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67
#866.
밀려오다 (1)
“투자회사?”
“대충 명칭만 그렇게 붙은 겁니다.”
“……괴이한 짓을 하는구나.”
황정후 회장이 끌끌대며 웃었다. 뭔가 유쾌한 모양이었다.
“합법화라, 합법화……. 좋은 생각이지. 간만에 괜찮은 생각을 해냈군.”
“이 방향이 옳다고 보십니까?”
“결정 다 해놓고 늙은이 생각은 왜 물어보누?”
“사업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회장님의 식견을 따라갈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칠 적당히 해. 내가 그런 말 듣는다고 좋아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 텐데?”
“사실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흐음~ 그래, 어디 보자.”
황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합법화, 기업화를 할 때 얻는 이득이 훨씬 크겠지.”
“훨씬?”
“당연하지. 요즘 세상에 불법 자금을 어떻게 돌리나. 집 앞 편의점에서 콜라 하나 산 것까지 다 기록으로 남는 세상인데.”
황정후가 혀를 찼다.
“예전에 현금이 돌던 시절에는 이게 뒷돈 빼먹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제는 꿈도 못 꾼다니까. 어설프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뒷돈을 챙기는 게 아니라 뒷방에 갇히게 되지. 철창 안에 갇히는 취미는 없어.”
황정후가 고개를 내저었다.
“감옥도 다녀오셨습니까?”
“몇 번 갔지. 그게 그런 시절이었거든. 건물 하나를 짓는데 수도관을 이쪽에 설치하면 법 위반이라 그래서 저쪽으로 옮겼더니, 그건 다른 법 위반이래.”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를 택해서 했더니, 건축법 위반으로 걸리더구만. 그렇게 전과를 하나하나 쌓다 보니, 나중에는 은하수가 떨어질 판이 됐거든. 그래서 유치장 신세 몇 번 졌지.”
황정후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들이 이해를 해주니까 욕은 안 먹는 거지. 나 사실 전과자야.”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농담도 안 받아주는군. 에잉.”
“합법화를 하는 게 이득이 남는다는 거군요.”
“그렇지. 그런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을 텐데? 온갖 잡쓰레기들이 달라붙을 거야.”
“음…….”
“세상이라는 게 그래. 돈은 썩은 물이거든. 그리고 썩은 물에는 벌레가 꼬이지. 일단 뭔가를 하려고 하면 꼬이는 놈들이 엄청 많을 거야.”
“예를 들면?”
“뭐가 있겠나. 바로 정치인 놈들이지. 사회의 암 덩어리 같은 놈들.”
황정후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는 평생을 정치인들에게 시달렸다. 정치인들이 부패한 게 당연하던 시절, 그의 돈을 뺏어먹겠다고 달려드는 놈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시절에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오물에 파리가 꼬이듯이, 정치인 놈들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거든.”
“음…….”
“그런 놈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황정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파리를 잡으려면 두꺼비를 불러야지. 사람이 손을 쳐봐야 별 소용이 없거든. 더 큰 거물을 개입시키면 돼.”
“거물이라면?”
“똑같은 정치인이지. 어설픈 국회의원이 달려들지 못할 정도의 거물. 적어도 당대표쯤은 되는 인간이 비호를 해줘야 어설픈 것들이 달려들 생각을 못하겠지.”
강진호가 살짝 눈을 찌푸렸다.
해결책으로 괜찮은 방법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계에 줄을 대고 그 비호를 받는 것도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다. 강진호는 스스로 깨끗하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생각도 하지 않는다.
사람을 수도 없이 죽인 그에 비하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웬만한 범죄자는 다들 천사 수준이니까.
하지만 이건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을 동반하는 방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음…….”
“정면 돌파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힘과 돈이 많이 들 걸세. 그렇게 해서 얻는 이득이라 봐야 조금의 우월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은가?”
“예.”
황정후가 혀를 끌끌 찼다.
“부정을 저질러서 이득을 꾀하자는 게 아니야. 정상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 벌이는 일에 딴지를 걸어올 놈들을 막아보자는 거지. 그리 양심을 따질 문제도 아닐 텐데?”
“예.”
그럼에도 강진호의 표정이 펴지지 않자 황정후가 눈을 찌푸렸다.
“이보게, 진호.”
“예, 회장님.”
“자네, 대장 아냐?”
“예?”
황정후가 굳은 얼굴을 펴지 않고 말했다.
“식구를 챙겨야 하는 대장은 자기 손에 오물이 묻는 걸 주저해서는 안 돼. 내 마음이 편하고 식구들에게 부담이 가는 것보다는 내가 오물을 묻히는 대신 그들이 더 편해지는 쪽을 택해야지.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어.”
“옳은 말씀이십니다.”
“눈 한 번만 감으면 돼.”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래. 그럼 적당한 양반을 소개해 줄까?”
“아니요. 그건 괜찮습니다.”
“응? 괜찮다고?”
“예. 이미 줄을 대놓은 정치인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그쪽으로 손을 써볼 수 있을 겁니다.”
“안 그런 척하면서 수작질은 다 하고 있었군.”
“제가 한 게 아니라서…….”
강진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그럼 다행이지. 그런데 기업이라…….”
황정후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분야가 다르니까 딱히 엮일 일은 없겠지만, 혹여 우리 시장을 파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 일 없습니다.”
“설사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재계 순위가 밀리는 것도 영 달갑지 않은데. 어느 정도 규모로 출범하는지 알고 있나?”
“그게 저는 잘…….”
“쯧.”
“아, 받아놓은 서류는 있습니다.”
강진호가 휴대폰을 꺼냈다. 하지만 아무리 낑낑거려도 서류가 열리지 않는다.
