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7
#876.
기습하다 (1)
“휴우.”
화장실로 들어온 노부오는 감각을 일깨워 주변을 훑었다.
없다.
긴장한 놈들이 많을 테니, 화장실이 가득 찼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노부오가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화장실을 일부러 찾아온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 변기 칸 안으로 들어간 노부오가 문을 잠갔다. 무인들이 넘쳐 나는 곳에서 이 얇은 나무 문을 잠근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눈앞이 가려지자 그래도 마음에 좀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노부오가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그가 지금 하는 짓을 그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한국이 그에게 무슨 존재라고 그가 이런 위험을 무릅쓴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건 단순히 한국의 문제도 아니었다.
지금 그가 일본이 쳐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에 알리게 된다면 그도 위험해진다.
그는 명백히 일본의 원정대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 이 배에서 뛰어내려 일본까지 헤엄쳐 돌아가지 않는 이상은 어떻게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이 배가 닿는 곳은 한국 땅이고, 그곳은 적국이다. 만약 이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면, 한국 땅은 그의 무덤이 될 것이다.
‘미친 새끼.’
저들이 그의 사정을 고려해 줄까?
그럴 리가 없다.
그가 평범한 재일 한국인이었을 때도 반쪽발이라고 조롱하고 멸시하던 이들이 한국인들이다. 그런데 명백히 한국을 공격하는 원정대의 소속인 그를 이해하고 감안해 준다고?
더 잔혹해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노부오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미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앞에서는 열심히 싸우고 적당히 눈치를 보고 빠질 줄 아는 게 낫다.
그렇게 원정이 승리로 돌아가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정말 그가 원하던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
진짜 일본인으로 인정받는 삶.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삶.
그래.
그게 노부오가 언제나 원해오던 삶이었다.
그런데…….
“큭.”
노부오는 낮게 웃고 말았다.
웃긴 일이지.
그토록 바라오던 일이건만, 막상 그 기회가 주어지자 반대로 가고 있다.
어쩌면 그가 이런 상황에 처한 이유는 그가 재일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노부오가 그런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내버리고, 선택하지 못하는 종류의 인간.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그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도박을 하지는 못하는 인간.
아니, 더 정확하게는…….
‘반골.’
노부오는 웃고 말았다.
세상은 일정한 법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 법칙을 불편해하는 인간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그처럼.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애국심?
빌어먹을 애국심.
손 한 번 내밀어준 적이 없는, 엿 같은 나라.
그딴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저 저 새끼들이 더 엿 같으니까.
무관심과 냉대로 받은 상처보다는 멸시와 조롱으로 받은 상처가 더 크니까.
그래, 기회다. 이건 기회다.
인생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을 기회다.
‘반대쪽으로도 말이지.’
그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만, 저 개 같은 놈들에게 엿을 처먹일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그의 평생에 걸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회 말이다.
“후우.”
낮게 한숨을 내쉰 노부오가 다시 기감을 끌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그가 지금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핏발이 선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그의 모습은 마약 중독자를 연상하게 했다.
‘없어.’
확실히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노부오가 다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전화는 무리고.’
여기는 배 위다.
전화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아직은 본토와 그리 멀어지지 않았으니 전화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무인들이 우글우글거리는 곳에서 전화를 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지나가던 누구라도 들을 수 있으니까.
‘와이파이!’
있을 것이다.
화물선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여객선을 수배해 왔다. 그렇다면 평소 배에 타는 승객을 위한 와이파이가…….
‘있다!’
화면에 와이파이 목록이 뜨는 것을 확인한 노부오가 간절한 마음으로 접속을 했다.
‘제발…….’
이게 되어야 한다. 반드시!
이게…….
“됐다!”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말해 버렸다.
통신에 접속이 된 것을 확인한 노부오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보내 버리면 돌이킬 수 없다.
노부오가 휴대폰을 늘어뜨리고는 눈을 감고 등을 기댔다. 차가운 감촉이 등으로 느껴진다.
한참 동안 그렇게 늘어져 있던 노부오가 눈을 떴다.
불안함이 사라지고 단호함만이 가득해진 노부오가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긴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한 노부오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전송 버튼을 누른다.
로딩.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을 보고 있자니, 그의 머리도 같이 돌아버릴 것 같다.
지금이라도 취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 대체 왜?
이 새끼들에게 엿을 먹이겠다고?
‘개소리.’
빌어먹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새끼들이 처먹을 엿을 그가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을.
그와 이 원정대는 이미 운명 공동체다. 그가 이 사실을 한국에 알린다고 해서 한국인들이 그를 따로 구분해서 살려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이건 자살행위였다.
노부오의 손가락이 다급하게 휴대폰을 더듬었다.
그만두자.
이건 아니다!
당장 취소를…….
하지만 그가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전송이 완료되었다. 노부오는 멍한 눈으로 전송이 끝나 버린 화면을 바라보았다.
돌이킬 수 없다.
한 번 발송한 메시지는 취소할 수가 없다. 이제는 턴이 한국으로 넘어갔다.
“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허탈함과 허무함이 밀려온다.
‘병신 같은 새끼.’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말인가. 대체 한국이 그에게 있어 뭐라고!
