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7
#856.
강의하다 (1)
공고.
새로운 총회의 기본공에 대한 전수를 내일부로 시작함.
총회 소속은 누구나 배울 수 있음.
전수의 방식은 지금까지와 달리 동영상 강의의 형식으로 함.
아래 링크를 통해 공지를 확인하고 강의 시간을 확인하기 바람.
교재 및 비급은 본관 1층 행정실에서 배부 중.
최만식은 휴대폰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문자란 말이지…….’
신기한 일이다.
어릴 적부터 총회에 몸을 담아온 그이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문자를 통해 공고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사소한 지시나 소규모 팀플을 할 경우에는 문자나 톡으로 의사소통을 하기는 했지만, 그가 기억하는 바대로라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공고가 날아온 적은 없었다.
보고 있자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뭔가 바뀌기는 바뀌는구나.’
최근 총회는 급격하게 뭔가 바뀌고 있다. 그건 총회에 몸담고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하지만 수련 방법이 바뀌었다는 것 말고는 체감되는 변화가 딱히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변화라고는 강진호에게 걸린 장로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토르에게 잡힌 마염들이 어깨와 머리로 전력 질주를 하는 이적을 보여준다는 정도일까?
그리고 산 중턱에 건물들이 무지막지하게 들어서고 있다는 것 정도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들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바토르나 강진호와 직접 엮일 일이 없는 평범한 무인들이고, 중국인도 아니었으니까.
새삼스레 링크를 클릭하고 페이지에 접속한 최만식이 미간을 좁혔다.
‘전자 공시 시스템의 확립이라……. 게다가 스마트패드 보급.’
어제 이미 확인한 내용이지만, 새삼스럽기 짝이 없다.
총회에 전자 공시와 스마트패드라니.
“이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런 것들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이 바로 총회다.
총회는 올드한 곳이다. 심지어 장로들급에서는 전화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옛것을 따르는 데는 총회를 따라갈 곳이 없다.
오죽하면 눈에 띄지 않게 복장만 현대식을 따를 뿐이지, 청학동보다 더 옛스럽게 사는 곳이라는 자체 평가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거, 진짜 이래도 되나?”
변화는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건 좀 과도한 변화가 아닐까 싶었다. 세상에 새로운 무학을 동영상 강의로 전수한다니, 이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왜 이리 극단적이냐, 진짜.”
올드하거나 미쳤거나.
어느 순간부터 총회에서 중간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이게 참…….”
하는 입장에서도 생소하겠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생소한 것은 마찬가지다.
시계를 확인한 최만식이 공지된 강의 시간이 가까워진 것을 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거, 어디서 봐야 하는 거야?’
생전 처음 겪는 일이다 보니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동영상 강의다 보니 딱히 봐야 하는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가에 걸터앉아서 볼 수는 없잖은가.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대연무장 옆쪽에 마련된 벤치였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동영상을 본다는 게 영 어색하다.
‘일단은 강당이나 수련장으로 가자.’
그래도 거기면 수련한다는 느낌이 나겠지.
결심을 굳힌 최만식이 빠르게 강당으로 이동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강당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자리가 있나?’
다행히 아직은 앉을 자리가 있다.
구석으로 끼어 들어간 최만식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거, 대체 뭐 하는 거냐?”
“난들 알겠냐?”
“새 무학을 전수한다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식이 이게 뭔…….”
“근데 생각해 보면 회 차원에서 단체로 무학을 전수하는 게 이번이 처음 아냐?”
“그렇지.”
“효율적일 것 같기는 한데? 이 많은 애들을 어디 한데 모아서 가르칠 수도 없으니까.”
“그도 그렇고.”
살짝 설렘과 불안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최만식처럼 말이다.
“이거, 접속해서 보는 거야? 매번 생방으로?”
“아니, 오늘은 첫날이라 생방으로 하고, 강의 자체는 동영상으로 대체될 거라는데.”
“회원 가입했냐?”
“옛날에 해놨지. 너는 그런 것도 안 하냐?”
“야, 여기 안 들어가지는데?”
아니, 그냥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윗사람들을 깔 게 아니네.’
현실에 도태된 부적응자인 건 아랫놈들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산골에 처박혀 무공이나 익히는 것들이 알면 뭘 그리 잘 알겠는가.
그나마 조금 깨어 있는 이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접속을 돕고 있었다.
“아니! 회원 가입부터 하라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비밀번호가 등록이 안 되는데?”
“너 특수문자가 뭔지 모르냐? 특수학교부터 다시 보내줘?”
시간이 가까워져 오며 여기저기서 고함과 비명이 뿜어져 나온다.
‘허허, 개판이네.’
최만식은 흐뭇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쾅!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문 좀 살살 열…… 실장님?”
“야!”
다급한 얼굴로 뛰쳐 들어온 이현수가 주변을 살핀다.
“야, 다 접속했어?”
“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 새끼들아, 공고 뜬 지가 언젠데 아직 접속도 다 안 했어! 반도 안 들어왔잖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기 없는 놈들한테도 빨리 톡 보내서 접속하라고 해! 이 새끼들, 왜 이리 구식이야!”
하루 전만 해도 80년대를 살고 있던 이현수가 당당하게 다른 이들을 구박하고 있었다. 아는 이들이 봤다면 혀를 찰 모습이지만, 다행히 이곳에는 그의 실체를 아는 이가 없었다.
“빨리 다 접속하라고 해! 일단 20분 늦출 테니까.”
“예!”
이현수가 다시 밖으로 뛰어 나갔다.
