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83
#882.
과격하다 (2)
퍼억!
노부오의 머리가 벽에 처박힌다.
퍼억!
다시 한 번.
쇠로 만들어진 여객선의 벽이 부르르 진동한다. 머리가 깨져 나가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퍼억! 퍼억! 퍼억!
세 번 더 노부오의 머리를 벽에 처박은 나카타 유지가 노부오의 머리를 자기 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이죽이며 입을 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을 다루는 법을 아나?”
“끄…….”
노부오의 벌어진 입으로 부러진 이가 떨어졌다. 피에 젖은 새하얀 이가 장난감처럼 바닥을 구른다.
노부오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했다는 식의 허세를 떨 생각은 없다.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마저도 흐려지고 있었다.
어찌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음의 덫에 걸렸다. 그러니 죽음을 피하겠다고 설치는 것도 미련한 짓이다.
죽음을 각오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노부오는 어떤 선택으로도 죽음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체념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진득한 고통만은 가시지 않는다.
나카타 유지는 고문에 무척이나 능숙했다. 어차피 고통도 감각이고, 지속적으로 당하다 보면 조금은 무뎌질 만도 한데, 고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는다.
지금도 이 끔찍한 고통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짐승은 패야 말을 듣지.”
“…….”
“나는 폭력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폭력은 확실한 수단이지만, 디테일을 부수거든. ‘듣는가’, ‘듣지 않는가’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이 남아버리지. 나는 그런 걸 딱히 선호하지 않는 편이야. 하지만 그건 말이야…….”
나카타 유지가 노부오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화가 되는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지.”
퍼억!
다시 머리가 벽에 처박힌다.
코가 부러지고, 눈가의 뼈가 부러진다.
퍼억! 퍼억!
몇 번이고 다시 노부오의 머리를 벽에 처박은 나카타 유지가 그를 잡아끌었다.
바닥에 노부오를 내팽개친 나카타 유지가 발목을 짓밟는다.
우드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내 더 큰 소리에 묻혀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악!”
고통을 참지 못한 노부오가 전력으로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워.”
나카타 유지의 구둣발이 노부오의 입을 걷어찬다. 구둣발로 노부오의 입을 틀어막아 버린 나카타 유지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이 정도의 고통도 못 참는 주제에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군.”
“흐으…….”
침과 피가 범벅이 된 얼굴로 노부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
나카타 유지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는 것을 느꼈다. 주먹을 휘둘러 단숨에 노부오를 죽여 버리려던 나카타 유지가 끌어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렸다.
“후우.”
머리를 내저은 나카타 유지가 노부오의 입에서 발을 뺐다.
‘지금은 분풀이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이놈을 여기서 죽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어차피 일은 벌어졌다. 이놈을 괴롭히는 건 나중에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카타 유지가 몸을 돌렸다.
어차피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았다. 더는 이놈에게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네가 한 일이 효과가 있다면, 어쩌면 살아날지도 모르지. 기도해라, 네가 보낸 메시지가 효과가 있기를 말이야.”
저벅저벅.
밖으로 나간 나카타 유지가 과격하게 문을 닫았다.
철컹!
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와 함께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으…….”
노부오가 손을 들어 자신의 입가를 움켜잡았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이 가시지를 않는다. 할 수 있다면 칼로 턱을 베어내고 싶을 정도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고통이었다.
“흐…… 흐흐.”
하지만 신음보다는 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미친놈.’
나카타 유지는 아마 지금쯤 그에게 많이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세상 누구도 지금의 노부오보다 노부오를 증오하는 사람은 없었다.
‘병신 새끼.’
어쩌자고 저질렀단 말인가, 어쩌자고!
대체 뭘 하겠다고!
그는 한국을 도와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조국이라고는 하지만, 받은 것 하나 없는 조국은 조국이 아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내게 주는 것이 있어야 나도 무언가를 주는 것이다. 한국인이기에 얻은 이득이 없는데, 조국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보낸 메시지 하나로 대체 뭐가 달라지겠는가.
메시지 하나로 국면이 극적으로 바뀐다?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그가 보낸 메시지가 상부에 전달된다는 보장도 없다. 애초에 그의 메시지를 신뢰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중대사를 일방적으로 보낸 메시지 하나로 덮어놓고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설사 그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상부로 그의 말이 전달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무슨 수로 막는다고!’
한국의 수준은 그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가 아는 한국이라면 지금 이 배에 탄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쓸어버릴 수 있다.
막을 수 없는 전력이, 막을 수 없는 방법으로 가고 있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빨리 도망이라도 가라고?
그래서 한 놈이라도 더 살아남으라고?
“흐…… 흐…….”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객기.
그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위로 올라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저 개 같은 일본 놈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얼마나 바닥을 굴렀던가.
그렇게 겨우 차지한 자리다. 그렇게 겨우 잡은 기회였다.
