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38
#837.
추진하다 (2)
“왔는가, 주인?”
“어서 오십시오, 로드.”
“마존이시여, 격조하였습니다! 찾아뵙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오셨습니까, 회주님.”
회의실에 들어가자마자 인사가 쏟아졌다.
각기 특색이 있는 인사들을 받으며 강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군.”
강진호가 상석으로 향하자, 이현수가 일일이 고개를 숙이며 안에 앉은 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회의실 안에는 바토르와 위긴스를 필두로, 장민과 방진훈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통역을 위해서인지 엘레나와 장다징도 뒤쪽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앉아 있었다.
강진호는 소파에 앉으며 살짝 편안함을 느꼈다.
‘이런 기분도 오랜만이군.’
한동안은 이 자리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리가 아니라 위치가 부담스러웠다.
그가 가볍게 내린 결정에 여러 사람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벼워졌군.’
머릿속이 맑게 개어 있었다. 생각보다 심마의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얼굴로 와닿는 공기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진다.
“아, 참고로…….”
이현수가 한쪽 끝을 가리켰다.
“회주님, 앞으로는 편하게 담배를 피우셔도 됩니다. 공기청정기를 두 개 설치했습니다.”
“……어?”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
아, 그거였구나.
요즘 기술력이 좋네. 공기 질도 달라지고.
“내 사무실에는 안 놔주나?”
“지금 설치 중일 겁니다.”
“크, 센스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방진훈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와 이현수는 아직까지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한때는 서로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사이가 아닌가.
강진호와 이현수의 사이 역시 크게 다를 것은 없지만, 관계의 주도권 자체가 강진호에게 쏠려 있었다. 강진호가 그 일을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면 누구도 그 사실을 언급할 수 없다.
하지만 방진훈과 이현수의 관계는 강진호와 이현수의 관계와는 다르다. 더구나 그들이 각 세력에서 가지고 있던 입지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서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강진호가 아니었다면 결코 섞일 일이 없던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표정이 좋아지셨습니다?”
“흠, 그런가?”
“전에는 정말 죽상을 하고 계셨는데, 확 밝아졌다가…… 이제는 좀 평균을 찾으신 느낌이네요. 너무 격하게 그러지 마십시오. 아랫사람들 피곤합니다.”
강진호가 쓰게 웃었다.
한 번씩 방진훈은 이렇게 돌직구를 날린다.
하지만 말 자체는 맞는 얘기였다. 윗사람이 인상을 쓰고 다니면 아랫사람은 자연히 움츠릴 수밖에 없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도 괜히 조심하게 된다.
강진호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군.”
“아, 아니. 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건 아니고!”
방진훈이 당황했다.
농으로 던진 말을 저리 진지하게 받을 줄 몰랐던 것이다.
“문제가 조금 있었다.”
“문제?”
방진훈이 빠르게 화제를 돌리려 했다.
“개인 신상 같은 겁니까?”
“심마에 들었거든.”
“……헐.”
방진훈이 입을 헤, 벌렸다.
심마(心魔).
무학을 익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심마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건 뭐랄까…….
‘기린이나 용 같은 거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쯤 되는 이야기다.
다른 이가 이런 말을 했다면, 방진훈은 주저하지 않고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강진호이다 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심마라는 게 정말 있는 겁니까?”
대답은 바토르가 대신했다.
“있다.”
바토르의 옆에 붙어 있던 장다징이 재빠르게 통역을 했다.
“심마는 존재한다. 하지만 겪어본 이들은 거의 없기 마련이지. 사실 심마라는 것을 따로 분류하는 것도 이상한 거야. 벽이 곧 심마니까. 심마라고 표현될 정도의 벽을 만나려면…….”
바토르가 방진훈을 가만히 보다가 머리를 긁었다.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은데.”
“거, 그 양반. 말 참 섭섭하게 하시네.”
“사실이니까.”
“사람이란 건 사실이라도 어쩔 수 없이 기대해 보는 게 있는 겁니다. 댁이 나지 않는 머리카락을 간절히 바라듯이.”
통역을 들은 바토르가 멍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군! 과연 그래! 사람이면 포기 못하지.”
껄껄대며 웃던 바토르가 묘한 눈으로 방진훈을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군. 어때? 자리 끝나면 술 한잔?”
“됐수다. 뒤로 끌려가 처 맞을까 겁나서 못 가겠소.”
“난 부드러운 사람이라니까.”
“퍽이나.”
바토르가 매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여기에 있는 이들 중에서는 그가 가장 신사적인 사람이다.
이현수는 잔인하고 과격한 사람이고, 방진훈 역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이 죽어 나가든 말든 밀어붙이는 타입이다. 저 마교의 장로 놈이야 말해 무엇 하겠으며…….
‘이놈이 제일 문제지.’
겉으로만 보면 사람 좋은 미중…… 아니, 미노년으로 보이는 저 위긴스가 속은 제일 검다. 이 중에서 웃으면서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은 위긴스와 이현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하나 더 있나?’
강진호를 본 바토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대단한 곳에 와 있군.”
한국 총회 내에서 쿠데타를 기획하던 놈이 가장 선량해 보인다.
“군자는 검은 곳에 가지 않는 법이건만.”
