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4
#903.
몰아내다 (3)
공포라는 것은 참 이상한 측면이 있었다.
인간은 홀로 있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공포를 느낀다.
사람들이 가득 찬 영화관에서 공포 영화를 볼 때와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혼자 공포 영화를 볼 때, 어느 쪽이 더 무서울지는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더 큰 공포를 느끼니까.
같은 수준의 공포라도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다면 안정감이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측면도 있었다.
공포는 전염된다.
혼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일도 다른 이들이 공포를 느낀다 싶으면 자신도 그 감정에 휘말려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카제이치는 전염되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시작이 어디인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건 전염이라기보다는 공명에 가까웠으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카제이치의 가슴속에서도 공포라는 감정이 그 머리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카제이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연한 거야.’
저항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수치스럽게 느끼고 억지로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신체와 정신의 부조화는 육체의 반응을 굳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다.
저 모습을 보고 누가 공포를 느끼지 않겠는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공포를 느끼는가가 아니라, 저 괴물을 그들의 손으로 죽일 수 있느냐였다.
죽인다…….
그래, 저 괴물을 죽여야 한다.
‘할 수 있을까?’
계산이 서질 않는다.
지금까지 카제이치는 수도 없는 사람을 죽여왔다. 구미의 일에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 인간의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죽여왔다.
그중에서는 평범한 민간인도 있고, 목숨을 걸고 상대해야 할 고수도 있었다. 그 수많은 살인을 실수 없이 성공해 왔기에 지금 카제이치가 살아서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이제 너무도 익숙하다. 그렇기에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웬만하면 견적이 서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구미가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했을 때, 강진호를 죽이는 데 세 개 조면 차고 넘쳤다.
암월조(暗月組).
그가 데려온 이들의 이름이다.
신니치카이가 총력을 기울여 만든 무력 부대. 그 힘은 일본제일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열둘로 이루어진 한 개 조면 세상에 죽이지 못할 이가 없었다.
그런 암월조를 셋이나 데리고 왔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강진호가 아니라 저 중국의 삼왕이라 하더라도 암월조가 새 개 조면 그 목숨을 빼앗는 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게 카제이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지금 어긋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원망하고 질책하고 싶지만, 카제이치의 냉철한 이성은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이건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보라.
저자를 무슨 수로 표현하겠는가.
카제이치가 직접 눈으로 본 광경도 타인에게 제대로 전할 자신이 없다.
저 모습 자체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 모습을 눈으로 지켜본 이들이 어떤 공포를 느끼는지는 그의 뇌를 도려내 내민다고 해도 절대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공포.
이건 이해의 영역을 넘어 있었다.
저자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설사 저자가 그 어떤 힘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 그가 느끼는 공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후우우우.”
카제이치가 가만히 심호흡을 했다.
감정이 거세된 것이나 다름없는 그조차도 이만한 공포를 느낀다면, 다른 이들이 지금 어떤 심정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대로 시간을 더 끈다면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공포에 질식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스르릉.
그의 손이 허리춤에 달린 비수를 뽑아낸다. 두 개의 비수가 양손에 들리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그의 애병이 달빛을 받아 요요로이 빛나기 시작한다.
진정하자.
그래봐야 사람이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사람 같지는 않다고 해도, 사람이 아닐 리는 없지 않은가. 사람이면 몸에 칼이 박힐 것이고, 몸에 칼이 박힌다면 죽이지 못할 것은 없다.
카제이치의 눈이 단호해졌다.
그의 시선이 주변을 훑는다. 그의 눈빛을 받은 이들이 움찔하더니,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다행.’
늦지 않게 수습했다. 그가 이성을 되찾지 못했다면 그들은 손을 써보기도 전에 쓸려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성을 되찾고 나니 눈앞의 상대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강하다.
카제이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봐도 생각하던 수준의 강함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으로도 충분히 강했지만, 지금은 그 모습조차 뛰어넘고 있었다.
이자를 상대할 이가 일본에 있을까?
수령.
수령이 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했음에도 카제이치는 수령이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한다. 알았다 싶으면 몇 발 더 나가 있는 사람이 바로 수령이다.
지금 그의 강함은 일반적인 예상을 한참 웃돌 것이다.
그래, 분명 그렇다.
하지만 그 수령조차도 강진호와 맞상대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수령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진호의 강함이 상식을 초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죽여야 한다.
카제이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그들에게 강진호를 죽일 기회는 영영 다시 오지 않는다.
저자는 강하다. 스스로도 말도 안 되게 강한데, 그 주위로 강대한 세력을 두르고 있다.
이미 보았듯이 그 세력 역시 더욱 강해지고 있다. 바토르와 위긴스도 그들이 처음 파악한 것보다 배는 강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배는 강해졌다.
