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97
#896.
정화하다 (1)
“아니, 이게 뭔 일이야?”
이명환은 멍하니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한참 전에 여객선의 곁에 도착했다. 하지만 쉽사리 배 위로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오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아니, 기다릴 일이…….”
“기다려 보라고, 인마! 나도 복잡하니까.”
“…….”
이명환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같은 말을 해도 꼭 저렇게 한다니까.’
입은 모든 화의 근원이라는 말을 이현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저 인간은 같은 말이라도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법을 안다. 일부러 열 받으라고 말을 저렇게 하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뭐…….
‘내가 오늘은 이해한다.’
이명환도 이현수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가 이현수라고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고?
저걸 보면 다 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사람이 뛰어내린다.
배가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사람의 손에 들린 팝콘 통 같다. 그 안에서 팝콘…… 아니, 사람들이 뒤섞이며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끝도 없이 말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르는 쪽이 바보다.
‘또 저질렀구만.’
뛰어내리는 이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동물원에서 사자가 탈출했다는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아마 이런 얼굴로 동물원을 빠져나올 것이다.
보나마나 강진호에게서 달아나는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게 망망대해인데…….’
이미 그들은 비슷한 일을 겪었다. 마인들이 바다를 헤엄쳐서 배에 오르지 않았던가. 무인들의 체력은 일반인과 다르다. 일반인은 4~5㎞ 정도만 헤엄쳐도 탈진에 이르지만, 무인들은 그 몇 배나 되는 거리도 헤엄쳐서 건널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이현수가 계산한 최대 거리가 20㎞ 정도였다. 아무리 마인들이 이들에 비해 약하다고는 하지만, 저들이 마인들보다 열 배를 더 헤엄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지금 이곳에서부터 일본까지 거리를 계산하면 최단으로 끊어도 최소 200㎞는 될 것이다. 그 거리를 헤엄치겠답시고 바다로 뛰어든다?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이해한다. 이해해야 한다. 만약 이명환이라 해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오히려 이명환이기에 저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역시 저 배 위에 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강진호와 맞서 싸우느냐, 아니면 이 어두운 바다로 뛰어들어 일말의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보느냐.
선택이 너무 빤한 문제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겠지.
이명환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그러니까 진입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하지?’
저들이 저리 바다로 뛰어든다는 것은 배 위의 상황이 잘 풀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금 진입해야 하는가, 진입하지 않아야 하는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무력이 약한 그들이 돕겠답시고 배 위에 올랐다가 방해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진입해 보는 게 낫지 않습니까?”
“기다려.”
“죽기밖에 더합니까?”
“내가 니들이 죽을까 봐 고민한다고 생각하냐?”
“아닙니까?”
“……니들 목숨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자뻑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나르시즘이냐? 병원 가봐라.”
이 개새…….
이명환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렸다.
확실히 이 새끼는 같은 말을 해도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이놈보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겠는가.
“죽으면 다행이지. 인질로라도 잡히면 뭘 어쩌려고?”
“에이, 그럼 혀 깨물고 뒈지면 되죠.”
“혀 깨문다고 안 죽는다.”
“……그래요?”
그건 또 몰랐네.
“아니, 회주님이 우리가 인질로 잡혔다고 망설일 사람 같지는 않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이번에 니들이 중국에서 인질로 잡힌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다. 너희 데려온다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손해를 봤는지 아냐?”
“……그건 몰랐죠.”
“차라리 뒈질 것이지, 쪽팔리게 인질로 잡혀 가지고 피해나 주고 말이야. 쓰레기 같은 것들.”
와!
이걸 면전에 대고 말하네, 이걸.
사람은 이익에 민감하다. 사실 인간의 목숨은 누구보다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지구 건너편에 있는 사람을 살리는 대가로 일 년 치 연봉을 내라고 하면 다들 미쳤다고 할 것이다.
인간이 생각하는 타인의 목숨값은 그리 비싸지 않다. 자신과 얼마나 관계가 있느냐, 자신이 얼마나 타인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값어치가 달라진다.
그러니 이현수가 그들을 가까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 돈이 아까울 수도 있다. 그거야 뭐, 다들 속으로는 생각하는 부분이니까 인정할 수 있는데…….
‘아니, 보통 그걸 사람 앞에 대놓고 말하냐고!’
아무래도 이 인간의 마음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새삼 다시 깨닫는 이명환이었다.
“그럼 이렇게 구경만 합니까?”
“일단은…….”
이현수가 날카롭게 배 위를 바라보았다.
“슬슬 진입을 시도해야 하는 건 맞는데…….”
“갑니까?”
“기다려 봐.”
이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저 뒤쪽에서 총회와 마교의 배가 접근하고 있었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저들까지 함께 오르는 게 맞다. 어설프게 올랐다가는 각개격파당한다. 강진호와 바토르들이 보호해 주더라도 발이 묶이게 될 것이다. 그건 좋지 않았다.
차라리 배로 삼면을 둘러싸고 일거에…….
“실장님.”
“기다리라니까.”
“아뇨, 실장님.”
“아, 이 새끼야! 내 말을 뭐로 처 듣냐? 기다리라고 하잖아!”
“……저도 기다리고 싶은데요.”
“뭐!”
“이게 기다릴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왜! 그거 기다리는 게 그리 힘들어?”
“아뇨. 기다리는 게 힘든게 아니라, 쟤들을 막는 게 힘들 것 같은데요?”
“응?”
이현수가 고개를 내렸다.
그러자 상황이 보인다.
