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43
#842.
구타하다 (2)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부정할 수도 없고…….”
방진훈이 황당한 눈으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는 아픔 때문에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말을 듣고 나니 기운이 폭포처럼 흐르는 게 느껴진다.
“이게…….”
방진훈은 알 수 있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물론 지금 그의 몸에 흐르는 기운이 완벽하게 그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운동을 통해 크게 키운 근육은 지속적인 운동이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쪼그라들기 마련이니까.
강진호의 추궁과혈이 아니면 같은 수련을 반복할 수 없다. 방법을 모르고 알아도 시행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 기운 중 반절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거의 치트키 수준인데…….”
위긴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그 역시 이 수련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한 것이다. 오히려 방진훈이나 바토르보다 그가 더 정확하게 이 수련의 이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분석은 그의 특기니까.
“이런 방법이 있었다면 대체 왜?”
“말하지 않았나, 이건 알고 있다고 해도 시전하기가 힘들다고. 절정의 고수라도 단 한 사람을 타혈하고 나면 진이 빠져 쓰러지기 마련이다. 여럿을 이리 타혈한다는 이야기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전설상의 고수들도 하루 한 사람이 고작일 텐데.”
‘그거로군.’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강진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던 외기. 그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전투의 와중에서도 강진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기운들이 고스란히 강진호의 내력을 채운 것이다.
“허…….”
아무리 강한 고수라 해도 한 사람의 타혈이 고작이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은 강진호에게만은 적용되지 않았다.
내공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자동차의 연료통과 같은 것이다.
무학을 처음 익히면 새끼손톱만 한 단전을 가지게 된다. 그걸 반복적인 수련으로 키우고 또 키운다.
운공을 통해 그 연료통에 내력을 쌓고, 전투를 하며 소모한다. 소모된 내공을 다시 운공을 통해 보충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지면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듯이, 무인들은 내력이 떨어지면 운공을 통해 내력을 보충한다. 기름을 넣으면서 달릴 수 없듯이, 운공을 하면서는 싸울 수가 없다.
그런데 강진호는 그게 된다.
‘생각하면 할수록 말도 안 되는 능력이로군.’
강진호는 차로 비유하자면 주유소 연료 주입기를 꽂은 채 달리는 차 같은 것이다. 엔진에서 기름을 미친 듯이 소모하는 와중에도 연료통 안으로 기름이 쭉쭉 들어온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짓을 할 수 있다.
연료통의 크기야 고정되어 있고, 엔진의 출력이야 한계가 있으니 더 빨라지거나 더 강해지지는 않지만, 삼 일 밤낮을 달리고 또 달려도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러니 세 명이고, 네 명이고 타혈을 할 수 있겠지.’
사라진 내공이 실시간으로 보충되니까.
“그만한 내력의 소모를 감수하면서도 우리의 실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잘…….”
위긴스의 둔한 반응에 바토르가 눈을 찌푸렸다.
“주인이 생각하는 총회의 발전에 우리가 걸림돌이 된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실력으로는 자신의 구상을 이룰 수 없으니, 일단은 단계적으로 우리의 수준부터 높이겠다는 게지.”
바토르가 이를 드러냈다.
“그 말인즉, 우리가 주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위긴스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리 해석할 수 있었다. 전격적으로 총회를 뒤집을 것 같던 강진호가 일단 자신들부터 손댄다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 총회에서 가장 큰 문제라는 뜻과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인은 그 고생을 해가면 우리를 타혈했다. 그런데 너희는 불평이나 늘어놓고 있군. 멍청한 놈들.”
위긴스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웬만해서는 바토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위긴스이지만, 지금은 창피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다.
“주인의 관용과 은혜를 잊지 마라. 그 누구도 너희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너희도 알고 있겠지. 고수라고 해서 하수에게 베풀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력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에게 남의 것을 주지 않는다.”
“예.”
방진훈과 위긴스가 반성하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문이 천천히 열렸다.
끼이이익.
방 안에 있던 셋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린 문 뒤로 장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새하얀 백발을 리젠트로 멋들어지게 올린 장민이 아니다. 늘어진 머리가 새하얀 미역처럼 얼굴에 더덕더덕 붙은 장민이었다. 그 꼴만 보더라도 이 양반이 얼마나 처 맞았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고, 고생했다, 영감!”
“고생하셨습니다!”
장민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바토르마저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덜덜대는 고개를 억지로 들어 바토르와 시선을 마주친 장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바, 바토르.”
“영감, 괜찮은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데, 일단 침대로 가는…….”
“너 오래.”
“……응?”
장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장민의 생각은 조금 전에 바토르가 했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마존께서…… 너 다시 오란다. 낄낄낄.”
쿠웅.
장민이 바닥으로 쓰려졌다.
노인이 젊은이에게 얻어맞아서 기절을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졌지만, 그 누구도 젊은이를 탓하거나 노인을 동정하지 못했다.
‘끝난 게 아니었어?’
