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6
#905.
몰아내다 (5)
스스로 마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상종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괴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 자괴감보다 강진호에 대한 증오가 더 컸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김석일은 차원이 다르다.
이놈은 강진호와는 다른 스타일의 악마였다. 스스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천의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진정한 악마.
그게 김석일이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김석일은 원래 그런 놈이니까. 영남회의 수장이던 당시, 김석일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일은 셀 수도 없다.
일반적인 무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일들.
차마 우리의 적이 저만큼 악마 같은 놈이라고 제 입으로 말할 수 없어 되레 숨겨야만 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성휘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중걸의 제자였으니까.
장로들조차 믿지 않는 이중걸은 이성휘와 이현주에게만 은밀한 사실을 풀어놓을 때가 많았으니까.
잊고 있었다.
팔다리가 괴사해 떨어져 나간 김석일이다. 그가 아무리 악마 같다고 해도 저 꼴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성휘는 깨닫고 말았다.
악마성은 육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설사 김석일의 육체가 모두 부서지고 그의 목 위만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김석일의 악마성은 조금도 무뎌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날카로워지겠지. 바로 지금처럼.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나?”
“너는 강진호를 알고 있잖아.”
김석일이 가볍게 연기를 뿜어냈다. 그러고는 다시 천천히 담배를 빨았다. 담배의 끝이 붉게 타오른다. 새빨갛게.
“그놈은 보통 방법으로는 못 죽인다. 특히나 이 병신 같은 일본 놈들은 결코 그놈을 죽이지 못해. 아직도 자신들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는 이 머저리 같은 놈들이 강진호를 죽인다고? 그렇게 쉽게 죽을 강진호였다면 우리가 이 개고생을 하지도 않았겠지.”
“…….”
“병신, 병신……. 그래, 병신 같은 새끼들이지. 병신. 봤어? 나카타 유지, 그 멍청한 새끼의 얼굴을 봤냐고. 자기가 모든 사람의 머리 위에 있다는 듯이 설치는 그 멍청한 놈을 봤어? 크하하하하하핫! 병신이지. 그래, 병신이야.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쉬운 놈들이 바로 그런 놈들이지. 옆에서 헛바람을 조금 넣어주면 제 알아서 설치니까.”
김석일의 입에서 담배가 튀어나갔다. 숫제 침까지 튕겨가며 열변을 늘어놓는 김석일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확신이 들었다.
이놈은 미쳤다.
이미 예전부터 미쳐 있었다.
“그런 새끼들이 강진호를 잡는다고? 나조차 손도 써보지 못하고 당한 강진호를 저런 병신들이 잡는다고? 크하하하하하핫! 내 생전에 그렇게 웃긴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을 거야.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다 시뻘개졌다고……. 팔다리가 없는 게 다행이었지. 바둥거리지 않을 수 있었잖아. 크하하하핫!”
이성휘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압도된다.
이성휘는 이를 악물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김석일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려도 김석일의 목에 구멍을 내버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성휘는 김석일에게 완전히 압도되고 있었다.
저 광기를 보라.
저 지독한 광기 앞에서 누가 온전할 수 있겠는가. 이성휘조차 미쳐 가는 기분이었다.
“후우우우…….”
김석일이 깊이 심호흡을 했다.
“조금 흥분했나?”
“…….”
“뭐, 괜찮겠지. 이제 곧 죽을 건데 흥분하면 어떻고, 흥분하지 않으면 뭐 어떻겠어.”
김석일이 이성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가 와서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혼자서 죽는 건 조금 쓸쓸하니까. 마지막에 누군가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게 네놈이라는 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니, 어쩌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군.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을 테니까.”
“최악의 평가군, 무척이나 기분 더러운.”
“그런가? 크크크크크.”
김석일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쓰레기들이라도 쓸데가 있는 법이지. 이 쓰레기들은 뇌관이 될 거야. 도화선이라고 하는 게 조금 더 적당한 표현일지도 모르겠군.”
“…….”
“한국에 들어가서 싸우다 전멸한다면 할 말이 있지. 하지만 한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모두 죽는다면 당연히 신니치카이에 책임을 묻게 된다. 신니치카이는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력으로 한국을 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석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너무도 자연스러운 동작이 되레 섬뜩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그 움직임이.
“모두 죽어야지.”
“……여기에 있는 모두를?”
“너는 강진호를 잘 알고 있지.”
이성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가?
그는 정말 강진호를 잘 알고 있는가?
대답할 수 없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확신이 사라졌다. 그는 강진호의 행적을 꿰뚫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김석일을 통해 알지 않았는가.
그는 김석일의 행적 역시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김석일이 이리 미친 짓을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잘 안다고 여겨도 결국 사람은 사람을 예측할 수 없다. 그걸 지금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놈은 지독하지. 하지만 반면에 온정주의적이란 말이지. 그놈은 자신의 적이라고 판단된 것들에게는 일말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아. 하지만 말이야…….”
김석일이 턱짓으로 벽면을 가리켰다.
정확하게는 벽 너머에 있을 바다를 가리켰다.
