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898
#897.
정화하다 (2)
“몰려옵니다!”
당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접근 중! 이쪽으로 접근 중입니다!”
“배에 구멍이라도 뚫리면 순식간에 침몰합니다! 장로님, 대책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위험합니다! 대책을! 아니, 지원을…….”
그 순간이었다.
“갈!”
거대한 사자후가 터졌다.
피부가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그 노성에 모두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 번 몸을 떨어 제낀 이들이 노성을 지른 이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한심한 놈들 같으니.”
노호성의 장본인.
장민이 눈을 부릅뜨고 모두를 돌아보았다.
“마존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추한 모습을 보일 바에야 물에 뛰어들어라.”
그 서늘한 목소리가 모두를 긴장하게 했다.
평소 장민은 그런 이가 아니다.
그들이 기억하는 장민은 누구보다 자애로운 이였고, 또한 누구보다 교도들을 아끼는 분이었다. 그런 장민이 저리 싸늘하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그들이 못난 짓을 했다는 뜻이다.
“너희는 마존께 보호를 받겠다고 한국으로 왔느냐? 너희가 마존을 지키고 마교를 부흥시키겠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더냐!”
주강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다르다.
사실 주강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마존의 가호를 받아서 강해지기 위해서다.
하지만 굳이 장민의 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결국은 후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마존에게 보호받는 게 아니다.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고, 강해지는 게 중요하다.
“언제부터 마교가 자신에게 닥친 위기의 해결을 타인에게 맡겼더냐! 한심한 것들, 내가 너희를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 대했구나!”
장민의 준엄한 질책에 다들 고개를 숙였다.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른 장로가 저런 말을 했다면 일단 반발부터 하고 봤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강진호가 같은 말을 했더라도 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장민만이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장민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짧게 깎은 백발과 단정하게 정리한 수염도 그의 격렬함을 가려주지는 못했다.
“다른 놈들도 아니라 일본 놈들이 몰려오는데, 겁먹은 쥐새끼 꼴이라니. 선대들이 너희들을 보았다면 피를 토하고 땅을 치겠구나! 그러고도 너희가 영광스러운 마교의 교도들이라 할 수 있느냐!”
피를 토하는 듯한 장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여라! 감히 교의 배에 오르겠다고 날뛰는 저 쥐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바다를 피로 붉게 물들여라!”
“충!”
단결된 대답이 크게 터지고 나서야 장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해.’
하지만 장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이 대답만으로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교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교가 백척간두의 절벽에서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상황이 달라졌으면 마음가짐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 교도들의 자세로는 아무리 좋은 마공을 익히고,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
마공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강진호가 적천마존으로서 그 명성을 날렸을 때도 그랬지만, 그 이전에도 마교가 부흥하고 천하를 위협했을 때는 언제나 치열함이 살아 숨 쉬던 때였다.
우습게도 마교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갈 때보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증오하고 다툴 때, 그 위세가 더 커지는 이상한 집단이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일이지만, 내부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마공을 익힌 이들이 동료에게조차 그 살심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마기에 완전히 물들어 있었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지금 이들은 그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대로라면 앞으로도 그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기고, 전투에서 얻을 수 있는 희열보다 목숨의 위기를 먼저 생각하는 마인은 마인이라 불릴 자격도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기회다.’
장민이 차가운 눈으로 배를 향해 헤엄쳐 오는 일본의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이 모든 이유는 하나다.
생계에 바쁜 이들이 제대로 된 전투를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
물론 이들이 전투를 겪어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마인들은 중국에서도 더러운 일을 뒤처리하는 역할을 맡았고,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생지옥을 여러 번 그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전장을 겪는 것과 전투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었다.
장민이 보기에 지금 마교의 교도들은 제대로 된 수련을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전투를 겪어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예전의 마인들이라면 당연히 목숨을 걸고 싸우거나, 죽음을 불사하고 달려들 일에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낮춘다.
그래, 패배 의식이다.
이들의 내부에 진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그 패배 의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충분히 강해져야 싸울 수 있다면, 그건 강한 게 아니다.’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만 발휘되는 공격성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건 마교가 아니었다. 그 꼴을 보느니, 장민은 자신의 손으로 마교를 뒤집어 버리고 말 것이다.
“물러서지 마라!”
장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물러설 바에는 죽는 게 낫다. 마교의 역사상 후퇴는 없었다. 전투에 접어들면 둘 중 하나뿐이다. 내가 죽거나, 적이 죽거나! 목숨을 아끼지 마라! 죽음을 각오한 자만이 살아 돌아올 수 있다! 마존께서 지켜보신다!”
“존명!”
거대한 외침과 함께 마인들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개새끼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빤한 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빤한 소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도 알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국에 왔다. 그건 단순히 사는 곳을 바꾼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버렸다는 의미다.
오로지 강해지기 위해서.
