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
#84.
훈련하다 (3)
최 상사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는 별개로 강진호는 꽤나 고초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생활관으로 복귀한 강진호에게 떨어진 명령은 그저 대기였다.
“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생활관에 혼자 남겨져 있던 것 같은데,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찾지 않는 시간이 흘렀지만, 강진호는 침상에 걸터앉은 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왜 이곳에서 이렇게 특별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강진호이다 보니 지루함은 배가되었다.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나와. 호출이다.”
“예.”
대기를 하고 있던 강진호가 조교의 호출에 행정실로 향했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행정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다짜고짜 1소대장이 욕을 퍼부었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제정신이야?”
강진호는 굳이 대답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기도 하고, 대답을 바라고 한 말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진호의 관심을 끈 것은 1소대장이 아니라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조교였다.
그런데 그 조교의 얼굴이 낯이 익다.
아마도 조금 전 사로에서 그와 함께 있던 조교인 것 같았다.
“듣고 있어?”
“예.”
강진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지만,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조교는 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너, 이 새끼야. 까딱 실수했으면 너도 죽었어. 알아?”
“예.”
“누가 훈련병이 나대래. 그러다 니가 대신 죽으면 집에 계신 네 부모님들이 ‘아이고, 우리 아들이 장한 일 했다’고 좋아하실 것 같아? 그게 부모 가슴에 못 박는 짓이야, 인마!”
“죄송합니다.”
강진호는 고개를 숙였다.
완전히 납득이 가는 건 아니지만, 1소대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죽을 일이야 없었겠지만, 다치기만 해도 부모님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뭔 대단한 성자 납셨다고 니 목숨을 걸고 있어. 남이야 죽든 말든 제 목숨부터 챙겨야지.”
1소대장은 연신 혀를 찼다.
군인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속에 걱정이 묻어나는 것을 느꼈기에 강진호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일어나, 새끼야.”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던 조교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꽤나 오랫동안 머리를 박고 있었는지 피가 몰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뭘 잘못했어?”
“훈련병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니가 그래도 명색이 조교면 사고가 났을 때, 니 훈련병부터 간수해야 할 것 아냐. 너만 살면 끝이야, 새끼야?”
“죄송합니다.”
“다행히 사고가 안 났기에 망정이지, 애가 죽었으면 너는 영창으로 안 끝났어, 이 새끼야. 하늘이 도운 거야.”
“예.”
조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1소대장은 영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혀를 차더니,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마, 너는 니가 엄청 영웅적으로 행동한 것 같지?”
“……아닙니다.”
“군대에서는 새끼야, 몸 건강하게 전역하는 게 영웅이야. 전쟁 나가서 100명 쏴 죽인 놈보다 전쟁 없이 얌전히 전역하는 게 영웅이라고.”
“예.”
“자대에서도 똑같은 짓 하다가는 니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 죽어서 영웅 될 생각하지 말고 일단 살아야지, 새끼야!”
“예.”
1소대장은 담담한 강진호의 반응이 영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고는 손짓했다.
“있다가 상부에서 조사 나올 테니까 그때 가서 아는 대로 진술하고, 그전에는 일단 쉬고 있어. 그리고 너.”
“예.”
조교가 1소대장의 지적에 즉시 몸을 일으켰다.
“이 새끼 혹시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의무실 데려가 봐.”
“……의무실 말입니까?”
“알아, 새끼야. 그 돌팔이 새끼가 뭐 본다고 알겠냐? 그래도 형식적으로라도 하긴 해야 할 것 아냐.”
“예, 알겠습니다.”
조교가 강진호의 팔을 끌고 나가려 하자 1소대장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잠깐만.”
“예?”
“야,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고맙다. 네 덕분에 애도 살았고, 내가 아끼는 형도 살았다.”
강진호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1소대장의 말에 대답했다.
“그래, 가봐.”
문이 열리고 강진호와 조교가 밖으로 나가자 1소대장은 서랍을 열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식겁했네, 진짜.”
사고가 났다는 것부터가 문제긴 하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인명 피해 없이 처리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군대라는 곳이 언제나 그렇듯 사고가 났다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들볶이고 진급 점수가 깎이겠지만,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은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사상자가 없고 애들도 뒤쪽에 있느라 제대로 본 사람이 없으니, 적당히 말을 맞추면 사고를 잘 처리했다고 되레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
실질적으로 그들이 한 건 없지만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옆 사로에서 지켜보고 있던 훈련병이 몸을 날려 순간적으로 수류탄을 밖으로 던져내서 살았습니다.’
사건에 대한 정확한 워딩을 생각한 1소대장이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믿겠어.’
믿어주기만 한다면 조간 신문 1면에 날 일이지만, 믿어줄 리도 없었다. 그리고 사상자가 없는 이상 윗선은 이 사고 자체를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고 덮으려고 할 것이다.
훈훈한 미담으로 포장하면 좋겠지만, 요즘 군부대 관련 사고가 워낙에 많고 방산 비리 쪽도 워낙 문제가 많아서 조금이라도 꼬투리를 잡힐 만한 부분은 노출시키지 않고 있으니까.
