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93
#892.
상대하다 (2)
그 눈빛을 본 이성휘가 피식 웃었다.
‘정신이 좀 든 모양이군.’
비록 다그치기는 했지만, 이성휘는 나카타 유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인 이상 저런 광경을 보고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끝도 없이 추적하고 조사했기에 세상에서 강진호를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성휘조차 심장이 떨려오는데, 나카타 유지는 오죽하겠는가.
‘괴물 같은 놈.’
강진호는 점점 강해진다.
처음 강진호와 맞붙었을 때, 이성휘는 끝없는 절망을 느꼈다. 그와 강진호는 감히 비교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는 가능성이 보였다.
그렇기에 마공을 받아들였다. 더 강해지면, 이성휘가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더 강해지면, 강진호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강진호를 상대했을 때, 이성휘는 절감했다.
그건 꿈이라는 걸 말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는 절대 강진호를 따라잡을 수 없다.
같은 인간이라고?
석탄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석탄과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같은 인간이라느니, 인간인 이상 가능성은 있다느니, 이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이들은 세상의 비정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와 강진호는 타고난 것이 달랐다.
그렇기에 일본을 동원했다.
중국에 매달렸다.
그의 힘으로 강진호를 쓰러뜨릴 수 없다면, 다른 이의 힘을 빌려서라도 강진호를 파멸시키려 했다.
하지만 세 번째 본 강진호는 또 다르다.
경이롭다.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증오로 이성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신위를 보고 있으니, 그 증오마저 흐려진다. 무인으로서의 자신을 완벽하게 지워냈다고 생각했건만, 강진호의 신위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 한구석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자신에게 아직 뭔가가 남아 있단 말인가.
마공을 익히고 나라를 팔아먹은 그에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그는 감히 무인혼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다. 존재하는 무인들 중 가장 저열하고 더러운 쓰레기. 저 마인들조차 침을 뱉을 나락 중의 나락에 빠져 있는 존재다.
그에 비하면?
그래, 저 모습은 차라리 찬란하다.
더없이 잔혹하고, 더없이 비정하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악마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게 결국 무(武) 아닌가.
무란 본디 그런 것이다. 위압하고 겁박하고 짓밟는다.
타인을 존중하고 설득하는 것은 문(文)이 해야 하는 일이다. 무는 그저 상대를 가장 효율적으로 죽이고 제압하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의 강진호는 가장 완벽한 무(武)를 온몸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무인의 이상.
정이나 연민 같은 일체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기계처럼 적을 상대하는 저 모습은 어쩌면 수많은 세월 동안 무인들이 그려온 이상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락에 빠지는 동안, 강진호는 저곳까지 올라갔다.
이성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상관없다.’
속이 뒤집어지든 말든, 저 모습이 눈부셔 눈이 멀어버리든, 그런 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래, 올라가라.
더 올라가라, 강진호.
그래야 추락할 때 더 비참할 테니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만 정신…….”
탁.
나카타 유지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이성휘의 손을 쳐냈다.
그러고는 손을 들어 흐트러진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나카타 유지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충분하니 거기까지.”
“흥.”
나카타 유지의 눈에 이성이 돌아왔다.
“이 정도일 줄이야.”
하지만 이성이 돌아왔다고 해서 놀라움이 가신 것은 아니다. 그저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뿐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본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 이상 나쁠 수가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강한 것 같은데.”
“우물 안의 개구리들이 세상을 안 거지.”
“개구리?”
“너희 열도 놈들 말이다.”
이성휘가 피식 웃었다.
“세상을 제대로 돌아보지도 않은 놈들이 자신들은 충분히 중국에 비견될 만하다고 혼자서 자위하는 모습이 아주 같잖지도 않지. 너희는 원래 그 정도다.”
나카타 유지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지만 입을 열어 반박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이놈과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저들을 막아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몰살이다.
‘몰살이라…….’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몰살이라고? 이 배에 있는 이들이?
이곳의 전력이 얼마나 되는데 고작 단 네 명에게 몰살을 당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을 끈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카타 유지는 머릿속에서 갑판 위의 무인들을 지웠다.
저들은 이제 전력이 아니다.
겁에 질려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은 전력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주변의 사기만 떨어뜨릴 뿐이다. 그리고 설사 저들의 사기가 충만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저런 잡졸들은 천이 아니라 만이 모여도 강진호를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짜’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그러려면…….
나카타 유지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의 뒤로 이곳에 참가한 각 구미의 수장들이 어느새 도열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미 넋이 나간 지 오래다.
‘한심한.’
짜증이 났지만, 탓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저런 광경을 눈으로 본다면 누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단은 이들을 다독여야겠지.
“정신 차리십시오.”
“아…….”
“아니면 다 죽습니다.”
“…….”
다 죽는다.
그 말이 효과가 있던 모양이다. 탁해진 눈에 빛이 돌아온다. 다들 지금의 상황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안에 맹수가 들어오면 대처법은 하나뿐이지요. 죽여야 합니다.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으니까.”
그리고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겠지.
이곳의 전력은 결코 약하지 않다. 이만한 인원이 몰살당한다면, 일본은 한동안 한국에 대한 침공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부를 단속하고 재정비하는 데만 몇 년은 훌쩍 지나갈 테니까.
