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46
#845.
구타하다 (5)
총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동안 총회의 수련이라는 것은 주먹구구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총회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련은 총회에서 하도록 했지만, 서로 다른 무학을 익혔다.
각자가 각 사문의 무학을 익히다 보니, 유출을 경계해 제대로 된 수련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여러모로 부작용이 많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중걸이 바보라서 그런 방식을 고수해 온 것은 아니다.
소수 문파가 난립하던 한국의 무인계를 하나로 엮고, 이들에게 총회라는 통일된 관념을 주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 결과, 수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전체적인 수준의 하향을 불러오더라도 말이다.
덕분에 총회의 수련장이라는 건 중구난방이었다.
개인이 들어가는 폐관실, 소수가 들어가는 합동 훈련장, 그리고 커다란 단체 훈련장.
독서실에서 서로 자리를 선점하듯, 자신이 선호하는 수련장을 차지하기 위한 텃세와 눈치 보기가 난무했다.
“싹 다 밀어버려.”
아무래도 이 양반은 자신의 정체성을 사람이 아니라 불도저로 규정한 모양이었다. 강진호는 총회의 가장 중요한 근간 중 하나이던 수련장들을 모두 밀어버리라 지시했다.
“그래도 있는 걸 미는 건…….”
“들어가는 이와 밖에서 수련하는 이의 차이가 벌어진다면 의미가 없다. 공평할 건 공평해야지.”
“과도한 평등이네요.”
평등이란 함께 좋아지는 것이지, 혜택을 누리는 이를 끌어내리는 게 아니다. 그 혜택이 불법적인 것이 아니라면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마르크스의 화신이라도 된 양 ‘인민은 평등하다’를 주장했다.
그리고 모든 독재자의 밑에서 신음하는 실무자들이 그렇듯, 힘이 없는 이현수는 그 명을 충실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짓는 것보다는 허무는 게 쉬웠다. 인간 포클레인과 인간 불도저가 넘쳐 나는 총회다 보니 건물을 철거하는 건 너무도 간단하게 끝났다.
강진호가 손짓으로 건물을 가리키고, ‘저 건물은 해로운 건물이다’를 말하면 무인들이 개미 떼처럼 밀고 들어가 콘크리트 부스러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부수고 해체했다. 그러고는 평평하게 땅을 다져 평지를 만들었다.
“수련장 만들어.”
“공간이 부족합니다. 이 많은 인원을 수용하려면 공간이 더 있어야 합니다.”
“대충 평평한 땅 만들면 그게 수련장이지. 왜? 공간이 더 있어야 해?”
“그 평평한 땅이 부족하…….”
이현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물론 이현수가 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총회는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으로 산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천혜의 험지다.
이중걸이 굳이 이곳을 총회의 본단으로 정한 이유가 있었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산 중턱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고, 마음먹는다 해도 쉽게 드나들 수 없었다.
큰 장점이지만, 단점도 있었다.
산 중턱에 평지가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이중걸도 바보가 아니었다. 입지를 선정할 때, 훗날 확장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다만, 이중걸도 신이 아니다 보니 저 많은 마교도들이 총회에 합류할 거란 예상은 할 수 없었다.
결국 지금 총회는 수련장, 즉 평지가 극단적으로 부족했다.
“평평한 땅이 부족하다고?”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이현수가 기겁을 하여 변명할 말을 찾았다.
강진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말만은…….
“저 산이 마음에 안 드는군.”
“…….”
안 듣고 싶었는데…….
“깎아.”
“예.”
아아, 그 손끝에서 무소불위의 능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손끝을 가리키는 것만으로도 건물이 사라지고, 산이 사라진다.
손끝으로 지형을 뒤흔드는 이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현수는 그 광경을 보며 피눈물을 삼켰다.
‘과감해진 건 정말 좋은데…….’
살짝 미적이는 감이 있던 최근의 강진호에 비한다면 시원시원한 면은 좋았다. 분명 좋은데…….
‘왜 이 양반은 중간이 없지?’
왜 이리 극단적이란 말인가.
보통 사람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방향을 바꿀 때 점차적으로 단계를 높인다. 에어컨이 싸늘하게 느껴진다면, 가동을 끄거나 온도를 낮추는 게 일반적인 방식 아니던가.
그런데 강진호는 에어컨이 싸늘하게 느껴지면, 에어컨을 부숴 버리고 그 자리에 난로를 가져와서 불을 떼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랫사람들이 죽어날 수밖에.
“수용 인원 계산해서 수련장 완비해.”
삽을 검처럼 휘두르던 무인들이 질린 얼굴로 강진호를 돌아보았다.
차마 강진호에게 대놓고 말할 용기를 가진 이는 없다. 그러니 입이 되어줄 이현수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회주님.”
“왜?”
“……저 산을 깎아도 부족합니다.”
여기저기서 히이이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저 말만은 하면 안 된다. 저 말…….
“그럼 더 깎아.”
강진호가 턱짓으로 앞산과 뒷산을 가리켰다.
“저거도 깎으면 되겠네.”
“그럼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강진호가 돌아서 산을 내려가자, 이현수가 몸을 돌렸다.
“들었냐, 이 노예들아!”
“…….”
“허리를 펴지 말고 일해! 허리를! 삽질 백 번 하고 나면 허리 한 번 펴란 말이다! 마존께서 저 산을 없애라신다!”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새삼 역사의 교훈을 돌이켰다.
독재자보다 그 옆에 붙어서 전횡을 저지르던 놈들이 더 악질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약해!”
날아간다.
사람이.
하지만 지나가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어? 커피, 그거 어디서 났냐?”
“몰랐어? 이번에 중앙 건물에 카페 들어왔잖아.”
