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4
#863.
개선하다 (3)
“세금?”
“네, 세금.”
“세금을 내?”
“예. 세금요.”
강진호가 멍하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예.”
“어…….”
강진호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진다는 게 웬만해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세금을 내?
세금?
문파가 세금을 낸다고?
강진호의 머리가 기괴하게 옆으로 꺾인다. 별것 아닌 그 한마디가 그의 머리에 과부하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세금이라고?”
이현수가 강진호 대신 이현주를 다그쳤다.
“네가 말하는 그 세금이 영리 활동에 의한 이득분의 일정 퍼센트를 나라에 가져다 바치는 걸 의미하지는 않겠지?”
“맞습니다.”
“……그 세금을 내자고?”
“예.”
이현수가 환하게 웃었다.
얼마나 환희 웃는지 눈빛만으로도 따뜻함이 전해질 정도였다.
“미쳤냐?”
나온 말은 좀 달랐지만.
이현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무슨 성실 납세자 포상이라도 노리냐! 나라에서 징수하지도 않은 세금을 우리가 왜 국세청 앞마당에 들어다 바쳐야 하는데? 그러면 나라에서 착한 어린이 도장이라도 찍어준대?”
“물론 그럴 리는 없겠죠.”
“그런데 왜?”
이현수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 띠꺼워 죽으려는 표정을 본 이현주의 이마에도 핏대가 솟았다.
“저기, 실장님.”
“왜?”
“……회의 중이니까 적당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회의 때는 감정을 절제하고 안건을 진행해야겠죠. 그러니 우선은 좀 앉아주세요. 뒈지기 싫으면.”
“…….”
이현수가 가만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
상황이 조금 정리되자 강진호의 머리가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 머리가 좀 굳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극복했다.
“그러니까…….”
세금, 세금이라고 그랬지.
강진호가 조금은 묘한 얼굴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래, 세금을 낸다고?”
“예.”
강진호의 손가락이 볼을 긁는다.
‘세금이라…….’
어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강진호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세금을 내는 무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교는 당연히 세금을 내지 않았다.
만약 황제가 마교에게 세금을 내라고 했으면, 아마 황제의 모가지를 똑, 따서 축구를 찼을 것이다. 살고 싶으면 되레 황제가 마교에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조공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가만히 돌이켜 보니 황제가 그에게 자주 선물을 보냈던 것 같기는 하다. 그 선물이라는 것에 곡식이나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던 것을 감안하면, 선물이라기보다는 뇌물에 가깝겠지.
여하튼 그는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세금을 내기보다는 보호세를 받는 쪽이었다.
물론 이건 그들이 마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림이나 무당 같은 곳도 나라에 돈을 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으니까. 되레 공을 세웠을 경우, 나라에서 포상을 내리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무인이라는 것들은 내는 돈은 없이 받아먹기만 하는 존재라는 거지.’
슬프지만 이게 사실이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무인들은 뭔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모만 할 뿐인 존재다. 타인의 생산물에 붙어서 살아가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금이라…….
“이유는?”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는 이현주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도덕심이 넘쳐 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녀가 제안하는 것들은 언제나 회의 이득과 직결된 것들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강진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현수가 버럭했다.
“아니!”
이현수가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 강진호가 손을 살짝 들었다. 이현수가 입을 다물자 강진호가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위긴스 데려와.”
“호오?”
위긴스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세금이라고 했나?”
“예.”
다른 이들은 모두 빠진 뒤였다.
아무래도 조금은 민감한 문제인지라 모두와 함께 회의를 할 수는 없었다. 회의실에 남은 것은 강진호와 이현수, 그리고 이현주와 위긴스뿐이었다.
바토르나 장민, 그리고 방진훈 같은 경우는 충분히 참여할 자격은 되지만, 굳이 참여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돈에 관련된 문제에는 딱히 관심이 없기도 하고.
“좋군, 아주 좋아.”
위긴스가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세금을 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뭐지?”
총명한 재능을 발견한 노교수가 제자를 귀여워하는 것 같은 모양새다.
“우선…….”
이현주가 고개를 슬쩍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우선이라는 말을 먼저 붙이겠습니다.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끼어들어서 어떻게든 다른 소리를 늘어놓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셔서요.”
“그렇지, 그렇지. 타인의 말을 끊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지.”
“끄으응.”
이현수가 앓는 소리를 냈지만, 위긴스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 왜 그런 황당한 소리를 했는지 이유라도 들어볼까?”
“우선은 도덕적 문제 때문입니다. 수익이 있다면 세금을 내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니까요.”
“너무도 당연하겠지. 그러니 그건 이유가 아니겠지. 그렇지 않나?”
“예.”
“그럼 빤한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진짜 이야기를 해보자고. 굳이 세금을 내려 하는 이유가 뭐지?”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활동 반경?”
“네.”