“저 양반은 항상 바쁘네.”
“근데 바쁠 만한 것 같아.”
“그도 그렇고.”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접속자가 차기 시작했다.
적당한 수가 찼다 싶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 방송 시작합니다.
전체 문자를 받은 이들이 화면을 전환하고 휴대폰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야, 이거 화면이 너무 작은 거 아냐?”
“그래서 스마트패드 준다잖아.”
“머리 좋은 놈들은 지금쯤 집에서 PC로 접속했겠네. 여하튼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니까.”
“야! 야! 시작한다!”
“조용히 해봐, 조용히!”
최만식도 살짝 긴장한 얼굴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최대로 키운 준비화면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곧 화면이 전환되더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굉장히 어색한 얼굴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푸웁!”
“큽!”
“으흐흐흣!”
그 어색함을 보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방진훈.
총회의 이사이자 한때 회주였던, 나름 카리스마로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 유치원 처음 들어간 유치원생처럼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방진훈이 어색하게 입을 연다.
[야, 이거 언제 시작하냐?] [시작했다니까요! 사부님!] [어? 시작했어? 그럼 이제 하면 되는 거야? 화면은?] [화면 나가고 있다구요! 지금 다 보고 있다구요!] [어?]방진훈이 당황하는 게 눈으로 보인다. 웃음이 빵빵 터져 나왔다.
“웬만한 개인 방송보다 재밌는데, 이거.”
“이건 수련계의 혁명이다.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잡았어.”
이 평가를 들었다면 방진훈의 분노가 폭발했겠지만, 다행히 목소리는 화면 너머로 전해지지 않는 법이다.
[어흐흐흠, 반갑다. 아, 아니,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총회의 이사를 맡고 있는 방진훈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음…….]화면 안의 방진훈이 고개를 돌린다.
[야, 이거 내 소개 해야 하냐?] [소개 필요없고, 그냥 이야기하시면 된다니까요!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어요?] [너…… 목소리가 높다, 인마?] [아니, 그게 아니고…….] [야! 처음 하는 건데 어떻게 잘하냐! 헛갈릴 수도 있는 거지!] [설명을 열 번은 했잖아요!] [긴장돼서 그렇잖아, 긴장돼서!] [사부님! 이거 방송 다 나가고 있다니까요! 제발 좀!] [아! 그, 그랬지.]최만식은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뭐야?’
할 수 만 있다면 채팅창에 쌍자음을 남발하고 싶은 심정이다.
방진훈이 어색한 얼굴로 옆을 바라본다.
[카메라! 카메라! 전면 카메라요!] [아.]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 굳이 더 웃길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총회의…….] [그거 했다구요!] [나도 알아, 인마!]방송이 망한 건지, 흥한 건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확실한 건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방송 쩐다.”
“구독해야겠다.”
“이 정도면 웬만한 예능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첫 방부터 이 정도면 인기 BJ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크흠, 여하튼.]화면 안의 방진훈이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런 기회로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예전부터 총회에는 통일된 무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최근 회주님과 함께 총회의 기본 무학을 완성했습니다.]방진훈이 고개를 돌린다.
[야, 기본 무학이라고 하니까 엄청 약해 보이는데? 더 적당한 말 없을까?] [왜 그걸 지금 저한테 물어보시냐구요! 으아! 미치겠네, 진짜!] [물어볼 수도 있지! 왜 화를 내고 그러냐!]방진훈이 잔뜩 굳은 얼굴로 전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삐쳤네.’
‘화났구만.’
방송 상태가 영 엉망이었다. 그 와중에 방송실로 뛰어 들어간 이현수가 천태훈을 붙잡고 방송이 잘되는지 묻는 소리와, 그 질문에 반쯤 울면서 대답하는 천태훈의 목소리가 그대로 들려온다.
[기본 무학이라고 하니 좀 약해 보이는데, 전혀 그런 무학이 아닙니다. 이번에 전수할 무학은 총회의 기본이 되는 무학이되, 익히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최고가 될 수 있는 무학입니다. 여러분이 기존에 익히던 무학보다 무조건 낫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이 방진훈이와 회주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이니, 다들 열심히 익혀주길 바랍니다.]방진훈의 어투가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에 따라 다들 조금은 더 진지해진 얼굴로 방송을 봤다.
[총회의 중심은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이 잘돼야 총회도 잘되는 겁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가르칠 테니,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 배우고 따라와 주십시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방진훈이 고개를 숙인다.
화면 너머의 행동임에도 박수가 터져 나왔다.
최만석 역시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건 방진훈이 전수할 새 무학에 대한 기대 때문에 나오는 박수가 아니었다.
한때 총회의 정점을 찍은 방진훈이 진솔하고 소탈하게 고개를 숙인다는 사실이 그들을 감격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건 정말 잘될지도 몰라.’
동영상 강의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지만, 지금 방진훈의 태도가 그 불안함을 불식시켜 주고 있었다. 이대로만 수업이 진행된다면, 동영상으로도 얼마든지…….
딴따라라따라!
그 순간, 팡파레가 울리더니 화면에 커다란 풍선과 함께 메시지가 떴다.
= 우리 화장실 쓰지 마라, 짱깨 새끼들아’ 님께서 풍선 5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
[어느 새끼가 풍선 쐈어! 이거 누구야!]영혼을 담아 절규하는 천태훈의 목소리가 휴대폰을 넘어 쩌렁쩌렁 울렸다.
‘아니, 안 될지도 모르겠다.’
금세 포기하는 최만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