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59
#858.
강의하다 (3)
“……아이고, 죽겠다.”
방진훈이 완전히 늘어졌다.
‘뭐가 이렇게 힘들지?’
방송이라는 게 나름의 체력을 요한다고는 해도 방진훈은 무인이다. 일반인도 24시간 녹화를 하는데, 방진훈이 기껏 몇 시간의 방송으로 탈진할 리는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그런데…….’
마치 3일 연속으로 격한 수련을 한 느낌이다. 전신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태훈아, 커피…… 커피 한 잔…….”
고개를 돌려 천태훈을 찾던 방진훈이 입을 닫았다.
앞쪽 책상에 천태훈이 늘어져 있었다.
‘오징어네.’
축 늘어진 꼴이, 갓 죽은 오징어 같았다. 조금만 더 놔두면 문어로 전직할 기세다.
“끄으으으…….”
천태훈이 좀비처럼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덜컥대는 소리가 들린다.
“커, 커피요? 사부님?”
“아니, 아니다.”
방진훈이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에게도 양심이란 게 있다. 저 꼴을 한 놈에게 커피를 타 오라 할 수는 없다.
“일단 여기 좀 앉아봐라.”
“…….”
천태훈이 비척비척 걸어와 앉았다. 그 늘어진 모습을 본 방진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동안 생방은 안 해도 되는 거지?”
“그럴 겁니다.”
천태훈은 뒷말을 삼켰다.
‘보강할 내용이 없다면요.’
하지만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겠는가.
아직 방진훈은 자신의 화면을 본 적이 없다. 동영상을 서비스하기 전에 점검을 하게 되면, 당장 보강을 해야 한다고 거품을 물거나, 아예 촬영을 다시 하려 들 것이다.
방송 제작에 열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설픈 내용은 바로잡고 보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진이 빠지나.”
방진훈이 이마에 비척비척 배어 나오는 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방송은 이미 끝났건만, 긴장이 풀리지가 않는다.
“썩을 놈들.”
천태훈은 천태훈 나름대로 열이 올라 있었다.
방진훈은 화면을 모니터링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방송 후반부쯤에는 터지는 풍선 때문에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판이었다.
풍선 쏘는 걸 시스템적으로 막았어야 하는데, 경험이 없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돈도 넘쳐 나지, 미친놈들!”
하기야.
생각해 보면 그것도 당연한 일이다. 총회에 소속되어 있는 놈들은 다들 산골에 박혀서 수련을 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 와중에 이들이 받는 돈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제 갓 스물이 된 무인이 받는 돈은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나이 대의 일반인들이 대학과 교육에 돈을 퍼붓는 것에 비하면 과도할 정도로 돈을 받는다.
남들은 쓸 돈을 버느라 생고생을 하지만, 이들은 수련만 해도 나름 펑펑 쓸 수 있는 돈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돈이 남을 수밖에.
그 와중에 자라면서 항상 검소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라다 보니 돈을 쓸 줄도 모른다.
“그런데 사부님, 생각하다 보니 이상한 게 하나 있는데요.”
“뭐?”
“회의 연배가 있으신 분들은 왜 다들 그렇게 근검절약을 강조하십니까?”
“돈이 없으니까.”
“……네?”
방진훈이 태연하게 다시 대답했다.
“돈이 없으니까.”
“…….”
벙쪄 있는 천태훈을 본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돈 있으면 왜 아껴 쓰라고 해? 써야 할 곳이 있는데 돈이 없으니까 아껴 쓰라고 하지.”
“아니, 그 돈이라는 게…….”
“지금이야 있지.”
사실 총회의 무인들은 부유한 편에 속한다. 젊은 무인들이 죽어라고 무공을 익히는 데는 그것도 한 요소다. 바깥세상에서 성공해 돈을 벌 확률보다 무인계에서 성공해 돈을 버는 게 확률적으로 몇 배는 쉽다.
“그런데 예전에는 없었단 말이야. 생각해 봐라. 무인이 무슨 돈이 있겠냐. 여기저기서 칼 차고 다니고, 사람 모가지 따고 다닐 때는 힘 센 게 장땡이지. 힘 센 놈이 권력도 차지하고, 돈도 얻는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이전 시대가 뭐라고?”
