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1
#90.
훈련하다 (9)
“충성.”
강진호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최 상사를 보고 경례를 붙였다.
최 상사도 그 모습을 보더니, 깔끔하게 경례를 했다.
“쉬어.”
강진호가 자세를 풀자 최 상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담배 피우나?”
“예.”
“저기로 가서 한 대 하자고.”
“예, 알겠습니다.”
건물 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곳으로 들어가자 최 상사가 강진호에게 담배를 건넸다.
“자, 한 대 피워. 군담배라 입에 안 맞을 수는 있겠지만, 여기서 그런 거 따지는 것도 웃기지?”
“그렇습니다.”
강진호는 두말없이 담배를 받아 들었다.
‘흐음…….’
정말 오랜만에 보는 담배다. 훈련소 초기에 조교가 챙겨 준 담배를 피운 이후로 얼마 만에 보는 담배인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래도 훈련생들이랑 같이 담배 한 대씩 하는 맛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규정이 너무 강화돼서 담배 주다가 걸리면 나도 박살 나. 이거도 큰마음 먹고 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
“감사합니다.”
“농담이야, 인마.”
최 상사는 빙그레 웃으며 강진호가 문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생명의 은인한테 담배 한 개비 못 주겠냐? 짜르려면 짜르라고 하지, 뭐.”
“진짜 짤리셔도 괜찮은 겁니까?”
“마누라한테 맞아 죽는다. 난 죽어도 군대에서 죽을 거야. 크,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그때 죽었으면 국가유공자 되는 건데.”
“농담이시죠?”
“그럼 진담이겠냐?”
최 상사는 혀를 끌끌 차더니 강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이번 기수가 사고가 엄청 많았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아닙니다.”
강진호는 대답을 하고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후에 뱉었다.
“수료식 때 다른 애들은 부모님도 오시고 하던데, 진호는 아무도 안 왔나?”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외박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잠깐 보는 건데 굳이 이곳까지 오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곳도 아니고 멀리서 와야 하는데, 곧 있으면 100일이니 그때 나가서 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 여기서 백일이 니가 생각하는 것처럼 금방 가지를 않아요.”
강진호는 대답 없이 멋쩍게 웃었다.
“싱거운 놈.”
최 상사는 말없이 강진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날 이후로 그는 강진호란 남자를 지켜봐 왔다. 크게 말도 없고 자신이 할 것만 묵묵히 하는 타입이다 보니 좀 냉정한 타입이 아닌가 싶었는데, 이리 웃는 것을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저 조금 과묵할 뿐.
“강진호.”
“100번 훈련병, 강진호.”
“자대와 여기는 전혀 다른 곳이다. 알고 있지?”
“예.”
“그래. 너는 잘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군대라는 곳은 내가 맡은 임무만 잘한다고 해서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사람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곳이 군대다.”
“예.”
최 상사는 강진호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했기를 바랐다. 실제로는 그럴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힘들 텐데.’
강진호 같은 인물은 자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타입이다. 그래서 걱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강진호가 그러한 부대 내의 생활을 과연 힘들다고 받아들일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다.
“여하튼…….”
뭔가 말을 더 하려는 찰나, 누군가 건물 앞쪽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충성!”
“어, 뭐야?”
“3소대장님, 대대장실에서 강진호 찾는데 말입니다.”
“대대장실?”
최 상사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이미 시상도 끝났는데 굳이 훈련병을 찾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대대장님이 직접 찾으시는 거야?”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강진호.”
“100번 훈련병, 강진호.”
“얼른 가봐라. 대대장실에서 찾는 거면 뭔 일이 있지 싶다.”
“예, 알겠습니다.”
강진호는 앞장서는 조교를 따라 대대장실로 향했다.
최 상사는 길게 담배를 빨아들이면서 멀어져 가는 강진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잘하겠지.’
힘든 군 생활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는 잘해낼 것이라 믿었다.
똑똑.
“대대장님, 강진호 왔습니다.”
“들여보내.”
강진호는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 경례를 했다.
“100번 훈련병, 강진호. 대대장실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어, 그래.”
손을 내린 강진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왜?”
“허참.”
강진호를 보고 어이없다는 얼굴을 한 황정후가 대대장에게 손짓을 했다.
“예.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네.”
대대장이 대대장실 밖으로 나가자 황정후는 앞을 가리켰다.
“뭐하나, 앉지 않고.”
강진호는 황정후가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들게.”
그의 앞에는 이미 커피가 놓여 있었다. 강진호는 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신 뒤, 커피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 입니까?”
“무슨 일이긴, 이 사람아. 한 달 넘었지 않은가.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다고 얼마나 애가 탔는데.”
“아…….”
“남의 목숨이라고 그렇게 함부로 여기는 것 아닐세.”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정 급한 사람이 찾아오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까먹고 있었다니, 충격이로군. 내가 자네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됐나?”
강진호는 웃고 말았다.
간만에 아는 얼굴을 보니 반갑다.
“여기 들어오셔도 되는 겁니까?”
“손자 보러 온다고 하니 들여보내 주더군.”
“혈연이 없는데도요?”
“내가 하겠다는데 뭐 검사까지 하겠나?”
“권력이 아무리 좋다지만, 이건 경우에 어긋난 것 같군요.”