“……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진호를 피해 바다로 뛰어든 이들이 일본으로 헤엄쳐 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머무른 것도 아니다.
‘어, 그러니까…….’
바다에 뛰어든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단 강진호의 마수에서 벗어났다. 생존은 확보됐다. 하지만 바다에 뛰어드는 순간, 암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죽지 않겠지만, 서서히 죽어갈 테니까.
일본까지 헤엄쳐서 간다는 선택지는 무모하기 짝이 없다. 일단 그 거리를 헤엄친다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일본까지 헤엄쳐 갈 수 있는 체력이 있다 해도 그전에 저체온증으로 죽을 것이다.
바다는 인간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그런 와중에…….
‘보이겠지.’
이곳이.
이 배가.
강진호가 없는 배가.
그럼 어떻게 할까?
촤아아아아악!
수포가 인다.
바다로 뛰어든 일본의 무인들이 일제히 이쪽으로 헤엄을 쳐 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돌고래 떼가 일제히 움직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장관이네.’
그래, 장관이다.
하지만 딱 하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저 장관을 일으키는 이들이 노리는 곳이 바로 여기라는 점이겠지.
“씨발! 막아!”
“뭘 어떻게 막아요!”
“못 올라오게 막으라고, 인마! 막아!”
“빌어먹을, 쪽발이 새끼들이!”
이명환이 고함을 지르며 선수로 올랐다.
“이 새끼들 못 올라오게 막아! 다 물고기 밥 만들어 버려!”
“야! 한둘이 아니잖아! 이걸 뭘 어떻게 막아!”
“안 막으면? 다 뒈질래?”
“막아, 이 새끼들아! 막아!”
마염들이 우르르 배 끝으로 섰다. 저들이 배 위로 올라오면 그들이 죽는다.
‘망했다.’
이현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저 새끼들이 여기를 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저들이 바다로 뛰어드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혹여 밀려나서 떨어지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소수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강진호가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 버린 덕분에 어마어마한 수가 바다로 뛰어내렸고, 그 어마어마한 수가 일제히 그들의 배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리 저들이 강진호를 피해 도망친 패잔병들이라고는 해도, 그건 강진호의 기준으로 봤을 때다. 그들의 입장에서 저놈들은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한국보다 수준이 압도적으로 높은 일본에서도 고르고 고른 정예들이다. 한국을 뒤집어엎기 위해서 칼을 갈아온 원정대가 아닌가. 저들이 배 위로 올라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빤했다.
“야! 저쪽으로도 간다! 저쪽!”
‘저쪽?’
저쪽이라니?
이현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이런 미친!”
그들이 탄 배는 쾌속선이다. 쾌속선인 만큼 그 크기가 크지 않았다. 저 많은 이들이 올라타기에는 무리가 있다. 저들도 그걸 아는지 일부가 방향을 틀고 있었다.
접근하는 총회와 마교의 배를 향해 헤엄쳐 가기 시작한다.
“야, 씨발! 막아! 저거 막아야 해!”
“뭘 어떻게 막습니까! 바다에 뛰어들어 발목이라도 잡을까요?”
“빌어먹을!”
이현수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나마 그들은 상황이 낫다. 몰려오는 인원이 많다고 해도 어떻게 상대해 볼 수 있으니까. 그가 매번 이명환을 구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배에 타고 있는 이들은 마염들. 명실상부한 총회 최강의 전력들이다.
하지만 지금 다가오고 있는 총회와 마교의 배에 탄 이들은 그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다. 고르고 고른 정예라고? 정예인 것은 일본 쪽도 마찬가지다.
순식간에 박살이 날 수도 있었다.
“여, 연락이라도 빨리해 봐! 지금 가고 있다는 걸 말해줘야 해! 그래야 막을 거 아냐!”
“아니, 무전기 실장님이 들고 계시잖아요.”
“아, 맞다!”
이현수가 뒤로 물러서서 위성전화를 뽑아 들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명환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냐.’
강진호를 지키겠다고 죽어라고 배를 몰아왔는데, 이제는 강진호가 아니라 제 목숨을 지켜야 할 판이다.
하기야 일본을 상대하는 일인데 그리 쉽게 풀릴 리가 있나.
“얘들아.”
“왜?”
“차라리 잘됐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이 일 끝내고 돌아가면 두고두고 찝찝했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저 쪽발이 새끼들한테 제대로 한 번 보여주자. 우리가 누군지.”
이명환이 어깨를 쫙 폈다.
당당한 그의 말을 들은 마염들이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 새끼, 뭐라는 거냐?”
“냅 둬. 쟤 요즘 맛 갔잖아. 지가 무슨 장군쯤 되는 줄 알더라.”
“한 번 제낄까?”
“벼르고 있어, 안 그래도. 뒈져 봐야 정신 차리지.”
“…….”
이명환의 어깨가 다시 처졌다.
“뻘 소리 하지 말고 앞에 서, 새끼야. 니가 뭐라고 뒤에서 지시하려고 해?”
“네. 지금 가겠습니다.”
쏟아지는 날카로운 눈빛을 받은 이명환이 어깨를 좁히고 앞으로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리고 마침 배 위로 올라오려는 일본 무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명환이 씨익 웃었다.
콰악!
배를 기어오르는 이의 얼굴을 발로 짓밟아 떨어뜨린 이명환이 휘파람을 불었다.
“다행인 줄 알아, 이 새끼들아. 그래도 여기에는 이순신 장군님은 안 계시니까.”
“누가 쟤 주둥아리 좀 막아라. 짜증 난다.”
이명환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