이현주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질문은 위긴스에게 받았지만, 대답은 강진호에게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회주님도 느끼셨겠지만, 이곳에 움츠려 숨어 사는 것도 이제는 한계가 왔습니다.”
“흠.”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어째서?”
“말 그대로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시대는 모두가 바뀌었지. 우리만 바뀐 게 아닐 텐데?”
“타국과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선 중국이나 유럽은 얼마든지 자신들을 숨길 수 있습니다. 국토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에 비해 한국은 버려진 땅이 거의 없는 수준이죠.”
“일본은?”
“일본은 이미 합법화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야쿠자도 세금을 내고 활동하는 동네죠. 그들이 보호세를 거두며 먹고살던 시절은 예전에 끝났습니다. 뒤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겉으로는 멀쩡한 회사를 차려놓고 살고 있습니다.”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회주님.”
이현주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회가 다루는 금액이 커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쉬었다.
“미안한데…….”
“예.”
“그 ‘이런 식’이라는 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군. 조금 귀찮은 부탁이 될지 모르겠지만, 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
“네. 설명드리겠습니다.”
이현주가 옆에 놓인 서류를 강진호와 이현수, 그리고 위긴스에게 한 부씩 내밀었다. 미리 준비를 해온 모양이었다.
“총회의 수입은 대략적으로 세 부류입니다.”
이현주의 목소리가 청량하다.
“전국에 가지고 있는 건물과 빌딩들에서 나오는 임대 수익이 첫 번째입니다. 시세에 따라서 건물을 사고팔아 차익 실현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임대 수익입니다.”
“음…….”
“두 번째로는 총회가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입니다. 이 사업들은 대부분 다른 이들에게 위임되어 있습니다. 운영을 넘겨주고 일정 수익금만 챙기고 있죠.”
“어째서?”
“불법적이니까요.”
이현주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전임 회주는 총회의 운영비를 벌기 위해서 온갖 사업을 다 벌였습니다. 하지만 세금이 엮이지 않는 사업이야 빤하죠. 굳이 제 입으로 말해야 할까 싶지만.”
강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이현주를 배려해 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건 사람으로서 지켜줘야 할 일이다. 자신의 조부에 험담을 제 입으로 늘어놓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어.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는 각 문파들로부터 들어오는 후원금들입니다. 정확하게는 회비에 가깝겠죠.”
“그런 게 있나?”
“유명무실하기는 하지만, 나름 액수가 됩니다.”
“그럼 총회에 가입한 이들은 월급을 받으면서 회비도 낸다고?”
“예.”
황당하다.
그런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시스템을 지금까지 아무도 고치지 않았다는 것도.
“그래. 그럼 뭐가 문제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회주님. 회에 쌓여 있는 자금은 지금도 굉장한 수준이지만, 명백히 그 수입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음?”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지금 회의 수입은 이십 년 전에 비해 반 토막이 났습니다. 아무래도 각종 불법 사업이 줄어들고 있는 게 가장 큽니다. 예전에는 정말 무차별적으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심지어 마약 유통까지 했더군요.”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마약이라니.
총회는 그래도 무인들의 문파다.
같은 폭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곳이지만, 조폭과는 달랐다. 총회는 적어도 무의 극의를 이루겠다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마약 사업이라니.
“과하군.”
“쓰레기 같은 짓이죠.”
이현주는 가차 없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저지른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옹호도 없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방진훈 이사가 회주 자리에 올라 회를 안정시키기 전까지는 회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해결사였습니다.”
“해결사?”
“적당히 외부의 권력자나 불법 세력의 의뢰를 받아 적당한 이를 제거해 주는 일이죠.”
“……낭인 같은 건가?”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농담이 아니야.’
과거 중원에서라면 마교도 하지 않는 짓이다. 그런 짓을 하는 이들은 돈만 좇는 낭인이나 흑도의 무리뿐이었다. 둘 다 어느 쪽에서도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이들이었다.
과거에 비해 이 세계의 도덕심이 줄어든 것일까?
‘그럴 리는 없지.’
사람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의식은 발전했을 것이다. 다만, 과거에 비해서도 돈이 압도적으로 중요해졌을 뿐이다.
“그렇군. 그럼 결과적으로…….”
강진호가 지금까지 들은 것을 정리했다.
“불법적인 일들을 하지 않게 되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급감했다는 건가?”
“예.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그 급감한 수입마저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왜?”
“자동화 때문이죠. 세금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돈뭉치가 옮겨 다니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알음알음 사업체의 수입을 숨길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벌어들인 수입조차 제대로 회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강진호가 가만히 이현주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결론은?”
“예, 회주님.”
이현주가 살짝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무릎 위에 올려둔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더없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듯 말이다.
마침내 이현주의 입이 열렸다.
“저는 총회를 합법적인 세력으로 만들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저희도 밝은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됐습니다.”
이현주의 단호한 말을 들은 이현수가 아주 본인다운 감상을 내놓았다.
“……미쳐도 제대로 미쳤네.”
심지어 강진호도 동의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