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0
#899.
정화하다 (4)
화끈한 통증.
그런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다.
나카타 유지는 이 상황이 더없이 끔찍했다. 그러면서도 우습게도 이 상황을 신기하다 느끼고 있었다.
생생하게 느껴지니까.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힌다. 그 덕분에 검이 왼쪽 아래턱을 파고든다. 아래턱으로 찔러 들어온 검이 그의 턱뼈를 지나 코뼈를 가른 뒤, 오른쪽 안구까지 갈라 버리고는 오른쪽 눈썹 어림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 감각이 너무도 선명하게, 그리고 느릿하게 느껴진다.
신기했다.
그와 동시에 더없이 끔찍했다.
강진호의 검이 느릴 리는 없다. 그리고 얼굴이 갈라지고 있는데 그의 몸이 제자리를 석상처럼 지키고 있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은 그저 느릿하게 느껴질 뿐, 실제로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위기를 탐지한 그의 뇌가 고열로 타버리는 것을 감수하고 오버클럭하는 중이겠지.
수명을 담보로, 아니 뇌가 노릇노릇하게 익어버리는 위험을 담보로 하고서라도 잠시나마 초인의 영역에 들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강렬한 경험이었다.
강함에 목마른 무인이라면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해서라도 이런 경험을 해보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리스크와 대가를 담보로 이 영역에 들었건만,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강진호의 검을 피하는 게 고작이라는 사실이 나카타 유지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것조차 완벽하게 피해내지 못했다.
강진호와 나카타 유지의 차이는 그 정도다.
이 순간, 절망적일 정도로 거대한 벽이 생겨났다.
나카타 유지는 알 수 있었다. 강진호가 날린 일격은 그에게 있어서는 별게 아닐 것이다. 무심하게 파리를 쫓기 위해 휘두르는 손짓과 그리 다를 것도 없다.
그 가벼운 공격 한 번을 피하기 위해서 나카타 유지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천운과 시운이 모두 따랐다. 평소의 그였다면 지금 죽는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극도의 긴장감과 언제 목이 잘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다는 공포심이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단번에 머리가 꿰여 버리는 사태는 피했지만, 차라리 일격에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런 어마어마한 절망감에 시달리지는 않아도 됐을 테니까.
“끄…….”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화끈거린다는, 그런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전신에 염산을 묻힌 지렁이들이 그의 얼굴에 단체로 올라타 꿈틀거리면서 그의 얼굴을 모조리 녹여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빌어먹을 오버클럭 덕분에 나카타 유지는 그 끔찍한 고통을 천 배쯤 느린 속도로 아주 생생하고도 끔찍하게 느껴야 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감내하는 것이 전부였다.
“……윽.”
그리고 어느 순간 그의 세상이 제 속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물속을 유영하는 듯 멍멍하게 들리던 소리들이 선명함을 되찾고, 전신을 콘크리트로 굳혀 버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던 구속감이 천천히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카타 유지가 자유를 찾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절히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말이다.
적어도 강진호가 살아 있는 이상은 이 배 위에서 자유라든가 안전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괴물과 함께 우리에 갇힌 사람에게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얼굴을 베어낸 검이 회수된다. 검이 되돌아가며 공기를 뒤흔드는 충격만으로도 얼굴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유지!”
“유지 상!”
좌우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뭔가 희끗한다 싶더니, 나카타 유지가 얼굴에서 피를 철철 뿌리며 그 자리에서 무너진다. 그러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 나카타 유지는 그들에게 신호를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리 부상을 입고 쓰러져 버리면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혼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났다.
눈앞에 적이 있고, 적 앞에서는 절대 당황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모를 이들이 아니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 구미의 수장들이나, 각 구미들을 대표하는 이들이었다.
무위는 물론이고, 무인으로서의 경험 역시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동료의 얼굴이 날아갔다는 것, 그 동료가 이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관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만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그 누구도 검이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는 충격이 그들을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저 검이 나카타 유지가 아니라 그들을 노렸다면 과연 피할 수 있었을까?
저 검을 피해낼 수 없다면,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누가 죽음에서 벗어나 있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저 검이 다른 이를 노렸다면 지금쯤 하나의 목숨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괴물 같은!’
‘대체 어쩌다 이런 놈이 반도에서 나왔단 말인가!’
모두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이놈의 이름이 한국을 넘어 일본에까지 퍼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관서 최대의 구미인 신니치카이가 원정대를 지원하면서까지 이놈의 목을 따려고 했는지 말이다.
이해가 되는 동시에 절망이 찾아왔다.
