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6
#875.
다가오다 (5)
‘빌어먹을.’
노부오는 황망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배는 사람으로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 꼴을 보고 있으니 속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이후부터 제대로 된 설명이라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으로 쳐들어간다’, ‘공을 세운 놈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가 그들이 들은 것의 전부였다.
그들이 이런 꼴이니 다른 놈들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혹시 몰라 주변을 기웃거려 봤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아는 놈은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
‘다 미쳤어.’
그는 재일교포이긴 하지만 한국을 꽤나 자주 오간 사람이다. 그렇기에 한국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다.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지금쯤 폭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하거나 전쟁 자체에 반대하는 놈들이 입에 거품을 물었겠지.
하지만 이들은 아무 일도 없는 듯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속에서는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드러난 상황만을 보자면 전쟁을 치르러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수능을 치러 가는 학생들 같은 분위기다.
전쟁의 중요성은 인식하지만, 전쟁 자체를 회피하려 들지는 않는다.
‘미친놈들.’
그가 한국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본의 국민성에 한 번씩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나서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노부오 역시 다른 사람 앞에 나서서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건 아니잖은가.
‘남의 눈치를 보는 것도 상황을 봐가며 해야지.’
아니, 어쩌면 눈치를 보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위에서 내린 지시니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노부오 같은 몇몇 특이한 이들만 불안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지금의 상황이 말도 안 되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지?’
노부오의 머리가 무거워졌다.
“왜 하필…….”
왜 하필 한국인가.
지금 그들이 쳐들어가는 곳이 한국이 아닌 중국이었다면 지금 노부오의 머리가 이리 복잡하지는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조국.
해준 것 없는 조국.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나라다. 때로는 스스로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증오하기까지 했다.
한국인이되 일본에서 살아가는 상황. 그 상황이 노부오를 얼마나 괴롭혔던가.
그는 이방인이었다.
한국에서는 반쪽발이라는 멸칭으로 조롱당하고, 일본에서는 더러운 한국인이라고 경멸당한다. 그 어느 쪽에서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는 곳은 없다.
그런 재일 한국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둘 중 하나뿐이다.
철저하게 재일 한국인들만의 커뮤니티를 구성하여 그 안에서 인간 관계를 맺고 살아가든가, 아니면 노부오처럼 스스로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일본인인 것처럼 행세하며 살든가.
예전에는 전자를 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후자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니, 그 수준을 넘어 일본으로 귀화를 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결국 그들이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곳은 일본이니까.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재일한국인 2세대와는 다르게 재일 한국인 3세대는 일본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릴 적부터 일본의 문화와 사상을 접하고 살아온 그들에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오히려 더 이질적이다. 때때로 조금 전처럼 이해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느끼는 위화감이 훨씬 더 심했다.
노부오 스스로도 자신을 한국인이기보다는 일본인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왜 이러냐고.’
불안하다.
진정이 되지 않는다.
조금 전부터 달군 철판 위에 올라가 있는 느낌이다. 잠시도 진정하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배회하고 있다.
“노부오!”
“예? 옛?”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모토베가 그를 찾아 나선 모양이다.
“아, 저는…….”
“이 새끼가!”
쫘아아악!
뭔가 변명을 하기도 전에 모토베의 손이 그의 따귀를 후려 갈겼다.
입술이 터지며 피가 바닥으로 튄다. 하지만 노부오는 신음 하나 내지 못했다.
쫘악! 쫘아악! 쫘악!
연이어 세 번 연속으로 따귀를 갈기고 나서야 모토베가 손을 내렸다.
“이 새끼가 전쟁이 장난인 줄 아나?”
“죄송합니다.”
“네 윗놈들도 다 숨죽이고 자리 지키고 있는데, 이 새끼가 지금 놀러 왔어? 왜? 아주 관광이라도 하지?”
“죄송합니다.”
모토베가 화난 눈으로 노부오를 바라보았다.
노부오는 그 시선에서 묘한 기색을 보고 말았다.
‘뭐지?’
단순한 화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나 자주 본 것 같은 눈빛이었다.
“너, 재일이라 그랬냐?”
“…….”
이거였구나.
노부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는 구미에 스스로가 재일임을 밝히지 않았다. 저들이 조사하려 들었다면 숨길 수 없었겠지만,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크게 당황한 상황에서 한국어가 들려오는 말도 안 되는 일만 없었다면, 절대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카타 유지라는 거물의 앞에서 거짓을 고한다는 것도 부담이었으니까.
“예.”
“왜 말 안 했어?”
“물어보지 않으셔서.”
“이 새끼…….”
모토베가 경멸이 가득한 눈으로 노부오를 노려보았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알기로도 무인계는 재일이 꽤나 존재한다. 위에서도 암묵적으로 묵인을 해주고, 재일들은 굳이 자신의 출신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노부오만 스스로 밝혀야 한단 말인가.