재일 한국인으로 받는 차별을 모두 떨쳐 내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제 발로 차버렸다고?
“……낄낄낄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스스로가 병신 같아서, 너무 병신 같아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노부오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그런데 왜?”
“아아,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이 있었을 뿐이다.”
“아, 그러시군요.”
살짝 와닿는 의심의 눈초리를 나카타 유지는 웃음으로 받았다. 상대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멀어져 간다.
‘눈치는.’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저들이 생각하는 문제와 나카타 유지가 겪고 있는 문제 간에는 어마어마한 거리가 있으니까.
아마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이 저들에게 알려졌다고는 말이다. 나카타 유지조차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안일했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나 모를 정보의 유출을 경계하여 통화 가능 구역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저들을 갑판에 묶어두었지만, 여객선 내 와이파이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뒤늦게 수습을 해봤지만, 이미 문제는 벌어진 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휴대폰을 압수했어야 하는 건데. 조금 더 빨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들떴나?’
아마도 그랬던 모양이다.
이건 평소의 나카타 유지라면 결코 놓치지 않았을 문제다.
일본의 연합을 이끌고 한국으로 쳐들어간다. 그리고 그 원정군을 지휘한다. 어마어마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니 들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을 꼼꼼히 처리하지 못했다. 이건 분명 실착이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벌어진 건 어쩔 수 없다. 이제는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단은 숨기는 게 좋겠어.’
한국 쪽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는 말이 퍼진다면, 분명 동요가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 동요하는 인원 중에는 나카타 유지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이도 있다는 점이다.
공에 눈이 멀어 있지만, 자신의 위험은 절대 바라지 않는 늙다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당장 회항을 요구할 것이다. 일단은 기습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2차 침공을 계획하자는,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을 게 빤하다.
‘개 같은 소리.’
말도 안 되는 말이다.
한 번 침략이 무위로 돌아가고, 저들이 침략 시도를 알아채게 된다면 경계는 당연히 강화된다. 그럼 한동안은 저들의 허를 찌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아니,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나카타 유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2차 원정군의 선두에는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서게 될 테니까.
죽 쒀서 개 주는 것도 아니고, 그가 모든 것을 계획한 일이다. 다른 놈들이 과실을 따먹게 내버려 둘 생각은 결단코 없었다.
“어찌 나올까?”
나카타 유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공격은 못 온다. 이건 여객선이다. 여객선을 향해 공격을 한다는 건 외교적으로 자살을 하겠다는 뜻이다. 생존자가 얼마가 되든 간에 한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된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라면 부두를 봉쇄한다. 인원을 넓게 흩뜨려서 상륙하는 족족 죽이려 하겠지.’
사실 그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패착이지.’
안 그래도 약한 한국의 무인들이 분산되는 순간, 맛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할 뿐이다.
쓸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인데, 그 방법은 되레 이쪽에 이롭다.
‘벌이 아니라 상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쩌면 노부오가 멍청한 짓을 벌여준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자 웃음이 살짝 새어 나왔다.
“기분 좋은 모양이군.”
“…….”
이런.
생각이 너무 깊었던 모양이다. 이성휘가 접근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전부터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여자가 좋다. 그러니 내 주변을 맴도는 짓은 그만해 줬으면 좋겠는데?”
“참고하지. 하나 충고를 하러 왔다.”
“뭐지?”
이성휘가 가만히 나카타 유지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문제가 생긴 것 같더군.”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아니, 오히려 상황이 쉽게 풀릴 수도 있는 일이다.”
“전혀 모르고 있군.”
“……뭐가?”
이성휘가 고개를 내저었다.
“머리가 좋은 놈들의 문제지. 모든 것이 제 머릿속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하거든. 하지만 세상에는 그 상식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뒤집는 놈들이 있는 법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강진호나 이현수 같은 놈을 네 머리로 단정 짓다가는 지옥을 맛보게 될 거라는 뜻이지. 네 딱딱한 머리로는 그들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어.”
“이봐, 조센징. 이쯤 되면 정도를 넘은 것 같은데?”
“정도를 넘었는지는 모르겠고, 이미 늦었다는 건 알겠군.”
“뭐?”
“봐라.”
이성휘가 턱짓으로 먼 하늘을 가리켰다.
“뭘 보라는…….”
나카타 유지가 입을 닫았다.
이성휘가 가리킨 하늘.
어둠이 내려앉은 검은 하늘의 끝에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뭐지?’
점이 점점 커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굉음과 함께 말이다.
타타타타타타탁!
나카타 유지가 입을 벌렸다.
‘이 미친놈들이!’
이성휘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말했잖아, 미친놈들이라고. 너도 이제 그걸 뼈저리게 알게 될 거다.”
어쩐지 이성휘의 목소리에 즐거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