“누가 군자입니까?”
“내가 군자지.”
위긴스가 피식 웃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이 중에서는 제가 제일 깨끗하지요.”
“배신자 놈이 말은 잘한다.”
“거! 같은 처지면서!”
웬만해서는 발끈하지 않는 위긴스가 발끈했다. 소속되어 있던 곳을 박차고 나온 것은 그나 바토르나 다를 것이 없건만, 왜 그만 배신자라는 건가.
“나는 거기서도 식객이었다. 그러니 입장이 다르지.”
“저도 탈퇴한 겁니다.”
“말이야 그렇겠지.”
“끄응.”
위긴스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이현수가 치고 들어왔다.
“그냥 포기하십시오, 다들.”
“뭐?”
“어차피 여기서 누가 더 나은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외부에서 보게 된다면 같은 종류일 테니까요.”
“같은 종류라니! 확연히 다르다.”
“아닐 겁니다.”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외부에서 보면 여기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외부에서 보면 난잡한 한국의 무파 정도 아닐…….”
어?
바토르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듯이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이현수가 태연하게 말했다.
“부활한 전대의 거마…… 아니, 전설상의 마귀가 집어삼킨 조직. 그 조직에 마귀를 모시겠답시고 변절하여 귀의한 이들의 모임 같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긴데.”
“보통 만화 같은 거 보면 많이 나오는 마왕성이죠.”
“그렇지?”
마왕성이라니.
방진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부정하고 싶은데, 이게 묘하게 부정할 수가 없군.”
이 세상에 수많은 무인이 있겠지만, 마왕이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강진호밖에 없다. 게다가 전설로 회자되는 마왕이 현대에 다시 부활했다는 설정도 아주 죽여준다.
“그 마왕이 이리저리 분열되어 있던 곳을 순식간에 집어삼킨데다가…….”
“중국과 유럽의 무인을 유혹하여 수하로 거둔 거로군.”
“심지어 예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세력도 부활시키려고 하는 중이잖아.”
“……전형적인데, 전형적?”
“악의 축이네.”
모두가 묘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
지은 죄도 없이 세계 멸망을 위해 움직이는 마왕쯤이 되어 버린 강진호가 헛기침을 했다.
“흠, 농담은 그 정도로 해두지.”
“농담 아닙니다만.”
“진짜 남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회 이미지가 개판 날 것 같은데, 국제 광고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럴 것도 같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중국이나 유럽은 정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날뛰었구나.’
딱히 크게 얽힌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홍왕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정파와 마교가 대립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그 관계가 달라졌으니까.
그런데 오늘 이 말을 듣고 보니, 왜 그가 그렇게 강진호에게 집착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 잠깐.”
바토르가 당황한 듯 말했다.
“그럼 홍왕이 용사인 건가?”
장내가 충격으로 물들었다.
“헐…….”
“그건 좀…….”
위긴스와 이현수가 질색했다. 겉모습만 보자면 차라리 그쪽이 더 악역처럼 생겼다. 시대착오적인 그 패션만 보더라도 말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악역으로 딱 걸맞지 않은가.
“그래서…….”
모두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오로지 한 명, 장민만은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처음부터 마교였고, 앞으로도 마교인 그는 외부의 이미지 따위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왕군급으로 위상이 올라간다면 발가벗고 깨춤을 출 일이었다.
“심마에서는 벗어나셨습니까?”
“음, 그런 것 같군.”
장민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 자리에 넙쭉 엎드렸다.
“마존이시여! 대공을 경하드립니다!”
바토르의 얼굴이 확 굳었다. 동시에 그의 무릎이 들썩였다.
“정말인가?”
“음.”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강진호를 본 바토르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알아서 심마에 들더니만, 알아서 빠져나오는군. 심마라는 게 보통 그리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해결되는 일이 아닐 텐데.”
웬만해서는 강진호가 저지르는 일에 놀라지 않으려 하지만, 이건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심마는 확실한가?”
“그런 것 같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예전에 겪어봤어.”
“…….”
‘내가 해봐서 아는데’가 나왔다.
평생 동안 심마라고는 겪어본 일이 없는 바토르가 쪼그라들었다. 경험자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럼 정말 극복했다는 거로군.”
강진호가 대답을 하지 않자, 바토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진훈과 이현수는, 심지어 위긴스조차도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로지 장민과 바토르만이 강진호가 얼마나 큰 것을 이루었는지 짐작할 뿐이다.
‘무지막지하게 강해지는군.’
심마를 뚫어냈다는 게 무공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수련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첩첩이 막혀 있던 산 아래에 터널을 뚫고 도로를 포장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액셀을 밟는 대로 나가겠지.
‘그럼 대체 얼마나 강해지는 거야?’
강진호가 홍왕과 동수를 이룬 것이 겨우 얼마 전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동수를 이뤘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밀린 것에 가깝다. 하지만 어쨌든 강진호는 그 홍왕과 싸워 살아남았다. 전력을 다한 그 홍왕의 공격을 받아치고 그를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여기서 더 강해진다?
여기서?
“……마왕은 마왕이군.”
저런 자를 적으로 둔다면?
‘끔찍하지.’
홍왕과 차이커창이 느끼는 초조함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바토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