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1
#870.
밀려오다 (5)
“흥.”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카타 유지는 자신의 얼굴을 살짝 문질렀다.
‘좋지 않은 버릇이야.’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면 본심이 잘 숨겨지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나와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건 정말 좋지 않은 버릇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눈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나카타 유지가 알아채지 못하는 눈도 있기 마련이다.
본심을 완벽하게 숨길 줄 알아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늙은이가 내게 순순히 모든 것을 내줄 리는 없겠지.’
사람의 생각을 읽는 건 아주 쉽다. 내가 그 사람이라면 어떨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수령은 강하고 음험하고, 아주 잔인한 나카타 유지다. 나이가 들어 저런 모습이 된 나카타 유지가 지금 수령의 입장에 있다면 어찌 움직일 것인가.
‘하나도 내주려 하지 않겠지.’
저자는 욕심 많은 돼지다.
손에 들고 있는 것보다 손에 쥐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까워하는 자.
방석 밑에 천금을 묻어두고 있으면서도 거지 앞에 떨어진 동전 하나를 탐내는 자.
그런 이가 나카타 유지에게 권위와 실적을 내준다?
그럴 리가 없다.
그동안 수령이 나름 신상필벌이 명확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더없이 계산적이고 잔인하기 때문이지.’
어설프게 계산적인 자는 눈앞에 떨어진 이득에 목을 맨다. 하지만 수령은 그런 어설픈 자가 아니다.
지금 당장을 참으면 더 큰 이득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장 눈앞의 푼돈을 줍는 것보다는 공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는 게 몇 배는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고 있는 자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겠지.’
체면과 훗날의 이득을 탐하기에 한국은 너무 먹음직스러운 땅이다.
저 땅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수령의 지배력은 두 배 이상 상승할 것이다.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득은 계산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그걸 다른 이들과 나누겠다고? 저 탐욕스러운 자가?
그럴 리가 없다.
나카타 유지가 목을 주물렀다.
금방이라도 목에 칼이 박힐 것 같은 느낌이다. 주변에 분명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수령의 대전에서 나올 때부터 세상 모든 것들이 그를 감시하는 것 같았다.
‘쉽게 당해주지는 않는다, 늙은이.’
나카타 유지가 얼굴을 주무르던 손을 뗐다. 그의 표정이 완벽하게 무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단 그에게 권한을 준 이상, 분명 한동안은 지켜볼 것이다. 그가 맡은 임무의 성패가 갈리는 순간이 포인트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늙은이.’
잊지 말라고.
늙은 너구리가 여러 굴을 판다고 해서 반드시 젊은 여우보다 현명하지는 않아.
나카타 유지가 목을 꺾으며 앞으로 나갔다.
그가 준비한 것이 더 지독한지, 아니면 수령이 준비한 것이 더 지독한지의 싸움이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승부의 결과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일단은 집중해 볼까?”
나중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자.
지금부터 해야 할 것이 산더미니까.
제아무리 신니치카이와 수령의 권위를 등에 업었다고 한들, 이 원정에 참여하는 이들의 면면은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감히 통제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원정의 전력이 강대하다는 뜻도 된다. 이 전력이라면 신니치카이 전체와도 자웅을 겨뤄볼 만할 것이다.
하지만 나카타 유지는 들뜨지 않고, 성공을 자신하지도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지켜본 강진호는 불가해한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나카타 유지의 예상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측정이 끝났다 싶으면 그 결과를 뒤집어엎고, 재조정을 끝내면 다시 뒤집어엎는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강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강한 자였다.
이런 이를 상대로는 필승을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나카타 유지가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쭈욱 훑었다.
‘그렇기에 의미가 있지.’
강진호를 잡아낼 수 있다면, 그 강진호를 잡아내고 한국을 움켜잡을 수만 있다면, 나카타 유지도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힘이란 자신에게서 나오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서 나오기도 하니까.
권위와 위엄, 그리고 두려움은 결국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을 손에 넣는다면, 나카타 유지는 높이 비상할 것이다.
강진호라는 괴물을 쓰러뜨렸다는 결과만 있으면 된다.
강진호가 강대하고 잔인한 만큼, 그의 위상도 수직상승할 것이다.
이제 그는 증명할 것이다.
그의 실력을, 그의 능력을…….
그리고 그의 야망을.
강진호의 목을 베어내는 것으로.
* * *
“음.”
“무슨 일 있어? 아까부터 왜 자꾸 목을 주물러?”
“……잠을 잘못 잤나?”
강진호가 눈을 찌푸리고는 목을 꾹꾹 주물렀다.
“별일이네. 오빠가 아픈 데도 다 있고.”
“나도 사람인데.”
“사람 안 같으니까 그러지. 오빠 교통사고 난 이후로는 감기도 안 걸렸잖아.”
“음…….”
강은영이 뭔가 말을 이으려고 할 때, 백현정이 강은영의 말을 받았다.
“그렇지. 우리 진호는 건강하지.”
무슨 말을 하시려고?
강진호는 벌써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건강한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같이 튀어나가서 느지막이 돌아오고 있잖니. 보통 사람이면 벌써 병이 나도 났지.”
“…….”
와, 이게 이렇게 이어지네.
절묘한 슬라이더다.
슬쩍 시선을 피했지만, 백현정은 강진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아들.”
“예.”
