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8
#877.
기습하다 (2)
회의실 안에는 전운이 감돌았다.
무슨 일로 모두가 모였는지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만으로도 심상찮은 일이 생겼다는 것은 모두가 직감할 수 있었다.
바토르와 위긴스를 위시로 한 이사들, 그리고 통역을 위해 따라붙은 이들까지 모조리 입을 열지 못한 채 마른침만을 삼키고 있었다.
“회주님께서는?”
“지금 오고 계십니다.”
“음…….”
바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고개를 들어 이현수의 얼굴을 보니,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홍왕이라도 쳐들어온 것 같군.’
하는 일은 심각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도 자신이 꽤나 과묵한 편이라 생각하는 것 같지만, 바토르가 보기에 이현수는 그리 진지한 인간이 못 된다.
과거의 이현수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현수는 사실 진지보다는 유쾌함이 더 많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가 저리 얼굴을 굳히고 있다는 것은 지금 사태가 무척이나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바토르는 굳이 이현수를 재촉하지 않았다.
재촉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말을 해줄 것이다. 괜히 그가 성급하게 나서서 분위기를 더 흐릴 필요는 없으니까.
벌컥.
그때, 문이 열리면서 강진호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강진호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앉아.”
“예!”
일제히 다시 착석.
평소와 같은 너스레나 장난은 없다.
상석에 앉은 강진호가 이현수에게 턱짓을 했다.
“보고해.”
“예. 보고드리겠습니다.”
이현수가 보고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뒤쪽으로 걸어 나와 모두의 앞에 섰다.
이런 식의 보고는 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모든 보고는 앉은 자리에서 가볍게 이루어졌다. 이현수가 격식을 갖춘다는 것은 지금 그들이 겪어야 할 사태가 이제까지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다들 조금은 긴장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지금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이현수가 살짝 입을 닫고 모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일본의 구미들이 연합하여 한국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제보입니다.”
“어?”
전혀 생각지도 않은 말에 다들 얼굴을 굳혔다.
일이 터졌다는 말에 홍왕계를 예상하고 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일본이라니.
“일본?”
“예, 그렇습니다.”
“아니, 일본이 갑자기 왜…….”
다들 한마디씩 하려는 찰나, 강진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모두들 다시 입을 닫았다.
“말을 마저 들어보지. 질문은 그다음에.”
“예.”
다시 이현수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이현수가 짧게 심호흡을 했다.
웬만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그이지만, 이번 일만큼은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본의 각 구미가 정예 무사들을 뽑아 현재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그 수는 대략 일천이 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천?”
“예.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거의 최소치로 잡은 것이니까요.”
“천이라…….”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
“……일단은 여기까지입니다.”
보고가 끝나자 모두가 나름의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나 위긴스였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점이 있는데.”
“예.”
“아무래도 보고라고는 하지만 너무 디테일이 없군. 그 첩보는 어디서 입수한 것인가. 정보원들인가?”
“이게 조금 골 때립니다.”
“응?”
이현수가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보 자체는 저희 정보원들에게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이 침략대에 소속되어 있는 이가 이쪽으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정확하게는 총회의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는군요. 이미 출항했다고 합니다.”
“출항?”
“예. 배를 통해 이동 중입니다.”
방진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그거 믿을 수 있는 거야? 거기 소속된 놈이 왜 우리한테 그런 정보를 준단 말이야.”
방진훈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대로 믿기에는 상황이 영 의심스럽다.
“일단…….”
이현수가 살짝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이쪽으로 연락을 줄 여지는 어느 정도 있습니다. 제보한 이에 따르면, 연락을 취해온 이는 재일교포 3세로, 한국인입니다.”
“재일교포가 한국인이야? 일본인 아니야?”
방진훈의 말에 이현수가 설명을 해주었다.
“재일교포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본 영주권을 획득하여 일본에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니, 그럼 일본인이잖아.”
한숨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았다. 누구도 감정적으로 자극해서는 안 된다. 회의에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설명을 드리자면, 일본의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은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살지만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이들은 재일교포라고 하죠.”
“그러니까…… 상대가 재일교포이니까 믿을 수 있다?”
“그런 말까지는 아니지만…….”
방진훈은 영 믿음이 안 간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영 신뢰가 안 가는데? 이건 그 양반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사실 말이 안 되잖아. 그걸 그쪽에서 알려줘서 얻는 게 뭐라고?”
이현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적이기는 하지만 방진훈의 말도 틀린 게 없었다.
“만약 자기가 그 배에 타고 있다고 치면, 솔직히 자기도 위험해지는 거 아냐? 우리가 알고 대처하면 제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는데, 굳이 이걸 알려온다? 자기 목숨까지 버려가며?”