“뭐 하는 건가?”
“이게 좀…….”
강진호가 휴대폰으로 전송된 서류를 가리키자 황정후가 혀를 찼다.
“자네, 요즘 사람…… 그래, 아니지. 내가 영감님 앉혀놓고 헛소리를 했구만.”
“…….”
황정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눌렀다.
사람을 부른 황정후가 강진호의 폰을 건네주고는 자료를 출력하라고 지시했다. 강진호에게 잠금 패턴을 물어본 비서가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력된 서류와 휴대폰이 돌아왔다.
강진호는 휴대폰을 받아 들었고, 황정후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비서에게 커피를 타 오라 시킨 황정후가 담배를 꺼내 강진호에게 내밀었다.
“자.”
“예.”
강진호가 담배를 받아 들고는 불을 붙였다.
“후우.”
황정후도 담배를 물고는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보자, 보자, 어디 보…….”
황정후의 입이 다물어졌다.
눈이 살짝 커진다.
서류를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황정후가 서류를 마구 넘겼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 안경을 가지고 왔다.
“…….”
안경을 쓴 황정후가 서류를 처음부터 다시 살피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벌받는 느낌인데…….’
아련한 기억 속에서 뭔가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이번 생이 아니라 지지난번 생에. 첫 번째 삶에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어머니에게 내민 기분이었다.
한참을 서류를 들여다보던 황정후가 탁자 위에 턱하고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말없이 강진호를 바라보던 황정후가 허탈한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새하얀 연기가 두어 번 피어오르고 나자 황정후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도둑놈 새끼들.”
“…….”
“나라의 돈이란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있었구나. 그러면서 세금도 안 내?”
“…….”
“야,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이만큼을 처먹고 있으면서 그걸 숨겼어? 나는 산골짜기에서 애들이 땅 파먹고 수련하며 산다기에 불쌍해서 이것저것 도와줬더니! 이런 상도의도 없는 놈들 같으니!”
“제,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너도 똑같아! 네가 거기 대가리 된 게 언제야! 그럼 당연히 알았을 거 아냐?”
“…….”
알았다고 말을 해도 욕을 먹고, 몰랐다고 말을 해도 욕을 먹을 상황이다. 가드 불능기에 걸린 강진호가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니까, 이 중에서 합법화할 수 있는 것만 합법화하고, 남은 것들은 팔아 치워서 현금화 한다, 이거지? 그걸 무리 없이 회사 자본으로 출자할 수 있게 하면 되는 거고?”
“아니요.”
“뭐가 또 잘못됐어?”
강진호가 살짝 주춤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합법화할 목록입니다. 따로 추린 겁니다만…….”
황정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강진호도 그 반응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뭐랄까…….
하루하루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가던 사람에게 불법 도박으로 딴 거금을 보여주는 기분이다.
황정후는 일개 월급쟁이가 아닌, 대기업을 일군 회장이라 이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황정후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생의 허탈함을 느끼는 중이라 해야 할까?
“……이 도둑놈 새끼들.”
매서운 비난이 쏟아졌지만, 뭐라 변명을 할 수가 없다. 금전 감각이 지극히 부족한 강진호가 보기에도 저기 적힌 숫자들은 아득하다. 너무 아득해서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이게 뭔가 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현주도 그가 뭔가를 알 거라 생각하여 서류를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료를 남기긴 해야 하고, 보고를 하긴 해야 하니까.
“남들은 하루하루 피땀 흘려 일하는데, 이 날강도 같은 놈들이!”
“그것도 나름 피땀 흘려…….”
“부동산 다 처먹고, 재개발 구역 다 처먹는 게 피땀이냐? 피땀이야? 네 코로 피가 쏟아져 봐야 피땀이 뭔지 알겠냐?”
“…….”
“이 새끼들, 꼬라지 보니 땅 먼저 사놓고 그걸 개발 구역으로 돌렸구만. 돈을 얼마나 처먹였으면……. 세상 눈먼 돈은 야쿠자랑 마피아가 다 처먹는다더니, 한국에 더한 놈들이 있었네.”
강진호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중걸에게 경의를 표했다.
대한민국의 어떤 이가 황정후에게서 저런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 불법인가, 합법인가를 떠나서 그 수완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합법화해. 내가 도와준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없어. 여기서 나오는 돈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처먹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려서 그러는 거니까.”
“…….”
“술, 오늘은 술 한잔 해야겠어.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땅장사나 할걸. 기업이고 뭐고 다 뭔 소용이 있어?”
“가, 가시죠.”
“그리고!”
“예?”
“오늘 니가 사.”
“…….”
황정후의 눈이 불타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누구한테 뭘 얻어먹은 게 사십 년이 넘었다. 오늘 내가 제대로 한 번 얻어먹어 줄 테니까, 지갑 열어.”
“…….”
“내가 이런 놈한테 돈을 주고 있었다니. 너, 네 통장에 들어가는 돈 오늘부로 끊을 테니까 그리 알아. 알았어?”
“……예.”
“가자! 마셔야겠어! 빌어먹을.”
그리고 그날, 강진호는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황정후의 주량이 나이에 맞지 않게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리고 황정후가 막걸리를 즐긴다는 세간의 인식이 개구라라는 것.
새벽이 될 때까지 온갖 비싼 술은 다 퍼먹은 황정후는 강진호에게 계산서를 집어 던지고는 집에 가버렸다.
아, 한 가지 더.
“네? 체크카드도 한도가 있어요?”
신용카드뿐 아니라 체크카드도 결제 한도가 있다는 것을 생전 처음 알게 된 강진호가 결국 계산을 위해 이현수를 소환했다.
이현수의 끝없는 투덜거림이 새벽의 강남 거리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