그건 파멸의 길이다.
그들이 재정비를 하는 동안 강진호가 손가락만 빨고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자신의 전력을 강화할 것이다.
나카타 유지가 강진호가 일본을 압도하는 데 걸리는 최소의 시간이 충족되어 버린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은 다시는 한국에 대해 주도권을 쥐지 못할 것이다.
되레 강진호가 언제 쳐들어올까 겁에 질려 전전긍긍하는 꼴이 될 게 빤했다.
‘그건 막아야 한다.’
그러니 이곳이 최전선이다. 이곳에서 강진호를 죽이지 못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하지만 그건 다시 말해 이곳에서 강진호만 죽일 수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말과도 같았다.
“퇴로는 없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나카타 유지에게로 향했다.
“달아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이라면 이곳에서 탈출해 본토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다고 해도 분노한 수령을 대면할 뿐입니다.”
분노한 수령이라는 말에 정적이 감돌았다.
강진호는 두렵다.
바토르는 끔찍하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끔찍함은 수령의 분노 앞에서 그 빛을 잃는다.
저들에게 맞선다면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수령이 분노한다면 죽을 수도 없게 된다. 누가 그 꼴을 당하고 싶어 하겠는가.
“선택은 빤합니다.”
나카타 유지가 손을 들어 강진호를 가리켰다.
“죽이고 영광을 얻느냐, 아니면 죽느냐.”
그 말에 기이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바토르의 눈에 흉성이 돌았다.
그는 지금 단 한 번도 겪지 못한 영역에 들어와 있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마구 치밀어 오른다. 전신이 불에 타는 듯한 작열감과 고양감이 그를 흥분시킨다.
그리고 살의(殺意).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싶은 충동이 그를 지배한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잡아 찢을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피, 그리고 피, 그리고 피!
흉성이 폭발하고 있었다.
이것이 마공!
수십 년간 정공을 수련하여 경지에 오른 바토르조차 그 이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은 분노와 살의가 그의 머리를 장악한다.
죽인다!
모조리 죽인다!
“흐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고함과 함께 바토르의 권이 뻗어졌다. 평소 그가 뿜어내던 새하얀 강기가 아니다. 묵빛으로 물들어 불길하기 짝이 없는 권강이 전방을 휩쓸었다.
콰아아아아앙!
다시 폭음이 터진다.
그 위력도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마공을 받아들인 바토르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런 바토르가 입가로 피거품을 흘리며 돌진한다.
광포화된 거인이 이성을 잃고 날뛴다.
그걸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
“……미친.”
방진훈이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저기 끼면 나도 죽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지금 바토르와 강진호의 주변으로 다가가는 건 너무도 위험하다는 것을.
바토르는 지금 말 그대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다. 아군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돕긴 뭘 돕는단 말인가. 방해나 안 하는 게 돕는 일이다.
바토르가 강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바토르는 그가 알고 있던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보라.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일 권, 일 권이 뻗어질 때마다 폭음이 터진다. 주먹에 폭탄이라도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힘을 모아 내지르는 일격도 아니다. 그저 가볍게, 가볍게 내뻗는 주먹 하나하나가 살인적인 위력을 뿜어낸다.
“아니, 뭐가 이리…….”
마공을 익힌 것만으로 이리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그 해답은 위긴스의 입에서 나왔다.
“망설임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망설임?”
“길게 이야기해 봐야 못 알아들으실 테니, 그냥 그렇다고 알아두십시오.”
“뭐라고?”
“……아닙니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동 통역기라도 달고 다니든 해야지, 이거 원.
‘그건 그렇고…….’
위긴스가 가라앉은 눈으로 드넓은 바토르의 등을 바라보았다.
‘세 배는 강해진 느낌이군.’
위긴스는 알 수 있다. 바토르가 강해진 이유는 단순히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 아니다. 정공을 베이스로 한 그에게 마공이 덧대진다고 해서 단숨에 그만한 상승을 바랄 수는 없다.
바토르가 강해진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초원의 전사를 자부하고, 전투의 환희를 추구하는 전사이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바토르는 피에 익숙하다. 하지만 그게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인간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 거부감이 내지르는 힘을 약화시키고 반응을 더디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의 바토르에게는 그 거부감이 없다.
되레 사람을 하나라도 더 죽이겠다고 날뛰고 있다. 저만한 고수가 되면 그 작은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도 이만한 차이가 나는 법이다.
의식적으로 고칠 수 없는 부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나도 마공을 익혀볼까?’
위긴스가 입술을 핥았다.
저건 매력적이다. 정말 더없이 매력적이다. 할 수만 있다면 시도해 보고 싶을 만큼.
‘하지만 아니지.’
그와는 맞지 않다. 검과 마법을 함께 쓰는 그는 항상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되레 자신을 망칠 수 있다.
그리고…….
“꼭 그런 식으로 강해져야 하는 것도 아니지.”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많다.
예를 들면…….
위긴스의 의수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의수에 그려 넣은 마법진들이 푸른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광경을 본 방진훈이 힘없이 말했다.
“이건 또 뭐야…….”
그냥 오지 말걸.
괜히 왔어, 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