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
#86.
훈련하다 (5)
“이, 이 새끼, 왜 이래?”
조교가 당황하여 바닥에 누운 훈련병에게 달려들었다.
“97번 훈련병! 97번 훈련병!”
어깨를 잡아 흔들어보았지만, 의식이 반쯤 나가 있었다. 아주 의식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지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이거 어떻게 해? 의무병! 의무병!”
한눈에 보기에도 다급해 보였는지, 조교는 다급하게 의무병을 찾았다.
“갑니다!”
의무병이 전력으로 달려왔다.
슬라이딩을 하듯 훈련병 앞에 앉은 의무병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어떻게 좀 해봐!”
“예.”
의무병이 뭔가 조치를 하려고 했지만, 의사도 아닌 그가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버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리던 의무병이 고함을 질렀다.
“앰뷸런스! 앰뷸런스 빨리요!”
“이 새끼야, 지금 앰뷸런스가…….”
조교가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을 엄두도 못 내고 다급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처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간부가 와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이럴 때는 보이지 않는 게 간부 아니던가.
“2소대장님한테 보고해! 빨리!”
“예!”
옆에서 보고 있던 조교 중 하나가 전력으로 CS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2소대장님! 훈련병이 이상합니다.”
“뭔 소리야?”
“경련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빨리 어떻게…… 쿨럭! 조치를 취해야할 것 같습니다.”
2소대장이 사색이 되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방독면도 없이 CS실 안으로 들어와 뻘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2소대장이 다급하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야! 뭔 소리냐고!”
방독면을 다급하게 벗으며 쓰러져 있는 훈련병을 본 2소대장은 손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으로 보아도 당장 숨이 넘어갈 상황이었던 것이다.
“군의관 어디 갔어? 군의관!”
의무병이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도 당황하여 군의관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휘소 쪽에 계실 겁니다!”
“이런 씨발! 화생방 훈련을 하는데 대기도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이 미친 새끼! 당장 불러와! 당장!”
의무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2소대장은 손에 들고 있던 방독면을 의무병의 얼굴을 향해 던져 버렸다.
퍼억!
뜬금없이 방독면에 얻어맞은 의무병이 어안이 벙벙해 2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니가 가면 누가 환자 볼 거야! 너는 환자 보고, 다른 놈이 가야 될 거 아냐!”
“아…….”
의무병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더니 다시 환자의 어깨를 부여잡고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97번 훈련병! 97번 훈련병! 정신 차려!”
의무병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떻게 좀 해봐!”
훈련병의 얼굴이 꺼멓게 죽어가자 2소대장도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러다 잘못하면 사람을 잡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군의관 빨리 데려오라고!”
“예!”
조교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하지만 2소대장은 직감적으로 군의관이 도착하기 전에 무슨 사단이 날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전을 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아!”
옆에서 넌지시 말하는 조교의 말에 2소대장은 다급하게 무전기를 들었다.
“화생방 훈련장에 사고 발생. 다시 전파한다. 화생방 훈련장에 사고 발생. 군의관은 즉시 화생방 훈련장으로 이동. 반복한다. 군의관은 즉시 화생방 훈련장으로 이동.”
무전으로 군의관을 부르기는 했지만, 사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훈련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얘 무슨 지병 같은 거 있어?”
“자, 잘 모르겠습니다. 훈련병 질병 상황은 군의관님께서 체크하셨습니다.”
“이런 제기랄.”
이러다 정말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꼴을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2소대장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잠시만요.”
100번 훈련병 강진호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훈련병을 향해 다가갔다.
“비켜, 인마! 저리 나가 있어!”
조교가 당황하여 소리쳤지만, 강진호는 고개를 슬쩍 저었다.
“잠깐 비켜보십시오.”
“뭐?”
비키랬더니 역으로 그 말을 돌려주는 강진호였다.
“이 새끼야, 이게 보통 상황으로 보여?”
“아니니까 이러는 겁니다.”
“…….”
조교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고 보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던 97번 훈련병의 이상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도 강진호였다.
‘사회에서 의대라도 다녔나?’
의대생들 중에서도 학과 중에 입대를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 마련이었다.
“무, 물러서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훈련병의 손에 환자를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이미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막무가내였다.
“야, 인마!”
“죽습니다.”
조교의 눈이 흔들렸다.
“내버려 두면 3분 내로 사망합니다.”
조교가 고개를 돌려 2소대장을 바라보았다. 판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제기랄.’
2소대장은 이 엿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봐도 훈련병의 상태는 시시각각 좋지 않아지고 있었다. 군의관이 도착한다고 해도 뭔가를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가 맡은 훈련에서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 순간, 그의 커리어는 끝이다. 절대 되돌릴 수가 없다.
“놔둬 봐.”
“교관님!”
“놔둬 보라고.”
2소대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태가 강진호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에서까지 강진호를 배제할 수는 없다.
강진호는 아무 말 없이 조교를 밀어내고 훈련병의 옆으로 다가갔다. 모두가 멍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흠…….”
