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79
#878.
기습하다 (3)
“왜 그러십니까?”
“아니…….”
대체 어디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까?
일단 다른 걸 접어두고서라도, 해양경찰이나 해군에 협조를 구한다는 개념 자체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총회에 그만한 힘이 있다는 건가?”
“아, 살짝 오해를 하신 모양이네요.”
이현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총회에 군대를 움직일 힘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힘이 있다고 해도 결코 휘둘러서는 안 되죠.”
“그렇겠지.”
“해양경찰의 협조를 구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제보를 하면 그만입니다.”
“제보?”
“예. 대형 여객선이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고.”
“아!”
강진호가 그제야 이해를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밀입국은 범죄다. 그리고 해경은 범죄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만약 그 제보가 신빙성이 있다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말을 믿는다고?”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겁니다. 제가 가서 지금 일본에서 천 단위의 사람이 밀입국을 시도하고 있다 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고 하겠죠.”
“애 없어 보이는 얼굴인데…….”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갑자기 걸려온 태클을 물리치며 이현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 현직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다면 중요도가 전혀 달라지죠.”
“음…….”
같은 말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방법이 있다면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줄이 닿아 있는 국회의원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 마약을 비롯한 밀수품들이 있을 수 있다고도 언질해 뒀습니다.”
“그러다 배 안으로 뛰어들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 것 아닌가?”
“찾아내기만 하라고 신신당부해 뒀습니다.”
“그래서?”
이현수가 담담하게 말했다.
“해경이 지금 동해 전체를 뒤지고 있는 중입니다. 찾아낼 겁니다.”
“그렇군.”
강진호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권력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거로군.’
강진호는 인원을 어떻게 뿌려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가 이 일에 대처를 했다면 최대한의 인원을 동해에 흩뿌린 다음, 어디로 상륙하는지를 알아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대책을 다시 생각했겠지.
민간에서는 그게 한계였다.
그 외에 든 생각이라 봐야 배를 최대한 수배하여 자체 수색에 나선다거나, 그게 아니라면 드론이라도 뿌려서 정찰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로 그 모든 것이 해결되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서 노력하는지, 왜 남부럽지 않은 부를 모은 사람들이 자리 하나 더 얻기 위해서 온갖 굴욕을 감수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럼 군은?”
“군은 나서지 않을 겁니다. 군대가 나서게 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음?”
“일단 저들은 명목상 민간인입니다. 제아무리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이들이라고 해도, 민간인인 이상 군대가 개입할 수는 없습니다. 어설프게 움직였다가는 자위대의 개입 여지를 줍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럼 배재?”
“일단 언질을 해두었으니, 사태를 주시할 겁니다.”
“알긴 안다는 건가?”
“별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아는 사람은 무인계의 존재를 알지 않습니까. 군의 최상부에게까지 숨길 수는 없습니다.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들이 움직일지를 고민해야 할 테니까요.”
“……어렵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 온 무인계와 현실 세계가 알고 보면 나름의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의외이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관과 무림도 그런 사이였으니까.’
과거 중원에서도 관과 무림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그 불문율이 지켜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관은 어떻게든 무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고, 무림은 힘만 생기면 관을 먹어 치우려 했다.
그 관계가 지금과 비슷하다.
“일단은 이 메시지가 사실인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뒤의 대책을 논의해야…….”
벌컥!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이현주가 굳은 얼굴로 뛰쳐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현수에게 일직선으로 달려가 그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알았다.”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주가 물러나 한쪽 끝에 앉았다.
“지금 막 들어온 소식입니다. 수상한 여객선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벌써?”
“출항 시간을 바탕으로 노선과 거리를 역으로 추산했습니다. 출항 자체가 도쿄 항에서 이루어졌으니, 한국으로 오는 노선도 빤한 법이죠.”
“으음.”
이현수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게 맹점이라면 맹점인데, 제아무리 무인들이 은밀히 일을 하고 싶다고 해도 배를 움직이는 이들은 기존의 항해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그들은 결국 원래 존재하던 노선을 바탕으로 운항을 하게 됩니다. 그럼 빤해지는 거죠.”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영 와닿지가 않는다.
“일이 너무 쉽게 풀리는 것 같은데…….”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로드,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음?”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지금 일본에서 침략군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만약 배 내부에 존재하는 폭로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다들 퇴근하고 집에서 TV나 보고 있었겠죠.”
“그렇습니다.”
이현수가 빠르게 부연했다.
“그렇기에 그쪽에서도 나름 전격적으로 움직이며 보안에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만…… 내부자 쪽에서 배신이 이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렇군.”
납득이 간다.
