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8
#857.
강의하다 (2)
“흐음.”
화면에 보이는 방진훈의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신기하네.’
화면에서 지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이미 강진호는 강은영의 모습을 브라운관에서 보았고, 최연하의 모습을 영화관에서 보고 있다.
그리고 채널을 돌리면 박유민도 종종 얼굴을 들이민다.
연예인도 아닌 사람치고는 주변인의 TV 출연 빈도가 극도로 높은 사람이 바로 강진호다.
그러니 아는 사람이 화면에 나온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는 사람이 화면에 나온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아는 사람이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다는 점이다.
“정말 안 어울리는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현수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렇게 화면에 나오는 게 어색한 사람은 두 번째로 봤습니다.”
“두 번째?”
“첫 번째를 굳이 말씀드려야 할까 고민이네요. 아무래도 월급은 소중한 것이라.”
“…….”
강진호는 치솟던 호기심을 부드럽게 내리눌렀다.
물어보지 말아야지.
“방송은 별문제 없고?”
“보시다시피.”
이현수가 강진호의 화면에 뜬 방진훈을 보며 피식 웃었다.
“물론 강사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제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다른 문제 같은 경우는 천태훈이 알아서 잘해주고 있습니다.”
“생방송으로 무학을 전수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는 없나?”
“생방으로 하지 않을 겁니다. 오늘은 시험 삼아 생방으로 진행해 보는 것뿐입니다. 강의는 이미 따로 촬영을 하고 있습니다. 한 3화분 정도는 끝났습니다. 아마 100화 정도는 찍어야겠지만 말입니다.”
“100화면 끝나는 건가?”
“네. 기본은 끝나겠죠.”
“…….”
강진호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기본? 기본이 끝난다고? 100화나 촬영하고 기본이라고?
이현수가 쓰게 웃었다.
이대로라면 100화 정도는 해야 기본 강의를 마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방진훈의 표정이 생각난다. 당첨된 로또를 주머니에 넣고 세탁기에 돌려 버린 사람의 표정도 그리 절망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분량이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 시험의 동영상 강의도 한 과목을 심화까지 들어갔을 경우 100강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공무원 시험은 한 과목만 치는 게 아니다.
3년 정도 공부하는 것으로 당락이 나뉘는 공무원 시험과 평생 배우고 익혀야 하는 무학에서 어떤 것이 더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도제식으로 전수한다면 최소한 5년 이상은 하루도 빼지 않고 가르치고 익혀야 빠짐없이 배웠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방대한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이 무학이다.
“100시간이라 봐야 하루 열 시간을 배운다 치면 10일 치에 불과합니다.”
“……그건 그렇지.”
“한 사람을 붙들고 비급의 내용을 모두 전수하는 데 보통 어느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최소로 쳤을 때 말입니다.”
“두 달에서 세 달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죠.”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에서 세 달이면 60일에서 90일이죠. 그럼 최소 6,000시간에서 9,000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와…….”
그리 생각하니 아득하기 짝이 없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까지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죠. 왜냐면 무학을 배우는 시간의 팔 할은 직접 몸으로 움직이고 체화하는 시간이니까요. 그렇다고 쳐도 최소한 500강에서 1,000강 정도는 필요합니다.”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사실 방진훈 이사 입장에서도 이게 훨씬 편할 겁니다. 직접 전수하려고 하면 그 많은 애들을 파트로 나눠서 가르쳐야 하니, 적어도 1년 이상은 총회에서 꼼짝도 못할 테니까요. 당장이 힘든 것뿐입니다.”
강진호는 그냥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원래 정파 쪽은 다 그렇게 무학을 전수하나?”
“네?”
“아니, 내가 배운 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어떻게 배우셨는데요?”
“비급 하나 던져 주더니 익히라고 하던데?”
“…….”
이현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교에서요?”
“응.”
“……혹시 마교에서 수련하다가 몇몇이 죽고 그러지는 않았나요?”
“아니.”
이현수가 놀란 얼굴을 했다. 그런 무식한 방식으로 전수를 하는데, 사상자가 없다는 건 정말 놀랄…….
“몇몇이 아니라 떼거지로 죽었지. 생존률을 따지는 쪽이 맞을 것 같은데?”
“…….”
그럼 그렇지.
이현수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무학은 섬세합니다. 제자가 잘못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꾸준히 관찰하고 세심한 부분까지 지도를 해야 하는 법이죠. 한 명을 가르칠 때보다 더 자세하게 풀어야 하니, 시간이 더 걸리는 면도 있을 겁니다.”
“흐음.”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겠지.”
“일각에서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특히나 저들을 원래 가르쳤던 스승들은 이 사실을 알면 이를 갈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
“사도라고 생각하겠죠.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할 겁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라면 모를까, 동영상 강의라는 방식은 바깥세상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왜 반발이 나온단 말인가.
강진호의 표정을 본 이현수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세상이 원래 그렇습니다. 자신이 하던 방식을 선호하죠. 세상을 바꾸는 것은 이익이나 젊은 사람들인데, 수련의 방식은 이익과 직결되지 않고, 젊은이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게 무인계의 구조이니까요.”
