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1
#860.
강의하다 (5)
소란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조용히 하라니까.”
천태훈의 목소리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천태훈이 얼굴을 붉히는 순간, 바토르가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거, 조용히 하라잖나.”
바토르의 목소리는 확실히 무게감이 남다르다. 채 통역이 끝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이들도 다들 일단 입을 다물었다.
‘이 새끼들이?’
천태훈은 울컥했지만, 여기서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주인이 첫 촬영을 하는 역사적인 날인데, 소란을 피울 수는 없지. 자자 다들 조용히 지켜보자고.”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난다.
다들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이건 다시는 보지 못할 역사적인 광경일지도 몰랐다.
“그렇지 않나, 주인?”
“…….”
강진호의 눈가가 씰룩인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만 씰룩거리는 모습이 살짝 섬뜩했지만, 바토르는 쪼그라드는 심장을 억지로 펌핑했다.
이건 다시는 오지 않을 이벤트다!
지금이 아니면 그가 언제 강진호에게 엉겨보겠는가. 요즘 들어 일방적으로 얻어맞거나 당하는 일이 늘어났다. 오늘이야말로 혁명을 일으킬 날이다!
바토르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 강진호의 시선을 외면하고는 천태훈을 재촉했다.
“준비가 더 필요한가?”
바토르의 말에 천태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어서 시작하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건가? 주인은 바쁜 몸이다. 이것 말고도 할 것이 많다. 중요한 주인의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마라!”
“……예.”
뭔가 등 떠밀리는 느낌이지만, 말은 맞는 말이었다.
고개를 들어 이현수에게 허락을 구한 천태훈이 큐 사인을 냈다.
“시작하겠습니다. 셋, 둘, 하나…… 고!”
모니터링 화면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었음에도 강진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작했습니다, 시작.”
천태훈이 작게 속삭였다. 그제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푸훗!”
“끅!”
“끄읍! 끄으읍!”
단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반응이 돌아온다. 입을 틀어막으며 억지로 웃음을 참아내느라 다들 얼굴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저는 여러분께…… 마, 마공? 어…… 그…….”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간다.
“여하튼 그 새로운 그 뭔가를 가르칠 강진호입니다.”
“푸흐흐흡!”
“끄윽! 끅! 끄으윽!”
사운드가 멋지게 공간을 채워준다. 웃음을 참는 소리가 추임새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전수를 해야 하는데, 이걸 그러니까…… 아니, 오늘은 아니고, 다음 시간부터 전수를 할 건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이거, 다시 찍으면 안 되나?”
“크하하하하하핫!”
“으아! 으아악! 나 죽는다! 이히히히힛!”
“크흡! 크흐흐흐흐흡!”
다시 폭발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크흡! 야, 찍어! 이거 찍어! 이거 레전드 영상이 될 거다!”
“크으, 이렇게 흑역사를 하나 적립합니다!”
“내일부턴 회주님도 인터넷 스타!”
강진호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다시 가지.”
단호한 지시를 받은 천태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촬영을 한 번 끊고 재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이현수가 슬금슬금 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작합니다. 셋, 둘, 하나…… 고!”
“반갑다, 다들.”
강진호가 깔끔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오오?”
“헐? 좋은데?”
그리고 피드백도 바로 들어왔다. 카메라 뒤에 쭈르륵 앉은 이들은 마치 연극이라도 보는 것처럼 실시간으로 감상을 늘어놓았다.
말투가 바뀌어서 그런지, 훨씬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아니, 말투가 바뀌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뭔가 자세부터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지금부터 너희에게 새로운 마공을 전수할 강진호다. 그리고 그 마공에 전수하기에 앞서, 왜 너희가 이 마공을 익혀야 하는지부터 설명하겠다.”
“오?”
추임새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진지한 강진호의 수업에 다들 숨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너희에게 전수할 마공은 바로…….”
“컷!”
그때, 입구 쪽에 서 있던 이현수가 깔끔하게 NG 사인을 냈다.
강진호가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왜?”
“회주님, 이거 중국애들 가르치는 겁니다. 중국어로 하셔야죠.”
“아…….”
엄숙하던 분위기가 일거에 무너진다.
다시 다들 입을 붙들고 끅끅거린다.
숫제 울면서 바닥을 뒹구는 이들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이고…… 내 복근! 복근 끊어진다!”
“올해 들어서 이렇게 웃어본 게 처음이야.”
모두가 강진호에게서 즐거움을 얻어가고 있었다. 강진호 하나만 빼고 말이다.
강진호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어차피 중국인들만 보는 게 아니잖아. 한국애들도 볼 애들이 있을 거니까. 버전 두 개로 다 찍어야겠지.”
“음, 그럼 일단 적응도 할 겸 한국어로 촬영하겠습니다. 대신 오늘 내로 중국어 버전으로 강의를 한 번 더 해주셔야 합니다.”
“……그러지.”
“야, 다시 시작해!”
“예!”
촬영이 다시 시작되자 다들 기대에 찬 눈으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얼마나 초롱초롱한지 조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강진호 역시 그 눈빛들을 보았다.
그래. 저렇게 기대들을 하는데 그 마음에 호응을 해주는 것이 회주로서 당연한 거겠지.
“새로운 마공을 익히기에 앞서…….”
우득.
강진호의 주먹에서 뼛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러분이 왜 이 마공을 익혀야 하는지부터 알아야겠지.”
이때쯤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한 이들도 나왔다. 하지만 반응할 수가 없다. 강진호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으니까.
‘이현수는?’
바토르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왜인지 입구에 서 있던 이현수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저, 저 새끼?’