“……조선 시대죠.”
“그거 엄청 살기 힘들었다고 하더라. 칼만 들고 다니다가 걸려도 동네 포졸들이 다 쫓아왔다던데.”
천태훈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했다. 조선 시대는 사병이 혁파되고 중앙에서만 군대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 고려 시대 후반의 무인정권이 무인에 대한 경계심을 극도로 올려놓았다.
게다가 태조 이성계가 무인 출신이다 보니 자신이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무인들을 극도로 경계했다. 거기에 유학이 나라의 학문이 되면서 무인들이 멸시받는 시대가 됐다.
“다들 산골짜기에서 밭이나 갈고, 사냥이나 해서 먹고산 양반들 아니냐. 그러니 검소하라고, 검소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을 하는 거지. 그것도 생각하면 웃긴 거야. 검소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나 그게 의미가 있는 거지, 강제적으로 검소해야 하는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왜 하느냐고.”
“…….”
나름 납득한 천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그게 전해져 내려오다 보니 한국 무인계는 검소가 미덕이 된 거군요.”
“미덕은 무슨.”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말했잖아. 검소가 미덕이 되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들이라고. 돈 없는 사람들이야 어차피 검소해야 하는 거지. 그 입으로는 절약이니 검소니, 무인은 재물을 탐해서는 안 된다느니 좋은 말 늘어놓던 장로들이 돈 벌더니 그러더냐?”
“…….”
“여기가 무슨 독일 차 전시장도 아니고…… 아니, 이 양반들은 국산차 타는 인간이 없었지. 주둥아리는 검소를 논하는데, 차는 다 최고급이잖아. 집도 으리으리하지, 별장도 있지.”
“차는 사부님도 좋은 거 타시잖아요.”
“그래서 나는 검소하라는 소리는 안 하잖아. 안 그래? 돈 많이 벌라고 하지.”
“그건 그렇습니다.”
“사람이 언행일치가 되어야지. 제자한테는 장비 비싼 거 쓴다고 잔소리하던 인간이 집에 갈 때 기사 딸린 대형 세단 타고 가는 걸 보면 참 우습고 같잖고 그랬지. 그러면서 뭐? 검소? 검소~오?”
방진훈이 고개를 저었다.
“지들이나 잘하라 그래.”
쏟아져 나오는 독설에 천태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그런 일이 흔했다. 아랫사람들에게는 식비마저 아끼면서 자신들은 온갖 호화로운 것을 다 하고 살았다.
그리고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천태훈의 시선으로는 다른 이들이 부패한 게 아니라, 방진훈이 비정상적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리 생각하면 사부님은 정말 검소하신 편이었네요.”
“야, 너 내 말 뭐 들었어?”
“……예?”
“검소가 아니라 돈이 없던 거라니까!”
방진훈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사부님이 왜 돈이 없습니까?”
“내가 돈이 어딨어, 미친놈아! 물론 내가 나름 파워가 있는 편이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이사들이랑은 다르게 돈 쓸 데가 많잖아. 니들이 먹고 자던 돈은 다 어디서 나왔을 것 같냐? 그리고 내가 다른 양반들 회유할 때는 맨입으로 했을 것 같아?”
“…….”
“그거 다 돈이야.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더 많았어. 내가 사재까지 털어 넣었다. 내가 그래서 아직 장가도 못 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이현수와 강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회주님을 뵙습니다.”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고는 슬쩍 웃었다.
“방송 잘 봤다.”
“……그걸 또 보셨습니까?”
“멋지던데?”
방진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천태훈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강진호를 본 천태훈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불만이 팽배한 모습이다. 하지만 차마 강진호에게 뭔가를 따질 수는 없었는지 슬쩍 일어나 이현수에게 슬금슬금 다가간다.
“왜?”
이현수가 의문 어린 눈으로 묻자 천태훈이 조용히 속삭였다.
“아까 회주님이 풍선 쏘시던데요.”