“요즘 바쁘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바쁘다고 대답하면 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바쁘냐는 공격이 들어올 것이고, 안 바쁘다고 대답하면 바쁘지도 않은 사람이 그렇게 밖으로 싸돌아 다니냐 소리가 나오겠지.
이건 가드가 안 된다.
강진호는 제삼의 길을 택했다.
“그냥 그래요.”
“그래?”
“……예.”
백현정이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안 바쁘니 엄마 좀 도와줄 수 있겠구나.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좀 있었는데.”
“……안 바쁜 건 아닙니다.”
“그럼 바빠?”
드리블이 말도 안 된다.
마라도나도 이렇게 몰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당한다는 것을 깨달은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은 좀…….”
“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바쁘니? 엄마한테는 말해줄 수 없는 일이야?”
“…….”
백현정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조금 서글프다.
일부러 만들어낸 표정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강진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들이 큰일 하는데 엄마가 방해하면 안 되지. 그런데 조금…… 음, 엄마는 조금 그러네.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 도움이 안 되고, 방해만 되는 것 같다는 생각…….”
“회사를 하나 차리고 있습니다!”
명치로 니킥이 꽂히기 전에 강진호가 자진납세를 했다.
“회사?”
“회사아아?”
백현정과 강은영이 동시에 눈을 빛냈다. 번쩍하는 모양이, 콘서트장 조명을 방불케 한다.
강진호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낚였다고 할 수는 없다. 빤히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 빤히 보이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낚인 것과 다르지 않다.
‘미리 연습한 건 아니겠지?’
살짝 그런 의심이 들긴 하지만, 설마, 설마 그렇게까지…….
“회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강진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이현주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직접 겪어보니 왜 총회를 합법화시켜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지금 한국 내에서 강진호와 비슷한 취급을 당하는 이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그나마 집안 전체가 무인이라면 강진호와 같은 고통을 겪지는 않겠지만, 만약 스승의 눈에 띄어 본인만 무인이 된 경우라면 강진호와 딱히 다를 것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게 빤했다.
‘번듯한 직장과 명함이라…….’
과거에는 워낙 한량이 넘쳐 났다.
그가 중원에 있을 당시를 생각해 보면 세상에 직업이라는 개념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짐작할 수도 없고, 직업이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의 체면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다.
세상이 바뀌면 총회도 바뀌어야 한다.
“네. 일단은 시작만…….”
“진호야.”
“예.”
“학교는 졸업해야지.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니?”
“그게…….”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생각을 해봤는데, 꼭 가야 하나 싶어서…….”
“자퇴를 하겠다고?”
“그런 생각이 좀 있습니다. 그게 성급하다면 일단은 휴학을 연장하는 느낌으로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거짓말이다.
강진호는 학교를 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서 얻어 나올 것이 없다.
물론 대학이라는 곳이 쓸모없는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곳에서 배우는 것들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가 그걸 꼭 대학에서 배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현수가 그랬다.
“아니, 대학을 왜 갑니까? 대학을?”
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는 강진호의 대답에 이현수는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대학에 배울 게 있는 게 아니라, 교수한테 배울 게 있는 거죠! 뭐 하러 거기 가서 시간을 낭비하십니까? 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고, 그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그냥 그 과목을 제게 말씀해 주세요. 대한민국 최고의 교수가 집에 찾아가서 과외하도록 만들어 드릴 테니까.”
“…….”
강진호는 새삼 깨달았다.
‘발상이 다르구나.’
없다가 있게 된 사람과 원래부터 그런 삶을 살아온 이는 발상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강진호는 단 한 번도 대학 교수를 불러서 가르침을 받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그걸 누가 생각하겠냐고.
그러니 이현수의 그 답답해하는 시선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는 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정말 제대로 회사를 운영해 볼 생각이니?”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물론 확정된 건 아니에요. 아직 조율이 좀 더 필요해서.”
“…….”
황당해하는 백현정과 강은영을 보면서 강진호는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총회가 법인으로 전환을 한다면, 그 크기가 만만찮을 것이다.
20대 초반을 겨우 벗어나려는 청년이 밖에서 뭔가를 뚝딱뚝딱 하더니 갑자기 커다란 법인의 회장이 된다?
이걸 무슨 수로 설명하라는 말인가.
“무슨 회산데? 뭘 하려는 거야?”
강은영의 말에 강진호가 얼굴을 굳혔다.
여기서 한 번 끊어내야 앞으로가 편하다.
“지금은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아직은 말씀드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선이 아직도 황당함을 다 털어내지 못한 백현정에게 고정되었다.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도박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단호했다.
그리고 완벽했다.
이리 말하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진호가 나름 잘 대처한 자신을 칭찬하려는 찰나, 백현정이 멍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말하지 못해? 너, 무슨 일 하고 다니는 거야? 너, 설마…… 회장님이 주신 돈 그거 다 꼬라박고 있는 건 아니지?”
“…….”
“얘가! 얘가! 정신이 없어! 너 대체 어쩌려고 그러니? 어쩌려고!”
“아, 아니, 믿고…… 저를 믿고…….”
“믿을 놈을 믿으라고 해야지! 너 이리 와! 너 뭐 하고 다녀! 빨리 바른 대로 말 못해?”
“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디 가! 이리 안 와? 강진호! 강진호오오오!”
강진호가 황급히 집 밖으로 도주했다.
실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