위기를 감지하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난 이현수다. 그 덕분에 바토르는 자신이 처할 운명이 무엇인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걸 말로 아무리 설명해도 감이 오지 않겠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보여준다.”
으드득.
이 갈리는 소리도 들린다.
바토르의 얼굴이 희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 마공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내는지, 지금부터 똑똑히 보도록.”
강진호의 고개가 천태훈에게 획 돌아갔다.
“제대로 찍어.”
“예!”
어느새 부동자세가 되어버린 천태훈이 촬영장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러분을 위해…… 대련 상대가 되어주러 오신 분들이다.”
천태훈이 카메라를 뒤로 돌렸다.
모니터링 화면에 바토르와 위긴스를 위시로 한 마염들이 찍힌다. 바토르의 얼굴은 답지 않게 하얗게 질려 있고, 이제 분위기를 파악한 마염들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위긴스, 위긴스.”
“예, 바토르 님.”
“아무래도 토껴야 할 것 같은데, 우리가 잠시 힘을 합치면…… 위긴스?”
위긴스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낀 바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 그의 옆을 지키고 있던 위긴스의 모습이 온데간데없다.
“…….”
이 새끼, 혼자 토꼈어?
혼자? 텔레포트로?
이 의리도 없는 새끼!
다급하게 바토르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주인. 우리 의도는 그게 아니라!”
“똑똑히 봐라, 너희가 배울 마공이 어느 정도인지!”
강진호가 전신으로 시커먼 마기를 줄줄히 뿜으며 마염들에게 달려들었다.
촬영장에서 신을 내던 이들이 모조리 피떡이 되고, 촬영장이 박살 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십여 분에 불과했다.
* * *
“흐음.”
차이커창은 자신의 앞에 선 자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지원 목록이라는 건가?”
“그렇다.”
“좋지, 좋아. 하지만 너희는 기본적인 계약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이성휘라고 했나?”
이성휘는 차이커창의 비웃음을 묵묵히 받아냈다.
“계약이라는 것은 서로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법이지. 서로가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계약을 할 수 있겠어? 그렇지 않나?”
“……무슨 말이지?”
“이런 건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란 이야기지.”
차이커창이 손에 들린 서류를 이성휘에게 집어 던졌다. 하얀 종이들이 휘날리며 이성휘의 몸 주변으로 떨어진다.
“학생이 엄마한테 용돈 받는 것도 아니고, ‘이런이런 것들이 필요하니 내놓아라’, ‘얼마쯤 있으면 된다’…… 이런 걸 서류라고 가지고 왔다는 게 충격스럽군.”
“나는 그저 전달할 뿐이다.”
“전달하는 건 비둘기도 할 수 있지. 너희가 조율과 전달을 맡았다면, 양쪽의 입장을 같이 전달해야겠지. 적어도 지원을 요구한다면 어느 정도의 병력이 어떻게 침공해 들어가니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해달라는 보고서 정도는 가져와야 하지 않겠나?”
“…….”
차이커창이 묘한 눈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로 너는 과거에 이중걸의 제자로 총회의 업무를 봤다고 알고 있는데?”
“…….”
“그런 이가 이 정도 기본적인 사실도 모르다니. 그러니 총회가 그 꼴을 당했겠지.”
“그럼 그쪽은?”
“음?”
“그럼 그쪽은 왜 그런 걸 그리 잘 알면서도 강진호에게 박살이 났지?”
“……다시 한 번 지껄여 보시지?”
“내가 못할 것 같나?”
이성휘가 두 눈을 부릅뜨고 차이커창을 노려보았다.
“네 말대로다. 나는 멍청하지. 그리고 매국노다. 내가 남은 것은 강진호를 죽이겠다는 일념밖에 없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
이성휘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나는 잃을 게 없는 놈이라는 뜻이야. 나를 도발해서 뭘 얻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해두지. 그게 아니면 잃을 게 없는 놈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무섭군. 무척이나 말이야.”
차이커창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성휘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원한 대로 수정해 주지. 보고서 따위야 금방 받아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어차피 그놈들도 너희를 만만히 보고 있지는 않으니까. 최대한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가져온 거다.”
“따로 보고서를 받을 필요는 없어. 이런 푼돈 따위 얼마든지 지원해 주지.”
차이커창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병신들과 함께 일하면 내가 병신에게 맞춰야지. 병신더러 일반인이 되어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할 수 있다면 벌써 했겠지.”
“…….”
“너희가 해야 할 건 일반인이 되는 게 아냐. 짐승이 되는 거지. 준비는 과할 정도로 해주겠다. 원하는 건 다 지원해 주지. 대신!”
차이커창이 이를 드러냈다.
“반드시 강진호의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어야 할 거야. 후퇴는 없다. 만일 너희가 겁을 먹어 열도로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내가 직접 너희의 목에 칼을 박아줄 테니까.”
“……그럴 일은 없어.”
차이커창이 비릿하게 웃었다.
“그랬으면 좋겠군.”
차이커창이 의자를 빙글 돌렸다. 뒤쪽으로 몸을 돌린 차이커창이 조금은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용건 끝났으면 당장 꺼져. 너 같은 놈과 같은 곳의 공기를 마신다는 것만으로도 두드러기가 돋을 것 같으니까.”
“……원하는 대로.”
이성휘가 방을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차이커창이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너희 따위가 강진호를 잡겠다고?’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발목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에게 발목을 잡힌다면, 강진호는 절대 홍왕계를 방해할 수 없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자자, 나름 공들여 준비했다고. 이제 너희도 성의를 보여야겠지. 그렇지, 강진호?”
차이커창의 낮은 웃음소리가 방 안을 천천히 메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