그러면서도 새삼 메시지를 보내온 내부자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굉장한 일을 해줬군.’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까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늦지 않고 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그 여객선이 메시지에 나온 여객선인 건 확실한가?”
“모릅니다.”
“……음?”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규모와 항로로 봤을 때는 99% 확신합니다만, 일단 이 메시지의 진위 여부부터가 문제라…….”
이현수가 말끝을 흐리자 강진호가 단호하게 재촉했다.
“그래서 네 의견은?”
“확실하다고 봅니다.”
“이유는?”
“모든 정황이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장난 메시지가 올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신원 미상의 여객선이 한국으로 향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일이 우연히 동시에 벌어질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추가로 확인해 볼 방법은 없나?”
“아직 딱히 생각이…….”
그때,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이 실장.”
“예, 이사님.”
“지금 일본에 우리 정보원이 얼마나 있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겨우 인원이나 이동을 파악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들도 이 움직임은 포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거꾸로 가보지.”
“예?”
이현수가 위긴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들쑤시라고 해. 그리고 그들의 인원을 파악해 보라고 해. 자리에 있어야 할 이들이 비었다면, 그 인원들이 배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지 않겠나?”
“아!”
이현수가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음, 그래. 그리고…….”
위긴스가 고개를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해프닝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해프닝으로 끝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태는 최악을 상정하고 대처해야 하는 법이지요.”
“음…….”
“저 배에 일본의 정예들이 타고 있고, 그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침략이라…….’
뭔가 기분이 묘하다.
총회와 영남회는 일통되었다. 그 말인즉, 한국 무인계가 일통되었다는 뜻과 같다. 자잘한 소규모 문파나 일인전승의 문파들이 아직 모두 통합된 것은 아니지만, 원래 현실적으로 한국 내의 모든 문파들을 한 지붕 안에 밀어 넣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한국은 일통되었다고 자평해도 무리가 없다.
그 순간부터 중국, 일본과의 문제가 시작되었고, 언젠가는 저들과 자웅을 겨뤄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기에 총회를 어떻게든 발전시키고, 전력을 강화하려 하지 않았는가.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이현수.”
“예, 회주님.”
“브리핑해 봐. 저들이 쳐들어온다는 상황으로.”
“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여객선 안에 일본의 구미들이 타고 있고, 전해져 온 메시지가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여객선 안에 있는 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각 구미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이들이라면, 그 수 이상의 힘을 발휘할 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 무사 천 명과 정예 무사 천 명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저들이 이 일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각파의 도움을 얻어 진짜 정예들만 싣고 나르고 있다면, 그 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상대할 수 있나?”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쉽게.”
“예. 저들의 힘은 저희를 압도합니다.”
이현수는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총회가 발전하면서 나름 자신감을 얻었지만, 지금은 그런 자신감을 모두 접어두고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 시점이다.
“애초에 일본은 한국보다 강했습니다. 그것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습니다. 일본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국의 무인계를 정복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홍왕계와 맞닿는 것이 찝찝하고,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그동안 좌시한 겁니다.”
“…….”
“그런 이들이 마음을 먹고 달려드는 상황입니다. 물론 저 여객선에 타고 있는 이들과 지금의 총회가 전력 대 전력으로 맞부딪친다면 이쪽이 필승할 겁니다. 하지만 저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이현수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개개인의 강함. 소규모 교전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곳곳을 쑤셔 대려 할 겁니다. 그럼 총회는 비대한 몸집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저들에게 손발이 잘리지 않기 위해 움츠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끝이죠.”
어떻게 들어도 좋지 않은 소리밖에 없었다.
바토르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쁜 소리밖에 없군. 쪽발이 놈들이 그렇게 강하다는 건가?”
“물론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저놈들을 압도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나머지입니다. 마염들이 아닌 이상, 총회에는 저들보다 강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꺼해야 마교의 장로들 정도인데, 그것도 확실치는…….”
이현수가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저들이 어디에 상륙하는가를 미리 확인하고 흩어지기 전에 처리할 수만 있다면,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강제로 배수진을 치게 만들겠다는 건가?”
“예. 그럼 전력 대 전력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좋지 않은 전략이군.”
“……예?”
이현수가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려 올라간 입꼬리가 섬뜩하게 보인다.
“등 뒤에 바다를 두고 싸우게 만들면 저들도 달아나기 힘들겠지. 하지만 전장으로 더 좋은 곳이 있잖아?”
“어딜 말씀하시는 건지?”
“사면이 모두 바다인 곳.”
이현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진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아챈 것이다. 사면이 모두 바다인 곳은 섬밖에 없다. 하지만 섬에서 싸우자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수온은 따뜻한지 모르겠군.”
강진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바다 위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거든.”
그 말이 모두를 전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