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
#85.
훈련하다 (4)
“똑바로 섭니다! 똑바로!”
방독면을 타고 나오는 음성은 조금은 멍멍하고 탁하게 들렸다.
“자세 잡습니다. 제대로 섭니다.”
“고개 듭니다! 전면 봅니다!”
“간격 제대로 맞춥니다! 발끝 맞춥니다!”
사방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귀가 따갑다.
강진호는 전면에 앉은 교관이 불판 위에 올려둔 작은 CS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화생방 훈련.
적군이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를 대비하는 훈련이라고 했다.
‘독 같은 건가?’
화생방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중원에서도 당가나 오독문 같은 곳은 독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이용하는 독은 대부분 생물 독이었다.
‘여하튼 진귀한 경험이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군대라는 곳은 현대의 무기 체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는 곳이다.
일반적인 타국의 국민의 경우, 군에 자원해서 입대하지 않는다면 이런 훈련을 받아볼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이 훈련이 미국 등지의 모병제 군이 받는 훈련에 비하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그 수박 겉핥기만으로도 강진호에게는 무척이나 유용한 정보였다.
특히나 이런 경험은 입대를 하지 않는 이상 결코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쿨럭.”
“아, 이거 방독면 새는 거 같은데.”
일렬로 늘어선 훈련병들이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강진호는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찬 화생방실을 보며 계산에 여념이 없었다.
‘공기로 퍼지는 독은 방어가 불가능하다. 숨을 참으면 될 일이지만, 피부로 스며든다면 막는 게 불가능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탄이 터져서 퍼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 버리는 것이지만… 탄이 하나만 터진다는 보장도 없고, 여러 곳에서 동시에 터져 버린다면 순간적으로 피할 곳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확정이라면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정화통 제거!”
“정화통 제거!”
“정화통 머리 위로 올려!”
정화통을 풀어 머리 위로 올리자 매캐한 연기가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훈련 중에 군가한다. 군가는 멋진 사나이! 군가 일발 장전!”
“장전!”
“발사!”
“멋있는! 사나이!”
강진호는 군가를 부르는 와중에도 CS탄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코와 입으로 파고든 연기가 순간적으로 고통을 유발하고 있었다.
‘버티는 게 보통 일은 아니군.’
절로 눈물과 콧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좌우로 악에 받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위력이라면 불편하기는 해도 행동은 가능할 것 같았지만, 이 CS탄은 훈련용이라 실전 사용용보다 훨씬 약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전에서 화생방 상황이 벌어진다면 대부분의 군은 무력화된다고 봐야 했다.
“쿨럭!”
강진호도 기침이 새어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의 육체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흐음.”
가볍게 내공을 끌어 올려 눈, 코, 입을 보호한 강진호가 한결 여유로워진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쿨럭! 쿨럭!”
군가를 부르다 말고 기침을 하며 허리를 굽힌 채 악을 지르는 인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죽지는 않아.’
몸에 악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차피 이건 훈련에 지나지 않는다. 병사들을 죽일 생각이 아닌 이상 적당히 하다가 풀어줄 것이다.
하지만 CS탄을 태우고 있는 2소대장의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 새끼는 왜 이리 여유로워?’
2소대장은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화생방 훈련이라는 것은 사실 훈련이라고 부르기도 무색한 훈련이었다.
실전에 CS탄이 활용되는 것도 아니고, 화생방 상황인데 방독면이 없으면 어떤지 체험해 보라고 하는 것도 미친놈이나 할 수 있는 발상이지, 제대로 된 인간이 할 수 있는 발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생방 훈련이 교육대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슬슬 군기가 풀어지기 시작하는 신병들의 정신을 다잡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아직 먹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건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가혹 행위였다.
그런데 그 가혹 행위를 너무 여유롭게 넘기고 있는 놈이 있으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방독면 제거.”
사전 교육에서 숙지되지 않는 내용의 명령이 나오자 훈련병들이 영문을 모르고 고개를 들어 2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조교들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못 들었어? 방독면 제거!”
“방독면 제거!”
서슬 퍼런 목소리에 놀란 훈련병들이 다급하게 방독면을 벗었다.
“쿨럭!”
그나마 공기라도 적게 들어오게 만들어주던 방독면이 제거되자 피부가 따끔거리고 콧물과 침이 미친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군가한다. 군가는 멸공의 횃불! 하나, 둘, 셋, 넷!”
훈련병들이 연신 쿨럭이며 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충혈되어 버린 코와 입에서 오는 고통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제대로 된 군가가 나올 리가 없었다.
“저 새끼, 뭐야?”
2소대장의 눈에 허리를 꺾어가며 난리를 치는 다른 훈련병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태연한 얼굴로 군가를 또랑또랑하게 부르고 있는 강진호를 보고 있자 괜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잘났네, 저 새끼.’
얼마 전에 벌어진 사고 때문에 지옥같이 시달렸던 스트레스가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저런 꼴을 보게 있자 자꾸만 화가 났다.
이번 감사 기간 내내 그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훈련병만도 못한 새끼 아니던가.
물론 강진호 덕분에 인명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고마움은 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나 그랬지, 나중에는 훈련병도 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을 계속 듣다 보니 강진호에 대한 짜증이 갈수록 늘어갔다.
