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07
#906.
침몰하다 (1)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성휘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잡았다.
슬픔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복잡한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웃기는 일이다.
그는 김석일과 감정적인 교류를 나눈 적이 전혀 없었다.
그와 김석일은 그런 관계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최악으로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와 같은 관계였다. 같은 목적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이미 서로가 서로의 목에 칼을 박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분은 뭔가.
으드득.
이성휘가 이를 갈았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오래전에 전기가 끊긴 여객선의 복도는 어둡기 짝이 없었다.
갑판에서 흘러 들어온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어두운 복도가 마치 지옥으로 가는 길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김석일은 이 지옥에 혼자 남았다.
살아날 확률?
그런 건 없다.
저 몸으로 이 바다 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김석일은 그런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 몸으로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끌어모아 바닥에 구멍을 뚫는 순간, 김석일은 절명할 테니까. 그의 성격상 살기 위해 애를 쓸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성휘는 한 가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무슨 의미가 있지?’
설사 그의 안배가 맞아떨어진다 하더라도, 설사 그렇게 강진호를 결국에는 파멸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김석일은 죽고 없는데.
자신이 죽은 뒤에 이뤄지는 목적이 인간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가.
정말 없었을까?
김석일에게는 아무런 길도 없었을까?
그저 이렇게 강진호를 증오하며 마지막까지 증오에 몸을 맡긴 채 파멸하는 길밖에는 없었을까?
“큭…….”
이성휘는 몸을 돌렸다.
그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설사 다른 길이 있었다 한들 김석일을 구출해 내 그를 지옥으로 이끈 건 이성휘 자신이다. 이성휘에게는 김석일을 동정하거나 안타까워할 자격이 없었다.
그저.
그저…….
“빌어먹을.”
이성휘가 거칠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쿨럭! 쿨럭!”
김석일이 바닥에 쓰러져 연신 기침을 해 댔다. 입안에서 피가 튀어나간다. 바닥을 적신 피를 보며 김석일이 히죽 웃었다.
“손이 없으니 이것도 못 닦는군.”
불편하단 말이지.
남은 것은 어둠뿐이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배의 밑바닥은 그야말로 어둠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김석일은 이 공간이 그가 죽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의 삶은 애초에 그랬으니까. 어둠뿐이었다, 처음부터.
후회?
그런 건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해도 김석일은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아니, 이번 삶보다 더 잔인하고 악독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 외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모두를 돌보며 선한 길을 걸어가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 없었다. 인정과 선의를 논할 수 있는 이들을 떨어져도 자신을 받쳐 줄 그물이 있는 자들뿐이다.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올라야 하는 김석일에게 선의라는 말은 사치에 불과했다.
보라.
그는 김석일이다.
이중걸과 쓰레기들이 지배한 한국에서 맨손으로 기어올라 영남회를 만들어낸 김석일이다. 그런 그가 왜 후회를 해야 한단 말인가.
모두가 칭송하는 삶을 살았다면 김석일은 지금쯤 총회의 장로 자리나 맡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것도 아니겠지. 강진호가 이중걸 일파를 청산할 때 같이 죽었을 것이다. 그게 김석일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하지만 김석일은 자신의 운명을 거부했다.
그게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인간은 누구나 그러지 않는가.
좀 더 높이 오르기를 원한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기를 원한다.
정정당당한 경쟁?
웃기는 소리.
인간은 원래 칼과 창으로 타인을 핍박하며 발전해 왔다.
인류의 역사에 전쟁이 없던 시기는 단 한순간도 없고, 인간이 인간을 죽여 없애지 않는 순간은 단 1초도 없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죽고 죽이고, 빼앗고 빼앗긴다.
그의 잘못은 빼앗고 죽인 게 아니다. 빼앗기고 죽어가는 것이다.
바로 그 강진호에게.
“크크크크크.”
김석일이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그래,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는 평생 동안 누군가를 죽이고 빼앗으며 살아왔다. 그러니 마지막에는 그 역시 빼앗기고 죽임당하겠지.
하지만 그 사실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라면, 강진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테니까.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고 타인이 만들어낸 것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는 저 괴물 역시 언젠가는 같은 꼴을 당할 테니까.
하지만 김석일은 알고 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세상에 인과응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빼앗긴 자들의 피눈물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정말 증오한다면…….
빼앗긴 재물과 삶이 안타깝고 아까워 참아낼 수가 없다면, 잘린 팔다리를 휘저어서라도 다시 기어올라야 한다. 그러고는 적의 목에 이를 박아 넣어야 한다.
그게 김석일이었다.
그게.
“크흐…….”
김석일이 살짝 몸을 떨었다.
‘두려운가?’
감상적이 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니 주저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죽는 것은 하나도 두렵지 않다. 이미 그는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으니까. 죽음은 그에게 차라리 해방이고 축복이었다.
그가 주저하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강진호의 파멸을 그의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혹시나 그의 안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미 그의 손을 떠났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김석일이 바닥에 볼을 비볐다.