“잘도 속여왔겠다?”
“속이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니야?”
“예.”
노부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지만, 자신을 변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재일이라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일본인이라 생각하니까요. 아직 조건이 되지 않고,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귀화를 못했을 뿐입니다. 이제 곧 일본인이 될 텐데, 굳이…….”
짜아아악!
다시 한 번 모토베의 손이 노부오의 뺨을 올려쳤다.
“그걸 변명이라고 늘어놓고 있어?”
“…….”
“이 새끼가. 귀화한다고 뭐가 달라져? 네 몸에 흐르는 피가 바뀌기라도 한다는 거냐?”
흐르는 피라…….
헛웃음이 나온다.
그럼 뭐 어쩌란 말인가.
일본에서 태어나서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일본인으로 살아왔는데.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영원한 한국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개소리하지 말고 자리로 돌아가 있어!”
“……예.”
“그리고!”
“예?”
모토베가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는 이번 원정 내내 코스케와 함께 행동한다.”
“코스케 씨와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허튼 짓거리를 하면 절대 가만히 놔두지 않을거다. 어디를 가더라도 보고하고, 코스케와 떨어지지 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어?”
“예.”
노부오가 고개를 숙이자 모토베가 그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여하튼 조센징 새끼들은…….”
노부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시작이다.
저 엿 같은 소리. 조센징.
누군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이리 사는 줄 아는 건가?
이 모멸감 때문에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인으로 살아왔으니까.
연고 하나, 누구도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으로 홀로 떠나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 역시 재일 한국인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이방인.
그래, 이방인.
이곳도, 저곳도……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사람.
‘조센징이라고?’
노부오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런 모양이지. 나는 내가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본인인 네가 나를 그리 한국인이라고 말해준다면 나도 받아들여야겠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말이야.
아니, 그것조차 아무 상관이 없지.
한국 놈이 먼저 나서서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꼴을 두 눈으로 봤는데, 뭐가 문젠가.
그가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노부오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가 가는 방향은 그들에게 배정된 객실이 아니었다.
“너, 어디 가는 거야?”
“아, 화장실에 좀.”
“화장실? 이 조센징이 정말 뒈져 봐야!”
모토베가 기운을 일으키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노부오는 이를 악물었다.
‘맞아주지.’
얼마든지.
그 순간이었다.
한 사내가 그들 쪽으로 걸어왔다.
그 사내가 풍기는 기세에 모토베가 움찔했다.
“뭐, 뭐야?”
“…….”
노부오도 고개를 돌려 사내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조금 전, 나카타 유지와 함께 있던 덩치 큰 사내.
‘한국인.’
그래, 한국인이었다.
사내는 조금 언짢은 얼굴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조센징?”
“…….”
모토베가 입을 닫았다.
이 사내가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뭔가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전 이 사내가 나카타 유지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이 사내도 거물일 수 있다.
“실례했습니다.”
“…….”
이성휘는 고개를 들어 가만히 모토베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모토베는 입맛을 다시고는 뒤로 물러났다.
“너, 이 새끼. 자리로 돌아가 있어라.”
“예.”
그 말을 남기고 모토베가 멀어졌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모토베를 보며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괜찮은가?”
“…….”
노부오가 고개를 들어 이성휘를 슬쩍 바라본다.
이상하게 자꾸 웃음이 났다.
어이없는 웃음, 허탈한 웃음.
더 정확하게는…….
“감사하다고 해두겠습니다.”
그러고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매국노 새끼.’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이 주는 혜택을 받고 자라놓고서는 일본에 붙어서 나라를 팔아먹는 놈.
한국에서 주는 것 하나 없이 일본에 붙어살아야 했던 그의 입장에서는 가장 경멸스러운 존재다. 그와는 다르게 저 매국노에게는 한국을 배신할 어떤 당위도 없다.
그럼 자신은?
자신은 당위가 있는가?
노부오가 손을 들어 얼굴을 주물렀다.
‘그런 건 나도 이제 모르겠다.’
이 일을 겪지 않았으면 달라졌을까? 아니, 아마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가는 사태를 볼 때부터 어쩌면 그는 이미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그는 그럴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결심을 굳힌 얼굴로 노부오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손이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휴대폰을 움켜잡는다.
손에 닿는 휴대폰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아직 가능할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배가 해상으로 멀리 가버린다면, 그때부터는 무슨 수를 써도 방법이 없다. 아직 그의 손에 결정권이 있을 때,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성휘는 단호한 걸음걸이로 걸어가는 노부오의 등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등에 불어오는 해풍이 싸늘하게 스쳐 지나간다.
“나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그 어떤 목소리보다 더 진득하고 절절한.
그런 목소리였다.
“나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 그런 이성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