‘오냐, 어디 해보자.’
“어깨동무한다.”
“2소대장님?”
규정된 훈련 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 훈련병들이 과도하게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 계속 훈련을 이어가려고 하자 조교들이 당황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깨동무!”
훈련병들이 쿨럭대면서도 좌우를 더듬어 어깨동무를 했다.
“앉아.”
엉거주춤하게 앉은 훈련병들을 보며 2소대장이 눈을 빛냈다.
“전방에 함성 5초간 발사!”
“으아아아아아아아!”
목소리는 거의 악에 받쳐 있었다.
훈육 조교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할 무렵, 구석에 있는 훈련병이 바닥으로 쓰러지더니 얼굴을 감싸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일어납니다! 일어나!”
그때, 그 옆에 있던 훈련병이 냅다 달려가더니, 문을 걷어차고 몸으로 밀기 시작했다.
“잡아!”
조교들이 우르르 달려가 빠져나가려는 훈련병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놔, 이 개새끼들아!”
조교들이 힘으로 짓눌러 훈련병을 제자리로 끌고 왔다. 훈련병은 반탈진했는지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기어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2소대장님!”
조교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2소대장을 불렀다.
‘애새끼들이 빠져 가지고.’
그가 조금 심하게 하기는 했지만,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 정도 훈련이 일상이었다.
요즘 것들은 인권이니 뭐니 해서 자꾸 편하게만 훈련을 받으려고 한다. 장교나 부사관들은 지금도 다들 이 정도 화생방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고 있건만.
“자세 똑바로 잡아!”
2소대장이 고함을 지를 때, 강진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눈에 고개를 아래로 완전히 떨군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훈련병이 들어왔다.
“100번 훈련병, 강진호.”
강진호가 손을 들었다.
“뭐야?”
“상태가 이상합니다.”
강진호가 옆 훈련병을 손으로 가리키자 2소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엄살 피우지 마라! 고개 들어!”
“상태가 안 좋습니다.”
“뭐?”
2소대장이 잡아먹을 듯한 시선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방독면 안이라 눈빛이 보이지는 않지만, 그 흉흉한 분위기만은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100번 훈련병.”
“100번 훈련병, 강진호.”
“네가 교관인가?”
“아닙니다.”
“네가 판단하는가, 아니면 본 교관이 판단하나?”
“교관님이 판단하십니다.”
“그럼 제자리에서 대기하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강진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훈련병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미 반쯤 의식이 없고, 내기가 급격하게 꼬이고 있었다. 사단이 나도 크게 사단이 날 일이다.
“구출부터 합니다.”
강진호가 어깨동무를 한 팔을 풀더니, 옆으로 걸어가 훈련병의 팔을 잡아 빼 자신의 어깨에 걸었다.
“야, 이 새끼야! 너 뭐하는 거야?”
2소대장이 발악하듯 외쳤지만, 강진호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신경조차 쓰지 않고 훈련병을 부축하여 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 새끼 잡아!”
당황한 조교들이 강진호를 잡고 늘어졌다.
“100번 훈련병! 이거 놔라!”
“멈추라고, 이 새끼야.”
하지만 강진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조교를 셋넷씩 달고 불도저처럼 문을 향해 전진했다.
“이 새끼, 뭔 힘이 이렇게 좋아!”
당황한 조교들이 잡고 매달렸지만, 강진호는 전혀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문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문을 두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문 엽니다. 다치기 싫으면 막지 말고 뒤로 물러나십시오.”
“뭔 소리야?”
문밖에서 혹시나 문을 열고 나오려는 생도를 막기 위해 대기하던 조교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비키라는 것 같은데?”
“왜? 열라는 거야?”
“아니, 일단…….”
그 순간!
쿵!
문짝이 비산하듯 튀어 오르더니 하늘로 솟구쳤다. 조교들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허공으로 떠오른 문짝을 보고 입을 벌렸다.
“뭐, 뭐야!”
그들의 눈에 방탄모에 100이라는 숫자가 박혀 있는 훈련병 하나가 동료 훈련병과 조교를 네다섯씩 짊어지고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명의 훈련병을 짊어지고 있었고, 다른 조교들은 다들 100번 훈련병에게 매달려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할 수 없던 조교들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게…….”
사람이 저게 가능한가?
건장한 청년들이 다섯이나 매달려 있는데 그냥 산책하듯이 걸어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뒤져 보면 다섯 명쯤이야 문제없이 끌고 갈 수 있는 근력을 갖춘 사람이야 있을 것이다. 가능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저렇게 아무도 매달리지 않은 것처럼 태연하게 걸을 수는 없다. 너무 비상식적인 광경이라서 실제 상황이 아니라 영화나 CG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강진호가 제자리에 멈추더니, 어깨에 짊어진 훈련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뒤로 살짝 물러섰다.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조교들이 차고 있던 방독면을 바닥으로 내던지더니, 죽일 듯한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무슨 상황이든 간에 훈련병이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분명했다. 훈련병에게 무시 받았다는 생각이 들자 자존심의 상처가 크게 생겼다.
조교가 막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강진호가 바닥에 뉘어놓은 훈련병을 가리켰다.
“크륵, 크르륵.”
그 순간, 바닥에 누운 훈련병이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