일련의 흐름이 있다면 그다음을 예측하는 것은 너무 쉽다. 강진호가 예상보다 강하고, 그의 측근들이 예상보다 강하다면, 총회 역시 예상보다 강할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면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죽여야 한다.
바로 지금!
“카핫!”
카제이치의 입에서 짐승 같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인자는 무음(無音).
소리 없이 목표에 다가가, 소리 없이 죽이고 나오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지금 카제이치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거대한 기합성을 내질렀다.
스스로의 마음에 들어차 있는 미혹과 공포를 떨쳐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카제이치의 기합성에 미혹을 떨쳐 낸 것은 카제이치만이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앗!”
암월조 중 하나가 고함을 지르며 강진호에게 달려든다. 카제이치는 그 광경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건 용기가 아니다.
공포에 짓눌려 이성을 잃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사마귀가 수레를 막겠답시고 앞발을 들어 올리는 짓거리다.
그리고 그 멍청한 짓의 대가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명멸하는 검은 불꽃.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그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것에 인간이 달려든다. 양손으로 움켜진 일본도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지만, 검은 불꽃을 가르기에 인간이 만든 쇠붙이는 너무도 나약하게만 느껴졌다.
강진호의 붉디붉은 핏빛의 눈동자가 살짝 옆을 향한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암월조를 본 강진호의 입가가 이지러진다.
화르륵.
검은 불꽃이 악마의 혓바닥처럼 요사롭게 움직이더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암월조원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진다.
“흡!”
날아드는 불꽃을 본 이가 검을 움켜잡았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위력.
“흐아압!”
하지만 그의 몸에 깃든 무인의 본능은 그 와중에도 움직였다. 머리가 생각하기도 이전에 모든 공력을 검으로 밀어 넣고 내려친다.
일도양단의 기세.
본인 스스로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인생에 있어 단 한 번도 펼쳐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일격이었다.
갈라진다.
화르르르륵!
검은 마기가 내려친 검의 역도를 이기지 못하고 좌우로 갈라졌다.
‘된다!’
순간적인 환희가 모두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저 비현실적인 검은 불꽃에 그들의 공격이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귀신이든 유령이든, 심지어 악마라고 할지라도 공격이 통한다면 쓰러뜨릴 수 있다. 검이 박히는 존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좌우로 갈라진 불꽃이 그 기세를 잃지 않고 그대로 암월조원을 덮친다.
“우헛!”
예상치 못한 불꽃의 움직임에 헛바람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모든 힘을 공격에 쏟아부은 그가 날아드는 불꽃을 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고든다.
불꽃이 암월조원의 육체를 파고들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암월조원이 이를 악문다.
어떻게든 한 번만 버텨내기만 하면…….
하지만 그 불꽃이 몸에 닿는 순간, 암월조원은 알게 되었다.
이게 불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그런 형상을 띠고 있을 뿐, 이것은 불꽃이 아니다. 압축되고 또 압축된 마기가 기운의 형상을 벗어나 불꽃의 형태가 된 것뿐이다.
강기를 뛰어넘은 강도와 공격성.
마기의 극한이나 다름없는 마염(魔炎)을 육체로 받아들인 대가는 너무도 컸다.
“끄으으아아아악!”
참으려 했다.
하지만 입이 제멋대로 열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명이 터져 나온다. 갈비뼈가 모조리 부러져 나간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기가 육체를 찢고 내장을 뒤집는다.
팔다리가 부러지다 못해 으스러지고, 흐물흐물해진 살덩어리가 쥐어 짜여 터져 나간다.
콰득! 콰드드드득!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비명을 지를 뿐이었다. 이를 악무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저항해야 할 육체는 이미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육체의 기능성은 모두 사라졌다.
오로지 그에게 고통을 전달해 주는 역할만을 할 뿐이다.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끄…… 끄으윽…….”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암월조원이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흐읍…… 흐으읍, 흐…….”
전신이 그의 의지와 관계없이 경련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경련하던 그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경련이 멎는다.
검은 불꽃에 둘러싸인 악마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뭉쳐 놓은 것 같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끄집어낸다면 저런 모습이 될 것이다.
죽음의 신.
그 말이 아니고서야 저자를 어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죽음의 신이 가만히 그를 내려다본다. 그와 동시에 암월조원의 의식이 천천히 멀어졌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죽음.
지금의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
두렵지 않았다.
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고통받는 것에 비한다면, 죽음이란 것은 너무도 달콤한 도피다. 조금이라도 빨리…….
그때, 그의 귓가에 쇠를 긁는 듯 소름 끼치는 음성이 들려왔다.
“죽는다고 끝은 아니야.”
“…….”
“너도 이제 알게 되겠지.”
핏빛으로 물든 사내의 눈동자를 본 암월조원의 숨이 완전히 멎었다.
그는 죽음조차도 편히 맞이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