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4
#83.
훈련하다 (2)
“……저 새끼.”
강진호와의 트러블이 있을 이후로 주영기는 강진호를 항시 주시했다.
‘뭔가 있기는 한데…….’
사회에서 그를 알던 사람들이 지금 주영기의 모습을 본다면 비웃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도 사람의 분위기나 눈빛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사회에서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자를 비웃었을 것이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주영기는 도저히 강진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강진호가 그에게 보여주었던 눈빛이 뇌리에 화인처럼 박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씨발.”
주영기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험하게 살아오다 보니 살인자와도 엮인 적이 있다. 그 자신은 그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 새끼 양아치에 불과했지만, 그가 아는 사람 중 하나는 진짜 사람을 죽이고 지금 복역 중이다.
덕분에 주영기는 사람을 죽여본 사람은 눈빛이 다르다든가, 분위기가 다르다든가 하는 말이 헛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달랐다.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어.’
정말 그 순간 강진호가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움직였다면 주영기는 주저앉아 버렸을 것이다.
눈앞에서 칼이 춤을 춰도 한 번도 겁을 먹어본 적 없던 주영기다. 그런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사람에게 겁을 먹다니.
다만, 이상하게도 창피하다거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어쩐지 그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사람이 사자에게 겁을 집어먹는다고 그를 겁쟁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주영기에게 남은 것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대체 저놈은 누구일까?
“99번 훈련병!”
“99번 훈련병, 주영기!”
“정신 안 차립니까? 여기가 어딘 줄 알고 한눈팔고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주영기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그를 나무라는 조교 역시 긴장한 얼굴로 주영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한눈을 파는 정도로 지적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신교대에서 모든 이들이 가장 긴장하는 곳인 수류탄 훈련장에서는 훈련병들보다 조교들과 교관이 더 긴장하기 마련이었다.
퍼엉! 퍼엉!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려온다.
“긴장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예!”
주영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생각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다. 정신이 팔리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다음 줄 교장으로 갑니다.”
주영기가 속한 줄을 호출하는 방송 소리와 함께 주영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수류탄 안전핀을 제거할 때부터는 절대 손에서 힘을 빼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예!”
깔끔한 복명복창.
“위치로!”
“위치로!”
주영기가 긴장한 얼굴로 사로로 향했다. 사로에는 이미 교관이 대기하고 있었다.
‘저 새끼가 또 옆이네.’
하지만 주영기에게는 사로에서 기다리고 있는 교관보다 옆 사로로 들어서고 있는 강진호가 더 의식이 되고 있었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라도 않으면 신경이라도 덜 쓸 것인데, 훈련번호가 붙어 있다 보니 어딜 가도 같이 이동해야 하고 옆자리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등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옆 사로에서 교관에게 체크를 받는 놈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이 든다.
“긴장 풀어, 긴장.”
“예.”
주영기가 얼굴을 굳히고 있자 긴장한 것이라 판단한 교관이 주영기의 허리를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남들 다 하는 거잖아? 그렇지?”
아무래도 주영기는 교관에게 겁쟁이로 찍힌 모양이었다.
‘한마디 할 수도 없고.’
― 수류탄 인계.
“수류탄 인계!”
주영기는 교관이 주는 수류탄을 양손으로 잡았다. 교관이 수류탄을 잡은 주영기의 손 위를 자신의 손으로 덮어 꽉 눌렀다.
손에 얼마나 힘을 줬는지 고통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교관이 얼마나 주영기를 신뢰하고 있지 않은지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교관이 그보다 좀 더 긴장한 모양이었다.
주영기는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손에 수류탄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자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쫄지 말자.’
― 표적 확인.
“표적 확인!”
등 뒤에 있는 커다란 타워에서 방송이 나온다.
“준비하고.”
“예.”
“자세는 숙지한 대로만 하면 된다. 별것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 마라.”
“예.”
무슨 겁을 먹었다고 자꾸 이러는지 모르겠다. 옆 사로의 교관은 강진호에게 단 한 마디도 안 하고 있는데.
“99번 훈련병!”
“99번 훈련병, 주영기!”
“자꾸 잡생각하지 마라.”
“예.”
주영기는 본인이 매우 산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꾸 옆 사로에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집중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척 자세로 이행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주영기는 슬그머니 자세를 잡았다. 교관은 여전히 수류탄을 잡은 그의 손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시야에 수류탄을 투척하기 위한 커다란 호수가 들어온다.
‘저기다 냅다 던지면 되는 거 아냐.’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다. 손에 힘을 풀어서 안전 손잡이가 더블 클릭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제대로 던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훈련이다.
아마 사고가 났다는 기사를 본 것도 몇 년 된 것으로 보아 그동안 그 많은 훈련생들이 다들 별 이상 없이 훈련을 마쳤다는 것 아닌가.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찌질이들이 다들 해내는 훈련을 주영기가 제대로 못할 리가 없었다.
― 안전핀 제거.
“안전핀 제거!”