“이들이 강진호의 적인가?”
“…….”
“아니, 그렇지 않을 거야. 강진호는 저런 조무래기들마저 자신의 적이라 인식하지 않아. 그는 성향상 항상 윗놈들을 노리지. 머리를 쳐버리면 남은 몸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대가리를 모두 제거해 버린 강진호는 어떻게 할까?”
이성휘는 이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이 좁혀지면 예상이 가능하니까.
“그냥 돌아가겠지.”
“빙고!”
김석일이 조금 남은 팔을 열심히 휘둘렀다. 박수를 치듯이 말이다. 그 모습이 더없이 괴기스럽게 보였다.
“돌아간다. 그놈은 그냥 돌아가 버리겠지. 그럼 다음은 빤하지. 바다로 뛰어들어 살아남은 놈들은 다시 배 위로 올라올 거야. 일본으로 뱃머리를 돌리겠지. 그러고는 보고를 할 거란 말이야. 강진호가 이러이러해서 윗대가리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래서 돌아왔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지?”
“…….”
“실패한 전쟁은 다시 벌어지지 않아. 전력을 다시 정비한다는 이유로, 조금 더 완벽한 계획을 세운다는 이유로 미적대기 시작하겠지. 그럼 그걸로 끝나는 거야. 강진호는 그 순간에도 강해질 것이고, 결국 총력전을 통해서라도 강진호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되겠지.”
“홍왕계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홍왕계? 그 병신들? 창왕계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서 강진호를 건드리지도 못하는 그놈들이 일본으로 원정을 온다고? 이봐, 이성휘. 머리는 생각을 하라고 달려 있는 거야. 너는 다른 용도로 쓰고 있는 것 같지만.”
이성휘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김석일의 말이 모두 맞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럼 모든 게 끝이야. 나는 지금 이 동아시아를 구해주는 거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면 결국 어떻게 될 것 같나? 어느 순간, 일본도, 중국도 강진호를 감당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 그러면 이 지역은 강진호가 평정하는 거야. 아무도 그걸 원하지 않겠지.”
김석일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걸 막는 데 고작 천 명의 목숨 정도면 싸게 치는 것 아닌가?”
“확실한 건 하나 있지.”
이성휘가 씹어뱉듯 말했다.
“너는 미쳤어.”
“하하하하하하하핫! 무슨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나.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제정신으로 강진호와 싸울 수 있을 것 같아? 이성휘, 이성휘! 이성휘이이이이이이이이이!”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로 고함을 지른 김석일이 바닥에 늘어졌다.
배의 가장 아래까지 들어오기 위해 휠체어까지 버리고 기어온 김석일이다. 그 무서운 집념이 이성휘를 소름 돋게 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해.”
“…….”
“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 하지. 이성휘, 너도 이제 깨달아야 한다. 강진호는 인간이 아니야. 그 겉모습에 현혹되어서는 안 돼. 모르겠나?”
김석일이 흐느끼듯 말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죽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을 완성시키지.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알며 살아가. 그게 인간이다. 하지만…….”
김석일은 점점 더 미쳐 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수십 가지의 감정이 동시에 떠오른다.
공포, 그리고 분노, 환희, 역겨움.
실시간으로 얼굴이 형형색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미쳤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그놈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어.”
“…….”
“돌이켜 봐. 그놈은 항상 자신을 죽음의 끝으로 몰아넣었어. 이번에 홍왕과 싸우는 것을 보고 확신했지. 정상적으로 생각이 박혀 있는 놈이라면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놈이 주위를 지킨다고? 웃기는 소리지. 만약 놈이 정말 주위를 지키고 싶었다면 달아났어야지. 그 도움도 안 되는 마교 놈들 때문에 거기서 목숨을 걸 필요가 없지. 그놈은 그냥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거야…….”
몇 번 기침을 한 김석일이 침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리고 있었다.
죽어간다.
이성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김석일은 죽어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육체는 완전히 망가졌다. 팔다리가 잘린 게 끝이 아니다. 강진호의 남은 그의 육체마저도 완전히 망가뜨렸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천운이었다.
그런 김석일이 이제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면, 죽어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마지막 끈이 끊어졌으니까.
“……놈을 죽이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기억해라, 이성휘. 네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는 살아남아 지켜봐야 한다. 내가 한 안배가 강진호를 어떻게 죽이는지. 반드시 너만은!”
이성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미쳤다.
이놈은 정말 미쳤다.
하지만…….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김석일을 욕할 수가 없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이 끔찍한 증오. 그 증오가 얼마나 스스로를 태우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방향은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김석일의 의지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확고했다.
“이제 가라.”
“…….”
“같이 죽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너와 손을 붙들고 저승으로 가는 건 사양하고 싶군. 역겨우니까.”
“그럴 생각도 없었어.”
이성휘가 몸을 돌렸다.
단호하게 밖으로 걸어 나가던 이성휘가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이성휘는 별다른 말 없이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김석일에게 따로 남길 말 같은 건 없다.
그저 지켜보면 된다.
그가 무엇을 남겼는지.
그의 증오가 무엇을 이루어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