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86
#885.
과격하다 (5)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강진호를 보니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이게 그 강진호인가?’
나카타 유지는 강진호를 무시하지 않았다. 강진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강진호를 무시할 수 없다. 그가 그 짧은 시간 만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들을 이뤄냈는가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경배해야 마땅하다.
특히나 나카타 유지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도 강진호를 훨씬 더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아니까.
막연히 강진호가 무언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른다. 강진호가 이뤄낸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하지만 나카타 유지는 알고 있었다.
그 역시 한 구미의 수장이니까.
그가 야마카와카이의 수장이 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회를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그의 모든 행동과 계획, 그리고 노력은 야마카와카이의 성장을 위한 것이었다 말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야마카와카이는 아직 거대 조직이라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벌써 이십여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했음에도 말이다.
그가 수령을 인정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무리 운이 맞아떨어지고, 물려받은 것이 있다고는 해도…… 한 문파를 관서 최대의 문파로 성장시키는 것은 운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스스로 해본 이들은 알 수 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일생에 걸쳐 신니치카이를 관서 최대의 문파로 만든 수령도 대단한 사람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그럼 강진호는?
수십 년에 걸쳐 신니치카이를 관서 최대의 문파로 성장시킨 수령을 대단하다 말해야 한다면, 불과 몇 년 만에 총회를 장악하고, 한국을 일통해 버린 강진호는 대체 어찌 평해야 한단 말인가.
‘강진호.’
나카타 유지는 강진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를 죽이려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 아니다.
강진호는 실질적으로 일본에 위협이 되는 존재다. 그런 이를 제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이 원정대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한국 무인계에 대한 침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진호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 밸런스가 이래?’
이제 게임이 시작되었는데, 첫 전투부터 최종 보스가 나와 버렸다. 그것도 혼자 덜렁.
웬만해서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 나카타 유지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머리가 새하얗게…….
“으아아아아아아아!”
“응?”
거대한 비명 소리에 나카타 유지의 고개가 돌아갔다. 눈을 의심케 하는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아래로 떨어졌다.
갑판?
아니, 바다로.
풍덩!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물보라가 갑판 위까지 튀어 올랐다.
“…….”
“쯧쯧쯧쯧.”
그리고 그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어느새 갑판 위에 한 사내가 더 나타나 있었다. 강진호의 왼쪽에 자리한 흰머리의 노인이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바토르 님은 아직도 섬세한 움직임은 부족한 모양이십니다.”
“흠.”
강진호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며 나카타 유지는 정신을 차렸다. 거대한 소리 때문인지 객실에 있던 이들도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정신 차려.’
나카타 유지가 주먹을 꽉 쥐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당황한 것뿐이다. 지금 이곳은 호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호굴에 생쥐 두 마리가 들어온 것뿐이다. 설사 그 생쥐가 좀 강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친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온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곳은 배다. 그리고 이곳에는 한국을 침공하기 위한 일본의 정예들이 가득 차 있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일본 내에서 이 정도면 한국을 정복하기에 모자라지 않다고 판단한 전력이 이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거기로 기어 들어온다고?
적의 왕이?
“용기가 대단하다고 해주고 싶지만…….”
차분함을 되찾은 나카타 유지가 싸늘하게 말했다.
“과한 용기는 만용이 되는 법이지. 그리고 만용은 언제나 죽음을 부른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구나, 강진호.”
강진호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나카타 유지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뭔가 위협을 한 것도 아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 미소가 왜 이렇게 섬뜩하게 느껴지는가.
더없이 섬뜩한 미소를 품은 채로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래?”
“……글쎄요.”
위긴스도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다.
“제가 일본어에는 약해서.”
“……그렇지?”
강진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통역을 안 데리고 왔어.’
어차피 적만 가득하다는 생각에 딱히 그런 부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쳐 죽여 버리면 속이 편하겠지만, 누군가 자기에게 말을 건네오면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 게 사람 아니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이현수를 데리고 올걸.
그때, 강진호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흠?”
어디서 봤는데?
“……혹시?”
이성휘가 이를 드러냈다.
강진호를 보는 순간부터 분노를 참아낼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군.”
“한국인?”
“이…….”
이성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구더라?”
“이 개 같은 놈이!”
이성휘가 고함을 질렀다. 그 고함 속에 담긴 처절함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는 강진호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감내할 수 있는 모든 굴욕을 감내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나라를 팔아먹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강진호는 그를 기억조차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이성휘가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강진호오오오오오오!”
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아!”
기억이 난다.
“이중걸의 제자로군.”
강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딱히 기억할 것도 없는 놈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었다.
“잘도 빠져나갔지.”
과거 놀이공원 사태 때, 강진호는 이성휘를 제압하여 총회에 가두었다. 하지만 이성휘는 그곳에서 탈출했다. 그렇기에 기억하고 있다.
