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42
#841.
구타하다 (1)
“……죽을 것 같다.”
“저는 죽었습니다.”
위긴스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소파에 등을 기댔지만, 몸의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순간 뼛골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끄으으으으.”
위긴스가 몸을 덜덜 떨었다.
물론 그에게 이 뼈마디가 부서지는 고통을 선사한 사람은 강진호였다.
웃는 낯으로 자신을 후드려 패던 강진호를 생각하니, 새삼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상쾌하다는 표정 짓지 말라고!’
사람이 좀 이상해졌다.
뭐랄까, 지금의 강진호는 그런 상황 같았다.
몇 날 며칠 동안 앓던 이가 한순간에 빠졌다거나, 보름 동안 변비에 시달리다가 한순간에 탈출했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그 반들반들하게 빛나는 상쾌한 얼굴을 설명할 수가 없다.
얼마나 상쾌하면 사람을 후드려 까면서도 웃는단 말인가! 소름 돋게!
‘적당히라도 팰 것이지.’
우드드득.
“끄으윽.”
사실 무인은 고통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무술이 스포츠로 변해 버린 세상과 다르게 아직 무인계에서 무학이란 자신의 몸을 학대하여 높은 수준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위긴스가 익힌 서양 무학이 동양에 비해 육체적 학대가 적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고문에 가까운 수련을 겪어야 한다.
그러니 고통에는 익숙한 편이건만…….
“사람을 어떻게 때리면 이렇게 아플 수가 있지?”
“……주먹에서 능숙함이 느껴집니다.”
“그야 그렇겠지.”
수도 없이 패왔을 테니까.
맞으면서도 느낄 수 있다.
그들 역시 전투를 수도 없이 겪어왔다. 누군가에게 뒤질 정도는 절대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다. 하지만 강진호의 능숙함 앞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얼마나 많은 전투를 해온 걸까?’
심심하면 강진호와 맞붙는데다, 과거에 목숨을 건 싸움까지 해본 바토르와 달리 위긴스와 방진훈은 강진호와 직접 주먹을 맞댈 일이 없었다.
무자비한 구타를 몸으로 겪고 나서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이 얼마나 전투에 능숙한지.
‘효율이라는 건가.’
강진호가 이전에 말한, 세세한 조정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수도 없는 전투를 치르다 보니 주먹을 뻗어내는 간단한 동작조차 노하우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 할 엄두도 안 나는군.”
이건 감각이었다.
배운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경험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최고의 셰프 밑에서 모든 것을 배운다고 해도 그와 동일한 맛을 낼 수는 없다.
그 미묘한 감각이라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쌓이는 법이니까.
“원래 저렇게 막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아니, 어쩌면 원래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예?”
“참고 있었던 거야.”
위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강진호를 조금만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그리 참을성이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신중하게 고민을 하던 와중에 갑자기 뻥 터져서 다 뒤집어엎어 버리는 게 강진호다.
‘올게 온 거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크게 터진다. 지금 강진호의 행동을 그 반동이라 생각한다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수련을 하고 강해진다는 건 좋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다 골병이나 들지. 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게 참…….”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며 거대한 동체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빌어먹을, 문이 왜 이리 작아?”
몸이 크신 겁니다만?
보통 장정이면 둘이 나란히 서도 넉넉할 문을 작다고 타박할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다. 바토르가 오만 가지 인상을 쓰며 안으로 들어왔다.
“또 조잘대고 있군, 사내놈들이.”
“……오늘은 조잘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동의합니다.”
바토르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주인이 이만한 은총을 내려주었건만,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군.”
“은총?”
“감사아아?”
위긴스와 방진훈이 동시에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토르를 바라보았다.
물론 대련을 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대체 어디 가서 강진호만 한 대련 상대를 구하겠는가.
무인이 실력이 상승하면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이 자신보다 강한 이와 싸울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무학은 저 혼자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간단한 미들킥 하나를 배운다 쳐도, 샌드백을 상대로 시전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로 시전하는 것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대련이라든가 스파링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지만 고수가 될수록 그 대련의 상대를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첫째로는 그만한 고수가 많지 않고, 두 번째로는 그만한 고수들은 잃을 것이 많기에 대련을 꺼리게 된다.
결국 상상으로 대체하든가, 애꿎은 샌드백을 때릴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저만한 고수, 어디 가도 찾을 수 없는 급의 고수가 먼저 나서서 대련을 해주는 것 아닌가. 사실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수는 고수와의 대련으로 자신의 모자란 점을 채우고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데 반해, 고수는 하수와의 대련으로 얻을 것이 없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와 싸워봐야 힘만 빼지 뭘 얻겠는가.
강진호가 굳이 체력과 내력을 낭비해 가며 대련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여지는 충분하다.
‘이게 대련이라면 말이지.’
대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무인과 무인이 서로 연습하듯 손발을 나누며 서로의 실력을 점검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건 대련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구타였다.
뭐, 손을 뻗어볼 새도 없이 안면에 죽빵이 꽂히는데, 거기서 뭘 보고 배우라는 말인가.
느낀 것이라고는 ‘저 양반 더럽게 빠르네’, 하나뿐이었다.