수령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강진호는 어떻게든 제거해야 하는 인물이다. 이런 자에게 시간을 더 주게 되면 정말 한국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단 한 번도 조선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일본의 본토가 이들의 손에 떨어지는 일도 그저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이놈이라면…… 그래, 이놈이라면 말이다.
강진호는 검을 회수하고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나카타 유지가 그의 검을 피해낸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하는 나카타 유지를 바라보던 강진호가 다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달라질 것은 없다.
요행히 그의 검을 피했다 해서 나카타 유지에게 살길이 열린 것은 아니니까.
그저 그가 받을 고통이 조금 늘어난 것뿐이다.
‘이상하군.’
살짝 흥분한 것 같다.
전투에 접어들 때 스스로를 흥분으로 몰아넣는 것은 꽤나 흔한 일이다. 전투를 치를 때 머리는 한없이 냉정해야 한다는 것이 강호의 격언이지만, 강진호는 딱히 그런 타입은 아니었다.
전투에 있어서 그는 디테일을 생략한다.
자신은 절대 피해를 입지 않으며, 체력의 안배까지 하는 완벽한 전투. 그런 것은 강진호의 취향이 아니었다. 다소의 상처를 입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를 더 빠르고 확실하게 양단한다. 그게 강진호의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침착보다는 과격과 흥분을 선호하고, 완벽함보다는 쾌속함을 선호했다.
하지만 지금의 흥분은 강진호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이 스스로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이는 것은 강진호에게도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대충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강진호는 매우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모든 일의 목적은 그의 개인적인 만족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강진호의 흥분은 무엇으로 설명을 해야 하는가. 단순히 살육에 취했다기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강진호에게 있어서 전투와 살육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부분들이니까.
강진호는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딱히 국가에 소속감을 느끼거나, 국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강진호가 평소보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상관없지.’
아무려면 어떤가.
이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출신이 무엇이든 이들이 강진호의 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적을 다루는 방법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럼 그대로 행하면 그만이다.
강진호의 적루를 움켜잡았다.
적루.
애병에서 느껴지는 뜨거움이 익숙하다.
그 순간이었다.
“더, 덮쳐어어어어어!”
나카타 유지가 고함을 지른다. 그의 얼굴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그리고 그의 지시를 들은 이들은 반사적으로 강진호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이들을 본 강진호의 눈이 가라앉았다.
이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를 향해 목숨을 건 이들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를 막아선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강진호를 막아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지난 삶의 마지막에 그에게 맞선 정파인들은 그 의지가 확고했다. 그들 역시 강진호와 맞상대하는 것이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강진호를 죽이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태반이 죽어야 한다는 것도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당당하게 목숨을 걸었다. 스스로 믿는 것을 위해, 스스로의 의지로 그 자리에 섰다.
하지만 이건 뭔가.
의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의무감과 두려움뿐이다. 스스로 목숨을 걸 의지조차 없는 이들이 그 작은 호령에 맞춰서 죽음으로 뛰어드는 모습은 강진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동시에 그 불쾌한 기분은 바로 검끝으로 전달됐다.
인의 장막이 펼쳐진다. 일거에 달려든 이들이 그의 시야 전체를 가리며 뛰어들었다.
무시할 만한 공격은 아니었다. 이들 역시 한 문파의 장들. 과거 중원으로 친다면 중소 문파의 수장급은 된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당시의 강호와 지금의 무인계를 동등하게 둘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만한 합공이라면 강진호를 충분히 곤란하게 만들 만한 위력이다. 하지만 강진호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다.
또한…….
물러날 필요도 없다.
파아아아아앙!
공기를 내찢는 파공음.
검을 휘둘러서 나는 소리라기보다는 거대한 채찍으로 바닥을 후려쳤을 때나 날 것 같은 커다란 소음이 그의 검끝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결과도 검으로 만들었다기에는 너무도 과격했다.
검게 물든 도화지에 커다란 붓으로 새하얀 물감을 그어버린 것처럼 세상이 갈라졌다.
그런 후, 새하얀 공백은 이내 붉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색으로 가득한 세상이 다시 소리로 물든다. 무언가 뿜어지는 소리, 누군가 흘리는 단말마, 그리고 순전히 운으로 죽음을 비껴 나간 이가 흘리는 울음소리.
세상이 순식간에 달라진다.
그리고 그 달라진 세상에 강진호는 오연히 서 있었다.
그의 검끝으로 피가 한 방울, 또 한 방울 떨어졌다.
“하나 묻지.”
강진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카타 유지는 알 수 있었다. 이 질문은 그를 향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너희는 이 죽음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흐…….”
나카타 유지의 눈에 핏발이 섰다.
“무사는 나라를 위해 죽는 법이다.”
그 대답을 들은 강진호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