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0
#849.
위협하다 (4)
우득, 우드득.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것 같은 깔끔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부수는 소리는 때로 사람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아니, ‘부순다’라는 행위 자체가 때로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최근에는 스트레스방이니 뭐니 해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물건을 때려 부수게 하는 신종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최근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이명환에게도 꼭 필요한 서비스일지 몰랐다.
하지만 이명환은 그 소리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쌓이고 있었다.
왜냐면 이 소리는 바로 그의 몸에서 나는 소리기 때문이다.
“끄으으윽!”
우드득, 우득.
이명환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의 눈에 거대한 벽이 보인다. 아니, 이건 벽이 아니다. 단지 시야의 모든 부분을 평평한 무언가가 점거해서 벽처럼 느껴질 뿐이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토르라 불리는 인간이었다.
‘……인간은 맞나?’
이건 조금 의심을 해봐야 한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가 달렸다 해서 사람으로 친다면, 슈퍼맨도 사람이겠지. 아무리 봐도 이 양반은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인간을 인간으로 취급할 수 있는 규격을 아득하게 벗어났다.
단순히 몸만 말하는 게 아니다.
지금도 보라.
바토르의 솥뚜껑 같은 손이 이명환을 내리누르고 있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쓰레기들을 꾹꾹 누르는 것 같은 그 간단한 동작 하나만으로 사람을 이리 괴롭게 만들고 있다.
위기감이 극심하다.
이 힘을 버텨내지 못한다면?
이명환은 말 그대로 뒤로 접혀 버릴 것이다. 무인이 아무리 회복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허리가 뒤로 접히고 나면 회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작 난 척추를 한 톨, 한 톨 모아 붙인다고 해도 이미 나가 버린 신경을 수복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버텨야 한다. 버텨야 하는데…….
“끄으으으아아아아악!”
“소리만 지르지 말고 힘을 주라고, 힘을.”
바토르가 눈을 찌푸렸다.
“요즘 애들은 왜 이리 매가리가 없지?”
위기감과 함께 억울함이 솟구쳐 오른다.
이명환이 누구인가.
현재 총회에서 젊은 무인들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명환이다. 총회 최강의 무력 집단이 된 마염에서도 대장 자리를 맡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명환 아닌가.
물론 얼마 전까지 그의 실력은 마염에서도 중간을 겨우 기웃거릴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꾸준한 수련과 여러 경험 덕분에 이명환은 지금 스스로 마염의 상위권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마염의 상위권이라는 말은 총회의 최상위권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뭐?
매가리?
억울해도 이리 억울할 수가 있나!
“딴생각하지!”
꾸우우욱!
“꺼흑!”
아, 안 되는데.
이명환의 몸이 새우처럼 뒤로 젖혀진다.
허리 쪽에서 뿌득거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아직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허린데!
“으으으아아아악!”
“소리만 지르지 말고 힘을 쓰라니까.”
화가 치민다.
분노가 일었다.
저 태연한 목소리를 뭉개고 싶다.
머리에 피가 몰리면서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와 동시에 배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순식간에 전신으로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악!”
“호오?”
자신의 손을 밀어내는 이명환의 힘을 느끼며 바토르가 씨익 웃었다.
‘과연 효과가 있군.’
강진호가 바토르에게 명한 것은 아주 간단했다. 이들은 극한까지 밀어붙이라는 것. 사람은 극한까지 몰리면 자신의 능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아이가 차에 깔리면, 어머니는 차를 들어 올린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몸이 다치지 않을 정도의 힘만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존이 걸리거나 정말 다급한 일에 처하게 되면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을 낼 수 있다.
무학도 마찬가지다.
마공이든 정공이든 결국 모든 무학은 사용자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사용자의 몸이 위험하다 싶으면 평소 이상의 출력을 내기 마련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기운은 자연히 부풀어 오르고, 숙련된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지.’
알고 있다고 해서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이런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몸이 완전히 망가지거나 죽을지도 모르는 위기를 수도 없이 겪고 버텨내야 한다는 것.
그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 것도 어렵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수련자의 정신이 온전할 리가 없다.
지금도 보라.
“으아아아아아아아! 이 개새끼야아아아아아아!”
‘미쳤네.’
하기야 미칠 만도 하지.
바토르가 혀를 차며 손에 살짝 더 힘을 주었다.
“끄르르륵!”
힘을 이기지 못한 이명환이 무너진다.
바토르는 이명환의 몸이 상하지 않을 정도까지 내리누르고는 손을 뗐다.
털썩.
이명환이 바닥에 쓰러져 경련한다.
“흐음.”
바토르가 이명환을 보며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보면 볼수록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라니까.’
오늘은 조금 과한 면이 있었다.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명환이 워낙 잘 버티다 보니 생각보다 살짝 오버해 버렸다.
사람이라는 게 버티는 이가 있으면 어디까지 버티는지 시험해 보고 싶지 않은가.
‘근성도 근성이지만…….’
바토르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바닥이 살짝 뻐근하다.
이명환의 그의 손을 밀어 올릴 때, 함께 뿜어져 나온 마기가 그의 손에도 꽤나 이질감을 주고 있다. 둔중한 통증이라고 해야 할까?