방진훈이 소파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는 함정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우려는 저 역시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자기가 얻는 게 없다면 우리에게 이걸 알려줄 이유는 애국심밖에 없는데, 애국심이란 게 그리 뭐 대단한 게 아니잖아.”
방진훈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됐다.
“물론 애국심으로 자기 목숨 버리신 분들도 있지. 뭐, 독립열사라든가. 하지만 그 사람들이 칭송받는 이유는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을 했기 때문이잖아. 애국심이나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다면 왜 그분들이 위대하게 평가받겠냐고. 보통 사람은 못하니까 그런 거 아냐.”
이현수 역시 방진훈의 말에 공감을 표했다.
평소에는 이런 회의에 의견을 잘 내지 않는 방진훈이지만, 지금은 그가 나서야 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애국심이 얽힌 일 같은 경우에는 국적이 다른 이사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 배에 하필 재일교포가 타고 있고, 그 재일교포가 독립운동가급의 애국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더 위험해질 걸 감수하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온다?”
방진훈이 피식 웃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영화네, 영화. 영화 한 편 찍으면 천만 관객 들겠어.”
이현수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그를 조롱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기분 좋게 들을 수는 없는 발언이었다.
“그럼.”
강진호가 적절하게 방진훈의 말을 끊었다.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하겠군.”
“예.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연락을 받은 이는?”
이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본인도 자세한 건 알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는군요.”
“그래?”
“예.”
이현수가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다시 연락을 취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지만, 더는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전화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메시지가 가기는 하는데, 답이 없습니다. 이게 수신 자체가 안 되는 건지, 휴대폰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군.”
“잠시…….”
이현수가 휴대폰을 꺼내서 자신의 폰에 옮겨둔 메시지를 모두에게 보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다들 폰을 꺼내 메시지를 읽었다. 메시지를 다 확인한 강진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이현수.”
“예, 회주님.”
“아무래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보 자체가 조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조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대책없이 이 메시지만 믿고 움직일 수는 없어. 보통 일이 아니니까.”
강진호의 말이 맞았다.
만약 일본에서 천 단위가 넘는 정예 무사들이 넘어오는 사태라면, 이건 총회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어마어마한 전력이지.’
지금 총회의 총 회원 수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할 수 있는 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총회의 전력의 대부분은 전투에 크게 활용할 수 없는, 그저 머릿수만 채우는 인원일 뿐이다.
특히나 중국에서 넘어온 마인들 같은 경우는 떼로 달려든다고 해도 전력이 되지 않는다. 그들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홍왕전 때 이미 활용했을 것이다.
지금 강진호가 하고 있는 일이 전력이 조금도 되지 않는 이들을 전력화시키는 것 아닌가. 이들이 전력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바로 그 시간이다.
“그래서 몇 가지를 이미 확인 중에 있습니다.”
“확인의 내용은?”
“첫 번째로 일본에서 출항하여 한국으로 들어오는 배들을 모두 조사 중입니다.”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그게 의미가 있나?”
“…….”
“우리가 중국에서 마교를 빼돌릴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화물선으로 위장하고 실제로는 사람을 태웠지. 그쪽 역시 마찬가지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쪽에서 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이 안 드는군. 놈들이 정말 제대로 침공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출항 기록 조작쯤은 너무도 쉬운 일이겠지.”
“예. 그래서…….”
이현수가 눈을 빛냈다.
“거꾸로 출항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여객선이 한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가?”
그 넓은 바다에서 배 한 척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어렵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정 이상의 사람을 태우고 출항하는 배는 모두 보고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중 보고가 되지 않은 배를 찾아내면 됩니다. 거꾸로지요.”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말이 되나?’
저 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중 그 한 척을 무슨 수로 찾아낸다는 말인가.
“흠, 과연. 그러면 되겠군.”
강진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위긴스는 당연히 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강진호의 얼굴을 본 위긴스가 가볍게 웃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 표정만으로 질문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넓은 바다를 모두 뒤진다는 것은 어렵지만,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작은 배나 잠수정이라면 모를까, 사람이 천 명도 넘게 탈 수 있는 여객선이라면 오히려 숨는 게 더 힘듭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
“간단합니다. 해양경찰이나 해군, 혹은 공군의 지원을 받으면 그만이죠.”
강진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군의 지원을 받는다고?’
이거,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은데? 솔직히 그건 좀 망상의 영역이 아닌가 할 때,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예. 협조 요청을 했고, 지금은 수색 중입니다.”
“…….”
강진호가 아연한 얼굴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