쇠로 만들어진 바닥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 들어온다. 이 바닥을 넘으면 바다가 있다.
“호사로군.”
죽음이라는 것도 격조가 있다.
그가 원래 받아야 할 죽음은 이런 게 아니었다. 누군가에 손에 죽어서 쓰레기장에 처박히든가, 그게 아니라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몰골이 되어 병원 침대에서 죽어가는 게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그 운명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다.
그 대가가 이 넓은 바다의 한중간에서 죽을 수 있는 것이라면 너무도 과도한 호사가 아닌가.
“낄낄낄낄.”
김석일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없구나.’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남은 것은 허무뿐이다.
돌이켜 보면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함께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뜻을 이어줄 제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피땀으로 일으켜 세운 영남회는 이미 강진호의 수족이 되어 있다. 그들 중 누구도 김석일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큭큭큭큭.”
이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이성휘라는 게, 그리고 이중걸이라는 게 김석일을 웃게 했다.
“강진호…….”
그리고 가장 강렬한 것.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내면에 가장 강렬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강진호였다. 그에 대한 증오가 김석일을 지탱했다.
기억할까?
그는 김석일을 기억할까?
‘상관없다.’
기억받고 싶은 게 아니다. 그를 파멸시키고 싶은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강진호가 자신의 파멸이 김석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결과.
언제나 결과였다.
우득, 우드득, 우드드드득.
뼈가 일그러진다. 전신에 남은 모든 기운을 한 점도 남김없이 척추와 머리로 끌어모았다.
“쿨럭!”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 올린 덕분에 내장에 터져 나가며 피가 입으로 역류했다. 입 밖으로 잘린 내장 조각과 피가 끊임없이 꿀렁꿀렁 흘러나왔다.
“히히히히.”
그 와중에도 김석일은 웃었다.
힘이 넘쳐 난다.
오로지 이 한순간, 목숨까지 모조리 버리는 이 한순간!
그는 과거의 자신을 되찾은 것 같은 충만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우드득.
이가 부러져 나간다.
더없이 꽉 깨문 이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졌다.
전신이 벌벌 떨린다. 하지만 김석일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의 모든 정신은 바닥의 한 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김석일이다! 강진호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앙!
김석일의 머리가 바닥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강철로 만들어진 바닥이 그대로 꿰뚫리며 순식간에 검은 물살이 배 안으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압도적인 압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살이 머리가 터져 나간 김석일의 육체를 휩쓸어 버린다. 그러고는 열린 문을 통해 배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누군가가 여기에서 죽었다.
하지만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이 있었음을 말이다.
* * *
콰아아아아아앙!
‘뭐지?’
위긴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미약한 진동.
그리고 미약한 소음.
잘 집중하지 않으면 들릴 것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하지만 분명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은 명확했다.
진동이 멈추지 않으니까.
배는 안전했다.
갑판 위에서 무수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이 배는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아래에서에 느껴지는 이 진동은 지금 이 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케 했다.
‘가라앉는다?’
그것은 예감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예감은 아니었다. 위긴스의 예민한 감각은 이 커다란 배가 조금씩 요동치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 요동이 점점 커져 간다.
“흐음.”
위긴스가 미간을 좁혔다.
‘이거 문제가 되겠는걸?’
계획에 없던 일이다.
사실 그들이 이렇게까지 번거로운 일을 감수한 것은 이 배를 가라앉히고 싶지 않아서가 컸다. 배가 가라앉게 되면 뒤처리가 쉽지 않아진다.
게다가…….
‘정말 다 죽는 건가?’
저들이?
위긴스의 시선이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다수가 그들의 배를 탈환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지만,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앞에서 싸우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남은 이들은 그저 바다에 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배가 가라앉는다?
다 죽는다.
처음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일본으로 헤엄쳐 갔다면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배에 유혹당한 저들은 지금 이곳에서 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이제는 일본 열도까지 헤엄쳐 갈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흐음.”
노부오의 말에 위긴스가 미간을 좁혔다.
“아무래도 치료는 나중에 마무리해야겠군.”
“예?”
“로드께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 대책이 필요하군.”
“보, 보고요?”
노부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는가. 지금 강진호는 신니치카이의 정예와 격전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보고라니?
“아, 뭐, 이해가 안 갈 수도 있겠지. 그런데 뭐, 굳이 이해할 필요 없네.”
“…….”
“눈으로 보고 알게 될 테니까. 금방 끝날 거거든.”
노부오의 시선이 다시 강진호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수십 줄기의 유성으로 화한 암월조가 강진호를 덮쳐 들었다.
그러고 나서 노부오는 보았다.
불꽃.
검은 불꽃.
세상을 집어삼켜 버릴 것처럼 더없이 어둡고 음울한 검은 불꽃이 갑판을 모두 뒤덮을 듯이 화려하게 타오르는 모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