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4
#853.
계획하다 (3)
[매출을 올려주니 좋기는 한데…… 이거, 주문이 너무 큰 거 아닙니까?]“필요하다니 뭘 어쩌겠어?”
[재고가 모자랍니다. 생산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일주일 내로 입고 맞추면 됩니까?]“조규민이.”
[네?]“일주일 뒤에 받을 거면 너한테 말도 안 해.”
이현수가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한테 주문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우정?]“우정 좋아하시네.”
이현수의 짜증이 고조되었다.
“대충 주문해서 받을 거면 너 말고도 해줄 사람 천지야. 당장 아무 대리점에만 가서 주문하면 나올 때 길을 혓바닥으로 청소해 줄 거다.”
[에이, 그건 좀…….]“하루라도 빨리 받아보겠다고 너한테 이야기하는 건데 일주일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물량이 없다니까요. 재고가 그만큼 항시 유지되면 그게 회사 망한 거지.]
“그럼 만들어, 새꺄!”
[공장 돌리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형님.]“야, 됐어. 너한테 안 시켜. 내가 알아서…….”
[에헤이, 우리 형님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하실까. 그게 참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제가 누굽니까! 조규민 아닙니까. 제가 못하는 일이 있겠습니까?]“……지랄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이놈과 통화만 하면 열이 뻗친다. 어쩌다가 이런 놈을 알아 가지고.
‘능력은 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매번 조규민을 구박하는 이현수이지만, 능력은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저 젊은 나이에 재경이라는 거대한 기업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뒤에 강진호가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기업가들은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아무리 강진호가 밀어준다고 하더라도 조규민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직접 강진호를 상대하고 말지, 그만한 권한을 새파란 젊은이에게 줄 리가 없다.
물론 지금 가진 권한이라든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따진다면 총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현수가 뒤질 리가 없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이현수 쪽이 앞선다.
하지만 이현수 역시 조규민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저만큼 기어 올라갈 자신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가 형님이니까 특별하게 해드리는 겁니다.]“야! 내가 아니면 안 파냐? 안 팔아? 야! 때려치워! 나 삼전에 주문할 거야!”
[에헤이! 속 좁게 왜 이러실까!]이현수의 이마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할 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더 말을 섞고 싶지가 않다.
“여하튼 빨리 준비 좀 해. 삼 일 내로 가능하지?”
[솔직히 좀 어렵지만, 가능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그래그래.”
이현수가 전화기를 끊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 새끼는 뭐가 이렇게 의지견정해?’
욕도 해봤다. 때려도 봤다. 그럼에도 조규민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보통은 의지견정하다는 게 칭찬이 되겠지만…….
‘마왕 입장에서 볼 때, 포기를 모르고 달려드는 용사가 얼마나 지긋지긋할지 알 것 같군.’
무슨 수를 써도 변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일변도로 달려든다는 게 목적이 되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이놈을 보고 있으니, 새삼 마왕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이현수였다.
“쯧.”
이현수가 인터폰을 누르고는 빠르게 말했다.
“천태훈이 들어오라고 해.”
“부르셨습니까?”
“어.”
천태훈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이현수가 살짝 업된 목소리로 말했다.
“스마트패드는 삼 일 내로 들어올 거야.”
“삼 일이요?”
“어. 최선을 다해봤지만, 더는…….”
“생각보다 빠르네요.”
“어?”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천태훈이 말을 이었다.
“생산량을 생각하면 재고가 없을 텐데, 길면 보름까지도 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어, 그래?”
그럼 진짜 능력치를 발휘한 거였나?
조규민의 쓸데없는 너스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수업은 당장 이틀 뒤에는 들어가야 한다면서?”
“폰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스마트폰 하나씩은 다 들고 있겠죠. 그게 없는 애들이야 컴퓨터로 보면 되구요.”
“그럼 패드는 왜 지급하라고 한 건데?”
“아무래도 동작 시범이 있으니까 큰 화면으로 보고 따라 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조금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필요합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아니, 뭐, 부탁이라고 할 건 없고…….”
이현수가 머리를 긁었다.
그가 하는 일은 총회를 운영하는 일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그렇지만, 실제로 그가 해야 하는 일은 총회가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을 관리하여 자금줄을 원활하게 만들고, 총회 내의 수련하는 이들을 지원하여 그들이 순탄히 무력을 올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 일은 그런 일환이니, 당연히 이현수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현주도 불만 없이 자금 승인을 해주었고 말이다.
“그보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말씀하십시오.”
“음…….”
이현수가 볼을 긁었다.
‘불편하네.’
이명환 등과 다르게 천태훈과는 여전히 불편한 이현수였다. 김석일의 오른팔이던 그와 방진훈의 제자였던 천태훈이다.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다.
묵은 옛 원은 잊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이상론대로 흘러가던가.
머리로는 알아도 찝찝함은 어쩔 수가 없다. 게다가 그보다 천태훈이 더 불편해하는 기색이다 보니 선뜻 말이 나가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어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분위기라든가, 그런 것 있잖아.”
“당연히 좋지 않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래?”