“흠…….”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젊은이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이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다. 특히나 무인계는 그것이 더욱 심하다.
바깥세상의 권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 봐야, 권력과 재력이 전부다. 이제는 폭력을 움직일 수 없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무인계의 권력자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 권력과 재력, 그리고 폭력. 거기에 젊은 무인들의 미래를 철저하게 틀어막을 수 있는 힘까지.
그런 이들이 세상의 변화를 반길 리가 없다.
‘원래 윗대가리들은 썩어 빠지기 마련이지.’
과거 중원에서도 그랬다.
야인들이 모여 있는 강호이다 보니 중앙 정계보다는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권력자들의 암투 이상으로 자신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한 협잡이 난무했다.
힘들여 올라온 곳이니만큼 자신의 권한을 쉽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게 사람이다.
“그래서 무언가 움직임이라도 있는 건가?”
“아직은요.”
이현수가 빙그레 웃었다.
“제아무리 욕심 많은 여우라고 해도 호굴에 들어가지는 않는 법이지요.”
“불만은 가지되, 행동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아마 그럴 겁니다.”
“흐음.”
강진호가 가만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반발이 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예.”
“시대에 순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욕심이든 뭐든 굳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겠다는 이가 있다면 두고 가야겠지.”
“관 속에 말입니까?”
“그렇게 과격하고 싶지는 않아. 덤벼드는 이라면 모를까, 총회를 나가게 해줄 테니 마음대로 하라고 해.”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들의 영향력은 적지 않습니다. 우선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이들이…….”
“따라가지 않을 테니까.”
강진호가 턱짓으로 휴대폰을 가리켰다.
방진훈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동안 그들이 자신들의 제자들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던 이유는 전해질 무학을 독점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이제 더 이상 그들이 가진 무학을 배울 필요가 없거든.”
싱긋 웃는 강진호의 웃음이 기분 좋아 보인다.
“더 나은 걸 공짜로 풀어주는데, 고리타분한 쪽을 선택할 리는 없겠지.”
“과연.”
이현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마 방 이사는 여기까지 생각했겠지.’
방진훈은 예전부터 총회에 통합된 무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무학을 가르치는 주체가 총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중걸이 총회를 완전히 통합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젊은 무인들은 스승에게 무학을 배운다. 일정 이상의 성취를 올리면 그다음 무학을 사사해야 한다.
스승에게 무학을 사사하지 않으면 더 강해질 수 없다. 그런데 누가 감히 스승에게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각 문파의 수장이나 소수 전승의 스승들은 자신이 가진 작은 권력으로 제자들을 통제했다. 그러다 보니 젊은 무인들은 발언권을 가질 수 없다.
경제력이 부족할 뿐, 충분히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 대접받는 바깥세상의 20대와는 차원이 다른 대접을 받기가 일쑤였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총회의 무학이 필요하다는 거지.’
괜찮은 해결책이다.
이현수는 새삼 방진훈이라는 사람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디테일하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이끌어가는 데는 허점을 보이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잡고 가장 중요한 것을 찾아내는 데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총회 내에서 이중걸과 대립한다는 어마어마한 짓을 해낼 수 있었겠지.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대, 결국 이기는 것은 이중걸이었을 것이다. 방진훈의 세력은 이중걸에 세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았다. 이중걸의 숨겨진 힘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말이다. 강진호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방진훈은 결국 숙청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 방진훈의 대단함을 말해준다.
그때, 그가 주장한 방향 역시 틀리지 않았다. 이중걸의 방식은 썩었고, 총회는 개혁이 필요했다.
‘이런 방식일 줄은 본인도 몰랐겠지만.’
이현수가 싱긋 웃으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학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방진훈을 보고 있으려니 감회가 새롭다.
“바뀌네요.”
“음, 그렇지.”
강진호도 흥미로운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바뀌어가는 거지.’
언제나 그렇다.
과거를 보지 못하는 이들은 인류가 얼마나 큰 진보를 이루어냈는지를 알지 못한다. 과거를 역사로 이해하는 이들도 지식은 있을지언정 실감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강진호는 다르다.
그는 야만의 시대를 직접 살아본 사람이다. 그렇기에 인류가 얼마나 나아갔는지,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확언할 수 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의미 없는 변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쌓여서 큰 변혁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변화도 언젠가는 총회를 크게 바꿀 것이다.
“아, 이 새끼들!”
이현수가 인상을 확 썼다.
아까부터 간간이 풍선이 터지며 화면을 가리고 있었다.
“수업 중인데, 이 새끼들이.”
“저게 뭔데?”
“돈 보내는 겁니다.”
“……응?”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재밌거나 유익하거나 뭐, 그런 게 있으면 감사의 의미로 돈을 쏘는 거죠. 바깥세상의 문화입니다.”
“그래?”
“예. 그런데 저렇게 강의에 방해가 될 정도로 쏘면 안 되거든요. 저거 어떻게 막아놓는 방법이 있을 건데, 다음 생방 때는 설정을 해둬야겠네요.”
“그래서?”
“……네?”
강진호가 더없이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저거, 어떻게 보내는 건데?”
“…….”
재밌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