래 돈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야 돈이 있든 없든 딱히 신경 쓰지 않겠지만, 돈에 아등바등하는 인간이 있던 돈을 모두 날리게 되는 건 엄청난 충격입니다. 게다가 빚더미에 오른다면 사는 게 지옥이겠죠. 딱히 더할 것도 없이 지옥을 겪게 될 겁니다.”
그 말을 듣고도 강진호의 표정이 풀리지 않는 것을 본 이현수가 웃고 말았다.
‘하여튼 가혹하시다니까.’
때때로는 자비가 넘치는 사람인데, 어떨 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쓰레기에게 가혹한 것이야 이현수도 환영이다.
“그럼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으신다면, 다른 방법으로 단죄하시는 것이 옳습니다.”
“다른 방법?”
“예. 회주님께서 가지신 힘은 폭력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회주님께서 가지신 권력을 아실 때도 됐습니다.”
“……권력?”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총회의 권력이라고 해봐야 무인계에서나 통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권력?
“원하신다면 이쪽과 줄이 닿아 있는 국회의원들을 움직이겠습니다. 그리고 사법부 쪽으로도 압박을 좀 넣어보죠.”
“사법부?”
“아마 감옥에서 꽤나 오래 썩게 될 겁니다.”
“흐음.”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이상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예.”
“하지만 자기가 지은 죄의 대가는 받아야겠지. 어설프게 감형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명심하겠습니다.”
강진호가 그 말을 남기고 아이들 쪽으로 향하자, 이현수가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화가 많이 나셨네.’
아이들이 다칠 뻔했다는 사실이 강진호를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우려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강진호의 감정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는 가족만으로 충분했다. 또 다른 존재까지 소중해진다면, 그만큼 약점이 늘어나는 것이니까.
‘우선은 보육원 쪽의 경계를 강화해야겠어.’
강진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면, 보좌할 수밖에 없다. 주인이 제 길을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보좌의 역할이니까.
어쩌면 강진호의 추진하는 복지 사업에도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현수가 몸을 돌렸다.
이제는 묶어놓은 조규민을 풀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