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1
#850.
위협하다 (5)
천태훈은 묘한 얼굴로 방진훈이 내민 A4 용지 더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이게…….”
“그래!”
방진훈의 얼굴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열기가. 그래, 저건 열기다.
그런데 저 열기가 좀…….
‘빡치신 것 같은데?’
뭔가 고뇌와 노력 끝에 새로운 신공을 창안해 낸 사람의 얼굴 같지가 않다.
저 얼굴은 뭐랄까, 그래…….
대학 조별 과제를 맡은 조장 같았다.
일을 분배하고 다 함께 잘해보자고 의기를 다졌지만, 막상 발표 전날 몇몇은 연락이 끊기고, 몇몇에게는 유치원생도 가져오지 않을 지옥 같은 자료를 넘겨받은 조장 말이다.
날밤을 새서 그 모든 악재를 이겨내고 마침내 과제를 완수해 발표를 하러 단상으로 향하는 조장의 모습 같았다.
뿌듯함과 깊은 빡침이 혼재해 있는 그 모습을 본 천태훈이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뭐가 잘 안 되셨습니까?”
“잘됐지.”
“예?”
“너무 잘돼서 문제지, 너무.”
뿌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어~무우우우 잘돼서 문제지! 빌어먹을! 너무!”
“…….”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다.
“태훈아.”
“예.”
“사람이란 건 말이다, 유두리가 있어야 한다.”
“……예?”
“내가 무공을 한 대여섯 번 만들어본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처음부터 완벽한 걸 만들겠냐, 이 말이야!”
천태훈은 가만히 입을 닫았다.
윗사람이 더 윗사람을 욕할 때, 대처법은 두 가지가 있다. 영혼을 담아 맞장구를 치면서 완벽한 커넥션을 만들든가, 그게 아니면…….
‘후환이 두려우니 조용하자.’
바토르나 위긴스만 됐어도 어떻게 참여해 볼 것이다. 아무래도 천태훈은 방진훈의 직전제자가 아닌가. 스승이 욕을 하는데 깨춤이라도 추면서 맞장구를 쳐야지.
하지만 강진호를 욕하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결과물이 좋으면 좋은 게 아닙니까?”
“……야.”
“네?”
방진훈이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뒤통수를 쭉 훑어 올렸다.
“헐…….”
천태훈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방진훈의 뒤통수에 선명한 흰색이 보인다. 오백 원 동전만 한 원형 탈모가 하나도 아니라 둘이나 생겨 있었다.
“보이냐고.”
“아니, 사부님. 어쩌다가…….”
“스트레스성 탈모란다.”
손을 내린 방진훈이 머리를 감쌌다.
“세상에, 무인이 원형 탈모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천태훈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히 무인이 원형 탈모에 걸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극심했으면 이런 사단이 났다는 말인가.
“결과물 좋게 만들려다가 내가 아작나겠다, 내가!”
“고정하시지요.”
방진훈을 위로하기 위해 천태훈이 말을 짜냈다.
“원형 탈모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어차피 조금 있으면 나을 텐데. 사실 그보다는 정수리가 많이 비셨는데…….”
“뭐,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방진훈의 눈이 불을 뿜었다. 천태훈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탈모를 지적당한 탈모인만큼이나 두려운 존재도 없다. 역린이 찔린 용이 세상을 파괴하듯이, 탈모를 지적당한 탈모인은 광포화에 걸리니까.
“주둥아리 조심해라.”
“예.”
“쯧.”
방진훈이 턱짓으로 천태훈이 들고 있는 A4 용지 더미를 가리켰다.
“그래서 어떠냐?”
“아니, 어떠냐의 문제가 아니라…….”
천태훈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격식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이거 명색이 비급인데 뭔 이면지에 낙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뽑으시면…….”
“그럼 뭐? 출판사에 의뢰해서 출판이라도 할까? 총회 기본 무학 원론이라고?”
“최소한 제본이라도 좀…….”
“프로토타입이니까 그런 거 아냐, 인마!”
천태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방진훈은 예전부터 대책이 없는 면이 있었다. 그런 똘기가 있으니 회를 장악하고 있던 이중걸에 맞서 싸울 수가 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 똘기가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고.’
어울리는 사람이 달라지더니, 성격도 변한 모양이다.
“잘 모르겠습니다.”
“꼼꼼히 봐봐.”
“……아니, 제가 눈으로 비급을 보고 분석할 수 있는 실력이 있으면 왜 이렇게 살겠습니까?”
“분석하라는 게 아니라, 니가 익히기에 어려움이 없어 보이냐, 이거야.”
“아!”
천태훈이 이해했다는 듯 다시 비급을 들여다보려 할 때, 방진훈이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붙였다.
“그런 건 회주님이 벌써 검증했어. 미쳤다고 너한테 그런 걸 맞기겠냐?”
“…….”
고개를 살짝 든 천태훈이 미묘한 시선으로 방진훈을 노려보았다.
“눈 깔아.”
“예!”
눈이 내려간다.
궁시렁대며 비급…… 아니, 비급이라 불리는 A4 용지 더미를 살펴본 천태훈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살짝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기는 한데, 이건 가르침을 받으면 될 것 같고…… 완전히 난해하지는 않습니다.”
“독학은 어렵겠지만, 배우는 건 가능하다?”
“예. 그 정도인 것 같습니다.”
방진훈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천태훈이 말한 평가가 그가 가장 원한 평가였다.
천태훈은 기재다.
요즘 들어 다른 놈들이 치고 올라와서 묻힌 감이 있지만, 원래대로라면 천태훈은 이성휘와 함께 차기 회주를 두고 싸울 인재였다.
그런 이의 눈에 난해한 면이 있다는 것은 비급이 유출되었을 때, 웬만한 이는 혼자 익힐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익힐 수는 있지만, 총회를 떠나서는 익힐 수 없는 정도.
