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85
#884.
과격하다 (4)
“이 실장.”
“예, 이사님.”
“사태를 잘 주시하고 있게. 연락 체계 확보하고.”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쯧, 이 나이에 이런 짓을 해야 하다니.”
위긴스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간만에 흥분되는걸?”
그 말이 끝이었다. 위긴스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밖으로 몸을 던졌다.
‘진짜 영화 같네.’
차이점이 있다면 영화에서는 보통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반면, 이들은 정말 맨몸으로 뛰어내리고 있다는 점 정도일까?
이 까마득한 곳에서 맨몸으로 낙하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능력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여객선에 타고 있는 이들에 비하면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수로 누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저놈들도 초인의 위력을…….
“어이, 이 실장.”
“아! 예!”
그러고 보니 하나가 더 있구나.
“비켜 드리겠습니다!”
“뭘 비켜, 인마!”
“예?”
“낙하산 줘, 낙하산.”
“…….”
방진훈이 짜증을 잔뜩 실어 말했다.
“아니, 저 양반들…… 영화를 너무 봤나. 이 높이에서 뭘 그냥 뛰어내려? 어휴, 무서워.”
“…….”
아, 뭐…….
이게 정상이긴 하지, 이게.
이현수가 들고 있던 낙하산을 방진훈에게 건넸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야?”
“예. 그러니까…… 조종사님! 선회 한 번 해주세요! 그 위로 다시 가야 해요! 이사님, 잘 들으십시오!”
“……어.”
때 아닌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빨리빨리 올라타!”
“이 새끼들아, 발이 보이잖아! 한시가 급하다고 말했어, 안 했어!”
이명환은 마음이 급했다.
‘빌어먹을, 왜 우리가 마지막이야!’
지원대는 세 부류로 나뉘었다.
마교의 장로들을 위시로 한 마교의 정예.
그 병신 놈들을 정예라고 부르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여튼 그 쭉정이들 중에서도 나름 씨알이 큰 쭉정이들을 골라 태운 배가 아까 출발했다.
그리고 총회의 정예들을 모은 배도 조금 전에 출발했다.
“왜 우리가 마지막이냐고! 씨발!”
금방이라도 입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다.
이게 어디 보통 사탠가.
일본이 쳐들어온다.
“이 쪽발이 새끼들이 미쳐 가지고!”
중국이 쳐들어온 상황이라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침공한 이들이 또 일본이라는 사실이 이명환의 꼭지를 돌게 만들었다.
“만만하지? 개새끼들.”
한국이 동네북도 아니고, 이 새끼들은 심심하면 한 번씩 쳐들어온다. 그리고 그놈들이 쳐들어올 때마다 한국은 심각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빌어먹을 역사가 다시 또 반복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이 침략이 한국에 대한 침략이 아니라 한국 무인계에 대한 침략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무인계는 한국이 아닌 것도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회주님이 내리신 결정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저 쪽발이 새끼들이 한국 땅을 밟기 전에 모조리 수장시켜 버리겠다.
크!
사나이 아닌가.
이명환에게 강진호는 무척이나 복잡하고 미묘한 존재였다.
그의 안에는 강진호에 대한 존경과 우려, 믿음과 불만이 제멋대로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그 복잡한 감정을 다 고려하고서라도 강진호가 한 번씩 말도 안 될 정도로 시원한 짓을 저지르는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이명환도 그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데…….
“빨리 좀 타라고!”
“알았어! 재촉 좀 하지 마!”
“야, 이거 어디 앉아야 해?”
“앉긴 뭘 앉아, 이 새끼야! 대충 구석에 처박히라고!”
“내 저 새끼 좀 있다가 물 밖으로 던져 버릴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마염들이 차곡차곡 배 위로 올랐다. 마음이 급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강진호는 헬기를 타고 출발했다. 헬기와 배의 속도 차를 생각하면 분명 도착 시간의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다.
“이…….”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명환이 재빨리 휴대폰을 받았다.
“이명환입니다!”
[준비 끝났어?]지직거리는 소음이 들려왔지만, 말을 알아듣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위성전화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이명환이 입을 열었다.
“아니, 왜 우리가 마지막입니까! 우리가 최고 전력인데, 당연히 우리가 선두로 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마, 너희는 쾌속선이잖아! 마지막에 출발해도 너희가 제일 빠르다고.]“그래도 그렇죠!”
[하, 이 새끼, 대가리만 굵어 가지고.]“탑승하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먼저 진입하는 건 우리가 할 겁니다. 아까 천태훈, 그 새끼가 엄청 쪼개고 갔단 말입니다! 이 새끼가 세상이 달라진 걸 모르고!”
[……싸우지 좀 마라, 이 새끼들아. 제발 좀.]건너편에서 이현수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여하튼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해.]“예!”
전화가 뚝 끊겼다.
“쳇.”
전화를 거칠게 주머니에 쑤셔 넣은 이명환이 먼바다를 바라보았다.
“먼저 날뛰어야 하는데.”
날뛰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이명환을 가장 안타깝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반응을 봐야 하는데.’
