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80
#879.
기습하다 (4)
“서, 설마?”
이현수가 몸을 떨었다.
지금 강진호가 한 말의 의미는 오직 하나였다.
“하지만 그건!”
미친 짓이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미치겠네.’
하지만 문제는 그 미친 짓이 이제는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강진호와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이현수도 그 정도의 미친 짓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주인.”
다행히 이현수 대신 바토르가 나서주었다.
“끝내주는 생각이군! 물론 당연히 나도 데려가겠지?”
아니다.
저것도 미친놈이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제정신 박힌 인간이 없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위긴스도 제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분명 타당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도리가 없군요. 몇 가지 안전장치만 해놓는다면 좋은 옵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
저 양반도 마찬가지고!
“회주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곳에 제정신 박힌 이가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 이현수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필 이현주라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위험?”
“예. 너무 위험합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거기까지.”
강진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앞에 선을 그었다.
“모두와 함께 상의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건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자각하는 것 역시 필요하지.”
“저는…….”
“아직은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이현주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강진호의 말이 맞다. 이곳은 총회의 중심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이다. 이곳에서 의견을 내기에는 이현주의 직위나 입지, 무엇 하나 격에 맞는 것이 없었다.
그전에 낸 의견을 강진호가 전향적으로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배려라 할 수 있었다.
입을 다무는 이현주를 보며 이현수가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그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강진호의 말이 맞다. 모두가 의견을 낼 수 있다면 이상적인 상황일 것 같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강진호는 하루 종일 남의 이야기만 들어야 할 것이다.
일만이 넘는 총회의 모든 이들이 한마디씩만 해도 24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그래서 체계와 직위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현주는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 발언할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그건 남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 증명하고 쟁취해야 한다.
“아니, 그런데!”
방진훈이 화가 난 얼굴로 끼어들었다.
‘의외의 지원?’
방진훈이 그런 사람이었…….
“나만 지금 못 알아듣는 거야? 왜 지들끼리 쑥덕대? 나도 좀 알자! 나도!”
……그럴 리가 없지.
이현수가 한숨을 쉬고는 설명을 해주었다.
“지금 회주님께서는 그 배가 한국 땅에 닿기 전에 쳐들어갈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어?”
방진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접 바다로 간다는 거야?”
“일단 그런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아니, 그게…….”
방진훈의 표정이 여러 차례 변했다. 어이없어 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갸웃대더니, 이내 흥분 어린 얼굴로 말이다.
“쩌는데?”
“…….”
이현수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누굴 새로 영입해야 하나?’
머릿속에 싸움밖에 없는 사람들이랑 회의를 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겠는가. 안 그럴 것 같던 위긴스도 저러고 있다.
저 양반은 가만히 보면 말하는 건 굉장히 침착한 척하지만, 내용은 과격하기 짝이 없다. 비둘기파를 가장한 매파다. 그것도 무척이나 호전적인.
그러니 모든 회의의 내용이 이렇게 흐를 수밖에.
이현수가 한숨을 쉬었다. 이러면 결국 또 그가 총대를 메야 한다.
“저는 반대합니다.”
“이유는?”
강진호의 물음에 이현수가 아랫배에 힘을 줬다.
“이유는 당연합니다. 너무 위험하니까요.”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들에게 퇴로가 없다는 건 우리에게 이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퇴로가 없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에 침투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의 방해를 뚫고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빠져나올 필요가 있나? 다 박살 내면 그만이지.”
바토르의 말에 이현수가 머리를 짚었다.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면 세상에 불가능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쉽게 풀리지만은 않을 겁니다. 한국을 침공하겠다고 오는 놈들입니다. 소수가 잠입해서 해결할 정도가 아닙니다.”
“흐음…….”
바토르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일본 놈들의 수준을 내가 정확하게 몰라서 그러는데, 놈들이 강한가?”
“그건 사실 저도…….”
이현수가 머리를 긁었다.
일본의 무인들이 한국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은 그냥 상식이다. 하지만 그들의 수준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한국과 중국의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막연한 개념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니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저는 반대입니다.”
“그냥 반대만 하지 말고 이유를 붙여서 말해주면 편할 것 같은데?”
위긴스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그 목소리에 살짝 불만이 감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 이유는 간단합니다. 회주님이 직접 나서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나?”
강진호가 자신을 가리키자 이현수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회주님입니다.”
“왜?”
“그야 너무 당연한 일 아닙니까. 회주님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멍해졌다.
뭐긴 뭔가, 강진호지.
“회주님은 이제 그렇게 함부로 밖으로 나도시면 안 됩니다. 회주님이 죽기라도 하면 총회는 그대로 무너집니다. 일본이고 중국이고 할 것 없이 침을 줄줄 흘리면서 달려들 겁니다. 그럼 멸망입니다.”
“…….”