세상 똑똑한 척은 다 하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을 해버렸다. 일본 열도를 통째로 뒤져도 그보다 멍청한 놈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노부오가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움켜잡았다.
“후욱, 후욱…….”
숨이 가빠온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실감이 났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이미 저지른 일이고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는데.
‘돌아가자.’
이제는 더 의심을 받기 전에 자리로 가야 한다. 노부오가 힘없이 손에 쥔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고는 변기에 물을 내렸다.
‘긴장하지 말자.’
얼굴을 펴야 한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자리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의심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돌아가야 한다.
모토베에게 얻어맞았으니 조금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낼까? 그게 아니면…….
고민을 하며 문을 열고 나온 노부오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여어.”
화장실의 입구 쪽에서 나카타 유지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자주 보는군?”
“예? 아…… 예!”
나카타 유지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노부오의 등이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 사람이 여기에 왜?’
언제부터지?
언제부터 여기에 있던 거지?
아니다.
아니다!
노부오가 주먹을 꽉 움켜잡았다.
만약 이자가 여기에 처음부터 있었다면, 그리고 노부오의 행동을 의심했다면, 메시지를 전송할 동안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전에 난입하여 그를 쓰러뜨렸겠지.
그러니까 이자는 지금 이곳에 들어오는 중이고,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 된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
뭐라고 하지? 뭐라고?
“배, 뱃멀미가 좀 있습니다.”
“그래? 무인이 뱃멀미라니, 웃기는 일이군.”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어. 그냥 웃자고 한 말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군.”
“아…….”
나카타 유지가 씨익 웃자 노부오도 마주 웃었다. 얼굴이 제멋대로 뒤틀리는 느낌이지만, 어떻게든 웃음을 짓는 데 성공했다.
그 웃음이 어색하기 짝이 없더라도 나카타 유지의 입장에서는 긴장의 결과로 받아들일 만할 것이다.
“그럼.”
“이봐.”
“……예?”
“화장실에 갔으면 손을 씻어야지. 에이하나카이에서는 그런 것도 안 가르치나.”
“아…….”
노부오가 다급하게 세면대로 가 물을 틀었다. 그러고는 땀에 젖은 손을 세면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손끝에 차가운 물이 닿자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서두르는 느낌이 들지 않게 손을 씻고 가볍게 세수까지 마친 노부오가 고개를 들었다. 유리를 통해 보니 나카타 유지는 소변기에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안심이 된다.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다.
‘다행이다.’
아무래도 그를 의심한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저놈과 떨어져야 한다.
“그럼…….”
“아, 내가 말을 안 했군.”
“예?”
“자네, 재일 한국인이라고 했지?”
“……예.”
“내가 아까 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꼭 상식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서 말이야. 그래서 내가 지시를 내렸거든?”
“지시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이 배에 있는 동안은 재일들의 휴대폰을 몰수할 거야. 혹시 모르니까 말이지.”
“…….”
노부오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패턴이 있다. 그리고 주기 전에 지우면 돼.’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럼 드려야죠. 어디다 반납하면 됩니까?”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어? 내게 주면 되지.”
“……네?”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잖아. 그렇지?”
“아, 물론…….”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카타 유지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지금까지의 미소와는 달랐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먹이를 앞에 둔 포식자의 미소였다.
“그러니 이리 내놔봐. 아까부터 자꾸 내 반대쪽으로 감추려고 하는 그 주머니 안에 든 휴대폰 말이야.”
“…….”
나카타 유지가 목을 꺾으며 노부오에게 다가왔다.
“휴대폰이 지문 인식이길 빌지. 홍채 인식이면 눈을 뽑아야 하는데, 지문 인식이면 손가락만 자르면 되잖아? 자, 어느 쪽이지? 네가 얼리어답터가 아니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노부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 *
촤르륵.
강진호가 책을 내려놓았다.
‘흐음…….’
수많은 책들을 완독하고 있지만, 이걸로 뭔가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지식은 지식일 뿐이다. 지식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다면 세계 최고의 경영자는 대학 교수들이겠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지고 있는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지금 그가 하는 것은 그저 활용하기 위한 지식의 베이스를 쌓는 일이었다.
‘쉽지는 않군.’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 한다.
이런 노력 하나하나가 쌓여서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총회는 지금도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발전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홍왕계와 다른 곳들이 그걸 좌시하지 않을 테니까.
이건 시간 싸움이다.
총회가 강해지는 것이 빠른지, 아니면 다른 곳이 쳐들어오는 것이 빠른지.
조금의 시간을 벌었다고 안심할 정도는…….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이 열린다. 그리고 이현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뛰쳐 들어왔다.
그 표정을 보는 순간, 강진호는 일이 터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회, 회주님!”
“잠시!”
강진호가 이현수의 말을 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부터 소집해. 두 번 설명할 시간 없는 것 같으니까.”
“예!”
이현수가 다시 뛰쳐나가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하늘이 영 불길하다.
‘다시 전투인가?’
강진호의 혀가 절로 입술을 핥았다.
진득한 피비린내가 풍겨오는 느낌이다. 감도는 전운을 느낀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머리와 다르게 그의 몸은 확실히 다가올 피를 기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