조금 더 자세한 말을 원하는 반응이다. 천태훈이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좋을 일이 없죠. 수련 잘하고 잘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가 뒤집히고, 동료하고 생각하던 이들이 쏙쏙 빠져나가 새로운 뭔가를 배운다고 의욕에 차 있고.”
“…….”
“그래도 참아보려고 했더니, 떼놈들이 떼로 들어와서 여기저기 민폐 끼치고 다니고.”
“……그건 미안하다.”
“우리는 산 밑의 기숙사에서 바퀴벌레랑 친구하며 살고 있는데, 굴러 들어온 짱깨 새끼들은 새 건물 올리고 있고.”
“…….”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 총회의 발전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잘 참고 있습죠.”
뭔가 큰 죄를 지은 느낌이다.
“다만, 그런 느낌 있잖습니까.”
“어떤 느낌?”
“어느 세상이나 목소리 안 높이고 묵묵히 일하면 그냥 호구 취급이나 받는구나. 뭐, 그런 거죠. 물론…… 물론 뭐, 불만이 있으니 뭔가를 바꿔 달라는 건 아닙니다. 물어보시니 대답을 드리는 거죠.”
이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나 그나 치고 올라오는 쪽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이런 부분을 제대로 짚지 못했다. 그나마 방진훈이 이 문제를 알고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
‘회주님한테 말해서 방 이사님 보너스 드려야겠네.’
어차피 돈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소한 뭔가라도 해야 할 것 같다.
“그, 음…….”
이현수가 머리를 소리 나게 벅벅 긁고는 말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너한테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부탁이라는 말에 천태훈의 눈썹이 꿈틀했다.
“부탁이요?”
“어, 그래. 이런 말이 좀 이상하지만, 사실 위에 있다 보면 그런 불만이 전해지지가 않거든. 이게 한국 사람 특성이라고 해야 할지, 불만은 많은데 불만을 이야기를 안 한단 말이야. 그냥 속으로 삭이지.”
“예.”
“그러다 보니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어. 네가 그런 부분을 내게 좀 전달해 주면 좋겠는데.”
“한국인의 특성이 아닙니다.”
“……응?”
“그거, 한국인 특성이 아니라구요.”
천태훈이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대통령 마음에 안 든다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시위를 하는 게 한국인입니다. 불만을 속으로 삭일 일이 뭐 있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군대에서 마음의 편지함을 만들어둬도 찌르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어차피 찔러봐야 바뀌는 것도 없고, 피해는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협회 상부에 뭔가를 건의했을 때, 제대로 해결되는 게 없으니, 그냥 말을 안 하는 거죠. 귀찮고 시간낭비이니까요.”
“음…….”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상부가 바뀌었으니까.”
“그래서 기대도 좀 했죠. 그런데 바뀐 게 없잖습니까. 지시는 일방적으로 내려오고, 너희 중 따를 애들은 따라라. 다른 애들은 예전과 다른 게 없다.”
천태훈이 어깨를 으쓱했다.
“영남회 놈들이랑 감정이 극한까지 갔을 때도, 딱히 돌아온 대책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잘 지내봐라’가 전부였죠. 결국 그거 해결한 건 말씀하시는 아랫사람들 아닙니까.”
이현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천태훈의 말은 하나 틀린 게 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일반 총회의 회원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머릿수를 채우는 기초 전력 취급했을 뿐이다.
‘확실히 불만이 안 생길 수가 없겠군.’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이현수가 지금까지 놀고 있던 건 아니다. 그 역시 정신없이 바빴다. 하지만 그건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바쁘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의 변명이 될지언정 면피가 되지는 못한다.
“그래. 그건 내가 놓친 문제다. 미안하다.”
이현수가 고개를 숙였다.
“저한테 사과하실 건 없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 애들보다는 나으니까요. 사부님 잘 둔 대가로 저는 잘 먹고 잘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말을 좀 전달해 줬으면 좋겠다.”
“이해를 못하시네요.”
천태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상부에서 애들을 생각하고 뭔가 조치를 취하려 한다는 기색만 보여도 여기저기에서 말이 나올 겁니다. 굳이 제가 취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래도 창구는 필요한 법이지.”
“괜찮겠습니까? 저는 폐족인데요?”
“폐족?”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전대 회주가 파워 게임에서 밀려났으면, 원래는 싸그리 숙청되어야 하는 법이죠. 그게 실장님 스타일 아닙니까? 목숨은 붙여주시는 자비를 베풀었으니 숨죽이고 살아야죠. 다음에 거슬리면 진짜 목 날아갈 테니까요.”
이현수의 눈빛이 살짝 날카로워졌다.
비꼼은 아닌 것 같다. 불만에 대한 토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기분은 상한다.
“내가 옛날같이 굴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굳이 그런 말을 꺼내는 건 감정 싸움을 해보자는 건가?”
“아니요.”
천태훈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은 혼자 그리 생각하시고 결론을 내리면 끝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결론을 전달받아야 하는 입장이죠. 저는 얼마 전까지도 밤에 잠들면 아침에 눈뜨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
“상부에서 정한 게 아래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위로만 올라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현수가 입을 몇 번 뻐끔거릴 때였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군.”
강진호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두 사람이 급하게 강진호에게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