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3
#872.
다가오다 (2)
사그락.
페이지가 깔끔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페이지가 넘어가기 무섭게 다음 페이지가 넘어갔다.
‘꿀꺽.’
이현수는 그 광경을 조금은 멍하게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책을 팍팍 넘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소설책을 대충 넘겨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가 보고 있는 책은 소설책이 아니었다.
‘저게 저렇게 볼 수 있는 책이 아닐 텐데.’
지금 강진호는 전공서를 보고 있었다.
총회를 법인화한다는 말을 들은 강진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반쯤은 이현수가 권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모든 것을 잘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알 필요도 없다. 회사가 법인화된다고 해서 강진호가 그 모든 과정과 모든 일을 맡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개념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회장으로 앉은 사람이 경영의 개념을 모르는데, 회사가 돌아간다?
그건 꿈같은 이야기다.
모든 기업이 회장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이유가 있다. 설사 하급자가 똑똑하고 경영에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경영은 회장이 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책임의 소재가 회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경우에는 경영의 선택권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회사가 아닌데 누가 그 책임을 지려 하겠는가.
책임을 떠맡은 이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결국 회사의 명운을 걸고 도박을 걸 수 있는 이, 남들이 고개를 내젓는 도박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이는 경영권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강진호는 경영에 대해 배워야 한다.
설사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략적인 개념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이현수나 이현주가 하는 조언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왜 이 양반은 뭐 하나 시작을 하면 적당히가 없냐.’
이현수의 시선이 강진호의 책상 옆에 쌓여 있는 전공서로 향했다.
마치 일부러 책으로 탑을 쌓아놓은 것 같다. 저런 식으로 인테리어를 한 카페를 몇 번 본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카페와 다른 것은, 저 전공서들이 지금 실제로 강진호에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강진호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이현수가 교수를 초빙해서 과외를 해준다고 했지만, 강진호는 고개를 내저었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지만, 지금 강진호가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강진호는 대학 과정에서 배워야 할 각종 수업에 대한 교재를 모조리 끌어모았다.
교재를 모두 모았다는 말이 각 수업에 사용될 교재를 모았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경영학원론에 대한 교재가 필요하다면 시중에 나와 있는 경영학원론 교재 중 나름 유명한 것을 열 권씩 사 모았다.
그러고는 그걸 모조리 다 읽고 있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사실 교재라는 것이 다 그렇다. 다른 것 같지만 비슷비슷하다. 핵심적인 원리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놓은 것에 불과하니까. 저걸 열 번 읽는 것이나 같은 책을 10회 통독하는 것이나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 모든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지막지한 비효율을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커버하고 있었다.
턱!
또 한 권의 책이 옆으로 넘어갔다.
저걸 읽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일까?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이 30분도 안 돼서 끝난다. 저게 지금 과연 읽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다 읽으신 겁니까?”
“음?”
“그걸 다 읽으신 거냐구요.”
“그럼?”
“……아뇨. 뭐, 읽으셨겠죠.”
어물쩍거리던 이현수가 결국은 입을 열고 말았다.
“그런데 그거, 다 이해는 하시는 겁니까?”
“조금 어려운 개념이 있기는 해.”
강진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는데, 실제 적용할 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의아한 개념들이 꽤나 있더군. 그래도 일단 도움은 될 것 같아서 확인하는 중이야.”
“아…….”
읽고 있네.
그리고 이해하고 있네.
이현수가 허허 웃고 말았다.
저 사람의 능력이 인간을 초월했다는 것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이현수는 강진호가 혼자 어디 가서 공룡을 때려잡아 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강진호와 맞붙는다면 공룡이 불쌍한 수준이니까. 티라노사우르스라고 해도 강진호 앞에서는, 집 앞 풀숲에서 이슬을 빨아먹는 도롱뇽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개념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물론, 무학을 익히는 이들은 이해력이 평범한 사람에 비해 앞서기는 한다.
이건 내공, 정확하게는 심법의 영향이 컸다.
몸 안에 흐르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항상 육체를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사람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낸다. 그러니 어찌 머리가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건 좀 과한데.’
이게 강진호만의 특성인지, 그게 아니면 저만한 수준에 오른 이면 다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저런 고수가 전공책 붙들고 공부하는 꼴을 어디서 봤어야 확인이 되지.’
결국 이현수는 이해를 포기했다.
강진호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사람이다. 굳이 강진호를 이해하려고 설치면 머리만 아파온다.
‘저거, 내일이면 다 읽겠는데?’
일반 과정뿐 아니라 MBA 과정까지 교재를 끌어모았다. 웅장한 성벽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교재의 탑이 점차 함락되고 있는 중이었다.
저 성이 무너지기까지 채 이틀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지금이야 그렇게 보실 수 있다고 해도…….”
“음?”
“대학원 과정부터는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래?”