‘또 해? 이걸 또?’
위긴스와 방진훈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미친 이걸 하루에 두 번 한다고? 두 번?
한 번으로도 뼈가 다 아작나는 것 같았는데, 그걸 또 한다고?
둘의 시선이 바토르에게로 향했다.
도살장으로 끌려온 소들이 먼저 끌려갈 소를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안타까움과 서글픔, 그 와중에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라는 안도.
그 모든 감정을 담은 눈빛이 바토르를 간질였다.
“위긴스.”
“예, 바토르 님.”
바토르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가서 나 아프다고 말 좀 해줘라.”
“…….”
소용없는 시도를 하는 바토르였다.
* * *
인생이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이 말은 인간의 삶이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살아가며 항상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지금, 이현수는 자신이 얼마 전에 내린 선택이 얼마나 위대하고 정확한 선택이었는지를 절절히 실감하고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종교 따위 믿어본 적이 없지만,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한가. 하느님이든 부처님이든 알라신이든 일단은 감사하고 싶은 이현수였다.
그럴 수밖에.
그리 머지않은 시기에 이현수는 마공을 본격적으로 익혀보는 것과 자신이 잘 하는 업무에 집중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스스로 무력을 갖추지 못했기에 겪는 설움과 불편함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과거의 이현수였다면 당연히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당당한 무력을 갖춘 이현수라니.
이건 거의 슈퍼맨과 동의어였다. 세상에 못할 것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현수는 두 번째를 택했다.
그가 무력을 키워 완전해지느니, 행정에 전력을 집중하고 무력을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안위를 먼저 챙기던 과거의 이현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은 강진호와 총회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영남회처럼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버림받거나 숙청당할 위험은 없으니까.
그 결정이 이현수를 살렸다.
‘뒈질 뻔했네.’
만약 이현수가 마공을 본격적으로 익혀서 강진호의 수련 대상에 포함되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바토르나 위긴스쯤 되니까 저걸 버티는 거지, 이현수였다면 강진호가 날린 첫 주먹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영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혼까지 바스러졌거나.
저거 봐라, 저거.
“느려.”
쿠우우우우웅!
“끄으으윽!”
강진호의 주먹이 바토르의 목젖을 강타했다. 바토르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츠러든다.
“아프다고 숙이면 죽는 거지.”
강진호의 주먹이 바토르의 턱을 올려친다. 그 거대한 바토르의 몸이 허공으로 부웅 떠올랐다.
“예전만 못하군. 평화에 젖었나, 바토르?”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평화에 젖어요?
바토르가 총회에 투신한 이후로 과연 ‘평화’라는 말을 쓸 만한 순간이 있었는가를 고민해 본 이현수는 강진호가 가진 ‘평화’의 개념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싸우고, 치고받고, 홍왕에게 걸려서 죽을 뻔한 게 언제 일인데, 지금 평화라는 말이 나오는가.
물론 바토르도 이현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바토르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잘못 열었다가는 혀가 잘려 나갈 판이니까.
“여전히 느려.”
쿠우웅!
사람의 다리가 사람의 배를 걷어찼는데 이런 소리가 나면, 그건 뭔가 잘못된 거다.
바토르는 이 잘못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바토르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착각하는 모양인데, 힘을 강하게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무리 강해도 맞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강하다는 것은 파워가 세다는 걸 의미하지 않아. 종합적으로 봐야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바토르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공을 익히는 게 끝이 아니다. 네가 익힌 마공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해라. 너는 최고의 육체를 가졌다. 하지만 그 최고의 육체 덕분에 다른 이들이 신경 써야 할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살았지.”
강진호가 냉정한 눈으로 말을 잇는다.
“타격을 버티려 하지 마라. 피하고 흘려라. 그리고 전력을 다해 공격하려 하지 마라. 최강의 일격을 헛 치느니, 최약의 일격을 격중시켜라. 그게 우선이다.”
“며, 명심…….”
바토르가 입을 틀어막는다.
아아…… 저거, 토하겠는데.
뭐가 꿀꺽대는 소리가 들리고, 바토르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다. 강진호가 그 광경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가, 감사…….”
쿠웅!
바토르의 상체가 바닥에 처박히며 먼지가 풀풀 피어올랐다. 이현수는 그 모습을 보며 무학에 재능이 없던 자신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는 겁니까?”
재빠른 걸음으로 강진호에게 다가가 어색하게 손을 모으고 선 이현수가 만면에 미소를 담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 그래야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첫날이니 좀 가볍게 해야 하지 않겠어? 내일부터 제대로 수련을 해야 할 건데, 미리 진 빼면 안 되니까.”
……가볍게요? 이게?
그럼 내일부터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요?
묻고 싶다. 하지만 물을 수가 없다.
쭈욱 기지개를 켠 강진호가 이현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정리해.”
“……예.”
“내일부터는 더 격해질 테니까.”
그냥 차라리 죽이는 쪽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마지막까지 묻지 못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