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13
#912.
복귀하다 (2)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꿈같은 이야기였다.
노부오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절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일본에 있어서 그는 역적이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거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만약 총회의 비호가 없다면 한국에서 살아남는 것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일본에서 하루 한 번씩 자객이 찾아온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가 일본의 입장이라 해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말 일본에서 살 수 있습니까?”
노부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묻자, 이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이겠지요.”
살짝 고민하는 듯하던 이현수가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일단 새로운 신분은 필수입니다. 그리고 얼굴을 못 알아보게 바꿔야겠지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면 가족분들과 모여 사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가족이라고 해봐야 저는 어머니 한 분밖에 없습니다만.”
“그럼 일이 더 쉽겠네요.”
“하, 하지만 저놈들이 순순히 어머니를 보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미 출발했으니까요.”
“……예?”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만에 하나의 상황에 대비하는 게 제 일입니다. 혹시 몰라서 노부오 씨의 신상을 파악한 순간, 일본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어머니의 신상을 이쪽에서 확보해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뇨. 실례라뇨. 되레 제가 감사드려야 할 일이죠.”
“다만, 어머님의 신병을 확보하는 와중에 조금은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드님이 시켜서 왔으니 같이 한국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 보통은 납치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겠죠.”
노부오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그건 보이스 피싱이나 어린이 유괴에 상투적으로 쓰이는 멘트이니까.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항감을 느낄 것이다.
“상황이 된다면 제게 통화를 시도하라는 명령을 내려두었으니, 먼저 통화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좀 상황이 부드러워지겠지만, 장담은 드리기 힘드네요.”
“그, 그런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놈들이 가만히 어머니를 보내줄지…….”
“신경 못 쓸 겁니다. 아마 지금 상황에 대한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테니까요.”
“…….”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한국의 영해에서 배가 가라앉고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일본은 지금쯤 여객선이 해안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갈 연락이야 없겠지만.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부오 씨는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 살아갈 시에는 무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해야겠지만, 그것을 감수하고도 충분히 즐기고 살 수 있는 삶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노부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대가였다.
물론 이들에게 구출되면서 약간의 보상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전폭적인 보상을 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어머니에 대한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곳이구나.’
왜 일본이 그리 철저하게 패했는지 알 것 같았다. 강진호들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이들에게는 모든 사안에 대한 신속한 대처가 존재한다.
그리고 아마 그 대처의 중심에는 이 사내가 있을 것이다.
‘어쩐지.’
저 무시무시한 양반들에게 큰소리를 친다 싶더니, 이 정도 능력이 있으니 신임을 받아 약한 무력에도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었겠지.
“자, 어떤 보상을 원하십니까?”
“……조금 생각을 해봐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천천히 답변 주셔도 됩니다. 그 와중에 치료와 한국에서의 체류는 불편함이 없도록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담당 안내원도 하나 붙여 드릴 테니, 문제가 생기면 그쪽으로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아, 예.”
“체류 동안 쓰실 휴대폰이라든가, 이런저런 사항에 대한 안내는 나중에 따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한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가만히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그리 은혜를 철저하게 갚는 타입은 아니지만…….”
살짝 멋쩍은 듯 강진호가 손가락으로 눈가를 긁었다.
“받은 것이 있으면 갚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 경우에는 워낙 큰 것을 받았으니까. 다만…….”
강진호가 뭔가 말을 하려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적절한 말이 아니겠군. 쉬어라.”
“……예.”
이현수가 손짓을 하자 마염들이 다가와 노부오를 이끌었다. 쾌속선 아래에 있는 선실로 노부오를 안내할 것이다.
노부오의 모습이 계단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위긴스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 했습니까?”
강진호가 잠시 머뭇대다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는 이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 게 네 인생을 위해서 좋을 거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왠지 하지 말아야 할 말 같아서.”
“잘하셨습니다. 그건 하면 안 될 말이지요. 실제로 그게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위긴스도 쓴웃음을 머금었다.
일이 좋게 풀렸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카타 유지가 조금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면, 지금 노부오는 죽어서 바다 밑을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 영웅적인 행동의 혜택을 받은 총회의 소속으로 할 말은 아니겠지만, 노부오 개인적으로 보자면 이번 일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나는 희생이라는 걸 이해하기가 힘들어.”
“모두가 그렇겠지요.”
“그럼 본인에게는 뭐가 남지?”
“……보람이겠죠.”
“그런 하찮은 것 때문에 목숨을 낭비한다는 건가?”
“글쎄요. 이미 로드께서도 그러고 계시잖습니까.”
“음?”
위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로드께서는 이미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을 위해서 돈과 열정을 사용하고 계시죠.”
“그건 이것과 달라.”