가슴 앞으로 가져간 수류탄에서 안전핀을 잡아 뺀다. 오른손으로는 그 와중에 안전 손잡이가 더블 클릭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자신있게 해, 자신 있게!”
― 던져!
“던져!”
복명복창을 마친 주영기가 힘차게 수류탄을 앞으로 집어 던졌다.
툭!
하지만 너무 힘을 주어서인지 수류탄은 전방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아래쪽으로 꽂히더니, 사로 앞에 설치된 방호벽에 부딪치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영기의 눈이 순간적으로 떨린다.
“아!”
교관이 다급하게 수류탄을 향해 달려들었다.
발로 수류탄을 처치공으로 밀어 넣으려 하던 교관은 다급한 마음에 몇 번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이런 씨발!”
이미 수류탄을 처치공 안으로 밀어 넣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교관이 주영기의 팔을 움켜잡고 호 밖으로 몸을 날렸다.
“큭!”
하지만 생각처럼 주영기가 순순히 밖으로 끌려오지 않았다.
당황하여 몸이 굳어버린 주영기가 순간적으로 버텨 버린 것이다. 호에 반쯤 걸친 자세로 넘어져 버린 교관이 고함을 지르며 수류탄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아!”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몸을 웅크렸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호 안으로 뛰어 넘어오는 광경이 그의 눈에 포착되었다.
‘훈련병?’
군모를 쓴 교관이 아니라 방탄모를 쓴 훈련병이었다. 방탄모 뒤에 흰색 페인트로 정확하게 찍혀 있는, 100이라는 숫자가 너무도 확연히 보인다.
‘왜?’
생각할 겨를이 없다.
호 안으로 뛰어 들어온 훈련병이 깔끔하게 수류탄을 집어 들더니, 그리 다급하지도 않은 동작으로 가볍게 수류탄을 호수 안으로 던져 버린다.
교관의 입에서 그만두라는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깔끔하게 수류탄을 던져 버린 100번 훈련병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콰아아앙! 퍼엉! 퍼엉!
수류탄이 미처 물 안까지 가지 못하고 공중에서 폭발한다. 물속으로 던져진 수류탄들도 동시에 폭발하며 아비규환이 만들어졌다.
“으아…….”
교관이 몸을 떨었다.
저 수류탄이 던져진 게 1초만 늦었어도 그들은 이미 육편이 되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실감하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으…….”
교관은 순간적으로 주영기에게 욕을 날려야 할지, 아니면 뛰어 들어온 훈련병을 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공황이 찾아온 것이다.
― 뭐해, 이 새끼들아! 다친 데 없는지 살펴봐!
방송에서 호통이 떨어지자 주변의 교관과 조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최 상사님, 괜찮으십니까?”
“99번 훈련병, 괜찮나?”
“어…….”
주영기는 얼떨떨한 상황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괘, 괜찮습니다.”
“이 새끼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지!”
달려온 조교가 지체 없이 주영기의 조인트를 깠다.
빡!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만, 주영기는 아픈 줄도 모르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역시 까딱했으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완전히 얼이 빠졌지만, 자신이 커다란 잘못을 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조금만 일이 틀어졌어도 그뿐 아니라 교관까지 죽었을 것이다.
“100번 훈련병! 괜찮나?”
“예.”
그의 등 뒤에서 무심한 듯한 강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하라고 했나! 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새끼야! 까딱했으면 너도 죽었어.”
“살아 있잖습니까.”
“뭐, 인마?”
깊게 한숨을 쉰 최 상사가 손을 내저었다.
“됐어. 일단 주변 정리부터 해.”
“예, 알겠습니다.”
조교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주영기의 팔을 잡고 지휘소 쪽으로 끌고 갔다.
“야,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고생했다.”
“예.”
강진호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본 최 상사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저놈은 심장이 강철로 만들어졌나?’
신병훈련소에서 수없이 수류탄을 만져 온 그도 가슴이 이리 뛰고 있는데, 저놈은 신경이 고래 심줄로 만들어진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저리 담담하다는 말인가.
그리고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제 목숨 하나 건사하기도 바쁠 상황에서 호 안으로 뛰어 들어와 그 수류탄을 밖으로 던질 생각은 또 어떻게 했고.
“……미친놈.”
최 상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 상사님, 괜찮으십니까?”
“어, 그래. 일단 보고부터 하러 갈게.”
“예.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최 상사의 눈에 굳어버린 훈련병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훈련은 끝이군.’
저리 긴장한 훈련병들에게 수류탄을 쥐어 줬다가는 대형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수류탄을 잡기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훈련병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최 상사 역시 더는 훈련을 지속할 용기가 없었다. 방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자각이 이제야 든다.
‘저 새끼…….’
최 상사의 눈에 조교의 손에 이끌려 훈련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100번 훈련병이 들어왔다.
‘대체 뭐하는 놈이지?’
최 상사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그 두 눈에 똑똑히 새기고는 상황 보고를 하기 위해 지휘소를 향해 걸었다.
그의 등을 타고 배어 나온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죽다 살았군.”
최 상사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 멀어지고 있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