“아, 그거? 내가 알려 드렸어.”
“회주님까지 풍선을 쏘시니까 애들이 다 미쳐서 쏴대잖습니까. 막아주셨어야죠.”
“누가? 내가? 회주님을?”
아…….
황당하다는 이현수의 반응에 천태훈도 다시 현실을 떠올렸다.
‘하긴 저 양반을 누가 막아.’
자신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는 걸 자각한 천태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진호가 상석에 앉고 나자 다들 자리에 앉았다.
“방식은 재미있는 것 같더군.”
방진훈이 고개를 천태훈에게로 돌렸다. 자신은 잘 모르니까 네가 답하라는 뜻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천태훈은 즉각 반응했다.
“문제는 없고?”
“예. 일단 전원이 접속하지는 않아서 교육받지 못한 이들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오늘 녹화한 화면을 업로드할 생각이니, 조금 늦더라도 다 볼 수 있을 겁니다.”
“음.”
“다만, 지금부터는 동영상을 자체 사이트에 업로드해야 합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은데다 화질이 고화질이라 용량을 많이 먹습니다. 실시간 스트리밍을 하든, 다운로드 서비스를 하든 회원들이 다 접속한다면 트래픽이 장난 아닐 테니, 자체로 서버가 필요합니다.”
강진호가 빙긋 웃었다.
“그렇군.”
“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
듣는 건 강진호의 몫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건 강진호의 몫이 아니었다. 들어도 모르는데 뭘 생각하라는 말인가.
“장민 장로와 함께 논의해서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서버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운영비가 듭니다. 그 부분에 대한 승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승인하지.”
강진호가 깔끔하게 대답하고는 이현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지?”
“……말해놓겠습니다.”
모르는데 뭘 어쩌겠는가.
천태훈이나 장민이나 횡령을 할 사람들은 아니니, 믿고 맡길 수밖에.
“그건 그럼 됐고. 어때? 할 만해?”
“죽겠습니다.”
방진훈이 손사래를 쳤다.
“아, 이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극심하더라구요. TV 보면서 저 연예인 놈들은 놀면서 돈 번다 그랬는데, 앞으로는 그딴 말 안 하기로 했습니다.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더니.”
머리를 쥐어뜯는 방진훈을 보며 강진호가 웃고 말았다.
“계속할 수 있겠어?”
“해야죠.”
얼굴은 울상이지만 대답은 단호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니까요. 그 많은 애들을 동시에 가르친다는 건 원래 20회 이상 해야 할 수업을 한 번으로 퉁친다는 거니까, 20배로 힘든 게 당연하겠죠.”
머리를 벅벅 긁은 방진훈이 자신도 모르게 가볍게 웃는다.
“생소하고 힘들긴 한데, 그래도 이 방식이 앞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강진호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게 워낙 어색해서.”
“큭…….”
강진호가 참지 못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화면 앞에서 사지가 굳은 사람처럼 뻣뻣하게 몸을 움직이던 방진훈의 모습이 생각난 것이다.
그렇게 뻣뻣한 무인은 살면서 처음 봤다.
“애 좀 써야겠더라.”
“죽겠습니다. 진짜 죽겠어요.”
“그러다 보면 늘겠지.”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이현수가 손을 들었다.
“그런데 회주님.”
“응?”
“이 방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이걸 왜 묻지?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대답했다.
“문제가 있기는 하겠지만, 발전이라고 본다. 사소한 문제는 수정해 나가면 되겠지.”
“총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앞으로도 도입되어야 할 방식이라 생각하십니까?”
“음, 도제식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겠지만, 병행되어야겠지.”
“그렇군요.”
이현수가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그럼 총회를 위해서 앞으로 강의는 동영상으로 제작하면 되겠습니다. 그렇죠?”
“……어?”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스튜디오 하나 더 만들어.”
“예?”
“새 강좌 열거니까. 강의 이름은 마공 기초 입문.”
결정타가 떨어졌다.
“남자가 한입으로 두말하시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회주님.”
“…….”
총회의 BJ가 두 명으로 늘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