굳이 정리하자면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기감으로도 쫓을 수 없는 속도를 가진 사람과 싸운다면 방어가 불가능하다’ 정도의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별것 없는 교훈을 얻기 위해서 지불한 대가가 너무 과하다.
“끄으으응.”
위긴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뼈마디에서 두둑대는 소리가 들린다. 맞아도 너무 맞았다.
“이 꼴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십니까?”
“그 꼴을 보니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예?”
“쯧쯧.”
바토르가 한심하다는 듯 위긴스를 바라보았다.
“몸을 점검해 봐라.”
“……점검이요?”
“잔말 말고 해봐.”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긴 하지만, 바토르가 쓸데없는 일을 시킬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일단은 시키는 대로 몸을 점검해 보았다. 방진훈 역시 살짝 고개를 갸웃대면서도 바토르의 말을 따랐다.
“……어?”
위긴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게 무슨 상태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의 육체는 지금 손상되어 있다. 한 부분이 심각하게 망가진 곳은 없지만,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넓게 망가져 있다.
육체가 상하면 기력도 쇠하기 마련이다. 기와 육체는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다. 병자가 어마어마한 기운을 내뿜어내는 일이 없듯이, 육체의 손상은 기운의 흐름을 방해한다.
그런데 지금 위긴스의 내부에 흐르는 기운은 평소보다 훨씬 더 활력이 넘친다. 그의 몸 안에 과연 이만한 기운이 있었는가를 의심할 정도로 말이다.
위긴스는 내부가 아닌 외부의 마나를 활용하는 편이다. 내부에 저장한 마나의 총량은 동양의 무인들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 위긴스가 이만한 힘을 느낄 정도라면?
“이, 이거 뭐야?”
방진훈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역시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거대한 힘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 이거?”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타혈이다.”
“…….”
“다른 말로는 추궁과혈이라고 하지. 네게는 조금 생소한 개념일 수도 있겠지.”
바토르의 턱짓에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 무학을 공부하며 들어는 봤습니다만…….”
방진훈은 위긴스에 비해서 동양 무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렇기에 보인 반응도 조금 달랐다.
“그, 그게 실제로 가능한 겁니까?”
“몸으로 겪고도 모르는가?”
“헐…….”
방진훈이 입을 다물고 자신의 몸을 다시 점검했다.
‘진짠데?’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몸이 그 증거가 되어주고 있다. 그러니 부정할 수가 없다.
“하지만 세상에……. 추궁과혈이라니.”
추궁과혈 혹은 타혈법.
무인이 타인의 몸 안에 직접 기운을 집어넣어 내력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다.
예전부터 개념은 내려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시도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타인의 몸을 치면서 기운을 밀어 넣는다는 것을 다른 말로 타격이라고 한다.
팬다는 뜻이다.
거꾸로 말하면 추궁과혈이라는 것은 상대를 때리는 행동을 통해 상대의 육체를 이롭게 만드는 행위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가능하단 말이지?’
방진훈이 허허 웃어버렸다.
“……전설이 전설이 아니네.”
“그러게.”
위긴스도 그 말에 동의했다.
최근 들어서는 전설이라든가 신화라든가 하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총회 앞마당에 기린이 뛰어놀고, 용이 날아다닌다고 해도 이상하지가 않을 것 같다.
강진호가 람보르기니 대신 페가수스를 타고 출근해도 허허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 지경이었다.
“추궁과혈은 시전자의 내력을 어마어마하게 소모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할 수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물겠지만, 할 수 있어도 하려는 사람이 잘 없다. 고수가 하수를 위해서 내력을 낭비하겠나?”
“……아니지요.”
실제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 행위인지 방진훈은 잘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수많은 제자를 키우고 있지만, 그 제자들을 위해 심력과 시간을 소모한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다.
일단은 나 자신이 우선 아닌가.
“잠시만요. 이게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위긴스가 놀라 묻자 바토르가 고개를 저었다.
“일시적이긴 하지. 하지만 영구적이기도 하다.”
“영구적?”
바토르가 어깨를 으쓱했다.
“추궁과혈의 개념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강제로 상처를 만들어내는 거지.”
“그게 무슨?”
위긴스가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토르가 입맛을 다셨다. 이거, 말로 하기가 영 쉽지 않다.
“상처가 생기면 그 위에 새살이 돋지. 그렇지 않나?”
“그렇죠.”
“그리고 그 상처는 원래 피부보다 더 부풀어 오르지.”
“……아!”
위긴스는 바토르가 하려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상처와 회복의 반복. 근육을 부풀리는 것과 같은 과정이군요.”
“이해가 빠르군.”
근육을 만드는 행위는, 근육의 상처를 내고 회복시키기를 반복하는 행위다. 상처가 난 근육은 이전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그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이전보다 더 크고 강한 근육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기운 역시 마찬가지다. 내부의 기운을 강제로 억압하고 공격하면 기운이 반발한다. 그러다 보면 기운이 활성화되는 것이지. 거기에 육체를 강제로 손상시켜 육체가 회복되는 과정 동안 기운이 더 활발해지게 만드는 거지.”
바토르가 한숨을 쉬었다.
“말이야 쉽지만,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찾아내고 직접 시행한다는 건 거의 사람의 영역이 아니겠지만.”
그제야 강진호가 자신들의 몸에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게 된 이들이 하나같이 입을 쩌억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