더 이상은 약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인이라는 이유로 설움을 받고 싶지 않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그리고 이게 한국으로 온 이후, 그들이 맞이하는 첫 번째 전투다.
그런데 물러선다고?
달아난다고?
겁에 질린다고?
그럼 대체 달라진 게 무엇인가.
“죽여 버려! 쪽발이 새끼들!”
“다 죽인다!”
그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곳에서 물러나는 순간, 그들은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은 한 번 물러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한 번 물러난 이는 두 번도 물러난다. 그 이후로는 벽을 넘거나 장애물을 맞이할 때마다 뒤로 물러서고 다른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지금 강하지 않다고 해서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게는 절대 강해질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무학도, 아무리 위대한 마공도 결국 익히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지는 법이다.
겁쟁이가 명검을 든다면, 그 명검이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겠는가.
‘결국 마교는 그런 곳이지.’
주강은 피식 웃고 말았다.
새삼스레 생각이 났다. 마교가 어떤 곳인지, 원래 마교가 어떤 곳이었는지.
약한 자는 도태된다. 약한 자는 죽는다.
무력이 약한 자가 도태되고 죽는 게 아니다. 마음이 약한 자가 도태되고 죽는다. 힘이 없다면 악이라도 있어야 하는 곳이 바로 마교다.
“비켜. 내가 앞에 선다.”
주강이 좌우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와 그 검은 바다 위로 포말을 만들어내며 돌진해 오는 일본의 무인들이 들어왔다.
“후우.”
낮게 한숨을 쉰 주강이 눈에 힘을 주었다.
‘나는 예전의 나로 끝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난다는 거창한 말을 할 생각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싶지는 않았다.
주강이 뽑아 든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죽거나 죽이거나.
단순함의 시작이었다.
* * *
“죽거나 죽이거나!”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후진해! 후진!”
“씨발! 배가 어떻게 후진을 해, 인마!”
“그럼 뱃머리 돌려!”
천태훈은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이런 놈들을 어떻게 통제하라고!’
다른 배와는 달리 그가 탄 배에는 원래 총회 출신들이 타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배에는 그래도 나름 제대로 된 정예들이 탄 반면, 이곳에는 사실 제대로 된 정예들이 타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현재 마공을 베이스로 하는 마교와 마염들을 제외하고, 총회에서 가장 강한 이들을 꼽으라면 당연하게도 중장년층이 되어야 한다.
원래대로라면 장로들을 꼽아야겠지만, 장로들은 위긴스와 바토르의 손에 싹 쓸려 나갔다. 아주 깨끗하게. 이중걸의 주위를 지키던 이중걸 친위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강진호를 상대했으니까.
그럼 그 아랫대, 그러니까 나이로 따지자면 마흔에서 예순 사이의 장년층들이 다음 세대가 된다. 장로들의 제자, 그들의 스승.
천태훈만 해도 그 세대에 속하는 방진훈의 제자가 아닌가. 그러니 실제로 이 배에 타야 하는 인원은 그들이 아니라 장년층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냐고!’
하지만 이현수는 그들을 선별하지 않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
일단 그들은 장로들이 스승이었던 만큼 강진호들에게 완벽하게 충성하지 못한다.
군사부일체.
스승을 아버지처럼 따라야 한다고 배운 이들이다. 아무리 머리로는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다지만, 본능적으로 따라오는 강진호에 대한 거부감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현수는 총회를 재편하면서 그 세대를 뒤로 밀어버렸다.
새로운 무학을 전하고, 새로운 혜택이 주어지는 일이 있으면 젊은 층을 최우선적으로 배정했다.
그 대가가 이거다.
결국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덕분에 그들은 이 배에 올라 총회의 최전선에 나서게 됐다.
뭐, 거기까지는 이해한다. 세상이 다 그런 것 아닌가.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게 세상이다. 그리고 딱히 강제적인 것도 아니었다.
차출이 아니라 지원을 받았어도 이 배의 구성원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다들 싸우고 싶어 하고, 공적을 세워 상부의 눈에 들고 싶어 눈이 뻘게져 있으니까.
그러니까 좋다. 다 좋은데…….
“왜 내가 이 새끼들을 지휘해야 하냐고!”
“배 돌리자니까! 이 새끼야!”
“야, 천태훈이! 빨리 결정 내려! 쪽발이 새끼들 존나 몰려오잖아!”
“아, 몰려오면 싸우면 그만이지!”
“못 이기잖아!”
천태훈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하,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
그때,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
“어떤 새…….”
고개를 돌린 천태훈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아…….”
뭐라고 했더라? 슈…… 시발리…… 아니, 슈발리에. 그래, 슈발리에!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듯하니, 전방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여러분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밥값은 해야겠죠.”
슈발리에들이 무장을 마치고 갑판 끝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천태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라는지 알아들은 사람?”
“…….”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