“예.”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사실 원론적인 개념을 안다는 것이 실제 경영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수학을 배우는 이들이 실생활에 수학을 활용할 일이 별로 없는 것과 비슷하지요.”
“음.”
“제대로 배운 것을 써먹기 위해서는 석사 과정 정도는 밟으셔야 합니다. 각종 명문대에 그와 관련된 과정들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방면도 알아보겠습니다.”
“그래야지.”
턱.
강진호가 책을 덮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피곤하진 않으십니까?”
“괜찮아.”
강진호가 씨익 웃었다.
“체력적으로야 별문제가 없겠지만, 정신적인 피로라는 것은 고수라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텐데요?”
물론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심법을 익힌 이들이 좀 더 잘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강진호에게 쏠리고 있는 업무는 너무 과도하다.
과거의 이현수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의 업무를 불만 없이 소화하고 있다.
“딱히 피곤하다고 생각은 안 드는군.”
“그럼 다행…….”
“나름 재미도 있고.”
재미라는 말에 이현수가 멍하니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전공서를 읽는 게 재밌으십니까?”
직접 전공서를 쓰고 가르치는 교수가 들어도 치를 떨 만한 발언이었다. 그게 아니면 천상 학자가 났다고 박수를 치고 좋아하든가. 어느 쪽이든 극단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이다.
“책은 재미없지.”
“그나마 다행이네요.”
아직은 저 사람을 사람의 범주에 넣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과정 자체는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
“과정이라시면?”
“지금 총회가 변해가는 것 말이야.”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총회 앞에 펼쳐져 있는 너른 산이 들어왔다. 곳곳이 깎여 나가 만들어진 연무장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다.
활기가 넘친다.
‘확실히 재미있는 과정이지.’
사람은 어떤 것이 효율적으로 변하고 진화해 나가는 것을 즐긴다.
오죽하면 경영 시뮬레이션이나 놀이공원 만들기 같은 것들이 게임으로 출시되겠는가. 창작물이 현실을 따라잡을 수 없듯이 자신이 직접 할 수만 있다면 조직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은 어설픈 게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즐거움을 준다.
‘세이브나 리셋이 안 된다는 게 문제이지만.’
“하지만 회주님은 예전에 이미 같은 것을 겪어보셨잖습니까?”
“그때는 달랐어.”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강진호는 마교를 천하제일의 문파로 만든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건 강진호가 이룩한 게 아니다.
강진호는 그저 강해졌을 뿐이다. 그가 강해지다 보니 그의 주변도 강해졌고, 결국은 마교도 강해졌다. 그 강해짐이라는 결과를 바탕으로 마교를 만들어낸 것은 청마였다.
그렇기에 강진호는 마교의 발전에 뿌듯함을 느끼지 못했다. 소속감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그저 돌아가지 못하는 현대를 그리워하며 목적 없는 수련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눈에 보인다.
지시하고 가르친 결과가 나오는 것이 눈에 바로 보였다. 과거와는 다르게 그가 지시를 하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그 지시를 재빠르게 이행하는 동료들이 같이 있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회주님이 총회에 애정을 가져 주시는 것은 저로서는 더없이 달가운 일이지만, 그러다가 조금 과해지시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과하다?”
“너무 많은 부분을 직접 하시려 들까 봐요.”
“조심하고 있지. 예전에 잔소리 한 번 들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현수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최근 보람을 꽤나 느끼고 있었다. 지금 총회의 모습은 강진호와 이현수, 둘이 거의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끔찍했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체계를 정립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총회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법인화까지 노리고 있었다.
스스로의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이리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보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현수.”
“예, 회주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예.”
강진호가 가만히 밖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아졌을까?”
“……예?”
“그런 것 있잖아.”
강진호가 머리를 살짝 긁었다.
“전력이 강해지고, 효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분명 크나큰 발전이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꼭 저 녀석들에게 좋다고만 할 수는 없잖아.”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총회의 회원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강진호의 우려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조직의 발전이 꼭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더 앞서가는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고,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이들은 차라리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다.
너무 빨리 달려서 그런 이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말이었다.
“나아졌을 겁니다. 아니, 나아졌습니다.”
“……그래?”
“네.”
이현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회주님이 가시는 방향은 회주님의 이익만을 좇은 게 아니니까요. 사실 저는 회주님이 복지라든가 그런 것에 매달리는 걸 잘 이해 못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게 모여 회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까?”
“네. 회주님이 저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신 거죠. 다들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못해도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것은 공감할 겁니다.
강진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내밀었다라…….’
그 말이 여기서 나오니 우습다. 이현수는 원장 수녀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 강진호는 원장 수녀님이 말한 것을 지키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회의 준비하지. 다들 오라고 해.”
“넵.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이현수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강진호가 미소를 지으며 책을 펴 들었다.
움직이고 노력한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낼 것이다.
사그락.
이현수가 나간 회의실에는 강진호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조용히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