강진호가 헬기에서 뛰어내려 배에 내려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쪽발이들의 반응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놓친 게 더없이 아쉽다.
“빨리 타, 이 새끼들아! 빨리 가야 해!”
“알았다고, 인마!”
마염들이 불만을 토해내며 배 위로 뛰어올랐다.
* * *
“헬기?”
이명환이 보고 싶어 하던 광경이 배 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나카타 유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헬기를 보낸다고?’
제정신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헬기를 타고 배에 접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저 헬기는 정찰용 이상이 될 수는 없다. 탑승 인원이 제한되어 있는 헬기는 지금 이 상황에서는 결코 적절한 이동 수단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런데도 헬기를 보낸다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 놈들인가?’
나카타 유지가 한국 쪽에 있었다면 배로 헬기를 보내는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정보를 쥐었다면 그걸 활용해야 한다.
굳이 적에게 ‘지금 우리는 너희가 한국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다’라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자기과시였다.
“미친 짓을 하는 건 맞군.”
나카타 유지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강진호의 지시인지, 그게 아니면 강진호 밑에 있는 어느 놈의 지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 하나로 총회라는 곳이 얼마나 한심한 집단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저런 놈들에게 당해서 쫓겨난 건가? 너도 알 만하군.”
“저런 놈들?”
“그래. 쓸데없이 정찰을 보내 자신들의 정보를 내보이는 놈들 말이다.”
정찰일 수밖에 없다.
헬기가 바다 위를 비행하는 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 많지 않은 정찰 빈도에도 항상 해양 헬기 사고가 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헬기가 이 먼 곳까지 왔다는 것은 일부러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이동했다는 뜻이다. 그건 총회가 노부오가 보낸 메시지를 활용한다는 뜻이고.
대처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를 때 힘들어진다. 이리 서로 빤히 알게 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정찰?”
이성휘가 피식 웃었다.
“뭐가 우습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스스로 대가리가 좋다고 자부하는 놈들은 제 꾀에 제가 빠진다고. 자기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만 생각하지. 제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진다는 건 절대 고려하지 않는단 말이야. 멍청하게도. 그래서 헛 똑똑이라는 말이 나온 거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저게 지금 정찰로 보이나?”
나카타 유지가 입을 닫았다.
“눈이 있다면 보면 되겠지. 저놈들이 그리 멍청한 놈들인지, 아니면 멍청해 보일 정도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놈들인지. 난 아무래도 후자 같은데?”
“…….”
나카타 유지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이 건방진 한국 놈의 말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분에 대해 화를 낼 때가 아니다.
‘설마…….’
나카타 유지의 눈이 허공으로 향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탁!
헬기가 굉음을 내며 접근하고 있었다. 까마득한 높이. 하지만 그 먼 거리를 넘어서도 저 헬기가 단순한 정찰용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정찰헬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아니지.
아니겠지.
머리에 총을 맞은 놈이 아니라면 저 헬기에 탄 인원만으로 이 배에 뛰어들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비슷한 헬기 백 대에서 인원을 모조리 강습시킨다고 해도 절대적인 숫자의 열세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접근하는 헬기는 단 한 대가 아닌가.
저 한 대에서 내린 인원으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건가.
“미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저곳에서 사람이 내려 배로 접근한다면, 이성휘의 말을 인정해야 한다. 저놈들은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멍청한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미친 거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접근하던 헬기의 문이 열렸다. 어둠 속이지만, 그 모습이 나카타 유지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나카타 유지는 철저한 관객이었다.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황당한 일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대처? 대응?
지금 누가 그런 걸 떠올릴 수 있겠는가.
다리 위에 사람이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하면 대응을 할 수 있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되고, 대화를 시도해도 된다. 정답은 다 다르겠지만, 나름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다리 위에 올라간 사람이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인 채 뛰어내린다면?
그저 입을 벌리고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금 나카타 유지의 심정이 딱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열린 문으로 누군가가 뛰어내린다.
“저…….”
말문이 막힌다.
문으로 뛰어내린 이가 양팔을 펼친다.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밤하늘.
아무리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바다.
하늘과 바다가 맞물리는 그 몽환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양팔을 벌린 채 낙하하는 사람.
레이저처럼 뿜어지는 헬기의 조명이 이곳을 거대한 콘서트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양팔을 벌린 이가 배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허공을 비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생 다시는 볼 수 없을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나카타 유지가 입을 쩌억 벌렸다.
타앗!
설명은 길지만, 실제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헬기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순식간에 낙하하여 배의 갑판 위로 올라선다.
“…….”
나카타 유지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길지 않은 짧은 머리, 그리고 평범한 옷.
누가 봐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청년이었다. 물론 지금 이 광경을 본 이라면 그 누구도 감히 이 청년을 평범하다 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 모습만으로는 절대 특정할 수 없겠지만, 나카타 유지는 이 사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나카타 유지가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네가…….”
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네가 강진호인가?”
갑판 위에 올라선 사내.
강진호가 희게 웃었다.
완연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망망대해 위에서 마존이 예의 그 미소를 다시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