강진호가 훈련병의 가슴에 손을 대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과 인후까지 탁기가 가득하다. 현대의 의학으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꾸욱!
강진호의 손이 훈련병의 윗배를 지그시 눌렀다.
“쿨럭! 쿨럭!
커다란 기침 소리와 함께 훈련병의 입에서 피가래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러다 사람 잡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훈련병의 반응이 격렬하다. 팔이고 다리고 할 것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잡아! 새끼들아! 빤히 보고 있지 말고 잡으라고!”
2소대장의 일갈에 조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훈련병의 팔다리를 잡아 눌렀다.
강진호는 주변에 상황에 신경 쓰지 않고 탁기를 몰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여기.’
우웅!
강진호의 손에서 밀려 올라간 내기가 훈련병의 기운을 자극했다.
“쿨럭! 쿨럭!”
그러자 훈련병이 전신을 뒤틀더니 입으로 피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커억!”
“저러다가 숨넘어가는 거 아냐?”
“하아아…….”
2소대장의 걱정이 무색하게 순간적으로 훈련병이 긴숨을 내쉬더니 경련이 잦아들었다.
“뭐야?”
더 이상 경련을 일으키지 않자 안심이 되는 게 아니라 덜컥 겁부터 났다.
“숨 끊어진 거 아냐? 의무병!”
의무병이 다급하게 훈련병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댔다.
“호흡 정상적입니다. 좀 가파르기는 한데, 이 정도면…….”
“그래?”
그제야 훈련병을 짓누르고 있던 조교들도 하나둘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훈련병의 숨이 편해진 것 같아 보이자 의무병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정되었습니다. 군의관님 오셔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아…….”
2소대장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었지만, 주위에 눈이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정말 혼이 나가 버릴 것 같은 5분이었다.
“이 새끼, 왜 이런 거야?”
“저, 저도 잘…….”
의무병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훈련병과 2소대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너, 뭐한 거야?”
2소대장이 강진호를 보며 날카롭게 말을 했다.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는 찰나에 저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가 있었다.
“여깁니다! 군의관님!”
의무병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군의관이 훈련병에게 뛰어가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의무병을 보며 말했다.
“뭐야? 숨넘어간다 그랬잖아?”
“방금 괜찮아졌습니다.”
“97번 훈련병이면…….”
훈련병의 방탄모에서 번호를 확인한 군의관이 옆에 끼고 온 차트를 열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약한 천식 기미가 있는 훈련병이군. 하지만 이 정도의 훈련에서는 별문제가 없었을 텐데?”
군의관의 눈이 CS실로 향했다.
“저거, 문짝은 왜 저리됐어?”
“그게…….”
의무병이 설명을 구하는 눈으로 다른 조교들을 바라보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애를 안에다 얼마나 뒀던 겁니까?”
군의관이 날카로운 눈으로 2소대장을 보며 물었다.
“그리…… 오래 있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나 있었냐고 물은 거 아닙니까!”
“그 시간을 재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군의관이 조교들을 보고 말했다.
“야, 원래대로 한 거 맞아? 규정대로?”
다들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하지 못하자 군의관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훈련병들이든 조교들이든 조사해 보면 다 알 테니까, 책임 소재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죠. 앰뷸 불러놨으니까 수도병원에 보내서 검사부터 해야겠습니다.”
“수도병원요?”
“지금 애가 천식 발작으로 쓰러졌는데 후유 장애라도 남으면 어쩌려구요? 당장 준비하세요!”
군의관의 말에 2소대장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훈련 규정을 어긴 건 바로 그였다. 훈련병에게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해도 발작의 원인을 찾으려 할 테고, 그렇게 되면 큰 문제가 될 확률이 높았다.
“꼭 입원해야 합니까?”
“장난하나! 이 사람이!”
군의관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사람 죽을 뻔했잖아! 이거 제대로 안 밝히면 보나마나 내가 문제 있는 애를 CS실에 넣어서 사고 생겼다 그럴 텐데,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해! 난 더 할 말 없으니 앰뷸 태워서 보내요.”
“아니, 그게…….”
그때, 훈련병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몸을 돌렸다.
“야, 어디가?”
“복귀합니다.”
“어, 어디로?”
강진호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조교들을 보더니 훈련병들이 서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제자리요.”
“아…….”
훈련병이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하기야 따져 보면 이 상황에 이곳에 훈련병이 있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래, 일단 복귀해.”
허락이 떨어지자 강진호는 가볍게 경례를 하고는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갔다.
“쟤는 뭐야?”
의무병이 군의관의 귀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얘가 쓰러졌을 때, 쟤가 들쳐 업고 조교들 무시하고 밖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문짝 다 부수고?”
“예.”
군의관이 고개를 돌려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놈들이 사람이 발작을 일으켰는데, 최우선적으로 밖으로 빼내지는 못할망정 사람 살리려는 애를 막아? 미친놈들 아냐, 이거?”
군의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너, 이 새끼들. 내가 대대장님한테 보고해서 다 뒤집어엎어 버릴 테니까, 각오해!”
군의관의 분노에 찬 음성을 들으며 2소대장은 눈을 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