“헐, 진짜? 나는 왜 몰랐지?”
“갈 일이 잘 없으니까.”
쿠웅!
사람이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딱히 돌아보는 사람도,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다.
이제는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 들어와도 되나?”
“회주님이 들이라고 했대.”
“……진짜? 정보 유출 때문에 안 되는 거 아냐?”
“은퇴한 양반 중에 밖에서 카페 하는 사람들이 좀 있잖아. 그중에 하나를 불러들인 모양이지.”
“와, 세상 좋아졌다. 총회 안에 카페도 다 생기고.”
아련하게 들려온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주십시오! 아아악!”
쿠웅! 쿠우웅! 쿠웅!
“이번에 식당도 대대적으로 뒤집는다고 하던데?”
“역시나 회주님이시네! 회주님이 메뉴 바꾸라고 한 거지?”
“아니.”
“응? 그럼?”
“감사했는데, 부식비 빼돌리다 걸렸대. 경리부장님이 마녀 같은 얼굴로 식당 테이블을 주방으로 집어 던지는 걸 몇몇이 봤다고 하더라고.”
“……미쳤네.”
“그렇지. 그 누님이 경리부 맡을 줄 알았으면 안 그랬겠지. 그 이후로는 안 그런 모양인데, 옛날에 빼돌린 게 걸렸대.”
“박살 났겠네.”
“간도 크…… 아, 시끄러.”
모두가 총회가 변해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것이 체계적으로 바뀌어간다.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변해갔다.
“잘됐다. 식당 밥 더럽게 맛없었는데.”
“사실 그건 밥이 아니지. 오죽하면 간부들은 매번 산 밑에 내려가서 밥 먹고 왔잖아.”
“그래서 뒤집힌 거 아닐까?”
“응?”
“이제는 간부들도 산 밑으로 갈 시간이 없잖아. 회주님이 눈 시뻘겋게 뜨고 보는데.”
“……아, 그럴 수도 있겠다.”
남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야 참아줄 수 있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은 참아줄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마는, 여하튼 뭐가 많이 바뀌기는 한다.”
“응. 그…….”
쿠우우웅!
그들의 앞으로 누군가가 떨어져 내렸다.
“……렇네.”
아무렇지도 않게 쓰러진 이를 타 넘고 지나간다.
그리고 쓰러진 이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맹렬한 기세로 자신이 날아온 곳으로 도로 달려갔다.
“고생하네.”
동정심이 인다.
‘우린 약해서 다행이다.’
지금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고 있는 이들은 마교의 장로들이었다. 이들은 어중간하게 강한 덕분에 강진호의 심기를 거슬렸다.
“마존이시여! 지금! 지금 가겠습니다!”
충성심이 넘치는 장로들은 처 맞아 날아가도 결코 엄살을 부리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광속으로 되돌아간다.
“약해!”
강진호의 목소리가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드, 드디어…….”
방진훈이 손을 파르르 떨었다.
그의 손이 모니터를 움켜잡았다.
“됐다!”
지루한 싸움이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그 싸움에서 방진훈은 마침내 승리했다.
“완성했다!”
모니터에 빼곡하게 글이 써져 있었다.
그만큼이나 고뇌하고 또 고뇌한 끝에, 연구하고 또 연구한 끝에 마침내 그가 원하던 총회의 기본공을 완성한 것이다.
아직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류를 바로잡고 수정하는 과정만 거치면 총회의 이름을 건 최초의 무학이 나올 것이다.
방진훈의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이걸!’
감격스럽다.
어쩌면 불가능했을 도전이다. 방진훈 역시 성공 확률을 그리 높이 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불가능할 것만 같던 도전에 성공하고 만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진훈의 눈가에 뿌연 습막이 차올랐다.
‘해냈다.’
기본공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기쁜 게 아니었다. 그가 기본공을 완성함으로써 총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기쁜 것이다.
지금은 강진호와 이현수, 그리고 바토르와 위긴스들이 총회를 이끌어가고 있지만, 그중 총회에 대한 애정이 가장 깊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방진훈 자신이었다.
최근 자신이 총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총회의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뤄냈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완성한 모양이군.”
“아, 회주님!”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축하하지.”
“아닙니다. 이건 회주님이 만드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회주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 점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강진호가 아니었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컨셉과 개념만 가지고 있던 무학을 구체화시켜 준 이가 바로 강진호다.
강진호가 관여한 것은 1할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무학은 그 1할이 없었다면 영원히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좀 볼까?”
강진호가 컴퓨터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방진훈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비급이면 모양새가 좀 더 났을 텐데.”
“고리타분한 말이지.”
시대가 바뀌다 보니 비급도 워드로 쓰는 세상이 와버렸다. 강진호가 피식 웃으면서 마우스를 잡았다.
한동안 비급을 들여다보던 강진호가 손짓으로 방진훈을 불렀다.
“예. 생각보다…….”
“여기.”
“네?”
“그리고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주르륵, 드래그한 부분이 뭉텅뭉텅 삭제된다.
“끄윽.”
한 부분, 한 부분이 지워질 때마다 방진훈의 심장이 한 움큼씩 뜯겨 나가는 것 같았다.
“이상하군. 분명 제대로 전달한 것 같은데, 구현이 잘못됐어.”
“…….”
“다시 써.”
“…….”
강진호가 워드를 저장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으로 향했다.
“금방 될 거야. 한 번 해봤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지.”
턱.
문을 닫고 나온 강진호가 빠르게 걸었다. 오늘 할 일이 많다. 순식간에 건물을 빠져나온 강진호의 귀에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뭔가 와장창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씨가 좋군.’
강진호가 귀를 후비며 경쾌하게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