그게 방진훈이 원한 난이도였다.
이걸로 최종 점검이 끝났다.
“드디어…….”
방진훈이 소파에 늘어졌다.
마지막 시험까지 통과한 느낌이다. 이제는 이 비급을 제본하여 나눠 주면 된다.
“그런데 사부님.”
“왜?”
“이게 꼭 필요한 겁니까?”
“……뭐?”
“아니, 뭐, 굳이. 지금 배우는 무학도 있는데…….”
방진훈이 살짝 치켜올라 간 눈으로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귀찮아서? 힘들까 봐?
그런 게 아니다.
‘이 새끼.’
방진훈이 입술을 꽉 깨문다.
“야, 천태훈이.”
“……예.”
“어깨 안 펴?”
“…….”
방진훈의 노한 목소리에 천태훈이 어깨를 폈다. 어느새 움츠러들었던 모양이다.
“이 새끼가 어디 사내새끼가 기가 죽어서 그러고 있어?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냐?”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천태훈을 보며 방진훈이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지.’
총회는 발전하고 있다. 그것도 급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지금 방진훈은 그 부작용과 직면하고 있었다.
마염들이 강진호에게 마공을 배운다. 그리고 바토르는 마염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외공을 전문으로 익힐 이들을 뽑아 가르치고 있었다.
위긴스는 마법과 서양 검술을 가르칠 이들을 뽑았고, 마교도들에게도 이제 마공이 전수될 것이다.
그리고 그밖의 이들은 남겨졌다.
특성에 따라 사람을 뽑은 것뿐이다. 하지만 남겨진 이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시험에서 떨어진 떨거지가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새끼야, 니들이 뭔 패배자야?”
“……아닙니다.”
“걱정할 것 없어.”
“예?”
“적당히 익혀서 적당히 세질 수 있는 무공이면 하룻밤에도 만들어. 내가 그 지옥 같은 시간을 이겨내면서 난리를 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회주님까지 괴롭혀 가면서 말이야.”
천태훈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비급을 바라보았다.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 비급이다. 이걸 익힌다고 뭐가 그리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방진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내 말 못 믿지?”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사부님. 제가 어찌 감히.”
“마음에도 없는 말 하지 마, 새끼야. 그럴 줄 알고 벌써 검증 끝냈어.”
“예?”
방진훈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제대로 익힐 경우에는 마공을 익힌 놈들도 찜 쪄 먹을 수 있는 무학이란다.”
“……누가?”
“누구긴 누구야, 잘난 회주님이시지.”
강진호가?
천태훈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정말입니까?”
“하, 이 새끼 진짜.”
방진훈의 반응을 보니 사실 같았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면 그가 아는 강진호는 공치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무학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라고 사람을 괴롭히면 괴롭혔지, 눈에 차지 않는 무학에 고평가를 내려줄 사람이 아니었다.
‘이게?’
그리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데…….
“정공은 원래 그런 거야. 잊었냐?”
천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공.
정공은 원래 그렇다.
정공은 토대를 쌓는 무학이다. 쌓고 또 쌓아서 탄탄하게 만들어낸 토대가 완벽히 이루어졌을 때, 드높은 탑을 세워 올리는 것이 정공이다.
효율보다는 꾸준함, 그리고 노력.
“시간이 엄청 걸릴 텐데요.”
“그것도 어찌어찌 해뒀다고 하시더라. 나야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이게 내가 만든 무학이기는 한데, 정말 핵심이 되는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은 그 양반이 만든 거라.”
“그렇다면 믿을 수…….”
“이 새끼가?”
“……죄송합니다.”
천태훈이 비급을 꽉 움켜쥐었다.
살짝 격동하고 있는 천태훈을 보며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좋아 죽네, 좋아 죽어.’
뭐, 아무래도 좋다.
이 무학이 그가 만든 것이든 강진호가 만든 것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무학으로 인해 총회의 젊은 무인들,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 무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부분의 변화로는 한계가 있다. 정말로 총회를 강화시키고 싶다면, 저들을 끌어 올려야 한다.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아직은 시간이 좀 걸려.”
“시간 걸릴 게 있습니까?”
“야, 인마! 이걸 나 혼자 애들한테 다 어떻게 가르쳐? 적어도 열 명은 있어야 돼. 열 명 정도 교관 될 장로들 섭외하고, 그 양반들한테 전수한 다음에 애들한테 전수해야 할 거 아냐.”
“왜 못 가르칩니까!”
“어디 모여? 그리고 내 목청이 아무리 커도 그렇지, 얘들이 다 듣게는 못해.”
“그럼 별문제 아닙니다. 내일부터 시작하시죠.”
“……내 말 못 알아들었냐?”
“아뇨. 다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응?”
천태훈이 씨익 웃었다.
“한 명, 한 명 제대로 보고 들을 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야 남는 시간에 빨리 배운 장로님들이 교정해 주면 되는거구요.”
“그렇지?”
“그럼 간단하죠!”
싱글벙글 웃는 천태훈을 보며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부터 이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한다는 거야? 마이크라도 잡을까?”
“사부님.”
천태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사부님도 이제 세상에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응?”
“혹시 인터넷 강의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어?”
천태훈이 씨익 웃었다.
“그거면 다 해결됩니다. 바로 앞에서 숨 쉬듯 강의를 할 수 있고, 시범도 다 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처음 익히는 애들도 아니니, 다 따라올 겁니다.”
“…….”
“무림 최초의 동영상 강의.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업체 하나 만드시죠. 기가 무림 스터디 어떻습니까?”
“……아까부터 대체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그렇게 BJ 방진훈의 데뷔가 결정 났다.
개혁과 혁신은 언제나 옛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