‘실력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군.’
그가 이들을 수련시킨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실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었다. 강진호가 그에게 지시한 수련법이 꽤나 훌륭한 면도 있겠지만, 이 과격한 수련을 버티는 이들도 보통은 넘었다.
‘확실히 재미있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특히나 배우는 이들의 실력이 쭉쭉 늘어날 때는 가르치는 사람도 흥이 나기 마련이었다.
“자, 그럼…….”
바토르가 이명환을 옆으로 툭 차서 밀어버리고는 씨익 웃었다.
“다음은 누구?”
“…….”
아무래도 배우는 이들은 바토르만큼 즐겁지 않은 모양이었다.
* * *
“마나라는 건 결국 기와 다를 게 없다.”
위긴스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결국 언어라는 건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물이라는 대상을 한국에서는 물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Water이라 하고, 중화권에서는 水라고 하지. 하지만 그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다만 그 사용의 방법이 다를 뿐이지.”
책상에 앉아 있던 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럼 마나와 기를 완전히 같다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다르잖습니까?”
“좋은 질문이다.”
위긴스가 안경을 살짝 밀어 올렸다.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꽤나 기꺼웠다.
“너희가 모으던 정공의 기운과 마공의 기운은 같은가?”
“다릅니다.”
“거기서 출발하지. 왜 다를까? 둘 다 같은 외기에서 출발한 것인데 어째서 차이를 보일까? 간단하다. 모으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고, 축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이 다르게 다뤄지면 그 성질도 변화하게 된다.”
“아…….”
“간단한 문제이지.”
위긴스가 설명을 이어갔다.
“같은 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너희들은 기운을 다뤄왔다. 그래서 얻는 이점도 있지. 다른 이들은 기운을 느끼는 데만도 한세월이 걸리지만, 너희는 기운이 뭔지, 마나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예.”
“게다가 기운을 다루는 능력 역시 배울 필요가 없지. 스타트가 늦은 건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이 시작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능숙해지겠지.”
강의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학생들에게서 고양감이 느껴진다.
‘좋군.’
열정이 넘쳐 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위긴스도 몇 번 제자를 두거나, 이처럼 많은 이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지만, 이들만큼 열정적인 학생을 보지는 못했다.
그들은 마법을 배우는 데 간절함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열정을 가지고 무학을 익히려 했지만, 그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이들이다. 하지만 강해지겠다는 일념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온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강해질 방법을 제공하겠다는데, 누가 기꺼워하지 않겠는가.
“기본적으로 마법의 전수는 도제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너희들 하나하나를 모두 그런 식으로 가르칠 수는 없지. 나 역시 처음 해보는 방식이니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노력하고, 너희도 노력한다면, 누구나 원하는 결과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약속하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위긴스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감안한다면, 저 말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위긴스가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딱히 능력적으로는 별게 없지만, 그래도 너희보다 먼저 배우기 시작한 이이니, 혹여 내게 묻기 힘든 상황이라면 이 녀석에게 묻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강의실 앞쪽에 뻘쭘하게 서 있던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자 이현수가 빙그레 웃으면서 ‘한국어’로 말했다.
“찾아오는 새끼 다 죽인다.”
“…….”
무척이나 상냥한 어조였다. 마음씨 좋은 선배가 얼어 있는 후배들을 다독이는 것 같은 말투와 몸짓을 보인 이현수가 더없이 따뜻한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내가 한가해 보이냐? 애초에 공부라는 건 혼자 하는 거다. 모르는 것 있으면 사전 찾아봐, 새끼들아. 괜히 와서 귀찮게 하면 다 죽여 버린다. 진짜.”
“……예.”
위긴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위기가 미묘하다.
“뭐라고 한 거냐?”
이현수가 웃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래?”
“예!”
당당하게 대답하는 이현수를 보며 위긴스가 미간을 좁혔다.
살짝 찝찝한 얼굴로 몇 번이나 바라봤지만, 이현수는 더없이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수업에서는 영어로 말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흐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
위긴스가 입맛을 다시고는 고개를 돌렸다.
“여하튼 이제부터 너희는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가르치는 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배우는 이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다들 알고 있겠지?”
“예!”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눈을 본 위긴스가 허허 웃었다.
‘이거, 교수라도 된 기분인걸?’
생각보다 이 일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위긴스가 앞으로 살짝 나섰다.
“그럼 우선 마나를 드레인하는 법부터 익혀볼까. 숙련된 조교 앞으로.”
“……앞으로.”
위긴스의 모르모트가 된 이현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데다 써먹냐고!’
불만은 팽배했지만, 감히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강진호가 맛이 가버린 이후로 총회는 조금 더 폭력적으로 변해 버렸으니까. 특히나 위긴스는 매가 가지는 힘을 제대로 깨달은 모양이다.
심심하면 지팡이를 휘둘러 댄다.
“자, 이제 시작합시다. 내 장담하는데, 여러분 중 누군가는 훗날 반드시 총회를 이끌어갈 사람이 될 겁니다.”
위긴스의 블러핑에 모두의 눈이 빛났다.
‘사기꾼이 적성에 맞으실 것 같은데…….’
이현수 하나만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