그럴 바에야 강진호는 이 사건에 연관시키지 않는 쪽이 좋았다. 괜히 일만 더 복잡해질 것이다.
‘합리화하지 말고.’
1소대장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상황에서 교관이나 조교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일개 훈련병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고 보고할 자신이 없었다.
훈련병이 아니라 조교 정도만 됐어도 훌륭하게 교육을 시켰다고 말해보겠건만, 훈련병이 교관들보다 잘 대처했다는 것을 어찌 그의 입으로 말한다는 말인가.
“휴…….”
1소대장은 자기혐오로 복잡해진 심정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깊게 담배를 피웠다.
이것만 피우고 대대장을 보러 가야 할 것 같다.
“너, 진짜 대단하더라.”
“아닙니다.”
“난 정말 얼어서 아무것도 못했거든. 미안하다.”
“왜 미안하십니까?”
“그때 내가 너를 보호하는 게 맞는 건데, 내가 얼이 빠져서 나 혼자 도망간 거나 마찬가지야.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
“아닙니다.”
강진호는 적당히 고개를 저었다.
왜 다들 이렇게 난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조금 위험해 보여서 도움을 준 것 뿐인데, 이게 그리 대단한 일이던가?
중원에 있을 때는 날아오는 강기의 비들을 온몸으로 막아서던 강진호였다.
그때의 위험에 비한다면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은 너무도 여유롭게 처리가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나 폭발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기로 수류탄 주변을 두르기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터졌다면 위험했겠지.’
반성해야 하는 일이다.
예전의 강진호였다면 그런 수류탄쯤 박스째로 터진다고 하더라도 위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의 강진호는 아직 예전의 위용을 되찾지 못했다.
중원에서 수십 년을 고련해서 올랐던 경지를 다시 밟는다 하여도 불과 삼 년 만에 되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한들 수련에 매진했다면 달라질 것은 많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류탄 따위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경지까지는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회로 삼아야겠어.’
그가 아닌 다른 무인의 존재가 발견된 이상 이대로 흘러가듯 몸을 단련시킬 수는 없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예전의 무위를 되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군대는 좋은 수련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저녁.
간단한 신체검사를 마친 강진호는 생활관으로 복귀해 더러워진 군화를 닦고 있었다.
매일 검은 군화를 신고 진흙 밭을 뛰어다니는데 군화를 청결하게 유지하라고 하는 건 난센스였지만, 군대는 까라면 까는 곳이다.
그리고 강진호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슥슥슥.
솔로 흙먼지를 털어내고 구두약을 묻혀 전투화를 닦던 강진호에게 한 손에 전투화를 든 훈련생들이 우르르 다가와 주변에 하나둘 주저앉아 닦기 시작했다.
“야, 강진호.”
“어.”
“너, 오늘 니가 수류탄 던진 거 맞지? 옆에 떨어졌던 거.”
“어.”
“와, 너 진짜 또라이구나. 그걸 어떻게 하냐?”
“또라이는, 이 새끼야! 대단한 거지.”
“나는 못하겠다. 진짜 얘 장난 아니네. 그냥 몸이 S급인 줄 알았는데, 몸만 그런 게 아니었어. 어떻게 수류탄을 향해서 돌진할 수가 있냐. 대단하다, 진짜.”
엄두가 안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또라인가 봐.’
미친 짓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강진호라는 놈이 대단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먼저 들어간다.”
전투화를 다 닦은 강진호는 별말도 없이 생활관 안으로 향했다.
“저 새끼는 간도 안 떨리나?”
“하는 거 봐라. 뭐든 담담하자나. 대단하다, 저거.”
“깝치지 말아야지.”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강진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튀지 말라는 건 이제 글렀군.’
적어도 훈련소에서는 더 이상 튀지 않을 수 없었다.
점호를 마치고 이불을 덮고 누운 강진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에게 있어서 잠이란 하루 세 시간만 자면 충분한 것이지만, 남들이 모두 잠을 자는데 딱히 할 것이 있을 리 없었다. 잘 때는 같이 자주는 것이 낫다.
그때, 옆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강진호.”
강진호가 다시 눈을 떴다.
99번 훈련병, 그러니까 주영기가 그를 보고 있었다.
“왜?”
“……야.”
“말해.”
주영기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강진호는 주저하는 주영기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몇 번이고 말을 하려 입을 달싹거리던 주영기가 마침내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고마웠다.”
“…….”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주영기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건넨 주영기는 몸을 반대로 돌리고는 모포를 끌어 올렸다.
강진호는 그런 그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낮게 웃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강진호는 정상적이지 않은 놈들에게 재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저 창피해하는 꼴이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박유민도 그렇고.
‘유민이는 잘 있을까?’
새삼 박유민이 생각난다.
이제는 제 삶을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유민이지만, 그가 없는 사이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잘 알아서 하겠지.’
속은 단단한 아이다.
그리고 강진호를 만난 이후로 더 많은 것을 겪었으니, 이제는 충분히 제 혼자 살 수 있을 것이다.
강진호는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길고 긴 훈련소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또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