강진호는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잊지 않는다.
아이들을 노린 놈이 대가를 받지 않고 빠져나가지 않았는가. 반드시 잡아 족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놈이 제 발로 나타난 것이다.
“이…….”
“아무래도 좋아. 너는 말이 통하는 것 같으니 통역 좀 해라. 저놈이 뭐라는 거야?”
이성휘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쉽사리 강진호에게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 역시 무인. 주제를 파악할 줄 아는 무인이다. 분노로 달려들어 강진호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온갖 수작질을 해 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어로 지껄여.”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군. 나 역시 조금 당황해서 말이야.”
위긴스가 호오, 하고 나카타 유지를 바라보았다.
“지금 한국어를 한 것 같습니다만?”
“할 수 있네.”
“으음, 이거…… 조금 곤란하군요. 이왕이면 영어로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때였다.
“영어 같은 소리 지껄이고 있네.”
터억!
갑판 위로 거대한 손이 올라왔다. 물기 젖은 손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인간의 육체가 갑판 위로 기어올랐다.
“……호러 영화가 따로 없군요.”
“진짜 호러가 뭔지 보여줘?”
마치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처럼 갑판 위로 기어오른 바토르가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냈다.
“젠장, 입구가 작아서 그래.”
“몸이 큰 겁니다.”
“알아!”
버럭 소리를 지른 바토르가 고개를 돌려 나카타 유지와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마중은 반갑…….”
아직 상황이 끝난 게 아니었다.
“거기! 거기! 회주님! 회주님!”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간다. 머리 위에서 어느새 낙하산을 펼친 방진훈이 강하하고 있었다.
“회, 회주님! 저 좀 잡아주십시오! 저!”
바람이 분다.
그러니 낙하산은 밀려간다.
점차 방진훈이 배를 비껴 멀어지고 있었다.
“…….”
“…….”
다들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위긴스.”
“네에, 네. 갑니다.”
위긴스가 그 자리에서 퍽, 꺼지더니, 방진훈을 데리고 다시 나타났다.
“으…… 식겁했네.”
방진훈이 주섬주섬 낙하산을 벗었다.
위긴스가 그 모습을 보고 눈을 찌푸렸다.
“거, 폼 안 나게.”
“내가 낙하산을 써봤어야 알 것 아닙니까! 제대로 편 것만 해도 나를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인데.”
“한국인은 다 군대에 간다고 하던데?”
“이 양반이, 한국 군대가 무슨 외인부댄 줄 아나.”
투덜대는 방진훈을 보던 나카타 유지가 이를 악물었다.
여유롭기 짝이 없다.
누가 보면 이곳이 한국인 줄 알겠다.
‘여유를 부려?’
지금 이 순간에도 갑판으로 무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선내에 있는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눈이 있다면 그 광경이 보일 것이고, 그 광경을 봤다면 공포에 떠는 것이 정상이다.
그럼 저들은 뭔가.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 상황에서 저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나카타 유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내리눌렀다.
흥분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조잡한 분노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이다. 심호흡을 한 나카타 유지가 결코 높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주 여유가 넘치시는군.”
그 말에 방진훈이 반응했다.
“회주님, 저 새끼 한국어 하는데요?”
“그런가 봐.”
“와, 신기하네. 쪽발이 새끼가 한국어를 다 하네? 야, 너 그런 거냐? 한류? 한류라고 하나, 그거?”
“……하지 마.”
“신기하잖습니까.”
“하지 말라고…….”
강진호가 방진훈을 만류했다.
하지만 결코 나카타 유지를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솔직히 좀 창피하다.
나카타 유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흠?”
“계산에 오류가 있던 모양이로군. 이렇게 대가리들이 직접 나서면 이쪽에서 협상에 응해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인데, 생각 잘못했어. 우리는 너를 절대 살려둘 생각이 없어.”
“…….”
“그러니 잘못된 선택을 한 걸 후회하며 죽으면 된다. 강진호, 너는 대단한 놈이었지만, 멍청했다. 이제는 그 대가를…….”
“협상?”
강진호의 목소리가 나카타 유지의 말을 끊었다.
협상.
협상이라…….
“내가 아는 협상과 네가 아는 협상이 조금 다른 말인 모양이군.”
“……뭐?”
“협상이라…….”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똑똑한 척하는 놈이지만,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금 저놈의 머릿속에서는 이 상황에 대한 분석이 조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달라질 건 없으니까.
모른다면 알게 해주면 그만이다.
“그래, 협상을 해보지.”
“…….”
“뛰어내려.”
나카타 유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놈이 뭐라 한 건가.
“바다로 뛰어내리는 놈은 쫓지 않는다.”
“이…….”
“모두에게 전해라.”
강진호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
“지금부터 이 배 안에 있는 놈은 모두 죽는다. 한 놈도 남김없이 말이야.”
스산한 공기가 배 위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