“좀 봐주게.”
황정후는 끌끌대며 웃었다. 목숨이 걸렸는데 법이고 도덕이고 중요할 리가 있겠는가.
“대신에 내가 군에 크게 기부를 했으니까 괜찮을 걸세.”
“그걸 뇌물이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장성에게 돌아가면 뇌물이 되는 거고, 장병에게 돌아가면 기부가 되는 거지. 내가 알아서 잘 감시하게 해뒀으니, 간 크게 돈을 빼돌리려는 사람은 없을 거야.”
“흐음…….”
좋은 일에 쓰인다면 그것도 괜찮았다.
“그래도 쉽지 않았을 텐데…….”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강진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대한민국의 재계와 정계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황정후가 재계와 정계에 얼마나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시대의 거인이라 불리는 사람이니만큼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군에도 인맥이 좀 있지. 사실 딱히 기부까지 하면서 올 일은 아니었지만, 자네가 기분 나빠할까 봐 내가 미리 좀 매를 맞았네.”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황정후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럼 어서 할 일은 해주지 않겠나?”
“예.”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황정후가 앉아 있는 소파 뒤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황정후의 머리에 손을 댔다.
“흡!”
황정후가 조금 긴장한 듯 심호흡을 했다.
강진호의 손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황정후의 머릿속을 타고 돌았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탈색되는 기분에 황정후가 신음을 흘렸다.
“흐으윽!”
하지만 고통은 잠시였고, 이내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강진호가 손을 떼고 나자 황정후는 말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걸로 한 달은 괜찮은 거겠지?”
“예.”
“매번 느끼는 거지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원망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말했지만, 완치가 가능한 게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싶네.”
황정후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강진호도 굳이 항변하지 않았다. 믿음은 개인의 문제다.
“문제는 이제부터도 내가 한 달마다 이곳에 찾아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거지.”
“…….”
“면제는 생각해 본 적 없나?”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의경이나 이런 쪽도 괜찮지 않나. 적어도 수방사 쪽으로만 오더라도 서울권 근처에서 생활할 수 있을 걸세.”
“…….”
“이보게, 진호. 나는 내 아들들도 다들 특전사로 보내 버린 사람이야. 국가에서 부여한 의무를 회피할 생각은 없단 말일세. 하지만 자네가 군에서 사고라도 당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회생 중인 재경도 무너지는 걸세. 나는 그 꼴은 볼 수 없어.”
강진호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곳에서 사고를 당할 제가 아닙니다.”
“왜 그렇게 군대에 집착하는 건가?”
“집착한 적은 없습니다.”
“그럼?”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것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가야 할 곳이 군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온 겁니다.”
“자네가 평범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능하지 않다 해도 노력은 해야죠.”
“후…….”
황정후는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애초에 강진호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설득이 먹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럼 별수 없이 앞으로 내가 찾아오는 수밖에 없겠군. 그 정도는 괜찮겠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휴가를 나가거나 하면 그 달에는 제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게. 그리고 이거.”
“예?”
강진호는 황정후가 내민 봉투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뭔가요?”
“돈일세.”
“왜 돈을?”
황정후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을 했다.
“군대라고 해서 돈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자본주의를 피할 곳이 없지.”
“흠.”
“부대에 가면 쓸 일이 있을 걸세. 이 돈을 쓰도록 하게. 어머님도 오지 않으셨으니 돈을 받을 곳이 없었겠지.”
강진호는 고개를 저으며 봉투를 황정후에게 다시 밀었다.
황정후는 그 광경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말 그대로 용돈을 가져온 거네. 자네에게 지급하고 있는 금액에 비하면 푼돈 수준도 안 되는 돈이야. 왜 안 받으려는 건가?”
“그게 아닙니다.”
“그럼?”
“계좌로 보내주시지요.”
“……으응?”
“요즘 군대는 다들 계좌로 월급 넣습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현금을 가지고 오십니까? 계좌번호 적어 드릴 테니, 이쪽으로 넣어주세요.”
“…….”
황정후가 어버버하고 있자 강진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만 가보겠습니다.”
강진호가 문을 닫고 나가자 황정후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한 방 먹었구만.”
껄껄대던 황정후가 반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는 찰나, 방을 비웠던 대대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다 되셨습니까?”
“그래, 수고했네.”
황정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십니까?”
“여기 더 있어봐야 자네만 불편해지는 거지. 나는 할 일 다 했으니, 신경 쓰지 말게.”
“그래도 좀 더 쉬다 가지 그러십니까.”
“일 없네. 석찬이에게는 내가 고마웠다고 전해주게.”
“사단장님께서 따로 전화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편하지.”
“그런데…….”
“으음?”
“지금 나간 훈련병이랑은 어떤 관계십니까?”
대대장은 의혹을 가득 담아 물었다.
황정후는 자식이고 손자고 간에 특별 대접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자식들을 모조리 입대시켰고, 손자들조차 현역을 가지 않으면 취급조차 해주지 않았다.
덕분에 재경은 군 문제에 관한 한 가장 깨끗한 재벌이라 불리며 국민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런 황정후가 훈련병을 개인적으로 찾아오다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저 녀석?”
황정후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내 목숨과도 같은 아이네.”
황정후 본인은 이 말이 어떤 파장을 나을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