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8
#87.
훈련하다 (6)
“2소대장.”
“중위 박길수!”
“박길수.”
“중위 박길수!”
“이 씨발 놈아!”
퍼억!
2소대장은 자신의 머리에 맞아 사방으로 비산하는 서류 더미들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미친 새끼가 사람 하나 죽어야 정신을 차리려고 그랬나? 야, 너 미쳤어? 미쳤나고, 이 새끼야!”
“아닙니다.”
“안 미친 새끼가 니 기분 나쁘다고 애들을 제 맘대로 굴려? 이 미친 새끼야, 지금이 쌍팔년 대야? 어?”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나, 이 새끼야! 너 이거 어쩔 거야? 지금 대대장님 상급 부대 올라간 거 알아, 몰라?”
“…….”
“너 대대장님이 가서 무슨 꼴 당할지 몰라? 그러고 나면 우린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죄송합니다.”
“야, 이 씨발 놈아! 죄송하다로 끝날 일이야, 이게? 이 미친놈이 신병 교육을 시키랬더니, 신병을 잡아? 나도 너 교육 좀 시켜봐?”
“죄송합니다.”
“아, 뭔 저런 병신 같은 새끼가 처들어와서.”
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인 최우성 대위는 속이 타들어가 죽을 지경이었다.
수류탄 사고 때문에 개박살이 난 게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이 또 벌어지는가.
이번 사건 때문에 고초를 얼마나 겪었는데.
그가 신병교육대의 중대장으로 부임한 이후로 이번처럼 사고가 많은 기수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예.”
“100번 훈련병 강진호?”
“예, 그렇습니다.”
“그 새끼가 응급처치했다며? 너는 아무것도 못하고 어버버거리고 있었고.”
박길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변명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입을 잘못 뗐다가는 욕이 길어질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넌 씨발, 진짜 제대로 죽여줄 테니까, 가서 각 잡고 반성하고 있어라.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꺼져, 새끼야!”
박길수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밖으로 나가자 최우성은 들고 있던 지휘봉을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썩을.”
1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사건이 한 주 사이에 연이어 일어나고 있었다. 박길수에게 난리를 피우기는 했지만, 이게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최우성도 알고 있었다.
“강진호.”
문제는 그 모든 사고에 강진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딱히 강진호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은 아니다. 되레 강진호가 있었기에 크게 번질 사고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았다고 볼 수 있었다.
‘영 찝찝하단 말이야.’
하지만 사람이 언제나 그리 이성적일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사건에 항상 강진호라는 이름이 따라다니는 것을 보는 최우성 의 심정은 모호한 불안함, 그 자체였다.
강진호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그의 주변에서 사고가 계속 터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시해야지.”
최우성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교관과 조교들에게 강진호를 잘 보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둬야겠다.
물론 그 전에 대대장님이 복귀하면 끌려가서 쌍욕을 얻어먹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걔 병원 간 거야?”
“수도병원 갔다던데?”
“조교가 그래?”
“어.”
“그러게 원래 천식 있는 새끼가 화생방은 왜 했대? 교관님도 몸이 안 좋은 사람은 빠져도 된다고 했잖아.”
“야 씨, 나도 말만 하면 빠져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막상 그 상황 되니까 말이 안 나오더라. 막말로 사람들이 몸 안 좋은 걸로 빠지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면 훈련 누가 받냐? 다 뺑기치지.”
“하기야.”
강진호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침상에 몸을 기댔다.
전에 주영기와의 트러블이 있은 이후로 강진호는 남들에게 눈에 띄는 일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딱히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러한 행동을 자제하는 것도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걔는 심각한 거야?”
“모르지, 나야. 근데 수도병원까지 갔다면 심각하지 않겠냐?”
강진호가 생각하기로는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탁기는 거의 제거가 됐다. 탁기를 그대로 방치했다면 생명도 위험했겠지만, 탁기를 제거한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근데 따져 보면 진호 때문에 산 거 아니냐?”
“그렇지.”
같이 화생방실에 들어간 동기들이 강진호가 조교들을 밀쳐 내고 발작을 일으킨 훈련병을 끌어낸 것을 알고 있었다.
“애가 발작을 일으켰으면 일단 밖으로 보내고 봐야지, 뭐하겠다고 그걸 잡고 있었대?”
“군대가 원래 그런 데 아니냐.”
“그래도 너무하잖아.”
강진호는 눈을 감아버렸다.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빤히 시야가 뚫려 있는 곳에서는 힐끔대는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하면서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 주위의 움직임을 몇 십 배로 예민하게 느끼는 강진호에게는 그러한 시선이 더욱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와, 너희 봤냐? 조교가 막는데, 진호가 조교째로 질질 끌면서 문까지 부수고 나갔잖아.”
“난 터미네이턴 줄 알았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저것도 난놈은 난놈이야.”
뭔가 분위기가 훈훈해져 가고 있었다.
“근데 애초에 저 새끼 때문에 그렇게 된 것도 맞잖아.”
하지만 항상 그럴 때는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왜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진호가 잘못한 건 없잖아?”
시선을 받은 이가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애초에 저 새끼가 적당히 나댔으면 교관들이 그리 미쳐서 괴롭히지도 않았을 거고, 그랬으면 걔도 멀쩡하게 나왔겠지. 병 준 놈이 누군데 약 줬다고 유세야.”
강진호는 딱히 유세 부린 적은 없다고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렇긴 한데…….”
생활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런데 그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지가 잘해서 그런 건데.”