“그나마 회주님이 있어서 지금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 배에 타고 오는 놈들 모두의 가치가 회주님 하나의 가치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혹시 이번 일로 회주님이 그놈들과 같이 죽기라도 하면 한국은 끝입니다.”
이현수의 목소리는 더없이 단호했다.
그러니 강진호도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위긴스도 추임새를 넣었다.
“저도 이 실장의 말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위긴스도 조금은 신중해 보였다.
“확실히 로드의 계획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위험을 동반한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회주님께서는 지금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셨기에 당연하게 느껴질 뿐, 원래대로라면 회주님은 그리 쉽게 나서시는 게 아닙니다.”
“으음.”
강진호가 침음을 흘렸다.
항상 듣는 말이기는 하지만, 매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강진호가 선두에 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가 선두에 설 때 희생을 가장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게 효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희생이 늘어날 뿐 아니라, 기세를 잡을 수가 없다. 과거 마교에서도 그게 너무 당연했다.
매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납득을 하려 하지만, 솔직히 별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가장 나은 방법 아닌가?”
“회주님을 소모하고 대체할 수 있다면 그렇겠죠. 하지만 회주님은 대체가 불가능합니다.”
“과거에도…….”
“회주님.”
이현수가 강진호의 말을 잘랐다.
“회주님이 어떤 과거를 겪으신 건지 제가 세세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과거 마교에서 회주님이 차지하고 계셨던 지분과 지금 총회에서 회주님이 차지하고 계신 지분은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
“…….”
“생각 같아서는 회주님을 꽁꽁 묶어놓고는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싶은 심정입니다.”
“끙.”
강진호가 소파에 등을 기댔다.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한다면 한 귀로 흘릴 테지만, 이현수의 말은 강진호에게도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현수는 반드시 강진호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만 한다는 확신이 있다. 그러니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하나…….”
통역을 듣느라 조금 늦게 상황을 파악한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중심이 되는 이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직은 썩는다. 지금까지 총회가 급격히 발전할 수 있던 이유는 주인이 뒷짐을 지고 지켜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에는 이현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강진호는 모든 일에 가장 먼저 나선다. 그리고 자신이 이룬 업적을 생색내지 않는다.
물론 그게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현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냥 성격이 급해서 느긋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뛰어나가는 것에 가까웠지만, 여하튼.
강진호가 선두에 서서 직접 움직이니, 아랫사람들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총회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변해왔다.
한 번의 변화가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나가 바뀌면 또 다른 것을 바꾸고, 시간이 지나면 이전에 바꾼 것도 또다시 바꿔낸다.
이전의 총회가 십 년이 걸쳐도 바꾸지 못할 것을 단 한 달 만에 뒤집어엎어 버리고, 그걸 다시 또 뒤집는 사태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곳이 현재의 총회였다.
그리고 이 말도 안 되는 과격한 변화의 중심에는 강진호가 있다.
그런데 강진호가 여기서 몸을 사린다?
그럼 안정적으로 변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발전의 동력은 사라진다.
그게 바로 이현수를 괴롭히는 딜레마였다.
“결론을 내지.”
강진호가 간단하게 말했다.
“이번까지는 내가 간다.”
“하, 하지만 회주님!”
“그냥 감정적으로 하는 말은 아냐.”
강진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싸우고 싶으니 싸운다. 그런 식으로 하는 결정이 아니다. 이게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다.”
이현수가 입을 닫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강진호가 내린 결정이라면 따라야 한다.
“그 근거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위긴스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회주님께서 내린 결정이라면 저희는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합리적이라는 말에 조금은 신경이 쓰이는군요. 그 합리적이라는 말을 뒷받침할 근거를 여쭈어도 실례가 되지는 않을는지요.”
무척이나 완곡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강진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반대의 근거는 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그래서야.”
“……예?”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소파에 등을 기댄 강진호가 다리를 꼬았다. 그러고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강진호가 연기를 들이마시고는 아주 천천히 내뿜는다. 회의실의 허공으로 새하얀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위험할 것 같지 않거든.”
모두의 시선이 강진호에게 집중되었다.
“일천이든 만이든 상관없어. 상대해 주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아니, 감정적으로도 조금 거슬리는 면이 있어.”
“그건?”
“침략이라…….”
강진호가 두어 번 빨아들인 담배를 재떨이에 꾹 눌렀다. 담배 끝이 이지러진다.
“딱히 애국심이 넘쳐 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슬리는군. 그 일본의 무인들이 침략을 위해서 한국 땅을 다시 밟는다는 게 말이야. 나는 그런 걸 참아줄 만큼 관대한 사람이 아냐.”
이현수가 침을 꿀꺽 삼켰다.
강진호의 주변으로 스산한 살기가 내려앉고 있었다.
“그러니 준비해. 내가 직접 간다.”
결정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