“제가 생각하기는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곳에 선을 긋느냐의 문제겠죠. 누군가에게는 지인에게 사용하는 돈이 목숨보다 더 아까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요.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진호가 입을 닫았다.
부정하고 싶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무엇보다…….”
위긴스가 살짝 머리를 긁었다.
“서양인인 제가 동양인인 로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군요. 통속적인 관념으로 본다면 이 말은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해야 할 말 같으니까요. 여하튼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충동적인 존재이지요. 매 상황마다 합리성을 고려하여 선택을 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흐음.”
“결국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평소에 어떤 지론을 가지고 사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리 있는 말이군. 하지만 여전히 이해는 못하겠어.”
위긴스가 싱긋 웃었다.
‘동족혐오인가?’
강진호 자신은 모르는 것 같지만, 위긴스가 보기에는 강진호도 별다르지 않았다. 강진호야말로 주변을 위해서 자신이 피해를 보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이런 부분을 짚어내는 것은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다. 될 수 있으면 지양해야 한다. 강진호도 사람이니까.
“이현수.”
“예!”
“방 이사는?”
“지금 총회 쪽 배로 가셨습니다. 부상자는 없는지 살핀다고 하십니다. 아무래도 천태훈이 이끄는 이들이다 보니 걱정이 되시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이현수가 싱긋 웃었다.
전력과 상황을 감안했을 때, 기적적으로 피해가 없었다. 바다 위에서 싸울 수 있어서 피해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상황을 가정하고도 피해가 적었다.
완승이라는 말로도 모자란 승리였다.
“그런가.”
강진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복귀하게 되면 다시 정확하게 조사를 하겠지만, 딱히 걱정하실 부분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정확한 판단이셨습니다. 덕분에 대승을 거뒀습니다.”
“낯간지럽군.”
피식 웃은 강진호가 대화를 끝내려는 찰나, 이현수가 다시 물어왔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저들은 어쩌실 셈입니까?”
“저들?”
“바다에 남겨놓고 온 이들 말입니다. 구명조끼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대로 버려진다면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싸그리 다 죽게 될 겁니다.”
강진호가 머리를 긁었다.
“까먹었군.”
“예?”
“……아니, 아니다. 연락을 취해줘라.”
“연락이라 하시면?”
“일본에 연락해서 데려가라고 해.”
“모조리 말입니까?”
생각지 못한 답변이 나왔다. 이현수는 강진호가 구명정이나 몇 개 주는 수준에서 저들을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미 조금 시간이 지나기는 했지만, 저들이 무인인 것을 감안했을 때, 구조선이 올 때까지는 충분히 버틸 만할 것이다.
그럼 이현수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수가 살아 돌아가게 된다.
“그게 이쪽에 더 나아.”
“……저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그 말에 위긴스가 대신 대답했다.
“시야가 좁아졌구나.”
“사부님?”
“희생은 적을 단결시키지만, 공포는 적을 마비시킨다. 저들이 일본으로 돌아가 로드의 무위와 총회의 강함에 대해 떠들어 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아…….”
그제야 이현수는 강진호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저들이 살아 돌아가게 되면 일본에 강진호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된다. 그리고 저들은 다음에 벌어질 원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절대로 참여하려 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공포심을 불어넣을 테니까.
‘확실히 이쪽이 이득이지.’
하지만 조금 의외였다.
평소의 강진호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적은 다 죽여 버리고 그 예봉을 꺾어버리는 게 강진호의 스타일이다.
지금의 대처는 평소의 그와는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다.
‘좀 더 합리적인가?’
사람이 부드러워진 것인지, 조금 더 먼 곳을 보게 된 것인지…… 지금 당장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강진호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예. 그럼 그리 처리하겠습니다.”
강진호가 대답하지 않자, 이현수가 슬그머니 뒤로 돌아 나왔다. 그러자 바토르와 위긴스도 이현수를 따라 뱃머리를 벗어났다.
“음?”
이현수가 한마디를 하려 하자, 위긴스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는 시늉을 했다.
“잠시 혼자 계시는 게 좋다.”
“……예.”
의도는 모르겠지만, 위긴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이현수가 슬쩍 강진호를 돌아보고는 뱃머리를 완전히 벗어났다.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자 강진호는 조금 멍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쫓고 있는 것은 전투가 아니었다.
일격으로 배를 가르던 때.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겠지만, 그는 분명히 보았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의 형상을 말이다. 이미 죽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시신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갔다.
‘김석일.’
그 이름은 분명 기억하고 있다.
아마 배에 구멍을 뚫은 것도 그이겠지.
싸우고, 지키고, 또 살아가면서 인연을 쌓아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명 원한과 악연 역시 쌓이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강진호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살아간다는 거니까.’
모두가 그렇게.
그렇게 살아간다.
모두가.