“잘해서 그런 거든, 못해서 그런 거든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잘못된 거지.”
“크게 피해 입은 것도 없는데.”
“사람이 병원에 실려 갔는데 피해 입은 게 없긴. 그게 말이나 되냐?”
논리적으로는 틀린 말 같은데, 뭔가 감정적으로는 동조가 되는 분위기였다.
“저 새끼가 나대서 이리된 거 아니냐고!”
강진호는 굳이 반박을 하거나 대답을 하려 하지 않았다.
감정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논리로 말을 해봐야 의미가 없다. 그리고 괜히 말을 섞다가는 사고가 날 수 있었다.
강진호는 대답 없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
“저 봐, 저거! 저 새끼! 사람이 말을 하는데 신경도 안 쓰잖아. 애새끼가 죽든 말든 지는 관련 없는 거다, 이거 아냐.”
“야, 말이 심하다. 진호가 애 끌고 나왔는데 그리 말하면 안 되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 말이 끊기고 말았다.
“여하튼 나는 저 새끼 마음에 안 들어.”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데?”
“너 지금까지 3주 동안 저 새끼가 남한테 말 거는 거 본 적 있냐?”
“없지.”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아주 혼자 잘 나셨어요. 그런데 쟤가 다른 애를 걱정해서 그런 것 같냐? 아닐걸?”
강진호의 미간이 조금 꿈틀했다.
좋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 적은 없지만, 그렇다 해도 적어도 날조는 하지 말아야지. 뭘 안다고 사람 마음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저리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좀 적당히 나대라고.”
“…….”
“야, 내 말 듣고 있냐?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눈뜨고 말하라고, 새끼야.”
강진호가 눈을 떴다.
몸을 일으킨 강진호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생활관 문이 열리더니 한 손에 닦은 전투화를 든 주영기가 들어왔다.
“뭐, 씨발 놈아.”
“……어?”
말을 하던 이가 주영기의 얼굴을 보더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전신에 문신을, 그리고 보통 사람보다 배는 될 것 같은 몸을 한 주영기는 생활관 내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딱히 다른 애들을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누구도 주영기의 말에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뭐가 문제냐고.”
“아니…….”
분위기를 끌어가던 82번 훈련병 이상후가 말을 더듬거렸다.
“너무 나대니까.”
“이 쉬벌 넘이!”
주영기가 들고 있던 군화를 그대로 이상후에게로 집어 던졌다.
타당!
몸을 숙여 피하기는 했지만, 군화가 관물대에 부딪치며 튀어 올랐다.
“뭐가 문제냐고, 이 씨발 놈아.”
이상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영기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씨발 놈들이 다 죽어가는 애 살려놨더니, 그걸 꼬투리 잡아서 쑥덕거리고 자빠졌네. 너희는 그 상황에 뭐했다고 남한테 욕지거리여, 기집애 같은 새끼들이.”
다들 주영기에게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주영기의 눈에 거슬리고 싶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진호가 뭐 잘못했어?”
“…….”
“잘못한 것도 없는 애를 뭣헌다고 몰아가고 그라는데.”
주영기의 입에서 사투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영기야, 진정해.”
“애들이 철이 없잖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주영기를 말리기 시작했다.
“너희, 이 씨발 놈들…… 앞으로 한 번만 더 진호 물고 늘어지는 새끼 나오기만 해봐. 아굴창에다가 군화를 처박아 버릴 테니까.”
서슬 퍼런 주영기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가득 찬 생활관이 일순 조용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주영기는 씩씩대며 소리쳤다.
“뭐해, 내 군화 안 가져오고!”
슬그머니 눈치를 보던 훈련병들이 자기 앞에 떨어진 전투화를 들고 주영기에게 가져다주었다.
“다 닦아놨는데.”
다시 먼지가 묻어 더러워진 군화를 보고 짜증을 낸 주영기가 밖으로 다시 걸어 나갔다.
쿵!
문이 강하게 닫히자 그제야 숨을 쉬겠다는 듯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쟤 왜 저러냐? 전에는 지가 제일 진호한테 지랄했었는데.”
“마, 수류탄 교장에서 진호가 영기 살려줬잖아.”
“그렇다고 안면을 저렇게 싹 바꾸나?”
“계속 지랄하면 더 미친놈이지. 저게 맞는 거지.”
“그러네.”
강진호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여긴 내가 나설 일이 별로 없는 곳이네.’
뭔가 하려고 할 때마다 그를 막아서는 이들이 항상 있는 것 같았다.
강진호는 다시 관물대 모포에 몸을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여기만 해도 벌써 이런 건가.’
신병이라는 같은 신분에 있는 이들도 딱히 뭔가 하지 않은 강진호를 걸고넘어지고 있었다.
강진호의 무언가가 그들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렇다면 그보다 선임들만 있을 자대는 또 어떨까? 더 높은 포지션이기에 거슬리지 않아 할 것인가, 아니면 더 거슬려 할 것인가.
‘어울리지 않는군.’
강진호는 결국 자신과 군대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가 군대에 오기 전에 아버지나 유민이가 왜 그리 걱정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천성적으로 강진호는 조직이라는 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강진호는 눈을 뜨고는 옆으로 다가오고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뭐? 왜?”
“아니다.”
조금은 얼굴을 붉히고 있는 주영기를 보며 강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재미는 있는 편이었다.
“싱거운 새끼.”
강진호의 옆자리에 올라와 앉은 주영기가 어색한 얼굴로 자꾸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